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녹색의자|2004




 
나이를 먹었어도 여자는 별로 어른스럽지 않고
법적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라도 남자는 모든 것을 내게 맡기라-는 듬직한 애인이다.
그러니까 많이 달라보이는 이 연애도 남들 하는 연애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면 성공..이지만 또 그래서 아낌없는 베드신을 제외하고는 별 새로울 것도 없다. 
연극무대처럼 자리 펴놓고 등장인물들을 전부 모아 각자의 입장에서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견해들을  한번에 다 쏟아보는 건 재미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큰 난관이 될 가족과 친구들이 이상적일만큼 진보적이었기에 연설이 되고 말았다.
어린남자가 삼십대 이혼녀의 농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것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면 서정의 교태끼가 좀 조절 되었어야 하지 않았나-그래도 부분부분 재미있게 연애하네 싶었는데 마지막 장면의 눈에 띄이는 그 몸의 자세는 역시나...하게 만들었다.
감독의 견해와 상관없이 스카이초이스 제목이 "녹색의자:이혼녀의 원조교제" 였는데..영화 헛만들었다고 슬퍼할까--;;

영화|클로저|Closer|2004






 
댄이 천벌(!)을 받은 것은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정작 무방비상태였던 것은 자신이었는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더니 래리 같은 남자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누구나 꿈꾸는 연애인생이 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언제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리고 사랑을 만난다.
그러나.
그 역시 모두와 합의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무례를 범하고
자신의 무례가 되돌아왔을때는 분노하는 이중성을 보임으로써 죄값을 치른다, 영화안에서는.
그래도 웬지 댄에게는 다음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래리의 영화속 승리(!)는 그저 승리일 뿐, 풍요로운 연애라이프는 아닐 것 같으니, 연애스토리 상에서는 내려보내기.
그나저나 앨리스라 불리던 여인.
너무 한 거 아닌가...
 
초창기 앨리스와 만나던 댄 스타일이 맘에 들었다.
뭔가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재미있던 특이한 영화.
노컷으로 보면 더 재미있을까. 흐흐...

영화|혈의 누|2005



 
음.
꽤 집중하고 봤는데 매번 차승원이 발견하는 단서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뭐 일단 비디오라 잘 안들리는 대사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저 형사 천재야-로 이해하는 수 밖에.
등장하는 모든 바람직해 보였던 인물들이 전부 다 한계를 드러내는 현실감-속상하지...
왜 그들은 어느 선까지만 열심히 하다가 마지막에는 믿음을 조용히 접어버리는 거지?
스스로를 위함이 아닌 신념이 배신당하는 것은 배신자들 때문이라기 보다는 신념의 모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찌기 `북해의 별`에서 유리핀은 민중을 비하하는 귀족에게 일갈한 바 있다.
 
귀족  : 지금은 민중의 대표라고 당신을 지지하지만 시민정부가 서고 나면
         귀족인 당신을 처단하려 할 것이오.
         그것이 바로 저 천박한 민중의 속성이오.
유리핀: 그건 민중의 속성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입니다.
(뭐, 대충 이런 내용...)
 
그래도.
새로운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다양성의 대표주자 같은. 

연극|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유씨어터



 
박승걸 연출자의 어른들을 위한 당부말씀
-극중 극 형식인 이 연극은 일곱난장이가 예전 공주들과 살았던 난장이들과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난장이가 공주도 되고 왕자도 되고 그러다 보면 난장이가 다섯이었다가 여섯이었다가 계속 바뀌니까 일일이 세면서 왜 일곱난장이가 아닌지 따지시면 안됩니다. 
 
박승걸 연출자의 어린이를 위한 당부말씀
-연극을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야 할까요, 연극이 다 끝난 다음에 물어봐야 할까요?
 
연극의 무대라는 공간이
제약이 있기에 더 상상할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 놀라운 연극.
그 작은 무대위에 보여준 험한 산, 풍랑이 이는 바다, 흐드러지는 안개꽃밭은
상상력이 만들어 낸 멋진 공간이었다.
순애보의 심플한 감동에 아무 이견없이 울고 웃으며 볼 수 있었던 사랑스럽고 예쁜 연극.
어딘가 슬퍼보이는 얼굴의,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권혁미의 반달이,
일관성있는 백치미로 밀어부치는 강혜련의 백설공주,
풍부한 표정과 얼핏 한채영을 닮은 전성아의 산만해가 인상깊었다.
반달이, 공주보다는 왕자가 더 가능성 있었는데 잘 좀 해보지~
 
공연이 끝나고 나서 출연배우 전원이 관객들과 무대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같이 갔던 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는데 예쁜 난장이월드에 큰바위얼굴 두개--;;
역시 배우들은 사이즈가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자세히 보니까 배우들이 각각 다른 포즈를 취해주고 있었다.
친절함에 다시 감동! 
 

