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본론을 벗어날까? 아마 그러리라. 안 그럴 수가 없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난 여자고 이건 내 이야기다. 그 말을 새겼다면 내가 지금 그 특권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리라.
내게 관심을 보인 남자애들 중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저절로 눈이 그에게로 끌렸다. 바라보는 것 자체가 행복인 줄 알지도 못한 채 다른 애들하곤 놀았어도 그 애하곤 못 그랬다. 그저 쳐다보는 데 빠져서 마음에 들 생각도 안했다.
첫사랑은 이처럼 순진하게 시작되나 보다. 너무 달콤하기에 잘 보일 욕망마저 잊는다. 그 애도 남다른 눈길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수줍고 사려깊은 눈길이었다. 우리 사이엔 뭔가 더 엄숙한 게 있었다. 다른 남자애들은 대놓고 내 매력을 예찬했고 그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엔, 나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자신에 대해선 또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성당을 떠나면서 나는 천천히 나왔고 걸음을 늦췄던 것 같다. 떠나는 게 아쉬웠다.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 그 자리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몰랐다고 했지만, 알았는지도 모른다. 떠나면서 그를 보느라 뒤돌아 봤으니까. 그래서 뒤돌아보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마리안의 일생>
왠지 모르게 아델을 끌리게 만들었던 책 '마리안의 일생' 속 강렬한 매혹 또는 사로잡힘이
아델을 찾아온다.
아무에게나 이런 매혹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매혹이 강렬하다고 해서 아무들의 사랑보다 오래, 영원히 살아남지는 못했다.
아델을 찾아온다.
아무에게나 이런 매혹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매혹이 강렬하다고 해서 아무들의 사랑보다 오래, 영원히 살아남지는 못했다.
신비로움에 싸인 매력넘치고 아름다운 아델은
엠마의 비슷한 신비로움에 끌렸고 찾아 헤매다 만났고 빠졌고
신비의 층위가 벗겨진 생활 속에서 다름을 부딪히며 방황하다 거친 비난 속에 이별당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어도 식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아델은 엠마를 다시 얻을 수는 없었다.
다시 찾아가 자신을 방황하게 만들었던 사랑의 한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나서야
아델은 인생의 다음 단계를 향하듯 돌아보지 않고 걸어나간다.
걸음을 늦추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지금의 모자람을 과거로 돌아가 채우고 싶어질 때
'가봤자 별 거 없다'고 소신있게 얘기해 주는 아델의 인생.
근데, '아델의 인생'이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된 건 무슨 뜻일까?
이 강렬한 연애이야기는 의외로 독서를 부르는데
잘 보이는 것도 잊을만큼 빠졌다는 '마리안의 일생'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는 사르트르의 책도 끌린다.
'얼굴의 신비한 약점'이라거나
존재가 본질을 앞서니 그 본질을 행동으로 채워야 해서 책임이 막중하다는 말도.
게다가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리는 것과 한 눈에 빠지는 것, 그 운명적 인연을 짚어주며
그 감정이 더해지는 것인지 빠지는 것인지를 질문해주는 고등학교 문학수업이라니.
그 감정이 더해지는 것인지 빠지는 것인지를 질문해주는 고등학교 문학수업이라니.
열심히 들어보고 싶은 수업이다.
받아적다 보니 더 읽고 싶어지는 마리안의 일생-하지만 번역본이 없다.
아델은 '정의'를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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