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셈블리|Assembly|2015

폼생폼사!

밀어부치는 진상필이 없는 것보다
반성하는 백도현이 없는 것이 불행(이었는지 문제 였는지 확실치 않지만)이라는 댓글이 생각난다.
정말 이렇게만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알아준다면-하는 생각이 간절히 들던 국회구경.
어셈블리를 보면서
추경예산이란 게 뭔지도 알았고
법안 하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도 얼핏 볼 수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더 갑갑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개별 품질은 그렇다 치고
절차상으로는 나름 까다로운 자격을 매긴 대의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고
그들의 직업이 법안을 만들고 고치는 것임에도
이렇게나 까다로운 절차가 있다는 것이
진상필의 입장에서야 부당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법의 정신,
법 없으면 안되는 경우를 대비한 법을 만드는 절차로서는 나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누가-인셈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에는
박춘섭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으나
박춘섭만큼의 철학-자신이 대변하는 국민이 누구인가-도 없는 사람과
진상필의 꿈을 가지고 등원했지만
홍찬미가 되었다가 강상호가 되어버린 경우가 부지기수일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강상호 정도라면 솔직하고 우아한 편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나라의 거주민 또는 국민이 되는 것이
나에게는 신나는 상상이 아니었다.
짜증나고 열 받고 부끄러울 때가 있어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닌 채로 익숙해진 것이어도, 
그냥 한국사람으로 죽겠구나-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어셈블리를 보면서
그 이유 하나가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든
저렇게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라서,
될 것 같은 게 안되기도 하고,
정말 안될 것 같은 게 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포기를 막는 에너지가 남아있는 곳이어서.
그 에너지를 밖에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격을 그냥 가지고 있고 싶어서.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건 이거다.
폼나게 살고 싶어 뱃지달고 싶었던 인간들이
왜 그렇게 구질구질한 뱃지 인생을 구걸하고 연명하는데 연연하는지.

멋진 드라마의 필수조건.
명연기에 바치는 찬사.

정재영.
박중훈이 연기에 대해 찬사를 받을 때나 미지근한 반응을 얻을 때나
일관되게 '작품'이 중요하다고 하던 게 생각났다.
한 번도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확-와닿지는 않았던 정재영이 여기서 그랬다.
진상필은 매력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정재영이 충혈된 눈으로, 쉰 목소리로 연기하지 않았다면
용접공 출신의 말 잘하는 벼락의원의 죄충우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극의 흐름을 따라온 입장에서는
그럴 줄 알았던 감성적인 연설이었는데도 눈물이 떨어진 건 그의 힘.
그는 멋졌다.
"어째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합니까!"
(룰라가 한 말이라지만 저는 진의원께 들었습니다요~)
-그 뒤에 이어진 '최선'발언은
노동평가를 감정적으로 하는 것 같아 찬성하지는 않지만
정의가 다를 수 있으므로 패스.

장현성.
진짜 이상한 역할이다, 백도현은.
미친 것도 아니고 안 미친 것도 아니고
욕망의 동네에서 대장 노릇을 하겠다면서
이따금 어딘가를 찔려하는 햄릿같은 인간.

언제나 미묘함이 깔려있는 인물.
진짜 있을 것 같은
-다만 백도현 같은 결단은 무기한 미루고 있다는 게 흠이겠지만-
희망과 배신의 아이콘 백도현은 장현성이었다. 
봄이 아빠였던 게 언제였던가....

그 다음은 김서형.
김서형은 데뷔작부터 한 번도 발연기를 한 적이 없음에도
별로 연기파라는 생각은 안해봤는데
여기서는 묘하다.
예전 파리의 연인 이후로
오랜만에 제 옷을 입은 느낌이다.
나경원의 코스프레 같았던 초반에 이어
후반부의 인간적인 변모가
이렇게나 자연스러울 수가.
장면을 사로잡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마지막 그녀의 고백에서
-그럴리가 많지는 않겠지만-
보고 배우는 사람들이 있으면 참 좋겠다.

내내 기쁨조 해주신 강상호 의원.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분은 옛날 베스트셀러극장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분이신데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서도 한 번 놀랐었지만
여기서도 화려하지 않은 명연기를 펼치신다.
뻑하면 혹시 전직 조폭?-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몸짓에
국회본회의장에서 날개없는 천사 시전이라는 무리수를 이 분이 아니었다면 어찌...ㅋㅋ
이원재-이름을 이제서야 찾아보다니...죄송!

뒷심을 발휘하신 조웅규 의원.
따지고 보면 좀 밀리는 순위였음에도
왠지 아나운서 출신일 것 같은 분위기와
그럴싸하게 못된 연설을 일삼는 꼴이 정말 너무 재수없는데도
웃겼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앞으로는 어셈블리에서봤던 걸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19회를 못보고 마지막회 중간부터 봤고
끝을 보고 나니 19회는 안봐도 될 것 같았는데
정작 19회를 보고 나니
이게 최종회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분명 대박날 것 같은 드라마였는데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끝까지 품질이 유지된 것 같은 느낌^^
정도전을 안봐서 몰랐지만
정현민 작가.
 대단하다.

근데 이 드라마는 제목이 참 많이 깎아먹고 들어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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