내가 본 배우들의 공연사진을 찾다-공주의 드레스 색은 다르지만!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첫공연이었기에  오리지널 캐스트라는 다른 날을 잡아 두번째 공연을 봤다.
권혁미의 반달이는 백설공주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 사랑을 보여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노력해서 춤을 완성해가는, 남자아이 같은 반달이었다면, 최인경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고백을 자연스럽게 춤으로 엮어가는 서글픈 반달이를 보여주었다.
내 취향에는 귀엽고도 이상한 나라의 남자 앨리스 같은 권혁미의 반달이가 더 좋았지만 최인경의 반달이에 더 많이 울었으니 두 번 볼만한 연극이었다.
다른 캐스트들은 다 똑같았고 그 사이 더 뻔뻔해진  백설공주의 백치미가 눈에 띄였다. 오늘은 드디어 사진속의 노란 드레스를 착용! 
다만, 모처럼 칠순의 노모를 이끌고 야심차게 관람을 시도했으나 결국 피곤한 노모께서 많이 졸아버리심...
 
두번째 공연에서는 마침 건너편 옆자리에 뀌여운 꼬마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당부말씀도 아랑곳없이 궁금한 걸 그때그때 물어보는데, 주위를 살피며 폐 안끼치려고 노력하는 엄마 덕에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고, 장면마다 반응이 바로바로 나와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봤다(네버랜드를 찾아서의 공연장면을 연상케 하는~).  
무대에 불이 꺼지자 그냥 나가려고 하길래 아이 엄마에게 좀 더 기다리면 배우들과 사진을 찍어준다는 얘기를 몰래 해주었다-연극 시작 전에 알려주긴 하는데 사람이 너무 몰릴까 봐 그런지 끝나고 난 다음에는 따로 안내해 주지 않는다-. 아이 엄마는 반달이랑 사진찍고 가자고 너무 기뻐하는데 정작 아이는 졸린 건지 배가 고픈건지 얼굴까지 찡그리며 그냥 가자고 했다. 아이 엄마가 어찌나 아쉽게 아이에게 끌려 나가던지...

친절한 금자씨 수제 포스터



네이트뉴스에서 발견.
참을 수 없다, 으하하...
주요 답글도 두개 추가.
 
나화가 
극장간판화가의 월급이 쥐꼬리만한데...
술한잔 먹구선...그릴수도 있는게지...
뭘 그런걸 가지구...따지누....

강릉사람 
사실.. 이런 말도 안되는 극장용간판이 걸린다고
인터넷에 뜰때마다 보면 강릉이더라구요..ㅠㅠ
중앙극장 사장님 제발이요.. 실사를 걸기가 어려우면
비슷하게라도 그려주세요..
그나마 이 그림은 나은건데 멀.. 이그... 

소설|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게오르기스왕자가 크레타의-해방을 알리며-흙을 밟던 순간
"....마케도니아에서 나와 함께 온 반란군 상놈중에 요르가란 놈이 있습니다. 극형에 처해 마땅한 진짜 돼지 같은 놈이었답니다. 아, 글쎄, 이런 놈까지 울지 않겠어요. <왜 우느냐, 요르가, 이 개새끼야. 너 같은 돼지새끼가 뭣 하러 다 우니?>
내가 물었지요. 나도 눈물을 마구 흘리고 있었답니다. 그랬더니 이 자는 내 목을 안고 애새끼처럼 꺼이꺼이 우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개자식은 지갑을 꺼내어 터키 놈들에게서 빼앗은 금화를 주르륵 쏟아내더니 한 주먹씩 공중으로 던지는 겁니다. 두목, 이제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넣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부르는 자유란 무엇일까?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구요.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 뿐이기 때문이오.
 
