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하지만 저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지각이 있다면 그에게 내리는 벌은 실상 보상이라는 것을 깨달을텐데. 그는 어떤 섬으로 전출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재미있는 남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가게 되는 거야. 어떤 이유로 지나치게 자의식이 강해서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는 곳이야. 정통에 만족하지 않고 나름대로 독특한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지나치게 인간다운 인간들이야.
...행복이란 아주 귀찮은 주인이야-타인의 행복은 더욱 그렇더군. 사람이 행복을 아무 말없이 받아들이도록 훈련되지 않은 경우에는 진리보다도 더 섬기기 어려운 주인이야.
...일찌기 포드님 시대에는..과학이 무한히 발달되도록 허용해도 된다고 상상했던 모양이야. 지식은 지고의 선이었고 진리는 최고의 가치였지. 그 밖의 것은 모두 이차적이고 부수적인 것이었어. 물론 당시에도 사상은 변하고 있었어. 포드 님 자신도 진리와 미로부터 쾌적과 행복으로 중요성을 이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던 것이야. 대량생산이라는 것이 그러한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지. 보편적 행복이 바퀴를 계속 회전시키는 것이니까. 진리와 미는 그럴 힘이 없어. 물론 대중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중요시되는 것은 진리와 미보다는 행복이었어...그러니까 9년 전쟁까지도 그랬단 말일세. 그 전쟁이 인간의 성향과 추세를 바꿔놓고 말았던 것이지. 저 폭탄이 바로 주변에서 윙윙거리며 투하되는 마당에 진리나 미나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그 이후부터 우리는 계속 과학을 통제하고 있는 형편이지. 물론 진리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지. 그러나 행복에게는 매우 유리한 것이었어. 인간에겐 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걸세. 행복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야.

기계와 의약품과 행복을 선택한 사회의 초상.
헨지 조지 식의 경제와 크로포트킨식 협동주의 사회가 이상적으로 펼쳐지고 있으며 확실히 누군가에게는 이상이기도 하다. 다만 그 결정은 경험이 많고 절대선이라 자칭하는 소수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될 뿐이다.
욕망을 먼저 실현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의 욕망도 이뤄줄거라 믿으며 그 '성공'한 자의 인생의 품질에는 무조건 관대한 사람들에겐 어쩌면 싱가포르 같은 나라가 이상일 지 모른다.
다행이 싱가포르의 독재자들은 박정희나 전두환 처럼 친일이나 학살을 하지도 않았고, 김정일이나 이건희처럼 자식에게 권력을 세습하지 않는다. 그렇게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려 규격인간을 만들어온 결과 최근 이 애국민주독재자들의 고민은 싱가포르국민들의 창의성 부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돈을 들여 창의성센터-정확한 이름은 기억안남--;;-를 지었는데 여기 들어갈만한 국내 인재가 없어 결국 유학하고 있는 재외싱가포르 인재들을 초빙, 하지만 이 창의적인 인재들은 또 창의성이 떨어지는 국내인들과는 일할 수가 없다고 해서 결국 센터가 다 재외인재들로 채워졌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뭔가를 선택하는 것이 뭔가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말에 오래 사로잡혀 늘 선택할 때는 치열해진다. 하지만 그 포기가 완전한 거부가 아니라  그저 순서 정하기라면 좀 천천히 갈수도 있지 않을까. 수명도 늘어난다는데 말이야.
   
해야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만족을 세뇌시키는 신세계.
참 치밀해서 끔찍한 발상이지만 오히려 그 오랜 세뇌가 있어야만 인간의 영혼이 잠식된다는 것이 한편 희망적이기도 했다.
발아를 통해 대량 생산된 인간들의 사회에서 살인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체재 위협이 오히려 사회자체를 위협하는 큰 어둠이라는 발상도 그렇다. 그곳은 소수가 완벽하게 외면될 수 있는 사회이다-기본적으로 생명조차도 귀하게 여길 근거가 전혀 없기에. 하나의 생명이 별거 아니라면서 체제붕괴를 두려워 하려면, 여럿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공리주의자이거나 그것이 권력의 피해이기에 반대하는 계급주의자여야 한다. 둘 다 아니므로 나는 패스.
'오히려 여가를 줄수록 불안해한다'는 대목이 걸렸다. 여가란 욕망이 흘러가는 자연스런 방향인데 사실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게 아닐까-싶어서.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나타나 줄까?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영화가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을 것 같은 상당히 충격적인 설정들.
나중에 올더스 헉슬리는 결론을 바꿔 박제가 된 인간의 고립이 아니라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다시 책을 쓰려고 했다고 한다. 음...그의 노년은 매우 평화로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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