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이탈로 칼비노 |역자 이현경 |민음사

 형은 아픔과 승리의 기쁨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생전 처음 승리한 사람, 그리고 이제 승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지 아는 사람,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으며 실패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도피처를 자신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 사람의 절망에 사로잡혀 나뭇가지와 단검과 고양이의 시체를 꽉 붙들고 있었다.


“자네 꼴좋군!” 아버지가 호되게 말을 시작했다. “정말 귀족신사라고 할 만해!”(아주 엄하게 야단칠 때처럼, 아버지는 형에게 ‘자네’라는 존칭을 사용해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 존칭의 사용은 거리감과 무관심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버님, 귀족은 땅에 있으나 나무 위에 있으나 귀족입니다.” 코지모 형이 대답하더니 곧 이렇게 덧붙였다. “그가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말입니다.”

“좋은 말이군.” 남작이 심각한 태도로 시인했다. “그런데도 자넨 방금 전에 소작농의 자두를 훔쳤어.”

사실이었다. 형은 당황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형은 미소를 지었는데 거만하거나 냉소적인 미소가 아니라 부끄러워하는 미소였다.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버지도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쓸쓸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얼굴도 빨개졌다. “이제 자넨 행실이 나쁜 아이들과 거지 떼와 한통속이 되었군.” 잠시 후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님. 저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누구나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코지모 형은 단호하게 말했다.

“부탁하네. 땅으로 내려오게.” 남작은 거의 꺼질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자네 신분에 맞는 의무를 다시 수행하게.”

“그 말씀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 형이 대답했다. “저도 괴롭습니다.” 

두 사람 다 거북스럽게 짜증이 났다. 두 사람 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러면 자네 공부는? 기독교인으로 해야할 기도들은?” 아버지가 말했다. “아메리카의 야만인들처럼 자라겠단 말인가?” 형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들이었고 앞으로 도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형이 말했다. “제가 몇 미터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적절한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느 면에서는 형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흔들리고 있다는 표시였다. 

아버지는 이를 눈치채고 더욱 그를 조였다. “반항이란 몇 미터냐 하는 걸로 측정되는게 아니야.” 아버지가 말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얼마 가지 않은 것 같은데 돌아올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이제 형은 뭔가 다른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 당시 우리가 많이 외우고 있던 라틴어 격언이라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은 거기서 그렇게 엄숙한 말을 해야 한다는게 짜증 났다. 그래서 혀를 쏙 내밀고 소리쳤다. “그래도 난 나무 위에서 더 멀리 오줌을 쌀 수도 있어요!” 의미 없는 말이었지만 이것으로 대화는 중단되어 버렸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듯이 포르타 카페리 주위에 있던 불량소년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디 론도 남작의 말이 급히 옆으로 뛰쳐나갔고 남작은 고삐를 잡고 떠날 채비를 하듯 망토를 몸에 둘렀다. 하지만 몸을 돌리더니 망토에서 한 팔을 빼내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버린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조심해라, 아들아. 우리 모두의 머리위에 오줌을 놀 수 있는 분이 계시단다!” 그러더니 말을 달려갔다. 


불행히도 이런 나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호두 나무도 마찬가지여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셀  수도 없이 많은 방을 가진 여러 층의 대저택처럼 어마어마하게 크고 오래된 호두나무 쪽으로 형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서 흉내 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위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그 나무를 나무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힘과 확실성이었고 무겁고 단단해지고자 하는 고집스러움, 나뭇잎 하나하나에까지도 나타나 있는 그 고집스러움이었다.


