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God Bless you, Mr. Rosewater|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Jr.

트라우트와 포르노의 공통점은 섹스가 아니라 어처구니없이 관대한 세계에 대한 환상이라는 점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실비아의 병을 가리키는 '사마리안실조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는데, 그 뜻은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히스테리성 무관심'이었다....사마리안실조증은 과도하게 활성화된 양심을 마음의 다른 부분이 억압하는 증상이다.. 양심은 다른 모든 심리 기능에 "너희 모두 내 지시를 따라야 해!"라고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다른 심리 기능은 양심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한동안 노력하지만, 양심은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계속 소리 지르고, 양심이 요구하는 헌신적인 행동을 해도 외부세계는 눈곱만큼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킨다. 포획한 양심을 비밀 감옥에 가두고, 그 어두운 지하 감옥 위에 무거운 뚜껑을 덮는다. 그들은 더 이상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달콤한 침묵속에서 심리적 기능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한다. 양심의 입을 막을 때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지도자, 바로 사리사욕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리사욕은 그들에게 깃발 하나를 주고 잘 보이는 곳에 소중히 걸어두게 한다. 검은 바탕에 하얀 해골과 두 개의 넙다리뼈를 교차시킨 그림 밑에 "널 지옥으로 보내주겠다. 각오하라!"는 글자가 적힌 해적기이다.  

사랑은 저만의 만족을 구하고
저만의 기쁨에 남들을 묶는다.../블레이크

만약 엘리엇이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면, 구체적인 사람을 구체적인 이유로 사랑하려는 우리 같은 사람은 새 단어를 찾는 게 나을거다...예를 들어 난 아내를 우리의 청소부보다 더 많이 사랑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 시대에 가장 무시무시한 죄악인 차별을 범한 것 같은 죄의식이 드는구나.

-엘리엇이 도시의 모든 남자화장실에 똑같은 글을 쓰고 다닌다고요.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시오?
-네. '사랑받지 않고 잊히고 싶다면, 이성적으로 행동하라.'였어요.

-...당신들은 내가 상속받은 것을 관리하죠?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번 돈을?
-그렇다네....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돈은 그 고통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나한테는 내가 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있고요. 나는 괜찮은 음식과 옷과 거처를 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뒤를 봐주는 젊은이 가운데 해마다 적어도 한 명은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자신의 돈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하지. 주로 어느 명문대에서 일 년을 마친 젊은이라네. 개학의 첫 해는 파란만장하지! 젊은이는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돼. 그리고 수많은재벌이 엄청난 범죄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도. 그는 저도 모르게 기독교적 양심에 사로잡힌다네...그는 혼란에 빠지고,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낸다네! 그리고 축 처진 목소리로 자신이 얼마만큼의 재산을 갖고 있는지 묻는다네. 액수를 얘기해주면 그는 부끄러워 어찌할 줄을 모르지. 그의 재산은 스카치테이프나 아스피린이나 인부의 덧바지에 기반한 것인데, 자네의 경우는 빗자루지. 그렇게 정직하고 유익한 사업으로 벌어들인 거라도 젊은이는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네. 자넨 막 하버드에서 일년을 공부했지?
-네.
-하버드는 훌륭한 대학이지. 하지만 하버드가 어떤 젊은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난 '어떻게 대학이란 곳에서 역사를 안 가르치고, 동정심을 먼저 가르친단 말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네. 친애하는 번틀라인 군, 역사는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해준다네. 재산 기부는 무익하고 파괴적인 행위라는 것,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풍족하거나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응성받이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기부자와 그의 후손들은 징징짜는 가난뱅이와 똑같게 된다네.  
-자네처럼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말 황홀하지만 드문 기적이라네...자넨 그것을 손쉽게 얻었으니 그게 어떤 것인지 알 기회도 없었을 테지...그 돈 때문에 자넨 특별한 거야...자네가 전 재산을 기부한다면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 되겠지? 자네가 천재라면 또 모르지만. 번틀라인 군, 자넨 천재인가?
-아뇨.
-음, 그리고 자가 천재든 아니든, 돈이 없으면 훨씬 더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워질 걸세. 게다가 자넨 후손까지도 답답하고 짜증나는 삶으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네. 그건 어느 어리석은 조상이 재산을 갖다버리지만 않았다면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삶이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알게 됐어. 그런데 아주 깊은 곳에서 뭔가가 그를 지독하게 괴롭혀...바로 ㅡ게 그의 행동을 지배하고, 그에게 비밀이 있다는 걸 그의 눈빛으로 내비치게 만들어...그게 `뛰어`라고 말하면 그는 뛰어. 그게 `훔쳐`라고 말하면 그는 훔치고, `소리쳐`라고 말하면 소리치지. 하지만 그가 일찍 죽지 않는다면, 또는 자기멋대로 다 하고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그것은 태엽을 감아놓은 장난감처럼 서서히 멈출거야...어느 날 당신들이 함께 일하는데 갑자기 그에게서 그 찰깍소리가 들려...그는 일손을 놓고 차분해지지. 이젠 진짜 바보처럼 보이고, 진짜 즐거워 보여. 그의 눈을 들여다보니, 비밀도 다 사라졌어. 심지어 그는 자기 이름도 즉시 대질 못해. 그는 다시 일을 하지만, 절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거야. 그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그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건 죽었어. 완전히 죽은 거야. 그리고 미친 짓을 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인생, 그것 또한 끝이 나는 거야!...이 운 좋은 개자식. 너한테도 그 소리가 났군!

