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적인 인간관에 의하면, 노동은 인간을 비천하게 하므로 노동하는 인간은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기생충에게 존귀하고 고상한 삶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도 무위도식이었다...앙시엥레짐 아래에서는...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바로 아름다움과 연결되었다. 그것이 절대주의 시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토대였다. 노동에 부적합한, 부드럽고 섬세한 손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한 손은 물건을 많이 쥘 수는 없으나 그 대신 그만큼 부드럽게 애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걸음걸이로 춤을 잘 추는 작은 발은 아름답지만 그런 발로는 도저히 잘 걸을 수 없고 힘차게 대지를 밟을 수도 없다...그것은 육체의 형태 뿐 아니라 자세나 몸짓, 특히 동작에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육체의 형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세나 몸짓에 의해서 강해지거나 약해지며 또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유희적인 것이었으니 그 유희적인 것만이 고귀한 것으로 주창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게으름뱅이를 “육체노동의 인간에 반대되는 정신노동의 인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 그러한 무위도식은 옛날부터 귀족적인 이상이었으며, 그 이상은 어느 시대에나 적어도 귀족계급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덧붙여 두고자 한다. 한편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정신적으로 귀족계급에 의존해야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압박받는 동안에는 귀족적인 이상이 그들에게도 줄곧 남아 있었다.
예컨대 안색에 대해서 말하자면, 자극적인 것은 누구의 눈에나 확연한 창백함이었다. 그것은 육체가 화사하다는 상징일뿐더러 매일 밤을 사랑의 향연으로 지새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귀부인들은 자기 얼굴이 무엇보다도 창백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서 볼이나 이마 혹은 목에 일부러 검은 무슈(mousch), 즉 애교점을 붙였다.
라이프지히의 선집 「뮤즈의 추방된 아이들」참새와 산비둘기
난 내 가냘픈 상대를 만나면 얼른 애정을 보이지요.
난 날아가지만
곧 미친듯이 그녀에게 날아오며, 그리고 다시 날아갑니다.
생각이나 말보다도 훨씬 빨리
나는 행동으로 마음을 나타낼 수 있지요.
-하신 말씀, 모두 놀랍군요.
만약 그것이 오래 지속된다면 말이죠.
하지만 난 정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군요.
당신은 달콤한 사랑의 유희를 아직은 겨자씨만큼밖에 몰라요.
그 앞에 있는 것, 그 뒤에 있는 것이
그 유희에서는 가장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당신이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쾌락 따위는
색정의 가장 절묘한 감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감정은, 가령 즐거움은 언제나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조금씩조금씩 오랫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맛보는
즐거움들에서만 싹튼답니다.
성숙이라는 것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열매가 없는 꽃, 결과가 없는 향락을 원했다. 결과란 유희의 시시덕거림을 파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몹시도 빨리 또 몹시 오랫동안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경험을 쌓은 여자도 그 방면의 대가로 언제나 환영받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여자는 위험이 없고 무한한 향락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절대주의 문화가 세련된 형태를 띰에 따라서 사람들은 조숙한, 곧 건강한 남자의 자태를 보여주는 소년이나, 어린 나이에 벌써 자극적인 향락의 도구가 뚜렷이 드러나는 소녀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의 아름다움이 그 시대를 매우 밝게 했다.
......정력의 절정기에 있는 남자는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여자를 사랑했다. 반면에 노인들은 자기의 쇠퇴한 욕망에 대한 가장 큰 자극을 아직 피지 않은 꽃, 미성숙 속에서 발견했다.
......그 당시 여자의 아름다움의 이상은 단 하나 뿐이었고, 수 많은 방법으로 옷이 벗겨졌다....옷을 입고 있음으로써 남자는 옷을 벗은 여자의 자극적인 작용을 더욱 강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당시 남자의 이상은 오직 복장에 의해서만 표시되었다.
느끼는 눈으로 보고, 보는 손으로 느끼면서/괴테 로마의 애가
그대 혼자만이 귀여운 유방을 내려다보아선 안된다.
그 높은 봉우리 위에는 빨간 불이 여러 개 타고 있다./결심하라
어떤 신전도 어떤 엘리시움(1년 내내 남풍이 부는 행복의 섬)도,
클로에의 골짜기처럼 아름답지가 않다.
