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교육|미겔 데 우나무노


이야기를 계속하기에 앞서, 먼저 결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어떤 식의 결혼이든 간에 결혼은 연역적이거나 귀납적인 방법, 둘 중의 하나를 통해 이루어진다. 사실 이런 일은 지겨울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남자들은 대개 세상을 떠돌다가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성을 만난다. 분위기가 있고, 걸음걸이가 뭇 남성들의 등골을 자극할 정도로 멋진 여자를, 다시 말해서 그윽한 시선과 붉은 입술로 남성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주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남자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이성을 잃은 경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올곧은 정신력과 강한 체력뿐이다. 물론 이것도 그런 정신력과 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겠지만 말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결혼하는 것이 귀납적인 결혼이다. 다른 방법의 결혼, 즉 연역적인 결혼은 이와 상반된다. 결혼할 만한 나이에 다다른 남성은, 자신에게 부족한 그 무엇 때문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을 때, 혹은 남자 혼자 산다는 것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다고 느꼈을 때, 이런 외로움을 통해 깨닫게 된 개인적 삶의 여력을 투여할, 살아있는 그릇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 여자를 찾고 결국 결혼에 도달하는데 이런 것이 연역적인 결혼이다. 이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 없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가 된다. 다른 말로 한다면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남자를 여자에게 끌고 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에 천재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결혼 방법론을 선택해야 한다. 그건 분명히 연역적인 방법을 통한 결혼일 것이다.

그가 제안한 이름 중에는 자연의 재능이라는 의미의 ‘피시도로’, 정복자라는 의미의 ‘니세포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필랄레테스’, 무적이라는 의미의 ‘아니세토’, 진리의 견인차라는 의미의 ‘알레토포로’, 하느님이 내린 재능이라는 의미의 ‘테오도로’, 그리고 하느님의 진리를 유일한 철학이라고 믿고 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테오포로’, 태양의 빛을 의미하며 진리와 생명의 아버지이신 아폴로가 내린 재능을 의미하는 ‘아폴로도로’ 등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천재는 총감독에게 연극 대본을 고쳐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이야. 그리고 작가는 우리를 위해서 혹은 우리를 때문에 작품을 쓰는 사람이므로, 뒤집어 말한다면 천재는 배우로 분장한 작가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지.
교육의 근본원칙은 아이 스스로가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해야 하며, 여러 곳을 돌아보고 지적인 모든 것을 충분히 채워야 한다는 데 있었다....‘아이의 각본에 없는 대사를 찾아서 조금씩 쌓아나가게.’ 철학자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본성은 인간 스스로가 부수적인 부호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책이다. 예컨대 가장 중요한 내용에는 붉은 밑줄이 그어져 있는 깨끗한 책과 같다. ‘붉은 연필, 선명한 붉은 연필. 사실 모든 것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책에 몽땅 줄을 쳐놓는 것이긴 하지만.’       

광장을 지날 때였다. 친구와 싸우다 울며 집으로 돌아온 한 아들에게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울려거든 나가버려! 돌멩이를 집어서 그놈 대갈통을 깨뜨려버리지 그랬어.”
‘오! 불쌍한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교육관이 교육적인 것과 비교육적인 것을 확실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면 도대체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꿈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표시였다. 튼튼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간다. 그리고 위와 간이 나쁜 사람을 제외하고는 위와 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기억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꿈속에서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에로스트라티즘은 세기의 병이지//에로스트라투스가 누구인지 알고 있니? 그는 자기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에페소의 사원에 불을 질렀던 사람이야.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쓸데없이 이름을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을 불사르는 일이 흔하지. 후손에게 남기려고 말이야//우리는 연혼의 불멸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름이라도 남기기를 원하지. 이름 속에서 우리가 이야기되고 다른 사람의 기억을 통해서 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거야. 어찌 보면 불쌍한 인생이지.

러스킨은 영국에서 직업에 예술 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귀족적인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캠페인에서 부족했던 것은 예술 의식의 함양이 아니라 예술과 산업을 융합하는 일이었다//이와 같은 융합에 이르기 위해서는 문필가, 화가, 음악가 그리고 무용가가 자기들만의 독립된 영역에 안주하여 여타의 다른 노동자와 섞이지 않으려고 거만을 피우는 것을 막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거친 운명에 맞설 때, 모든 사람이 자본의 멍에에 묶일 때, 경제적인 노예상태에 빠져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형제애를 느낄 때, 그리고 시인이 자신의 동료가 광주리나 구두를 만들 듯이 소네트를 창작할 때만이,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면서 모든 직업을 완벽한 예술로 승화시킬 때에만 이런 융합이 가능한 것이다.

황금세기의 희곡과 소설-특히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그리고 신비주의 작가들의 시에 주목한 우나무노는 문학 텍스트 속에 드러난 가장 스페인적인 요소, 예컨대 카스티야의 지리적 요소 등을 통해 스페인 민족정신의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예컨대 스페인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스페인을 통일하였던 카스티야 지방의 지리적 조건 속에 민족사의 영원한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단순성, 비타협적 극단주의, 현실적 기회주의, 분파적 성격 등을 카스티야가 안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로 파악한 우나무노는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에 스페인에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개인주의가 형성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내는 것을 지식인의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우나무노는 내적 역사의 영원한 전통을 깊이 연구하고, 민중으로 하여금 이를 인식하게 하여 이를 통해 역사의 추진력을 활성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의 은총보다는 인간의 역동적인 노력을 통해 삶과 투쟁할 것을 강조하는, 다시 말해 신이 베푸는 은혜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신과 불멸을 추구하고자 하는 신앙 세계를 견지한 것이다. 본능적인 성격 때문에 비이성적인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신을 동경하는 것은 결국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고 이것이 바로 불멸에 대한 열망으로 연결된다고 본 것이다. 이에 우나무노는 생에 대한 강한 충동 자체를 인간의 불멸성을 부인하고 배척하는 이성적 원칙을 초월하여 고뇌의 신앙을 지향하려는 노력으로 간주하였다.

교육적인 마인드에 도움이 될까 했는데
으하하...예전에 심리학숙제로 군중의 심리라는 책을 잘못 고른 기억이 되살아난다.
제목만 보고 막 고르면 안된다니깐^^
그러나 공감과 신선함이 있는 새로운 작가 를 만난 것에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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