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2025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어"
그래서 좋아하고 미워하고 잃었다가 끝내 다시 찾아진 은중과 상연. 
끝내 받아준 것도 
돈으로 안되는 사람이 되어준 것도 은중이었고
상연은 이상한 사람으로 남았지만
인생을 얘기할 때 항상 필수조건 처럼 등장하는 
단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어떤 인생의 마지막 외로움도 걷어내주는 그 단 한 사람. 

선망은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하고 
가지지 못한 것의 가치란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높아지고... 
그래서 엇갈린 둘의 선망의 순간은 다 쉽게 이해되었고
그 감정선도 그랬다.  
엇갈린 연애가 이십대에서 끝났더라면
그래서 삼십대는 천상학의 선물이었고, 둘이 그렇게나 좋아했던 일 얘기가 더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마음 한 뼘 더 들어가서 천천히 해주는 애기가 좋았다.  

초딩 시절 하루에 열 두 명이 전학온 얘기는 새로웠고
가정환경조사는 담임목소리가 너무 무념무상이라 웃펐다.
초딩의 염정사와 중딩 첫사랑에 이렇게 귀엽고도 설렐 일.

위선을 몰라서 오히려 상연에게는 상처가 됐던 
은중의 인생선생님 윤현숙.
나중에 다시 상연의 눈으로 보여주기 전에도 
상연의 상실감이 너무나도 잘 드러났어서
어쩔 수 없었던 엄마였겠지만
윤현숙은 오히려 올바르고 조용한 악역 같았다.
 
마음을 받으면 어쩔 줄을 모르겠어서 
가식보다는 욕받이를 자처하는 상연의 선택들은 
어느 순간 은중의 엄마 같은 마음으로 보게 됐다. 
항상 남들보다 먼저 스스로 상처주고 있었기에.
굳이 은중의 것을 훔친 건
나 이런 짓도 했던 사람인데 못할 게 뭐 있어-라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임을 다시 선언하기 위해서였겠지.
아프고 뻔뻔하고 끝까지 질척대던 상연이,
힘없이 좋아할 때, 망설일 때, 
아마 연습 했을 얘기를 눈물을 참으며 또박또박 말하던 
모든 순간 하나 하나의 상연이 매 번 시선을 끌었다. 
처음 은중을 찾아왔을 때도 함께 스위스로 갔을 때도.
자칭 이기적이고 독하고 못된 나쁜 도둑년 상연이었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정하며 가족을 떠올렸을 때 
그 늦은 사랑도 은중이 만큼이나 외로움을 덜어주지 않았을까. 

머리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고백하기도 했지만 
내 눈에도 부러운 은중이의 성격.
처음 상연에게 좌절을 느끼게 해줬던 은중의 공감력도 그랬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기쁘다는 즐거움을 이미 이십대에 알았고,
그리고 해낼 수 있었다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역시나 좋은 사람 김상학이었음에도
이별의 이유도, 돌아보지 않은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상연 때문에 걸어들어가게 된 그 어두운 터널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은중이라면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나왔을 것 같다. 
착한 척 하지 않으려는 좋은 사람 류은중.  
상연이가 보고 싶어했던 한국에서 뜨는 해를
윤현숙 선생님을 찾아가 상연과 함께 보는 것 같던 은중은
혼자 돌아오는 길의 두려움을 잘 이겨낸 것이겠지. 

마치 이 두 친구를 옆에서 보는 것처럼
정해진 슬픔의 시간이 아니라 뜬금없이 아무 곳에서나 조용히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심지어 둘은 웃고 있는데도. 
진짜 은중이와 상연이 같은 둘에 빠져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봤다.

김고은의 은중이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과 선망에 다치더라도 절대 닳지는 않는, 결이 살아있었다.
박지현의 상연이는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싶은데도 마음이 가고 눈길이 가는, 
어릴 때부터 도대체 일관성이라고는 못할 짓이 없다-는 생존주의자 같은 느낌이고
심지어 병이 걸리지 않았다면 두번째 절교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였을 게 뻔하며
고통의 끝이라는 이유로 은중이를 더 못 보는 것에 아무 미련도 없었고
혼자 돌아가는 은중이에게 미안해하지도 않는
평생 은중이를 호구잡은 듯한  나쁜 년이었지만....
매력적이었다.

성격들이 나와서 웃기고 찡한 대화;
"다 너 덕분이더라,..나 어릴 때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학교 그만 두고 영화과 간 것도, 회사 때려치우고 드라마 쓰게 된 것도, 다 너 덕분이야."
"대박. 류은중 내가 만들었네"
"어이가 없다"
"나도 그래. 삐뚤어진것두 너 때문이고, 부자가 된 것도 니거 훔쳐서고, 결혼한 것도, 네 저주 때문이고...진짜야.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어"
"너 같은 사람도 너 밖에 없어"
"왜 그랬을까. 나 한테 친구는 너 하나 뿐인데. 왜 잃어버렸을까."
"결국 찾았잖아"
"정말?"
"그럼."
"너도 내가 보고 싶을까?"
"그럼, 당연히 보고 싶겠지."
"네가 날 받아주는구나. 끝내. 니가."

다봤지만 궁금한 것
:상연이의 일기, 
은중이 남동생의 행방 
그리고 의사들이 시한부 환자의 남은 기간을 계산하는 방법 
무니와 친한 사진동호회 친구였다면서 은중이 만큼도 사진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게 없었단 게 이상한 오맹달

말로만 들었던 조력사의 과정은
그 고요한 절차 속에 
결심을 뒤엎기도 하는 마지막 선택이 있기도 하고 
그 선택까지 기다리게 되는 또 다른 두려움이 있다는 것까지 보여주었다. 
주저없이 선택한 상연이 마음아팠는데 
이런 건 이상하다. 
가장 행복하게 죽는다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게 되는 것.
죽음이 슬픈 건
누구나 살 수 있다면 살고 싶었을 거라서..?
모두에게 어쩔 수 없는 절망 끝의 제한된 선택이어서...?
그렇지 않다면 안 슬프기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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