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숙소정보

아프리카

아프리카
기간 2007.10.20 ~ 2007.11.1 (12박 13일)
컨셉 나 홀로 떠나는 여행


호텔 메디나(튀니스:18디나르/도미토리+샤워실;화장실은 공용)
아침반 아저씨만 영어 가능. 저녁반 아저씨는 불어와 아랍어파.

도미토리이긴 하지만 사람이 없어서 더블룸을 혼자 썼다. 팔레르모와 별 다르지 않은 정도?

화장실이 좀 더 지저분해 졌다.


호텔 레지던스 카림(투쥬:17.5디나르/욕실딸린 도미토리)
론리플래닛이 또 발광하며 칭찬을 해 놓더니만 책보다 방값이 올라 있었다. 에어콘 없는 방은 한 10디나르 정도라더니. 하지만 건물은 정말 훌륭했다. 높은 천정에 타일벽과 타일 침대가 깔끔하고 건물 안에 들어서면 정원도 있다.

이 호텔은 튀니지 사진엽서의 모델이기도 한데 현재는 사람이 적어 그런지 정원이 좀 휑했다.
그래도 여전히 예쁜 건물.
방3개짜리 도미토리를 혼자 썼는데 방은 아주 깔끔했지만 화장실 물이 안내려갔고 3개나 되는 방안의 플러그는 되는 게 없어서 충전은 따로 부탁했다.
 


 
호텔 마스20(두즈:15디나르/싱글+아침)
갈수록 숙소는 저렴하면서도 좋아지는구나. 진짜로 깨끗한 싱글룸에 진짜로 깨끗한 욕실, 정원도 있고 방 앞에 빨래 널 난간도 있다^^ 내방은 좀 귀퉁이에 있는데 붉은 벽돌천정이 돔 스타일이다. 콘센트도 멀쩡하다. 밤이면 정원의 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엄청 시끄럽게 떠들지만 사람소리가 아닌 새소리이니만큼 놀라울 뿐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다. 아침은 요거트와 커피, 바게트와 버터, 쨈.
아마도 튀니스 최고의 숙소이자 이번 여행 최고의 숙소.
가격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곳이 아닐 수 없다. 
 
캠프(크사르귈란:25디나르/아침, 저녁 포함)
넓고 튼튼한 텐트 안에 5개정도씩의 매트리스가 양쪽으로 놓여있는 캠프. 역시 혼자 썼다.
캠프 바로 뒤에 누구나 쓸 수 있는 작은 ‘더운물-온천수인데 온도는 따뜻한 정도-풀장’이 있고 카페, 가게들이 주변에 있다.
아침은 뷔페식인데 씨리얼도 있었고 저녁은 풀코스라서 밥 생각하면 괜찮은 가격이다.
점심이 10디나르라고 해서 다른 데는 좀 쌀까 싶어 나가서 먹었는데 거기도 풀코스점심에 고정가격 10디나르였다.
 

 
호텔 마트마타(마트마타:35디나르/아침, 저녁 포함)
가려던 호텔이 매진이라서 차선을 선택했는데 더운물이 안 나와서 황당했지만 한 솥의 물을 끓여다주는 덕에 오히려 더 맘에 들어졌다.
특히 끼니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게-무제한 제공이니깐! 배고플 땐 정말 밥값 뽑고도 남을 듯. 아침에 나온 삶은 달걀하고 디저트용 과자는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역시 예쁜 입구와 방, 샴푸와 빅타올 제공. 수영장도 있다.
 

 
호텔 메디나(메흐디아:15디나르/아침 포함)

아~~~또 사랑스러운 호텔. 입구의 화분들도 이쁘고, 겁 없이 쏘다니다가 주인아저씨한테 혼나는 고양이도 귀엽고, 예쁜 타일의자와 장식들도! 겁나게 두꺼운 안경 낀 친절한 할아버지와 시원시원 착한 청년이 일하고 있다. 역시나 침대 3개짜리 방을 혼자 썼다. 화장실, 욕실을 공용.
아침 먹는 시간이 8시 반 부터 1시간이라 다른 데보다 좀 일찍 일어났다.
 