생명체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언어를 사용하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들을 훨씬 더 활동적으로 만들었다. 텔레파시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하여 항상 대화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에 대한 일종의 일반화된 무관심을 낳았다. 그러나 의미 전달이 느리고 협소한 언어를 사용하면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하게 되므로 계획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가능했다.

...기계의 정교한 발달로 인해 전 세계에 끔찍한 문제가 확산될 수 있는데, 그 문제를 아주 적은 규모로 해결하는 실험이었기 때문이오. 그 문제는 이것이었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때가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상품, 음식, 서비스, 더 많은 기계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고, 경제와 기술분야는 물론이고 어쩌면 의료분야에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원천으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인간을 인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을 찾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종종 제안하듯 그들을 완전히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르오.

-가난해도 진취적인 사람은 지금도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소...
-...가난해도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라면, 그 후손은 피스콴투잇 같은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겠죠, 하지만 그곳의 정신적인 부패와 어리석음, 무감각과 나태함은 로즈워터 군의 전염병 만큼이나 지독합니다. 가난은 아주 나약한 영혼을 가진 미국인에게도 비교적 가벼운 질병인데 반해, 무익함은 강인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미국인을 매번 파괴합니다.

-엘리엇이 알아 낸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무조건 사랑을 주면 주는 대로 다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새로운 건 한 사람이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제목에 나오는 `신이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두 번 등장한다.
`미친` 엘리엇 로즈워터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사람이 건네는 것으로 한 번,
보험판매원인 프레드 로즈워터가 보험고객에게 듣는 것으로 또 한 번.
전혀 다른 상황에서의 같은 인사에서 큰 차이가 느껴진다.

내놓고 교훈적이며 계몽적인 소설로,
작가 스스로도 읽을 사람들이 안 읽을까봐 걱정할 법한 이야기.
권선징악(^^)을 벗어나지 않는 뚝심있는 결말까지
고풍스러운(^^) 만족을 주었다.
새로운 작가와의 즐거운 첫만남.

경계도시


뒤늦게 본 덕에 1, 2편을 연달아 볼 수 있었다.
송두율이라는 인물에 대한 대한민국적 정의에 대한 물음표였던 1편에 비해
2편의 파장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컸다.
그 합리적인 논지에도 불구하고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이런 논의의 장이 될만한 곳인가 라는 회의가 먼저 들었기 때문에
내내 우울했다.
팔다리를 다 자르고서도 온전히 정체성을 지킬 수 없었던
송두율은 지금도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경계인이란 거리두기가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과연 그 고통을 안겨준 대상을 끌어안을만큼의 넉넉한 사유를
지금도 할 수 있을까.

힘있는 자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그 불합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정해놓은 것이라는
우울한 법의 정의를 다시 보는 것보다
태생부터 합의일 수 없었던 규칙조차도
막연한 공포로 맹목하는 순진한 사람들의 모습이 섬뜩했다는 것이 더 충격이다.

도둑을 막기위한 법을 만든다 치자.
이상적이면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은 도둑질하지 않고도 먹고 살도록
사회의 기반을 닦는 것이지만
세상 어디서나 가장 먼저 나오는 법은 처벌에 관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효과도 그렇지만 제일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예방을 위해 격리를 시도한다.
도둑의 이웃, 도둑이 잘 다니는 곳을 자주 다니는 사람, 도둑의 활동지역에 나타난 사람,
도둑과 비밀얘기를 나누는 사람.
행동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은
이러한 감정적인 의심속에 묻힌다.
왜 그런데서 얼쩡거렸냐는 비난은 필수양념.

