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구인환 엮음|신원문화사

운영전은 운영이라는 안평대군의 궁녀가 아름다움 청년과 죽어서도 연을 이어가는 사랑이야기이고

영영전은 어느 대감집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영영이라는 처자의 사랑이야기,

백학선전은 중국을 배경으로 어릴 적 인연을 이어가려는 한 낭자의 모험가득한 배필 구하기로

세 개의 연애소설이 묶여있다.

그 시절의 연애소설 맛보기랄까. 


그 중 인상 깊었던 영영전의 한 대목.

이렇게나 혼신의 힘을 다해 썰을 풀며 유혹하는 김생의 열정^^


...마음으로 하고자 한 바를 다 해 보았으나 오직 운우의 즐거움만은 이룰 수가 없었다. 김생은 영영의 정욕을 고무시키며 정성을 다하여 백단으로 유혹하며 말하였다.

“새도 급히 날고 토끼도 빨리 뛰나니, 세월은 꿈 흐름과 같아서 붉은 꽃이 떨어지고 푸른 잎이 시들어지면 나비도 생각을 멀리 할 것이니, 이것과 무엇이 다르리까? 얼굴에 붉음이 시들어가고 머리에 흰 머리가 나부끼면 그만이오. 아침에는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양대의 신녀도 본래에는 정해진 사람이 없었으며 푸른 바다 넓은 하늘 달 속의 항아도 후회하고 선약을 도적하였다오. 새들은 미물이면서도 나래를 나란히 하고 초목은 우둔하면서도 마주 보고 서는데, 하물며 욕정이 모이는 데 있어서 어찌 인간만이 그 이치가 다르겠소? 봄 바람에 호접의 꿈은 특히 공방을 괴롭게 하고 달밤에 두견새의 울음은 유달리 외로운 배게를 놀라게 하는데, 어찌 당나라 시인 두목지 만이 봄을 찾아 만년을 꽃답게 보냈겠소? 위나라 우언에 항아를 바라보다가 청춘의 해를 헛되이 보내고서 공연히 황천의 한만을 끼쳤으니, 저 서릉의 푸른 나무는 천 년을 지나는 동안 황막한 언덕이 되어 고요하고, 장신궁은 밤새 내리는 가을비에 쓸쓸하도다 하였으니 슬프도다. 내 마음에 섭섭히 여기는 바는 낭랑의 무정함이니 이 몸이 살아서 무엇하리요? 죽어서 없어질 뿐이오."


그러나 끝내 영영은 순종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하였다.


"도령님께서 뜻을 저에게 두시었다면 다른 날 서로 찾는 것이 좋을까 하나이다.” 


김생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말하였다.


"음용을 한번 이별하면 궁문이 깊이 싸여서 편지를 붙이고자 한들 전달할 길이 없을 것이니, 어찌 다른 날 낭랑의 두 푸른 눈동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겠소?" 


"그것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마는 이달 보름 밤에 진사와 유왕자제군이 완월회를 하자고 약속하였삽기로 그날에는 반드시 밤에 잠깐 들어왔다가 나갈 것이옵니다. 또한 궁의 담이 마침 풍우로 인하여 무너졌으나, 진사께서 천천히 고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고치지 아니하고 있나이다.

도령님께서 그날 어두워진 다음에 오셔서 무너진 담으로 깊이 들어오시면 가운데 짧은 담문이 있으므로 꼭 열어 놓고 기다리겠사오니, 그 문으로 담을 따라 내려오면 동쪽 섬돌 십보 가량 되는 곳에 별침 두어 간이 있사옵니다. 도령님께서 거기에 몸을 숨기고 계시면서, 제가 나와 맞이하도록 기다리면 우리들의 가기 에 무슨 어려움이 있사오리까?"


이에 김생은 자못 그렇게 여기고서 굳게 약속을 정하였다. 손을 나누어 작별하고 같이 길을 떠났다. 점점 남북으로 멀어지니, 김생은 말을 세우고 머리를 돌려 바라보며 말없이 넋을 잃을 따름이었다. 김생은 일로부터 깊은 생각이 더욱 심해졌다. 곧 시 한 수를 지어 스스로를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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