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봉달희|2007

뒤늦게 하나 얻어걸린 사진

나와 비슷한 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오지랖 달희 씨.
첫 회 이요원의 표정은 몇 번을 돌려봐도 감탄이다.
어쩌면 그렇게 장면 하나하나 무식하고 의욕만 가득한 착한 의사를 잘 표현했을까.
병원 내 끼리끼리 문화라든가
경력 없는 의사를 은근히 깔보는 간호사
좀 만 아프면 암이냐고 묻는 환자들까지
빠지는 얘기 없이 촘촘하게 시작하던 이야기는 교과서 감이다.
달달 외운다고 100점 받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데 그게 관계에 따라서 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던 의사들의 성장기, 외과의사 봉달희.
주인공은 넘버쓰리 봉달희였지만
안중근도, 이건욱도, 조문경도, 조아라도, 이민우도, 박재범도
마지막 회까지 쑥쑥 자라며 막을 내렸다.

사람의 체온처럼
다들 그 정도는 양심이 있고
그 정도는 정직하며
그 정도는 성실한 사람들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괴로워하는 눈빛에서 자기가 겪었던 아픔을 보고
자기에게 위로가 되었던 똑같은 위로를 건넬 수도 있고
니가 아니라 내 탓이라고 당당히 말해줄 수도 있다
이런 위로는 계속 돌고 돌 것이다
아무도 안 믿는 발뺌을 하는 기가 막힌 뻔뻔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의 위로가 되는
그래서 믿고 싶은 사람들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아집이 두터워지는 게 아니라
남의 아픔을 통해 자기 아픔을 들여다보며 조금 더 상처를 덜도록 성장하는 것이라는 
보기 흐뭇한 의사들의 성장기.
 
조문경-이건욱, 봉달희-안중근, 박재범-조아라 커플의 세가지 로맨스도 이뻤다.
상황으로만 보면 남의 자식을 가지고 결혼한, 욕먹기 딱 좋은 상황의 조문경이지만
파양된 안중근의 절규로
키우던 자식을 내치는 것의 잔인함과 냉정함을 생각하게 하면서
묘하게 그녀의 당당함에 점점 더 설득됐었다
나중엔, 원흉은 나라 하더라도
상처받은 첫사랑을 되새김질 하게 만들고
실패한 결혼은 인정하며
이 모든 것을 법정에서 확인하게 만들고,
이 모든 힘든 상황을 혼자 겪게 만들어 미웠을 이건욱에게 애원하는
그 사랑이 깊어 보이기까지
내겐 이 커플이 가장 든든해 보였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좋은 사람을 짧게 만나 그보다는 길게 설레고 행복했다.’는 달희의 독백으로 연인도 합격인 듯하나, 역시 이건욱은 남편의 로망
전부터도 연기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여기서의 오윤아는 정말 조문경이었다
조문경을 보면 예쁜 여자들은 다 무식하다는 생각은
페미니스트를 가장한 골방족들의 음해라는 생각이^^

버럭중근이라는 애칭과 달리 난 여기서 웃는 이범수의 매력을 처음 알았다
어쩌면 그렇게 환하게 웃는 지
모든 사람이 찡그린 것 보다야 웃는 얼굴이 예쁘다지만
사실 정말 예쁘게 웃는 얼굴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범수처럼.
안중근의 매력은 나중에 인간적인 한계를 보이고 인정한 것을 포함해서
꽤나 고지식하다는 것
그런데 약은 척하지 않는 심지가 있어 돋보인다
남자친구라도 그렇다.
좋아해서 뭐든 좋게 봐주는 사람보다는
공들여 나를 보면서 내가 노력한 부분을 정확히 인정해주는 사람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좀 거칠었지만 사망자컨퍼런스에서의 강렬한 한방은 더 멋있었다
강력한 절망에 빠진 달희에겐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니 잘못이 아니야류의 적당한 사실적 위안보다
적극적으로 몰아세우는 대체 니가 잘못한 게 뭐야?’가 더 약발이 있었을 것이다
성실한 달희는 변명 때문이 아니라
그 질문에 답하려고 정말 열심히 생각해 봤을 거니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에 한해 큰 맘 먹고 하면 뿌리 깊은 위안이 될.
 
드라마를 보면서 자막 보여주는여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달희 엄마 김해숙.
달희가 울릉도로 내려가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나서다 응급환자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이 엄마의 표정은 단계 별로 선명하게
징글징글한 년->어머나, 세상에.->이게 내 딸 맞나로 변한다
나중에 이 부분은 대사로 등장하는데
김해숙의 표정이 이 대사를 문장하나하나 다 얼굴로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이럴 때 레알 소름?
 