이탈리아|체팔루 그리고 튀니지로


그랑부르의 실패를 딛고 씨네마천국을 따라서~
사실 영화촬영지라는 것보다 옛 거리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해서, 그리고 더 진짜 이유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튀니지행 배를 기다려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생겨서 찾아갔다.
본토 쪽에서 기차를 타고 시칠리아로 올 때 지나쳐오게 되는데 기차에서 잠깐 깼을 때 역 이름을 본 기억이 난다.
 


 
나의 주문을 따라 체팔루도 비가 왔다--;; 딱 이틀짜리 축제가 있는 날이었지만 비 때문에 낮 분위기는 영 아니었다. 모 가이드북에서 반나절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을 본 것 같은데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언덕배기에 있는 거대한 체팔루의 유적지를 즐기면서 팔레르모보다 훨씬 한적한 이 동네에서 묵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골목들 역시 예쁘지만 이탈리아의 골목은 여기저기 다 이뻤으니까.

잠깐 비 개인 동안 언덕을 올라 문 닫힌 어느 신전 앞까지 갔다 왔다. 좋은 전망은 볼만큼 본 것 같은데도 길이 보이면 또 기어 올라가고 있는 나. 사실 뭐 딱히 할일도 없으니까^^


 
팔레르모로 돌아오는 길. 기차표 자동판매기가 고장이어서 옆에 있는 담배가게에서 표를 샀다. 카푸치노도 맛있었다. 자동판매기하고는 생김이 다른 표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스탬프를 찍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냥 타려고 했더니 기차 안에서 역무원 아저씨가 길 건너가서 찍어오란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안 찍은 표 두장까지 심부름을 시켰다. 후다닥 철로를 건너 표를 찍으러 갔더니 좀 전에 기차행선지 알려준 다른 역무원아저씨가 얼른 내 표를 받아 찍어줬는데 내가 다른 두장의 표를 더 찍으려고 하니까 나에게 심부름 시킨 아저씨에게 큰 소리로 대신 항의해 주었다.
아마도 그 내용인즉슨 ‘말도 못 알아듣는 애한테 뭔 짓이야’정도?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심부름까지 완수했다.
 
떠나기 전 팔레르모 기차역의 맥도날드.
한 애기엄마가 잔에 나온 커피 두 잔을 종이컵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커피아저씨는 콜라컵을 들어서 괜찮냐고 묻고 나서, 커피를 옮겨 담고, 옮겨 담느라 줄어든 우유크림까지 다시 채워서 애기엄마에게 건넸다.
여기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의 근사한 바였다면, 또는 커피아저씨가 굉장히 대단한 서비스인 것처럼 스스로 설레발을 쳤더라면 달랐을 텐데, 늘 붐비고, 바빠서 일하는 사람이 짜증을 내도 그러려니 익숙할만한 뜨내기 장소였기에, 그리고 커피아저씨가 일상처럼 익숙하게 응했기에 특별하게 기억에 남았다.
 
여전히 설레게 예쁜 바다. 큰 맘 먹고 나와 준 햇빛아래 물색도 한결 가벼워져있다.
내내 비가 왔던 이탈리아였는데 그 동안의 비는 태양에 감사할 준비를 하라는 신의 계시였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 내가 막다른 골목에서 득도를 강요당한 순례자 같이 느껴진다.
좀 불쌍한 긍정적인 마인드^^
 


 
팔레르모 와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부두 근처까지 가서 10분 정도를 걷는 코스를 따라 튀니지행 배를 타러 갔다. 가는 길에 냄새가 엄청 좋은 피자집에서 피자를 하나 샀다(이건 맛있는 '피자'였다).
내가 워낙 늦게 가서 많이 기다릴 것도 없었는데 앞서 기다리던 다른-아마도 튀니지-사람들 사이로 경찰이 고개를 쑥 내밀더니 내게 차를 가지고 다니냐고 물었다. 없다니까 먼저 오라고 한다. 사실 내 앞에 서있던 사람들도 차 없었는데.
20분도 안돼서 절차는 다 끝나고 드디어 배를 탔다.
타이타닉 한번 따라해볼까나 했지만 2층 이후의 갑판은 잠겨있어서 올라가지 못한다.
바람때문에 추워서 많이 나가 있진 못했지만 열심히 배를 따라오던 갈매기들 구경은 좀 했다.
바다 한복판에서 쉴데가 어디 있다고 떼지어 배옆을 날던 겁없는 것들.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로, 내가 가고 싶었던 여행지 출신의 사람을 만났다.
티볼리에서 만났던 러시아 처자에 이어 배위에서 만난 알제리 아저씨. 이탈리아 볼로냐 근처의 작은 도시에서 피자를 만든다고 했다. 담배 피우러 나갈 때마다 마주쳤던 페리 이웃.
가고 싶은 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반갑다.

