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제



 
내일의 왕님을 다시 보고 난 후유증인지 오랜만에 연극이 보고 싶어졌다.
신문기사를 검색하니 마침 3년만에 부활한 서울연극제가 열릴 예정이고 선착순 500명을 개막식에 초대한단다. 개막식에서는 쇼케이스 형식(정확히 그게 어떤 형식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으로 출품작들을 보여준다기에 어차피 다는 못볼 공연 맛 좀 보고 고르자는 생각에 응모를 해서 여유있게 참가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예정시간인 6시 3분 전이 되도록 입장을 시키지 않는다.
무대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이다.
뭔가 좀 냄새가 나는데?
암튼 기다리라니 기다릴밖에.
그동안 설문지에 답을 하고, 6시가 좀 넘어서 입장을 하고 또 한 십분쯤을 기다려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첫순서는 김용택시인의 용천소학교 아이들에게라는 시낭독이었는데, 자료화면의 자막이 좌우로 뒤집혀 나온 실수보다도, 나는 왜 이 시가 오프닝이 되었는지가 더 어이없었다.
이번 서울연극제의 캐치프레이즈는 Let's be NUDE(New United Drama Event)라고 했다.
캐치프레이즈와 오프닝의 관계는? 따로국밥 그 자체일뿐.
 
연극계 원로들의 축사퍼레이드는 백성희씨 얘기대로 연극인의 입장에서 3년만에 부활한 행사의 감격을 나누는 차원에서 별로 지루하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순서마다 툭툭 끊기고-리허설이라는 걸 하기나 했나 싶다-조명이며, 마이크며 쉴새없이 사고를 쳐서 오히려 무대위의 출연진들이 걱정스러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백성희씨가 무대 아래로 내려올때는 정말 나라도 가서 부축을 해야할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였는데 조명은 계속 꺼져있고.
 
기대했던 쇼케이스는 그나마 4작품 뿐이었고, 미안하지만 그 중 두 작품은 쇼케이스를 보면서 내가 안보는 동안 연극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구나를 실감케해 '볼 연극'에서 제외되었다. 어쨌든 도움은 도움이지.
게다가 시작시간을 넘기도록 준비하던 무대위에는 대형포스터 같은 천막 세장이 딸랑 걸려있어서 도대체 뭘 하느라 늦었다는 건지 이해가 안되었다.
 
게다가 텅빈 객석.
선착순 500명 초대가 무색하게도 전날까지 인터넷 상에는 300명 미만이 참가신청을 했었는데, 연극축제라면 연극인들이라도 모여 자리를 채워야 하는 게 아닐까. 하긴 VIP석도 반이 비었으니 누가 잘못한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연극표값은 올랐는데 사랑티켓 보조금은 여전히 5천원이고, 그래도 제일 큰 연극계행사인데 문화관광부 반응도 시큰둥이고. 영화가 승승장구하면서 연극계 인재들을 쏙쏙 빼가는 동안 연극계는 정말 고사직전이 된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연극제 개막식에서 만족스러웠던 점은 예쁜 포스터, 개막식장에 차려준 저녁뷔페와 이벤트에 당첨되서 받은 커피음료권. 이제 내가 찍은 연극들이 재미있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내년에는 제대로 된 부활2주년을 준비하시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