전쟁에 치를 떠는 애국자들이
호전적이지 않은 대북자세마다 제동을 거는 것,
이산가족 상봉에 저마다 눈물을 흘리는 것,
이산가족 말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통일이 아직 국시라는 것.
이 혼란스러운 마당에 이런 영화를 찍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다이나믹 코리아...다...
이미 자멸해버린 실패한 체제이자,
이제는 교과서속에서 학문으로도 대접 못받는 공산주의가
뭐가 그렇게도 위협적이라는 걸까.
공산당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그만큼 자신없음을 고백하는 촌스러운 반쪽 민주주의임을
다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37년만의 방문을 앞두고 설레기만 하던 이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그의 얼굴이 가장 강렬하다.
아버지의 임종도 못지킨 한에도 불구하고 넘치던 자긍심에서
단 몇 달 사이, 균형까지 틀어졌던 그의 얼굴.
몇 년 사이에 관점의 차이로 바뀔 수 있는 사회적 룰이 망친 개인의 삶이라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관점이 이어져 그의 낙인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낙인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는 정의는 살아있었을 것 같다.
그것을 누군가의 인생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
아직은 잔인한 우리의 현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코맥 매카시Cormac McCathy|사피엔스

선량한 주민들을 다스리는 데는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정말 거의 없다. 그리고 나쁜 인간들은 다스리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아니면 다스릴 수 있다는 얘기는 내가 들어본 적이 없거나.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치는, 그들이 감수할 까닭이 없는 나쁜 일에 관해서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좋은 일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일을 겪어도 될 자격이 그들에게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는 전해지고 진실은 무시된다....거짓만 말하고 그것을 잊는다 해도 진실은 남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여기저기로 움직이지 않으며 때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소금에 소금을 칠 수 없듯이 진실을 더럽힐 수는 없다.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믿는 게 무엇인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해야 한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게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는 벌써 늦은 것이다.

마치 어느 야구 선수가 언젠가 내게 말한 것처럼 작은 부상을 입어 몸이 약간 불편한 데도 오히려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다. 그의 부상은 백 가지 보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부상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골라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매혹적인 제목에 끌려버린--;;
책겉장에 도배된 칭찬중에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숨돌릴 겨를 없이 끌렸다지만 나는 별로.
완벽한 번역이라면 단어사용의 묘미와 문체를 다 살려야 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나는 작가를 충분히 연구한 자신만만한 번역가의 의역이 좋다.
이 책의 성실한 번역가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까지 주석으로 달아 변명할만큼 정직한 사람이기는 하나
그 부족한 자신감으로 인하여
어지간한 단어에 다 음을 달아 거기에 주석을 붙였고,
그 결과,
달려야 하는 이야기들은 자꾸 과속방지턱에 살짝살짝 걸려 김이 빠졌다.
번역자가 이 정도면
원서를 읽어봤자 내가 그 속도감을 느낄리는 만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악한 시거,
우연히 시거의 물건에 욕심을 부린 모스,
그들에 말린 보안관 벨,
어떻게 추적해서 어떻게 서로를 찾아내는 지의 과정은 모두 생략된 채
장면으로 바로 뛰어들어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묘한 소설.
하지만
인물 누구에게도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에
즐거운 긴장은 아니었다.
얼추 읽기에도 이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는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인듯.
근데, 여전히 모르겠다.
왜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

Capitalism: A Love Story|2009

팔짱끼고 불량하게 고백하시는 거삼? ㅋㅋ

마이클 무어는 정말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 밖에서 혹은 미국내의 냉소적인 지식인들이
미국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씹고 뜯고 욕하고 침뱉지만
그는 사랑하는 애인과 그 애인을 망치는 적들을 성실히 발라내어
그의 애인을 돌려달라고 열심히 부르짖는다.

분노가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그 분노에조차도 카스트가 생기는 것 같다.
머나먼 '그 분'들께는 가닿지 못하고
만만히 근처에 서 있는, 비슷한, 혹은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
폭탄처럼 터지는 가난한 분노들.
가진 것 두른 것 없어서 생이빨을 대신 뽑은 엠씨몽의 가난한 비겁에는 차라리 동정이 어울린다.
분노는
머리칼 하나 뽑는 고통도 없이 편하게
험한 길은 피해가고 고운 길을 대대손손 이어주는
진짜 적들에게 정조준 되어야 옳지 않나.

은행이 주는 1000달러를 받아들면서,
퇴거명령을 수행하는 직원에게 속을 쏟는 강제철거민들을 대신해
마이클 무어는 그 적들을 찾아가 선전포고를 한다.
아무 법적인 힘은 없겠지만
범죄지역 띠를 두르고
몰수를 하겠다고 빈자루를 들고 덤비는 그의 모습이
그래서 멋있다.
 

사실 너무나 기본적인 거다.
법이라는 합의적인 개념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사람들에 맞설 때
그 법의 테두리에서 싸우는 것만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은.
그런 법을 만들어 잉여를 위해 착취하는 자본에게
살집을 일터를 생존을 순순히 빼앗겨줄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인상 깊은 대사들이 있었다.
은행강도 말고는 안 해본게 없는데 지금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고.
은행은 하는데 왜 나는 하면 안되냐고.
계약같은 건 한 일도 없이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 계약의 피해를 왜 우리가 져야 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얻는 것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했다고.