이탈리아|팔레르모

오래될수록 여행지에 정이 들곤 했는데-정이 들어서 오래 있게 되는 것 일수도 있지만-시칠리아는 어디를 가도 전에 있던 곳과 연결되는 것 같아서 짧게 여기저기를 다니는 게 재밌다.

처음엔 문 닫은 여행안내소를 원망하며 그냥 떠나야했던 팔레르모를 이번엔 안내소 영업시간(!)안에, 숙소도 찾아놓고 든든하게 다시 찾아왔다. 찻길 건너기는 다른 어느 도시들 보다도 어려운 상태였지만 나도 그동안 기술이 늘었기에 도우미 현지인 없이 혼자서도 잘 건넌다.

황송하게도 가끔 버스아저씨가 차를 세워준다. 큰 차에서 내려다보면 내가 더 불쌍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보통 더 거칠게 운전한다고 생각했던 트럭이나 버스가 내 앞에서 서주시면 황송하다.
좀 딱딱하게 말하는 것 같던 호텔 언니가 갑자기 내 앞을 지나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라고 한마디 한다. 그 말에 힘입어 맛있는 시칠리아식 식당을 물었더니 안 물어본 아이스크림가게까지 알려줬다.

 

전시용 미소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이탈리아 사람들.

지날수록 샤랄라 미소로 엿먹이거나 더는 한마디도 말 못 붙이게 딱 잘라 말하는 사람들보다 편한 느낌이 든다.

이런 게 한국사람들하고 비슷하다는 걸까?

 

팔레르모 성당

약간 캄보디아의 괴목을 연상시킨 나무

 

Porta Nuova
슈퍼마켓을 찾아 쭐래쭐래 걸어가고 있던 내 앞에 짠 나타나준 팔레르모의 매력덩어리. 비가 왔었고 또 어두워져 있었는데, 맑은 날 다시 보겠다고 바로 결심할 정도로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시칠리아에서는 익숙한 흙빛 건물위에 모스크 같은 지붕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그 뒤편은 재미있는 표정이 여전히 살아있는 부조들이 이집트의 람세스 같은 자세로 새겨져 있다.

꽤 오랫동안 바쁘게 옆 나라들이 드나들던 시칠리아의 상징을 본 듯한 느낌.

온 거리가 유적으로 뒤덮인 것은 비슷하지만 로마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건물들이 새로운 팔레르모다. 지나간 다른 문명들이 빠짐없이 흔적을 남기고 간 자리를 보는 것 같은.


역시나 이곳도 공사 중이고 골목은 텅 빈 듯 한 곳도 많이 있지만 사진에는 남지 않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와 한적할 틈 없는 팔레르모.

이탈리아 최악의 교통체증과 공해의 도시였기도 했지만 이 거리를 걸어본 기억들로 밝게 기억될 것 같다. 유일하게 중국보다 인도이민자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기도.

 

 

넘의 결혼식

 

관광객인줄 알고 따라 들어갔더니 교회에서 결혼식 중이었다. 객이 사진 찍느라 진짜 하객의 방해물이 됐다--;; 전통결혼식은 아니었고 그냥 현대식 교회 결혼식.

 

내눈에는 엉뚱해 보이는 이탈리아 그림속의 이런 표정들-실수일까, 의도일까...

 

Terraza a mare
타일로 만든 붙박이 일광욕 침대들, 밤이면 더 예쁠 가로등, 넓은 잔디밭.
대낮에 장장 3시간을 쉬는 근무시간이 나 같은 방문객에게는 황당하고 불편한 영업시간이지만 천천히 밥 먹고 산책하고 낚시하며 돌아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면 또 모두가 선망해마지 않을 터. 늘 시간과 몸으로 때우는 경쟁력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신기할 따름. 유러피안들은 오후 7시가 늦은 퇴근이라고 질색하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점심시간 1시간인데도 7시 퇴근 많이 하는 걸.

