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허삼관매혈기|위화


"일락아, 내가 평소에 언제 너를 홀대한 적이 있었니? 이락이, 삼락이가 먹는 거면 너도 같이 먹었잖니. 하지만 오늘 이 돈은 내가 피를 팔아 번 돈이라구. 이 돈은 쉽게 번 돈이 아니에요. 내 목숨하고 바꾼 돈이라구. 내가 만약 피를 팔아서 너에게 국수를 사 먹인다면 그 천하의 죽일 놈 하소용이를 너무 봐주는 게 되잖니."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을 듣고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가로 걸어갔다. 문간을 넘어서자마자 다시 돌아서서 허삼관에게 물었다.
"아버지, 내가 만약에 아버지 친아들이었으면, 국수 먹으러 데리고 가는 거였죠. 그죠?"
"만약에  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널 제일 좋아했을 거다."
 
"제일 큰 건 어른이 먹어야지. 너같이 어린 애는 제일 작은 걸 먹어야 하는거야."
일락이는 빨간 고구마를 손에 들고 잠시 쳐다본 뒤, 왕털보에게 말했다.
"이 고구마는 내 손보다도 작은데, 무슨 배가 부르겠어요?
"넌 먹어보지도 않고 배가 안 부를지 어떻게 아니?"
일락이는 왕털보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는 것도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고구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중략)
"배가 하나도 안 불러요. 고구마 하나 더 주세요."
왕털보가 대답했다.
"넌 네가 배가 안 부른지 어떻게 아니?"
"다 먹었는데도 더 먹고 싶으니까요."
"고구마가 맛있더냐?"
"네."
"아주 맛있든, 아니면 조금 맛있든?"
"아주 맛있었어요."
"그렇지?"
왕털보가 말했다.
"맛있는 건 원래 다 먹고 나서도 또 더 먹고 싶은 거야."
일락이는 왕털보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왕털보가 일락이에게 말했다.
"돌아가거라. 넌 벌써 배가 부른 거다."
그리하여 일락이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탁자 앞에 앉아서 텅 빈 탁자를 바라보았다. 
 
"삼락이 혼자 침삼키는 소린가? 내 귀에는 아주 크게 들리는 것이 일락이, 이락이도 침을 삼키는 것 같은데? 당신도 침을 삼키는구먼, 잘 들으라구. 이 요리는 삼락이 한테만 주는 거라구. 삼락이만 침을 삼키는 것을 허락하겠어. 만약 다른 사람이 침을 삼키면 그건 삼락이의 홍소육을 훔쳐먹는 거라구. 다른 사람들 요리는 나중에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지들 말라구. 먼저 삼락이가 먹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 요리는 따로 만들어 줄게. 삼락이 잘 들어라.......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니까 맛이 어떠니? 비계는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살코기는 보들보들한 것이......내가 왜 약한 불로 곤 건지 아니? 맛이 완전히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야. 삼락이의 홍소육은...삼락아 첨천히 먹도록 해라. 자 다음은 이락이. 넌 뭘 먹고 싶니?"
"저도 홍소육요. 전 다섯개 썰어주세요."
"좋았어. 이락이에게는 다섯 점을 설어서 살코기와 비계를 반반으로, 물에 넣고 삶은 다음, 식혀서 다시..."
"아버지, 형하고 삼락이가 침 삼켜요."
"일락아."
허삼관이 꾸짖었다.
"아직 네가 침 삼킬 때가 아니잖아.
그리고는 요리를 계속했다.
 
그러자 허삼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일락이 더러 가랬더니 이락이한테 미루고, 이락이는 또 삼락이한테 미루고, 삼락이 이 콩알만한 녀석은 밥그릇을 내려놓자마자 그림자도 안보이니......밥 먹이고 옷 사입히고 돈 쓸 때는 아들이 셋이나 되는데 엄마에게 밥을 들고 갈 아들 녀석은 한 놈도 없네 그려."
 
"너희 아버지랑 나랑은 다르단다. 내가 너희 아버지 마음을 상하게 해서......그래서 임분방과 그렇게 된 거란다......"
허삼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은 다 같은 거야."
"아니에요. 당신하고 나하고는 달라요. 만약, 나하고 하소용 사이에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당신이 임분방의 다리를 만지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러자 허삼관이 허옥란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그래. 하지만......"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당신과 결국은 같아."
 
휴머니스트 민초 허삼관.
가뭄에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다가 자리에 누워 온 가족에게 맛있는 홍소육을 말로 요리해 주는 장면은 얼핏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장면 같기도 하고 `리틀킹`에서 잡지의 요리사진을 잘라먹던 꼬마들을 생각나게도 한다. 슬픈데 웃게 만드는 인간 허삼관.
허삼관매혈기는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피를 팔아 전환점을 만들어 온 허삼관의 인생이야기이다.
구구절절 대단한 심리묘사도 없이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 엇갈리는 생각이나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는데 그게 또 웃음 한 편으로는 처연한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웃기고 슬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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