<이리 오너라, 이 거지같은 자슥아!>
이윽고 하느님은 심문을 시작하시지요. 발가벗은 혼령은 하느님 발 밑에 몸을 던지고는 애걸복걸합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저는 죄를 지었나이다.>
혼령은 자기 죄를 밑도 끝도 없이 조목조목 외어 나갑니다. 하느님은 심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하품을 하십니다. 그러고는 꾸짖으십니다.
<제발 그만둬! 그런 소리라면 신물이 나도록 들었다.>
그러고는 쓱싹쓱싹 물 묻은 스폰지로 문질러 죄를 몽땅 지워버리시고 혼령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천당으로 썩 꺼져라. 여봐라, 베드로. 이 잡것도 넣어줘라!>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굉장한 임금이십니다. 굉장한 임금이시란 게 뭡니까? 용서해버리는 거지요!
 
하느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드시려는 순간(그 순간에 저주가 있으라!) 악마가 뱀으로 화심하여, 수슛, 그만 갈비뼈를 가로채어 달아나지 않았겠니? 하느님이 쫓아가 뱀을 붙잡았지만 악마인 뱀은 하느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어. 하느님 손에 남은 것은 악마의 뿔 뿐이었단다.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살림 잘하는 여자는 숟가락으로 바느질도 하거니, 오냐, 내 악마의 뿔로 여자를 만들어 보리라! 그리고 만드셨지! 얘, 알렉시스야, 그래서 악마가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거란다. 여자의 어디를 만지든, 너는 악마의 뿔을 만지는 셈이란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나는 놀랐다.
"부처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당을 믿고 거기에다 나귀 한 마리씩을 붙잡아 매고 삽디다. 내겐 나귀도 없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유롭답니다.
 
우리는 나날의 걱정으로 길을 잃는답니다. 소수의 사람, 인간성의 꽃 같은 사람만이 이 땅 위의 덧없는 삶을 영위하면서도 영원을 살지요. 나머지는 길을 잃고 헤메니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종교를 내려주신 것이오. 이렇게 해서 오합지중도 영원을 살 수 있게 된 거지요.
 
못 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못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 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리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
 
열정 넘치는 한 인간의 기록은 우습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했다가 어딘가 닫혀있던 마음 한 구석의 열쇠를 몰래 따주고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수적인 그리스정교의 종교풍토 때문에 카잔차키스는 더 과감하고 이단적인 종교관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끔 교단에서 내침받은 이단아들의 종교관에서 정론이 풀어주지 못한 답을 듣고 또 신의 존재를 확신한다.
조르바의 자유로움은 일순 부럽기도 하며, 입닥치고 먼저 `살아내는`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깊이-이런 표현조차도 조르바는 닥치라 할 것이지만-, 그리고 그런 깊이가 주는 삶에 대한 아주 경쾌한 해설은 즐겁게 들을 만 하다.
다만 그의 지나친 `수컷`중심의 인간관 때문에 그의 관대하면서도 희생과 봉사정신이 가득한  연애관에도 불구하고 두 손가락을 다 들어주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카잔차키스는 왜 조국도, 하나님도, 부처도 다 벗어버린 자유인 조르바의 기록을 왜 `그리스인`이라는 타이틀로 가둬버린 것일까?

영화|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2005

포스터는 좀 별루인 듯
 
 
첫장면이 좀 싱거워서 에이-싶었는데 이후부터 슬슬 웃기기 시작했다.
유혈이 낭자하지 않는 액션씬들도 좋았고,
웃긴 장면들도 많고,
연결되는 얘기들도 헐렁하지 않았다.
하지만 1편에서도 그랬듯이 좀 낮은 수준의 욕이 많이 나온다.
전라도 욕처럼 화려한 어휘를 사용하기 전에는 욕 자체가 웃기기는 좀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마지막에 한방을 노리는 감동모드-는 역시 재미없다.
대신 신현준의 슬픈 첫사랑의 주인공, 그녀의 마지막 순간만은 너무나도 웃겨서 그 장면 이후로 영화 끝날 때까지 계속 생각이 났다. 푸하하...!
또 하나의 압권은 검사며느리의 직업을 듣던 순간 김수미의 한마디.
김수미는 때릴 때도 웃기고-정말 심하게 때린다-, 욕할 때도 웃긴다.
신현준은 망가지는 편이 더 좋은 배우 같아 보였고.   
웃긴영화 웃으면서 잘 봤지만,
조폭영화는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바로 이 순간 첫사랑 그녀는 떠나버리고...(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