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Journal Extime|미셸 투르니에

아랍속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처하는 자는 화병으로 죽을 위험이 있다"


더불어 말을 주고 받을 상대가 없다는 것은 곧 할 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발자크, 뒤마, 바그너 같은 사람들이 한사코 호사스러운 사람들에 둘어싸여 지내고 싶어 한 것은 아마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편협한 인간군상에 대하여 응수하라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내가 쓴 작품이 네 머릿속으로 파고들 방법이 없으니 하다못해 내가 사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네가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수밖에"


어떤 알지 못하는 여자가 내게 원고를 보내온다. 설명인즉, "어떤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글을 쓴들 누가 읽어주겠는가?


L.D의 기막힌 고난. 카마르그 사람인 그는 한 번도 파리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파리에 가게 되어 피라미드가를 가로질러 오페라 대로로 접어든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던 행인들을 덮친다. 운전자가 심근경색으로 그 자리에서 숨졌기 때문이다. L.D는 두 다리가 부서졌다. 그때 이후 그는 목발을 짚고 힘들게 걷는다.   


시몬느 베이유: "인간의 사랑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쾌락들 중 하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가 모르는 가운데 봉사하는 것"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 버린다. 


폴 발레리의 플레이아드 전집 제 1권에서 문득 '물의 예찬'이라는 멋진 텍스트를 발견한다. 문학의 어떤 드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그런데 그 글에 대한 주석이 달려있어 읽어보니, 그 글이 페리에 광천수 회사에서 발레리에게 청탁한 광고문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소나타나 칸타타의 주문을 받고 불후의 명작을 작곡해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천재'니, '재능'이니 하는 말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그는 오직 가장 겸허한 장인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1992년 4월.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과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동시에, 거의 같은 나이에(각각 1908년과 1909년에 출생) 사망했다는 소식. 이보다 더 완벽하고 자연스런 대조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늘을 노래한 작곡가와 지옥을 그린 화가가 동시에 죽어 서로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다니. 


알퐁스 알레: "피라미드의 형태 자체는 아주 아득한 고대에 이미 노동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일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볼테르: "나는 작은 시냇물과도 같다. 나는 깊지 않기 때문에 맑다."


쥘 베른느는 그의 예언적인 책 '20세기의 파리'에서 장차 건설하게 될 전철은 당연히 공중에다가 놓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이 도시의 지하의 시설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뒤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지적은 20미터 미만까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하 30미터가 넘으면...거기서는 사막한 가운데나 처녀림 한복판이나 마찬가지인 순수한 대지적 요소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인간의 문명은 불순물들의 얇은 막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얘들다, 투르니에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뇌에 종양이 있다는 걸 알아둬라. 너희들도 투르니에 집안이니 너희들 역시 미치광이들이란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집안에서 행동이 가장 얌전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뇌속에 있는 모든 광기들을 내 책들 속에다 전부 다 비웠기 때문이지."


역사시대의 두개골과 선사시대의 두개골...두개골에 혓바닥을 대보고서 알아내는 방법...선사시대의 두개골은 골막이 없어졌기 때문에 혀에 강하게 밀착된다...긴 두개골을 가진 사람들은 역동적이며, 전투적인 성격, 변덕이 특징이다. 둥근 두개골을 가진 사람은 차분하고 현명하고 안정적이다...골상학을 창시한 F.J.갈이 말했듯이 "뇌는 광대한 대륙이고 그것을 에워싸는 두개는 그 지도다."


스탕달: "이상화할 것, 라파엘이 초상화를 그릴 때 실물과 가장 닮아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이상화하듯이."


박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생쥐가 소리친다: "오, 천사로구나!"


우리 집 정원에서 넓적부리 암놈 한 마리가 제 아들놈 중 하나와 살림을 차렸다. 자연이 앙갚음을 하는지 이 암놈들이 모두 새끼를 깔 수 없는 알을 낳았다. 그런데도 암놈은 한사코 알을 품는다. 두 번이나 나는 암놈이 그 알을 깨어서 속에 든 것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괴상하게도 이 암놈은 그 알의 껍질들을 연못에 가지고 가서 씻는 것이다. 이 새는 마치 내게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회화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구상하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만 작품들의 원고를 버리지 못한 채 끝없이 품고 있는 작가의 희화를 말이다. 


1.나는 금주할 능력이 있는가. 대답: 그렇다.
2.금주를 하기가 힘든가? 대답:그렇다.
3.금주를 해서 얻은 이익이 무엇인가? 대답: 없다.


아를르에서 살던 잔느 칼르망이 123세에 사망하다. 그녀는 인류의 장로다. 특별한 섭생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분별있게 살아야지요. 그래서 나는 114살 때 술과 담배를 끊었었어요."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투르니에 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앙트완 블롱뎅: "나는 나 자신의 문턱에서 사는 데 길이 들었다. 왜냐하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일기란 늘  자신의 내면의 들여다보기 마련이지만 자신은 자신이 만나는 세상이 늘 더 큰 자극을 주기에 외면일기를 쓰기로 했단다. 자신이 보고 느끼고 만나는 것들에 대해 짧으나 기록해두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았으나 그것을 허망하게 느끼는 파우스트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영재가 되어 최대한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양을 쌓아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신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싶어하는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김화영과의 인터뷰가 부록으로 들어있다.

황야의 수탉에서 느껴지던 발랄함과 재기가 약간은 엿보이는 산문이지만 역시 산문집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프랑스에서 투르니에의 어린이용 책들은 베스트셀러라는데 노작가와 아이들의 조합은 참 잘 어울린다 싶다. 몇 권은 재미있게 몇 권은 난해하게 읽어서 이제는 투르니에를 좋아한다고 해얄지 아닐지도 확실치 않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인 것은 분명하다.
드문 산문집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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