폭력의 씨앗|The Seeds of Violence|2017

 

포스터와 제목이 영화 그 자체

이 씨앗은 아무리 안 가꾸려 해도 
주변에 양분이 너무 흔하다. 
그냥 날아가 버린 하루.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텐데
어떤 환경에 영향이 있다 없다 말고
왜 어떤 사람들은 왜 더 심해지는 건지 
그런 게 알고 싶다.
폭력의 씨앗이 아주 폭력적으로 나오지 않아서 좋았다. 

69세|An Old Lady|2019

살아있기 때문입니다에 '아직'을 붙이는 나이, 69세


옷 잘 입고, 다리가 예쁘고, 늘씬하다는 품평은 여전하면서
범죄의 피해에도 개연성을 증명해야 하는 나이.
보통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건 어느 정도 더 자유로워진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가 되면
코엘류가 젊은 여자들의 놀림거리가 되면서 자조했듯
성적인 매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문제는 이게 성이 아니라 폭행이라는 점이고
폭행 피해 정도를 피해자의 나이로 가린다는 게 말도 안된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성폭행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친한 친구처럼 편하게 말해도 공감의 편함이 느껴지게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겉으로 라도 조심해주는 기술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건 
특별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좀 더 섬세했거나 
아예 더 용감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피해자보다 피해자의 바람직한 남자친구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해서... 


오스트리아 제2 도시에서 공산당 시장 선출

Graz라는 도시에서 18년 묵은 보수당 시장을 공산당 후보가 이겼다는 소식. 
우파 바람이 거세지는 것 같던 유럽에서,
그것도 히틀러의 나라(^^)에서?
 

주요 공약은 
더 많은 공공주택을 유럽연합 외 이주민에게도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 
저소득층에 지원되던 교통 패스를 모든 노동자들에게 확대한다는 것, 
유치원 보육비를 인하하고 모든 유치원을 공립화 하는 것,
하수와 쓰레기 처리비의 급격한 인상을 막는 것 등이다. 

정책적인 것 말고 좀 놀라운 건
정치인이 된 후로 매월 급여에서 필요 금액(1950유로) 이상은 기부를 했다는데 
기부 방식이 공익재단에 금액을 위탁하는 게 아니라
보청기가 필요한 사람이나 전기공급을 끊긴 사람에게 
필요한 금액을 송금하는 식의 직접 지원이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인데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만큼 못 버는 사람들과 교감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Elke Kahr, 이제 시작이지만 관심 가는 인물 등극...인데 
날짜를 보니 작년 12월 기사...
 
That’s what I’ve always done since I’ve drawn a salary as a politician. Since 2005 [the year Kahr became a member of Graz’s city senate], I’ve earned more than €6,000 per month. I’ve always kept €1,950 and given the rest to people in need. When you assume political office and suddenly earn much more than before, it’s easy to lose touch with those who don’t make as much.

십개월의 미래|Ten Months|2020

 


신성한 생명까지 안 가더라도 
축복 비슷한 분위기는 유지되는 게 생명에 대한 예의일 것 같지만
미래의 임신은 말 그대로 갑작스러운 변수다. 
너무 차갑지 않나, 너무 부정적인 얘기만 해서 겁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는
현실적인 도움이 못되더라도 
임신덕담 정도는 길가는 행인들에게도 실컷 들을 법 하니
이렇게 균형을 맞춰주는 것도 좋겠다. 
역시 필요한 건 현실적 버팀목.
자유와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건 다 여유 있을 때 뿐.
임신한 미래를 자르면서 왜 나쁜 사람 만드냐고 미래에게 얘기하는 사장을 보는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뭔가 찔릴 때
남들도 다 이럴 거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착한 사람의 전형 같았다. 
세상을 유지하는 것에도
세상을 지체시키는 것에도 자기 몫이 있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The Artist: Reborn|2015

 



지젤 그리고 오인숙 그 사이 관장
두 사람 모두 이게 가장 에너지 넘치는 순간들이 아닐까 

천재라는 건 원하는 걸 놓을 수 없게도
놓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타고난 손아귀 힘 같은데 
원래 지젤의 바람은 원래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을 테니
그 선택을 지지한다. 
비슷하게 재능이 있었고 기회도 있었지만 
과하게 원했던 미술관장의 거짓이 
더 갖고 싶었던 것 까지 놓게 만들며 끝나는 
아담한 권선징악.
갑작스러운 건 행운이든 불행이든 참 취약한 인간이구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PS. 인물에 맞는 분장이나 의상이었나가 의심스러웠던 이현경의 스타일링은 알쏭달쏭.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2002

 

천기누설 포스터^^

로맨틱 미스테리라고나 할까^^
아니다 미스테리 로맨스가 더 맞겠다-
암튼 귀엽다.
이 때도 둘 다 신입생 역할이 어색하지 않았는데
그 풋풋함이 영화 끝까지 이어졌다.
풋풋한 엄지원, 김서형도 등장하는
귀여운 로맨스.

지난 일만 얘기하는 뉴스에서
유일한 미래라는 일기예보니까 밝았으면 좋겠다는 연희의 제안을 
혼신의 힘을 다해 살린 진수, 귀여웠다.
미래는 아니고 그냥 현재의 일기예보였지만
일기예보에 새 바람을 일으킨 사람들 생각도 좀 나던^^

그리고 이렇게 영화속에 오래 살 장진영.