미국 이상으로 진창에 구를 준비는 되어 있으면서
그나마 그만큼 번듯이 서지도 못한,
그래서 미국의 자본주의가 악이라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냥 병신이다.
이제 미국의 병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한 마이클 무어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1936년에 이미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들에게서 보호하려고 공권력을 투입한 대통령이 있던 나라이기에
그 유산이 아직은 미국을 조금 버티게 해주는 것일까.

애국을 해도 국가는 계급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유리한 법망조차도 어겨가면서 독과점으로 번 돈으로 기부하는 빌게이츠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일 수 없다.
직원들을 죽이고, 세금은 떼먹고 기부하면서
안녕하시냐고 광고하는 삼성은 역겹다.

도움과 격려의 손길은 늘 가까운 곳에서 먼저온다.
애국보다는 범지구적계급연대가 더 현실적인 꿈이 아닐까.

이번엔 극장개봉을 못했는지
생소한 제목에 마이클 무어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전과 다르게 이번엔 관객에게 호소하는 마이클 무어를 보면서
전보다 범위가 넓어진 그의 적들의 거대한 힘을 느꼈다.
농노보험까지 들고 있다는 미국의 기업들.
참 니들 보통이 아니긴 하다....

도쿄|2008


Interior Design
꿈을 펼치는 사람 옆에서 구박은 받지만 성실히 살고 싶어하던 히로코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
장편이었던 수면의 과학보다 차분하면서도
재미있었던.

Merde
어느 미친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
불편함과 공포가 이유라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무한제제가 합당할까?
도쿄까지 와서도 하수구에 출몰하는
개고생 전담배우 드니 라방에게 박수를.
라방 오라방 여전하신 포스^^

흔들리는 도쿄
가장 지루한 봉준호 영화가 단편이라니 ㅋㅋ....
그것도 미셀 공드리나 레오 카락스처럼 '-스러운' 느낌 조차 없던 밋밋한...
김씨표류기같던 엔딩까지도.

노다메 칸타빌레 Vol.1|のだめカンタービレ|2009

애처롭도록 높이 솟은 광대뼈 언덕이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는--;;


그렇게 열광했던 노다메-내 그간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없어 미안했는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기회를 주는구나^^
DVD라도 사고 싶었지만,
비싼 건 둘째치더라도
한글자막도 없는 정품이라니 너무 상징적이기만 하잖아.
차이코프스키와 슈만도 좋았고
큰 화면에서 보는 유럽도 좋긴 했지만
가장 큰 의미는
아무래도 빚을 갚는 것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궁금한 예고편을 남기고
2부 개봉예정은 잡지도 않아버리면
사람들이 다시 어둠의 경로를 찾게 되지 않을까.
지금 꾹 참고 있지만, 나도 좀 힘들군...
제발 한번 더 빚을 갚을 기회를 주기 바래,
어서~

큰 화면에서도 기죽지 않는 노다메 필살기
첫등장부터 콕 찍었는데 유럽편을 거쳐 영화까지 엄선된(^^) 쿠로킹

탈주|2009

시작은 도발이었지만 결국은 지능적인 탈영방지캠페인^^


람보류의 영화들이 자주 욕먹는 항목인
총을 몇 발을 맞든, 필요한 동안은 죽지 않는 주인공,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심지어 경찰이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거리에서도
총맞은 다리로 도주에 성공하는 주인공,
언제나 삽질하는 조연들의 총질과
언제나 명중하는 주인공의 총질.
결말이 짜잔하고 나타나기 전까지
주인공들의 모든 도발은 성공.

이건 예산이 적다 많다의 문제는 아니다.
혹시
독립영화는 원래 관객이 적다는
든든하도록 절망적인 환경에서
만들기만 하면
그래도 애정어린 격려를 보내는 이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동안
그 관대함에 길들여진
위험한 무성의가 아닐까.
 
욕의 방향이 군대만을 향하며
영화 속 '-설'일 것 같았던 얘기들이
영화 이후 놀랍게도 사실로 뉴스를 탔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과 다른 관심사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별로 딱지 붙이면서 보고 싶진 않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도 같으니깐!)
좀 아쉬웠다.
뭐, 상업영화들이 이보다 엉성하면서도
이보다는 돈벌이를 잘 할 상황을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긴 하겠지만,
반대로,
뚝심있는 관심사를 가진 사람에 대해
역으로 더 큰 기대를 갖는 관객이 있을수도 있다는 것까지
신경써 줄 그날이 오기를 바랄 뿐...
진이한은 영화가 훨씬 나았다, 드라마와는 비교도 안될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