이미 형이 눈에 비친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형의 세상은 구불구불하게 허공에 놓인 다리들 ,나무 마디나 껍질들, 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유충들,  곧 자루를 흔드는 약한 바람에 떨리거나 나무 전체가 바람 앞의 돛처럼 휘어질 때 같이 흔들리는 울창하거나 성근 나뭇잎들, 그리고 그 초록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햇빛으로 이루어졌다. 밑에 있는 우리들의 세상은 평평했으며 우리는 균형이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이 나무 위에서  알게 된 것들과 나무가 몸통 내부에 나이테를 나타내는 원을 만들기 위해 세포 조직을 응축시키는 소리, 곰팡이가 산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함께 실려온 먼지와 섞여 점점 커지는 소리,  둥지 안에서 잠자던 새들이 몸을 떨며  깃털이 제일 부드러운 날갯죽지에 머리를 쑤셔 넣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비 유충이  깨어나는 소리와 때까치 알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보내는 형에 관해 우리는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들판의 침묵 속에서 까악까악 우는 소리, 짐승의 긴 울음소리, 풀잎을 아주 재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물속에 풍덩 떨어지는 소리, 땅과 돌멩이 사이로 비틀비틀 걷는소리,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 보다 훨씬 높은 있는 매미 우는 소리가  무수한  소음으로 들려오는 순간이 있다. 소음은 연이어 들리게 되고 그 소음 중에서 새로운 소리를 언제나 구별할 수 있게 되는데, 그건  마치  양모 타래를 끄르던 손가락이 실타래마다 점점 가늘어져서 제대로 만질 수도 없는 실들이 엉켜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과 같았다. 그러는동안 개구리들은 계속 개골개골 물었다. 계속 깜빡이며 빛나는 별빛이 있어도 달빛이 변하지 않듯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다른 소리의 흐름을 바꿔 놓지 않은 채 배경음으로 남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거나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모든 소리는 변했고 새로워졌다. 귀의 깊숙한 부분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소리는 음울한 포효 혹은 웅얼거림 뿐이었다. 그건 바다 소리였다.


사랑의 미덕중 가장 새로운 것은 아주 단순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형은 그때 자신이 평생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형의 이 모순되는 태도를 유례없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치부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형이 그 시대에 번성했던 모든 유형의 사회집단에 대해 똑같은 적의를 품고 있었기에  그 모두를 피했고, 고집스럽게 새로운 단체를 계속 실험하느라  애썼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형이 보기에 그 많은 단체들 중 정의롭다거나 다른 단체와 완전히 구별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형은 철저한 자연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거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보편적인 사회였다. 화재나 늑대 침입을 막기 위해 방위대를 조직 할 때처럼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든,  완벽한 수레바퀴 제조인 조합이나  계몽된 재혁업자 조합 같은 수공업 조합을 통해서든, 형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애쓸 때마다 항상 사람들은 한밤중에 형이 미리 정해 놓은 숲 속의 어떤 나무 주변에 모였기 때문에 그곳에는 언제나 공모와 비밀결사와 이단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형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혀서 점점 더 깨끗해지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항상 어디를 가든 비누를 가지고 다녔다.

 

호랑가시나무, 느릅나무, 쥐엄나무(아침마다 코지모가 즐겨 앉던 나무, 바티스타가 풀을 바름), 뽕나무, 목련나무(그네를 타던  비올라를 만남), 뽕나무, 플라타너스, 벚나무(과일도둑 아이들을 만남),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올리브나무, 떡갈나무, 감탕나무(집의 정원), 대나무, 인도밤나무, 너도밤나무(고양이와의 결투), 목련나무(비올라와의 이별)......


이렇게나 많은 나무 이름이 등장하는 소설. 궁금해서 처음에 좀 찾아보기도 했다. 비올라의 비난에 절망했다가 사라질 때 감탕나무-올리브나무-너도밤나무 위를 어떻게 움직였을까 상상도 해보면서.

 

칼비노의 3부작 중 두번째라는데, 둘째증후군이 무색하게도 반쪼가리였던 자작보다 더 자유롭고 인간됨의 폭이 넓어진 것 같은 남작은 매력적이다. 반쪼가리 자작이 영혼의 탐색이었다면 나무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매개인듯 살아가는 남작은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신화같은 마지막도 너무 잘 어울린다. 

누나나 아버지가 등장할 때마다 왠지 너무 웃겼고, 그의 기록은 또 살아가는 조르바 대신 기록하는 동생이 담당. 흥미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칼비노 스타일 완전 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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