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2015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개연성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뭘 하든 이유가 필요하다.
그들이 겪는 갈등이 클수록 결단의 이유도 커져야 한다,
그래야 생판 남인 시청자 관객 독자가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세상은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꼭 그렇듯 욱하는 마음에 저지르기도 하고, 그냥 저질렀다가
뒤늦게 이유를 깨닫기도 하고
끝내 이유를 모른채 죽을 때까지 궁금해하기도 하며
저지른 나보다 남이 먼저 알아봐주거나 분석해내기도 한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알게 된 것,
문재인과 안철수가 정치판에 끌려나오던 과정에서 본 것,
그 뒤로 간간히 그들을 따르겠다고 숨지 않고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펀치는 허구 속의 촘촘한 계략과 말판들을 위한 작전을 이끌고 따르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의외로 현실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진창의 속살은 정말 저럴 지언정
진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 속에는
저 틈에 끼지 않은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음을 떠오르게 한다.

끊이지 않는 반전,
인간됨에 대한 확신에 찬 설정 등 박경수 작가의 개성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게 가장 놀라운 점은
인물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추격자의 형사동료가 그랬고
기사의 아내가 그랬다.
이들은 모두 정을 아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들을 믿기를 포기하지 않아서
믿음을 지켜갔다.

이번에 새로웠던 힘은
애증과 신뢰, 음모가 계속 뒤집히면서 이어지는 관계였다.
애정하면서 배신하고
믿음에 기대 음모를 꾸미고
의심하기에 손을 내민다.
이태준과 박정환,
윤지숙과 이호성의 입체적인 대립각 사이
하나 살려준 신하경의 희망은 고마웠다.
신하경과 박정환의 관계가
식구니까 괜찮아를 넘어서
사랑하기에 더 치열하게 따질 수 있었던 관계여서 좋았다.

그중에서 진짜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인간은 단연 이태준.
쓰레기라고 일갈하기에 그는 정말 입체적이었고
처음에는 박정환의 유능함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애정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그의 감정선.
그래서 '나쁜'과 '인간'을 같이 느낄 수 있던 놀라운 인물.

윤지숙은 복잡하다.
이 공주마마의 정의감이 어디서 잉태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되고 그 피를 뱀파이어처럼 호성에게 물려주고 만
한때 정의의 사도.
그런 정의는 필요없다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법을 접하고 죄를 물어온 사람들의 입에서
이건 덮을 수 있다,
어디까지 깎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내가 모르는 동네에 도청기를 대고 듣는 것 같아 근심스러웠다.

나락에 떨어질수록
포기할수록
가까워지는 인간들을 보면서
바닥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품격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박경수라는 작가는 괴물이다-로 마무리.
매번 이런 전력질주를 하면서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 년에 한 번은 계속 보고 싶다, 이 징글징글 라이브.

"정환아, 나 억울하다."
"나보다?"
명대사 많고 많지만 폭소를 동반한 기막힌 대사다.
박정환 앞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 조강재나
'니가 그러는 건 이상하지도 않다'는 듯 일갈하는 정환.
실제라면 십장생 연타를 쳐도 모자랄 종자 조강재인데
여기서는 정말 든든하게 웃음의 한축을 담당하셨다.

워낙 명대사가 난립(ㅋㅋ)했던 드라마인지라 후배 명대사가 선배 명대사를 오히려 지워버렸지만 요거.
바지를 입었으면 사람구실을 해야지 각설이 치마도 아니고.
일명 바지사장들에게 남기는 정체성 촉구 선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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