오늘 보니까 니 뼛속까지 의사대
그래 다 죽어가더만 환자 보더니 한 걸음에 달려가고...
난 징그러버 쳐다도 못 보겠더만, 그 피 콸콸 나는 살 속으로 손을 쓰윽 집어넣고
숨넘어가는 환자한테 그 큰 바늘을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찔러가 살려내고...
내 그거 보고 그랬다.
저게 언제 커가 저래 의사가 됐나....
하도 못 먹고 몸이 약해가 다섯 살 까지나 살리나, 열 살 까지 살리나 하면서
큰 병원에도 한 번 못 데려 갔더마는
저게 진짜로 약하디 약한 내 딸 맞나, 저게 언제 커가 저래 의사가 됐나
마 내, 솔직히 아까는 마 어깨가 절래 펴지고 가슴이 쓱 디밀어졌다
내 딸입니다-소리도 치고 싶고
니가 잘 못한 사람 꼭 두 배 만큼만 살리라.”

나중에 달희가 다시 병원 가겠다고 할 때 엄마얼굴로
자기도 의심하는 위안을 딸에게 건낼 때는 좀 부럽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뒤척이면 일단 짜증을 낼 것이고
의사 같은 직업을 그만둔다고 하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한다고 할 텐데^^
늘 눈빛만으로도 광선을 쏘시던 박근형이
이렇게 얄팍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인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도 무척 새로웠고.
 
일본극을 볼 땐 드라마든 영화든 감독의 자리가 비슷하게 보이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었다
튀는 각도, 빙빙 도는 카메라, 짧게 끊어가는 컷, 아주 예쁜 풍경이 아니면
연출의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런 기술 없이도
처음으로 연출의 존재감이 느껴지던 드라마였다
말 한마디 없이 전해지는 마음의 물결 같은
사람을 담는 시선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은근하게 꾸며가는 사이, 조문경이 지켜보던 봉달희와 동건이의 병실풍경처럼
노골적으로 백 마디 대사를 넘는 경제적인(^^) 장면도 있었고
승민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던 화장실 장면처럼
다시 봐도 넘 웃긴 장면들도 있었다
사인의 새 연출자가 되었다는데
중간부터지만 그때의 힘을 다시 보여주면 좋겠다
영 애정 없어 보이던 PPL은 좀 살살 해주시고^^
 
모든 인물들이 설득력 있고 존재감 있어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드라마
의학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일본드라마 블랙잭에게 안부를과 봉달희 뿐인데
그렇다고 의학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것 같진 않지만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의 매력을 조금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고 그것을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뭘 좋아하는 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지를 빨리 찾지 못한 사람들에겐
운명적 사랑만큼이나 판타지스럽기도 하니까.
 
이렇게 완벽할 뻔한 드라마였지만 볼 때마다 거슬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놀랍게도 봉달희 이요원.
가끔 봉달희는
설정 상 자기보다 덜 안타까와하고 덜 마음 아파할 사람들조차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할 때
혼자 발그레한 뺨에 인형속눈썹, 윤기 나는 입술
촌스러운 설정에 맞췄으되 완벽하게 세팅한 머리로 나타난다
정말 몰입을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잠 안자면 일주일 가는 강력마스카라인거니
혹시, 믿을 수 없지만 외모 컴플렉스가 있나?
아마도 이런 태도의 문제가
이렇게 대단할 수 있는 연기력에 비해
이요원이 덜 인정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푸석하게 부은 맨 얼굴의 여배우가 얼마나 근사해 보이는지 모르는 그대는 아직
애송이.
 
두 번째 방해꾼은 협찬이었던 OO스퀘어.
무슨 팩도 거슬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정말, 이렇게 흐름을 끊을 바에야
김은숙 작가처럼 대사 없이 화끈하게 한 번 보여주고 끝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회사들이 참 없어 보이더라는.
 
심장병희망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왜냐면 달희는 달리고, 달리고, 달리니까!
시즌2가 아니더라도 이런 드라마 일 년에 한편은 봤으면 좋겠다.

PS. 그나저나 방송사들은 그 사진들 갖다가 사람들이 뭘 한다고 그렇게 다 막아놨는지 모르겠네. 맘 먹고 팔아먹을 사람들이라면 설마 그 정도로 포기할까? 니들이 정 그렇게 싫다면 안 써주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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