그리고 모든 관능은 그 골짜기 속에서
작은 바카날(Bachanal바쿠스를 기리는 주연)을 열고 기진맥진 한다./로코코 풍의 시
호색적인 인생관의 마지막 결로은 여자들에세 단 하나의 진정한 재산으로서 에로틱한 자극제라는 여러 가지 아름다움만을 주었다......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육체로서의 여자의 모습을 될 수 있는 대로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여자의 정신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 정신의 뛰어남이 어느 범위까지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자의 에로틱한 작용의 정도를 높여주는가라는 입장에서만 얘기되었다.
17세기에는 실비아, 알바니, 레스비아, 아리스메네, 로실리스 등으로 또 18세기에는 플뢰레트, 필리스, 뢰스헨, 루이제, 민나, 라우아 등으로 붙여졌다.
......영국의 거닝자매, 고고학자 윌리엄 해밀턴 경의 부인 해밀턴부인-나폴리여왕 카롤리나와의 동성애, 영국 해군제독 넬슨과의 스캔들
......트리아농 궁의 과실그릇: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모형
......알롱지페루크(allonge perruque) 남자의 웨이브진 변발
......퐁탕주(fontange) 여자의 가채. 루이14세의 애첩 퐁탕주가 유행시킴. 1미터가 넘었다고 함.
......데콜테 decollete 어깨, 가슴 드러내기
하이힐에 의해서 자세는 전체적으로 변하게 된다(부분을 강조하는 외관). 곧 배가 들어가고 가슴을 내밀게 되는 것이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몸을 뒤로 젖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엉덩이가 튀어나와 그 풍만함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무릎을 굽혀서는 안 되므로 자세는 전체적으로 더욱 젊어보이고 더욱 진취적으로 보이며 앞으로 불쑥 내밀 수밖에 없는 가슴은 터질 듯이 보인다. 그와 함께 허벅지의 곡선도 팽팽해지며...모두 적극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하이힐은 17세기 초 등장. 스페인 무어인 여자들이 신었던 목재의 높은 굽이 붙어있는 신이 하이힐의 선구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물림쇠로 채우도록 된 신의 굽은 그밖의 나라, 특히 이탈리아에서 조콜리(zoccoli나무신)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다-신을 더럽히지 않고 진창을 건너거나 화장실이 발달하지 않아 대소변이 거리에 널려있어서 실용적인 의미도 있었음
......여자가 개인적으로 또는 계급적으로 의식적인 인간이 되면 금방 굽이 낮은 신을 신는다. 왜냐하면 굽이 낮은 신을 신는 것만으로도...전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역주:베르사이유 궁전에도 18세기에 화장실이 없어 궁전의 가로수길이 '신음의 길'로 불림. 위엄을 지키느라 대소변을 참는 귀부인들이 많음. 엘리자베트 샤를로테(독일의 팔츠 선제후 칼 루드비히의 딸. 루이 14세의 동생 오를레앙 필리프 1세의 아내)가 하노버 선제후부인에게 쓴 편지에 똥돼지가 언급됨.
곧 공상에 의해서 그 시대가 가장 원했던 여러 가지 아름다움을 끌어모아서 하나로 조립하고, 간단한 이름을 붙였다. 17세기에는 실비아, 알바니, 레스비아, 아리스메네, 로실리스, 18세기에는 플레뢰트, 필리스, 뢰스헨, 루이제, 민나, 라우라 등으로 붙여졌다.
갈랑트리, 라이프로크
19세기 독일의 감상주의...베르테르는 연애철학으로서의 독일 감상주의의 본질을 아주첝적으로 묘사한 분석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봉건권력에 대한 독일 부르주아계그브이 정치적, 사회적 무능함을 전체적으로 예술화한 형식이기도 했다. 그서은 한 사람의 예언자에 의해서 부각된 형식이었다.
아름다운 손, 사랑스러운 손목, 화사한 몸짓, 잘 다듬어진 몸매는 부채를 손에 쥔 것 만으로도 두드러지게 사람의 눈에 띄었고, 다른 어떤 장신구보다도 훨씬 오랫동안 구경꾼들의 이목을 끌었다...여자들은 그 부채언어에 의해서 어떤 남자와도 기회만 닿으면 매우 친밀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여자는 부채를 이리저리 움직임으로써 상대방 남자에게 접근해오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는데, 당신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어느 시각 쯤에 방문 및 밀회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신호해주기도 했다. (부채를 기울이면 허락, 의기양양 펴면 거부선언)
17세기:교태의 가장 중요한 도구 의 하나는 무슈(mouche), 곧 애교점이었다...여자들은 여드름을 애교점으로 감춘다. 그런데 검은 점을 붙이면 하얀 피부가 훨씬 돋보이게 되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을 뿐 아니라...시선을 끌고 싶은 곳에 그 점을 붙였다...독부로 보이고 싶은 여자는 입가에, 쉽게 반하는 여자로 보이고 싶은 여자는 눈 곁에, 차게 보이고 싶은 여자는 턱에, 시건방지게 보이고 싶은 여자는 코위에, 요염하게 보이고 싶은 여자는 입술 위에, 오만하게 보이고 싶은 여자는 이마에 붙였다.
