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의 애정어린 반추에 따르면
정기용은 말을 더 잘하는 건축가였다고 한다, 때로는 결과물 보다 더.
누구나 하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살고
건축가 정기용에게 그 목소리는 건축인데
보조목소리쯤 되는 말을 잘하는 건축가라니
언제나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꿈이 참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영화 말미 병색이 짙어갈수록 작아지는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살아온 시간이 쌓인 얼굴에 멋진 미소가 남았던
정기용이라는 인생의 포스터는
사람냄새가 물씬 났다.
공연소식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현재 진행형인 지옥의 소식을 직접 들고 한국까지 전령들이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작은 무대와 자막, 스크린과 카메라가 어우러지며
시리아의 비극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시리아의 지금은 80년의 광주를 떠오르게했지만
거대한 무장세력앞에 잔인하게 희생당했을 지언정
한마음이었던 그 결기가 전설처럼 회자되는 광주와 달리
시리아에서는 지나는 청소부가, 도망중에 지나친 또 다른 시민이 신고자가 되어
밖으로는 거친 투쟁을 하고
속으로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지는 큰 상처를 얻게 된다고 한다.
갑작스런 폭력앞에서
요구하지도 못했던 당연한 인권수칙을 곱씹는 피해자들의 현장고백도 있다.
5월까지 상연할 예정이었는데
위중한 상황으로 4월 공연을 끝으로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시리아의 극단.
10여년 전 즐거운 여행지였던 시리아의 기억으로
그들의 외침에 귀기울이는 관객을 한명 더 보태겠다는 조용한 응원차 보러갔는데
한국까지 날아온 보람이 무색하게도
내가 본 공연의 한국관객은 몇 명 안됐다.
극장에서 보려고 나름 노력했던 영화였는데 결국 다운로드로 보고말았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스'와 정확하게 같이 가는 선명한 저 구호가 스포일러라고 생각했을까.
개봉용 포스터에는 비사교적인 현순과 그 가족들이
완전 비호감으로 찍혀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면서
배역들의 비호감을 강렬하게 뿜던 포스터에게
흥행성적의 책임을 물어야 하리라.
천재의 참 못된 영화였던 '브레이킹 더 웨이브스'와
몇 년 전 참하게 봤던 '걸어도 걸어도'가 생각났다.
낯선 얼굴들이어서 더더욱 실제상황같이 보이게 만든
배우들의 열연과
지루해질 틈 없이 끼어들던 반전들-재미있었다.
벌받기 전에 깨달을 수 없는 것을 슬퍼해야할지,
그나마 벌 받고 정신차린 것을 축하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따금 남들이 만들어주는 가족이야기 속에서
가시들이 튀어나올때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들다가도
좀 우울하다.
남들도 그렇구나 싶다가
왜 다 그럴까 싶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영화일 수 있는데
일단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괜찮은 가족드라마 한 편.
용감한 황정민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