 

호텔레지나의 발코니에서 찍은 이마뉴엘 거리

 

PS. 밀자가게는 이미뉴엘거리에서 포르타 누오바 지나서 좀 더 올라가면 있음

이탈리아는 공사중-시라쿠사

시라쿠사도 공사 중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정답은 카누농구^^


 
아마도 좀 일찍 왔더라면 꽤 좋아했을 것 같은 이 동네.
이탈리아 전국이 공사 중이긴 하지만 시라쿠사는 아주 더 심하게 공사 중이다.
항구 쪽으로는 주민전체가 마을을 수리 맡기고 떠나버린 것처럼 텅 비어있는데 유난히 거센 파도와, 간판은 내 건채 문 닫은 가게들이 을씨년스러웠다. 시내 쪽은 붐비긴 했지만. 반나절 횡한 부둣가를 둘러보고 아침 일찍 팔레르모로 나와 버렸다.

시라쿠사에서 팔레르모는 기차보다 버스가 훨씬 빠르다.
아마 해안으로 가지 않고 가로질러서 오는 모양인데 그래서 전과는 또 다른 섬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뭔가가 뽀송뽀송 자라있는 것 같은 구릉들이 이어지는 풍경은 나무가 울창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 동네를 지나게 되니 차에서 그냥 훌쩍 내려서 아무집이나 찾아가 하루만 재워주세요-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몽골에서 느꼈던 것처럼.
 
 
 
기차보다는 적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3시간이 넘는 버스길이라 휴게소에 한 번 섰다.
되게 맛있던 휴게소 커피와 말 한마디 안 하지만 머릿수를 세는 것도 왠지 정감 있어 보이는 버스아저씨. 남쪽으로 올수록 통하는 말수는 적어지지만 미소지을 일은 더 많아지는 느낌.

이탈리아|시칠리아 타오르미나

 

더 이상의 휴양지가 필요하냐? 아니다.
하지만 그랑부르의 이름이 한번 나온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찾아갔던 곳인데 결국 영화를 찍었다는 수도원 출신의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은 찾아볼 생각은 않고-영화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또 노닥노닥 시간을 보냈다. 해외에서 전화할 땐 0을 두 번 눌러야 한다는 걸 몰라서 민가촌에 틀어박힌 숙소부터 공중전화까지 빗속에 몇 번을 오갔는지. 덕분에 몇 안 되는 숙소 이웃들에게 폭탄 같은 즐거움을 선사.


언젠가는 엔조와 자크가 뛰어놀았을지 모를 이 동네의 골목골목은 지금 너무나 말끔하고 잘사는 마을이 되어 있어서 영화의 분위기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 호텔에서만 찍었다는 건지. 그리스의 아모르고스 생각이 났다. 요즘도 매일 밤 영화를 보여주겠지. 상술도 역사가 생기면 아트의 경지지.

 


지나는 길에 피아노 바가 보여서 찾아갔는데 토요일만 공연이 있다고 해서 관광지마다 인기 폭발인 아이리쉬펍으로 행선지를 변경했다가 바로 그 뒤에 생음악 공연이 한창 중인 술집이 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기타, 만돌린, 콘트라바스의 조합. 흥이 많아 보이는 이탈리아 사람들인데 악기들의 소리는 어딘가 좀 구슬프다. 나중에는 적당히 취한 일본처자들, 오늘의 뮤지션들, 호스텔 이웃 벨기에 처자와 다 한자리에 앉아서 시끄럽다고 경찰차가 올 때까지 놀았다.
나폴리 위로는 이탈리아도 아니라는 시칠리아 아저씨의 얘기를 들으니 이탈리아는 지역감정을 넘어 연합국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폴리를 건너뛴 것이 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핏자도 파스타도 최고라는데 진짜 이탈리아의 반쪽을 돌아가는 길에 함 들러 봐? 하긴 북쪽 사람들은 또 반대로 얘기하기도 하겠지만.

