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카렐 차페크|정찬영|모비딕|2014

어떤 죄수든 그 감방에 들어가면 양심의 가책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백이면 백 모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종교를 찾았다. 물론 죄질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달랐다. 단순한 경범죄와 같은 경우는 하룻밤이면 족했다. 하지만 중죄를 저지른 사람은 이삼일 정도 걸렸고, 사형수들은 완전히 바뀌는데 1주는 소요되었다. 하지만 가장 오래 걸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금고털이범이나 횡령꾼 처럼 엄청난 돈을 훔친 사람들이었다. 엄청난 돈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무디고 딱딱하게 만든다. 최소한 양심을 마비시키는 것은 확실하다. <늙은 죄수의 이야기>

금발의 미녀가 귀밑까지 새빨개져서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홀루브 형사님, 저는 이 신사분이 당신의 친구인지 꿈에도 몰랐어요."
"당신이나 조심하는 게 좋을 걸, 여기 이 신사분도 당신하고 똑같은 일에 종사하는 분이지."
...'정말 역겨운 짓이군요." 그가 경멸스럽다는 듯이 침을 뱉었다..."저는 범인으로 압송 중이기 때문에 공짜로 기차를 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국가가 지불하게 되어있으니까요. 저 같은 사람은 씀씀이를 하나하나 살펴야 합니다." 플리츠타는 프라하로 가는 내내 금발 미녀에게 저주를 퍼부어 댔다. <결혼 사기꾼>

나는 기독교는 여름에도 전혀 덥지 않은 북쪽 지방에서 시작된 게 아닐가 하고 추측해왔다.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루 종일 무언가가 계속 벌어진다. 마사, 예배, 저녁기도, 그리고 그림과 조각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신도들은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성당에 들러 땀을 식히고 명상에 잠길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은 특히 바깥이 찜통같이 더울 때 더욱 빛이 난다. 춤고 사람이 살기 힘든 북쪽 지방에서는 개신교가, 더운 남쪽 지방에서는 가톨릭이 득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성한 성당이 제공하는 그늘과 시원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고백>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게 결코 우리가 경험한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우리 경험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이 순간 경험하고 있는 것들은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혹은 편리한 대로 이런저런 경험만을 골라서 그것으로 하나의 플롯을 짠 뒤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부분은 잊어버리고, 이상하고 끔찍한 부분도 무의식적으로 생략해버린다. 맙소사, 우리가 경험한 일들을 모두 알게 된다면!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하나의 인생을 살 능력밖에 없다. 그 이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밖이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더 큰 부분-을 버리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이 우리에겐 없다.   <잠 못 이루는 남자>

우리에게 영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틀림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 정의에 대한 본능적인 희구도 그중 하나다. 나는 남보다 특출날 게 없는 사람이지만, 내 안에 내 것만이 아닌, 내게만 속한 것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건 엄숙하고 강력한 명령에 대한 인식이다. 그때 나는 죄를 저지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신을 거역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을 살해하는 건 신의 뜻에 따라 지어진 성소를 훼손하고 더럽히는 것이다.<평범한 살인>

용케 회개하지 않고 교화의 감방을 나옴으로써 그 방의 신기한 힘을 아예 없애버린 죄수,
평생 결혼사기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온 알뜰한 사기꾼의 말로,
자신이 저지른 역겹고 끔찍한 범죄를 회개하겠다며 고백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고 성직자들을 멘붕에 빠트리는 범죄자,
밤마다 떠오르는 '다른 인생'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잠들지 못하는 남자.
단편에 스치듯 실려가는, 인간에 대한 통찰에 공감이 간다. 
1924년 신문에 연재되었던 단편들을 모든 두 권의 소설은 제목처럼 두고두고 볼만한 이야기 주머니다.

...여행 다니다가 더울 때 비올 때 성당에서 낮잠 좀 자 본 나로서는
성당의 쓰임새에 정말 100%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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