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4인용 식탁


 
며칠 전 만난 친구 동생에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그 녀석의 의문은 도대체 그 영화가 뭘 말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녀석이 재미있게 본 영어완전정복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영어공부 열심히 하자? 아니면 영어공부 하지 말자?

4인용 식탁은 공포영화에 미리 겁을 먹는 성격 상 극장에서 보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영화였다.
주말이 바쁜 비디오 가게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신작일 때라면 모를까.
이 영화의 메세지는 뭘까.
사실 모든 영화가 올드보이 처럼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냥 이 영화는 내면에 봉인된 공포의 기억, 슬픔, 이런 것들이 인상깊었다.

스티븐 킹이라는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 작가를 좋아한다.
공인된 B급 작가이자, 호러전문작가.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진 그의 작품을 전부 읽지는 않았는데 읽은 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소설이 있다. 
원제는 Four past midnight-우리나라에 환상특급이라는 제목으로 꽤 두툼하게 나온 책이다. 
제목처럼 4편의 소설이 묶여있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끝까지 다 읽었다, 쉬지 않고.
그 책을 읽고나서 이 작가가 정말 공포에 정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라 내면의 공포, 본능적으로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어했던 자기자신과 맞딱뜨리게 하는 것. 섬찟했다.

4인용 식탁에는 기억해 내려고 해도 스스로는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자신의 기억을 봉인해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기억과 맞딱뜨린 그 사람들은 그 기억을 외면하고 싶어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것과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속에서 균형을 잃고 만다.
결국 스스로 뿐 아니라 기억을 끄집어내 준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리고 말 정도로.
처음 연이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게 아니에요'했을 때 나는 뒷말이 '믿고 싶은 것만 믿어요'일 줄 알았다.
그런데 연이 이어간 말은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믿어요'.

내게는 이 말이 공포 그 자체였다.
감당치란 건 사람마다 다른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진실을 부정할 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불행.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4인용식탁은 세련된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꿈자리가 별로 사나울 것 같지도 않은.
그래서 공포영화가 뭐 이래 할 수도 있겠지, 호러팬들이라면.

아,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
엽기녀, 아이콘이 아닌 배우 전지현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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