황미나의 ‘이오니아의 푸른 별’ 때문에 낭만적인 이름으로 느껴지던 이오니아의 바다구경만 열심히 하다. 흐린 날이 이어져서 하늘은 거의 구름색인데도 원래 물감을 타 놓은 것처럼 푸른빛이 돌던 예쁜 바다색도 멋있었지만 떠나던 날 해가 나서 더 파랗게 멋있어진 색을 볼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음악을 듣고, 이런 자리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굉장한 호사가 새삼 즐겁다. 
이렇게 이오니아해를 가까이서 보다보니 아직 가보지 못한 북해와 북해보다 더 가보고 싶은 보드니아해 생각도 났다. 에게해도 멋있었는데. 이름으로는 결코 그 멋이 덜하지 않은 아드리아해에는 별로 집착하지 않는 걸 보면 나의 바다 취향은 만화가 절대적인가 봐. 참, 잭  스패로우 덕분에 캐러비안도 추가^^

 

이런 곳에서 축구도 하는 타오르미나 주민들

영화 대부의 관광유산 

맘에 드는 차가 맘에 드는 골목에 주차하고 있는 순간^^

이탈리아|시칠리아 아그리젠토

 
해변을 지나 언덕을 넘어가는 기차. 아말피 해안도로의 전망도 근사했지만 빈틈없는 초록의 언덕을 달리는 이 기차도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시칠리아가 이렇게 푸른 섬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내가 가진 상상속의 아일랜드와 비슷한 느낌. 여기도 아일랜드이긴 하네?
역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아그리젠토 도착 전의 어느 역에서 사람들이 단체적으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내렸다. 마치 다 아는 동네사람들처럼. 오기도 전에 편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신전으로 유명한 시칠리아의 도시 아그리젠토. 사실 신전의 도시래 봤자 그리스나 로마 같겠지 했는데 버스타고 오는 길에 언뜻 보니 대리석도 모자이크도 아닌 황토 빛의 신전들이 묘한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근데 이건 그나마 버스라도 타고난 다음의 여유 있는 생각이다.

내리는 순간부터 상당히 번잡스러워 지도 하나 없이는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나던 팔레르모와 달리 아그리젠토는 나름 센트랄 역이라면서 역 앞에 웅장한 갈림길만 나 있다.
역 앞에 한가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숙소주소를 보시더니 가볍게 7킬로미터라고 하시길래 또 숫자 개념 없이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갈림길만 나오면 100% 실패를 자랑하는 방향치인 관계로 이상한 민가촌에 접어들었다. 깨끗하고 높게 지은 듯한 주택가에 자가용들만 다니고 무슨 가게나 식당 같은 간판도 하나 안 보이는 길을 한 30분 걷다가 결국 다시 역으로 기어 올라갔다.
사실은 그냥 평화로운 주택가일 뿐이었는데 오가는 사람도 없고 집들이며 차들도 다 훌륭해 보이고 또 여기가 시칠리아이다 보니 나 혼자 이 평화로운 주말에 마피아들의 기습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라는 촌스러운 상상을 좀 하게 된 거다.

결국 버스표를 사고 숙소로 간다는 버스를 탔는데 한 30분이 넘고 캠핑장들을 다 지나도록  아저씨는 내려줄 생각을 안 한다. 돌아보니 승객도 나 하나다. 아저씨도 혹시 마피아? 늙은 날 잡아다 뭘 하겠어까지 진도가 나갔는데 아줌마 승객이 하나 탔다. 여기서 이 아줌마와 아저씨가 부부다-할 정도로 성의 있게 상상하는 성격은 아니라 잠시의 의심을 접고 있었더니 어느덧 캠핑장 정문 앞에 차가 섰다. 그라찌에-프레고 한 세트 등장하시고 나는 비수기의 특권을 누리며 침대 4개짜리 방갈로를 혼자 차지했다. 빨래도 하고 씻고 캠핑장 앞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장도 보고나니 평화가 찾아온 듯 하다. 사실 배낭 멘 채로 아그리젠토 기차역 인근의 주택가를 정처 없이 헤맬 때도 해지기 전에 어딘가에서 편히 고생스럽던 낮시간을 옛날 생각처럼 하게 될 거라고 믿기는 했었지만.
 