처녀들은 자기를 수줍은 여자처럼 보이려고 얼굴 여기저기에 검은 호박단의 애교점을 붙인다. 그러면서도 애교점 붙이는 것 자체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독일의 풍자작가 모셰로슈 1601-69)--동물모양에서 보석을 붙인 것, 남자들에게까지도 번짐
뻔뻔스러운 남자가 입맞춤을 할 때 특별한 사랑의 표시로서 예를 들면 당신의 동그란 무릎에 입맞추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대개의 여자들은 그것을 대단한 경의의 표시로 이해했다.
이 시대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화장대 앞에 불러들였을 뿐 아니라 정식으로 욕망이나 침대 옆에까지 안내했다. 공개적인 플러트
라우크하르트는 열세 살이 되었을 무렵에 연애실습장에 갔는데, 그 신비극은 연애문제에 경험이 있는 하녀의 주선으로 행해진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도 훨씬 전에 음담패설에 특히 정통한 하인의 지도로 초급과정을 빈틈없이 끝마쳤다. 레티프 드 라 브르톤은 그의 회상록에 따르면 열살 9개월에 "벌써 남자"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유혹자가 되었다. 그는 일찍이 열 다섯 살에 한 남자 몫의 유혹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카사노바는 열한 살...
네덜란드에서는 혼례식날까지 육체의 순결을 지킨 신부는 앞치마에다 자수로 꽃봉오리를 수놓을 수 있었다. 잃어버린 처녀성에 대해서도 많은 상징이 있었다. 가장 흔했던 것은 부서진 꽃병이나 깨어진 거울이었다.
1650년 2월 14일 뉘른베르크 시의 프랑크 지방의회 포고:금후 10년 동안 모든 남자는 두 사람으 ㅣ여자와 결혼해도 좋다" 필요한 인적자원을 위하여...일부다처제가 공인되었던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견실함을 성실함으로 나타내고 여자는 가장 중요한 주부로서의 소질을 근면함, 겸손, 복종 등으로 나타냈다...전광석화와 같은 정열, 즉 당장 생애를 약속하려고 하는 "첫 눈에 반한 사랑"에 대해서는 이 계급에 대해서도 대단히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은 쌍방의 구애가 역시 물질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관념적인 위장(노골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는 것)-악덕 뿐 아니라 미덕에 대해서도 실로 소심했다. 확실히 그것은 선에도, 악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심함에 품행이 방정하다고 하여 극구 칭찬받느 속물의 비밀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가 부러져 사람을 물 수 없는 개는 사람을 지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친애하는 헨슬, 자네는 이런 처녀들을 맞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네. 메들은 약간 등이 굽었지만 그녀의 훌륭한 배낭안에는 돈이 가득찬 돈궤가 있다네. 이웃집 베베를은 약간 절름발이지만 그 집이 그녀의 것으로 되어있다네. 마리엔델은 애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두카덴금화를 감추어두고 있다네.
구혼광고의 정확한 탄생일은 1695년 7월 19일이다..."영국 광고업의 아버지"로 알려진 호튼은 "나는 존경할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광고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다음의 것도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후한 지불을 받는다"-신사, 30세. 그는 막대한 재산이 있으며 약 3000파운드의 재산을 가진 묘령의 숙녀와 혼인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적당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한다. 청년25세.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으며 만약 적당한 혼인이 흔쾌히 약속된다면 그의 부친은 1000파운드에 상당한 것을 그에게 줄 용의가 있다. 그는 양친에 의해서 디센터(dissenter)로 교육받은 착실한 남자이다.(234-235)
아르헨홀츠는 1790년 영국연보에는아내의 매각이 하층계급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자행되고 있다라고 쓰여있다..1797년 7월22일자 타임즈:스미스필드시장에서는 최근 아내의 가격이 반기니에서 3기니 반으로 폭등(241P)
아직 끝내지 못한 대장정 프로젝트의 서막.
재미있는 내용인데도 빨리 읽어내지 못하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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