쌍화점|A Frozen Flower|2008

 


옛날에 본 것 같은데 
파격으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왕에게 좀 미안해지는 기분.
홍림의 선택을 보면
왕과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로비를 했던 듯.
송중기가 나왔던 건 이번에 알았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Lady on Fire|2019

 


슬픈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아니라
바랜 사랑이라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야기.

눈물 나도록 안타깝지만
마리안느도 엘로이즈도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연인을 떠나보내는 의식이 되어 버렸지만
그게 아니였다면 만날 수도 없었을 두 사람이니
몇 백 년 뒤 다시 태어나시길.
오르페우스의 얘기는 항상
인간의 믿음이나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 같았지만
이별의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던 것도 새로왔다.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끈끈 한 시선을 관객에게 던진 듯
별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집중해서 보게 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
그 끈끈함이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키스씬에서
셀린 시아마의 신선한 변태 기질 발견 ㅋㅋ
번역이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존댓말을 하는 분위기가 우아함을 이어가 줬고
짤막하고도 간결하게 툭 던지고 가는 뭔가 의미있는 것 같은 대사들
-웃으려면 둘이 필요하다든가
음악은 설명하기 힘들다든가
평등함이 좋았다는 수녀원에서의 기억 같은 것-도 좋았다.

비발디의 겨울과 엘로이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리안느의 마지막 장면.
이 사랑은 죽지 않을 것 같아.
제목도 멋있다.

소리도 없이|Voice of Silence|2020

 


태인은 가족이 있지만 어린 동생을 생존유지 수준으로 키우고 있었고  
무려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는 믿을만한 동료가 있지만
달걀 하나에도 인색하면서 일을 미루기도 하니 딱히 대접 받는 처지는 아니었던 데다,
그리 적극적이거나 열정적으로 일하진 않는 편. 
심부름 친절에 대한 과한 감사에는 정직하게 반응하고,
동네 수상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 바로 경찰의 의심을 사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더라도
살고 있던 무너진 집처럼 온전하지 않았다. 

초희가 이 집에 오면서 
생존만 유지되던 문주는 얼굴을 되찾기도 하고 
사회화를 배우기도 하지만 
초희의 맘 붙일 곳이 되어주면서  
오빠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태인.
매사에 딱히 적극적이지 않던 태인은 
후회하고 
원망하고 
달린다, 초희 때문에. 
 
범죄에 대한 독특한 처벌.
최선을 다한 순간 차갑게 버려지는 것이 정의가 되다니
이보다 철저한 단죄가 있을까.
지켜보는 사이 태인에게서 초희로 스르륵 이루어진 힘의 이전까지-
신선하다. 
소리도 없이-라는 제목은 태인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관계가 어느새 바뀌어 있는 상황 같기도 하고.
범상치 않은 솜씨의 홍의정 감독-기억해 둬야지.  

최연소 팜므파탈이 아닐까 싶은데
총명한 눈빛 뒤에 우물 하나쯤 숨어있을 것 같은 초희, 대단했고
외로움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해 꼭 말이 필요한 건 아니구나 싶게 
천진함이 자연스럽던 문주도 귀여웠다.
그리고 유아인. 
몸만들기부터 일단 반했지만 
소리는 없었어도 대사가 없는 것 같지 않을 정도로 
그 속에서 눈빛의 표정이 더 살아났다.

그리고 김자영-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재미있었던 상궁님께서
친근한 아줌마의 탈을 쓴 전문인신매매범으로 천연덕스럽게 등장^^

동주|DONGJU; The Portrait of A Poet|2015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 처럼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잊으면 안되는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부끄러움 속에서 고통스럽게 삶의 시간을 견디고
별이 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걸까.

반짝인 건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이지만 
그래서 제목은 몽규가 아닌 동주.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1950

 


카메라 뒷동네가 카메라 앞으로 불려 나오는 초창기 헐리웃 동네 얘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적당한 재능을 가진 시나리오 작가에게 찾아온 유혹.
조는 쉽게 가려다 뜻밖의 죽음을 맞지만
영화가 사건의 결말을 처음에 보여주고 있어서 
스포일러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놀라운 구조임에도 
하지만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결말 속 주인공은 노마라서 
영화의 마지막은 그대로 흥미롭다. 

약간 고풍스러운 말투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특징을 잘 모르겠었던 노마가 채플린을 연기할 때
유성영화 속 연기를 비하하던 게 그냥 허세가 아니었구나-깜짝 놀랐다. 
노마를 만나고 나서 일처리를 하던 드밀 감독은 
역시 노마에 대한 통찰력을 잘 보여줬고,
조는 어느 시절에 살아도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은 모던함 때문에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베티 비중이 좀 줄었으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마지막 까지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원형 같은 구조.
대단한 헐리웃 시절이다. 

노마 역의 배우는 진짜 무성영화시절 인기 배우가 맞지만 
노마와 달리 유성영화시절에도 활발하게 활동했고, 
드밀 감독은 실제 인물에 본인 출연이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본인역으로 출연했는데 아는 이름은 버스터 키튼 뿐.
주급 18,000달러라는 대사가 있어서 찾아보니 
구글선생 왈 최소 10,000달러였다고 한다. 
어마어마했네, 그때부터 헐리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