시칠리아 버전 웰빙황토집^^
 
나는 정말 비를 몰고 다니는 것일까. 비가 또 온다. 기뻐하며 캠핑장에서 빨래도 다 해 널었는데. 게다가 천둥번개까지 동반한 비라 넓다고 좋아라 했던 오두막이 좀 썰렁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이 때. 소리 없이 문밖을 서성이는 그림자. 헉-
나가보니 그 소리 없는 그림자는 아까 나를 뒤에서 들이받았던 캠프에서 키우는 백구다. 짜식, 무게 잡으면서 알아서 내 오두막 현관에 자릴 잡다니 정말 듬직하다. 화장실갈 때 따라와 주면 더 고마울 텐데. 이탈리아의 개들은 덩치는 커다란 녀석들이 사람 잘 따르고 온순하다. 터키의 개들에 비하자면 천사와 악마-수준. 그나저나 하필 캠핑장에서 자는 날 밤비가 내리다니 음. 그러고 보니 날씨에 따라서는 안 좋을 수도 있는 숙소.
 

바로 요녀석.
 
드디어 사원 구경 시작. 무작정 걷기 시작한 엠포리오 거리는 걷기엔 참 좋은 길이지만 어느새 ‘고속’도로로 이어져서 질주하는 차들이 아슬아슬 비껴갈 때면 도로변에 이따금 등장하는 납작한 동물시체들 생각이 아찔하게 나기도 했다.
 


 
여의도에서 63빌딩 찾아가듯 언덕배기의 사원을 향해 도로변에서 예쁜 산책로 같은-우리나라로 치면 논둑길을 걸어가다 보니 경계선이 등장. 철책을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맘 단정히 먹고 다시 도로변으로 나서는데 맘 좋게 생긴 아저씨가 태워주었다. 말도 거의 안 통하는 사이인데 열렬한 초대의 행렬이 이어진다. 가족이 있냐고 한 마디만 물어봤으면 될 것을 혹시 외로운 독거노인이 아닐까 하는 기우에 마음이 기울어 그라찌에로 마무리 하고 냉큼 내렸다.

진흙으로 빚은 것 같은, 그래서 신을 위한 인간의 창세기를 연상시키던 신전들은 가까이서 보니 황토바위로 지은 것들 이었다. 감흥은 바뀌었지만 색감의 독특함은 여전하다. 아름답지만 아직 색을 입히지 못한 것처럼 불완전함이 보이는 웅장한 신전의 흔적들.
8유로로 모든 사원을 볼 수 있는 입장권을 파는데 콜로세움 하나가 10유로이던 로마에 비하면 인심 후한 편이다.

언덕에 나란히 선 템플삼형제 맞은편에는 쓰러진 기둥들이 가득한 넓은 사원터가 하나 더 있다. 막 만지고 막 올라가도 되는 곳이다. 딱 하나 우뚝 남아있는 신전입구 기둥과 그 옆에 즐비한 무너진 기둥들에서 시간의 느낌이 커진다. 이런 옛터들은 언제나 시간의 묘한 기운에 취하게 한다. 수많은 영웅들이 지나간 바로 그 자리에 생명이 없어 더 오래 남아있는 것들과의 대비.
 



전에 어린이 과학책에서 읽은 건데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신기한 옷을 한 벌 얻는단다. 이 옷은 추우면 덥혀주고 더우면 식혀주고 몸이 자라면 같이 자라는 요술 옷인데, 이 옷은 바로바로- 피부. 언제부턴가 사람은 살아있을 땐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아직 따라잡지 못하는 신기한 생체공장을 돌려대는 놀라운 생명체이다가 심장이 멎는 순간 전부 다 똑같이 소멸이 시작되는 존재라는 것이 새삼 신기해졌다. 뽑아도 살아있는 몸에서는 계속 만들어진다는 게 신기해서 재미로 헌혈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궁극이 유한을 만들고 유한이 보다 긴 유한을 만든 자리를 보면 갑자기 우주의 비밀이 사람에게 있다는 말을 알아들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전을 내려오다가 도로변에서 보이는 신전을 찍고 돌아섰는데 차를 세우는 것인 줄 알았는지 또 착하게 생긴 아저씨가 멈춰주었다. 다시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 알 수 없는 대화 끝에 내가 안 본 사원하나를 보여주겠다고 해서 행선지가 바뀌었다. 아몬드 나무에서 갓 딴 아몬드도 처음 먹어보고 작지만 지층이 보이는 특이한 볼카노 템플도 구경했다.
적극적인 호의는 황송하면서도 불안하다. 권하는 이후 일정을 계속 거절하면서 이렇게 친절한 사람에게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또 어쩌겠나. 이것이 떠돌이의 숙명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