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LUCKY CHAN-SIL|2019

 

많은 것을 누설하고 있는 귀엽고도 이쁜 포스터
그 와중에 국영 씨의 시선강탈ㅋㅋㅋ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 받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말은 
큰 성취를 거두지 못한 인생에 대한 위로지침 1번 같이 들렸었는데 
사실 이거야 말로 진짜 어려운 일이 아닐까.
원하는 마음 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서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에 그렇게 빠져들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모두가 원하는 본능 같은 거라면  
흙수저 버금가는 메마른 수저가 더 불공평할 지 모르는데,
그래서 찬실이는 복도 많구나 동감하며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엔딩곡이 훅 치고 들어왔다 ㅋㅋㅋㅋ

일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개과천선하거나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행복해지는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사실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둬야만 인생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 성찰의 끝이 꼭 지금까지의 자신을 다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걸 
목마름은 꿈이 아니고 외로움은 사랑이 아니란 걸 배운 
복 많은 찬실 씨가 보여준다. 

매 순간 연기 같지 않던 강말금.
이런 연기를 보면 아무리 좋은 배우라도 좋은 역을 연기할 기회가 꼭 있어야 하는 구나 싶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독특한 왕세자비 역을 하고 있지만 
찬실씨의 매력은 그것을 넘고도 넘기에.
 
설정은 좀 다르지만 윤여정이 실명 출연하는 것 같은 주인집 할머니였는데 
사각사각 연필소리 위로 시를 쓰던 얼굴로 
시를 보기 전에 이미 내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있었다.  

사라도 꼬처러 다시 도라오며능 어마나 조케씀미까 

끝내 알 수 없는 장국영-세 시에 만나던 여자 분도 매우 궁금하네요^^
알면 친해지고 싶은 김영과 소피도 
모든 배우들이 모든 장면에서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보는 놀라운 체험. 
뭔가 신기한 찬실 씨네 집 구조와 
어째 찬실이가 물려받은 것 같은 평화로운 화법 소개였던 명언 잠이 많이 왔다  
서울이 맞나 싶게 새것들이 별로 없어 보이는 신기한 찬실이네 동네, 
그 동네를 처음 이끌며 들어설 때보다 
그 동네를 나서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더 많은 사람의 뒤에서 밝게 빛나던 모습까지 
구석구석 재미있었다. 

오래전에 좀 지루하게 봤던 집시의 시간도 다시 보면 다를까-궁금하게 만드는 매력.
내가 혹시 진짜 그 영화를 다시 본다면 이것은 모두 찬실이 때문.

더 행복해질 찬실 씨의 싹수 

그리고 비장의 뮤비-사랑스럽다 진짜 ㅋㅋㅋ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카렐 차페크

알퀴스트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냥 늘 있는 진보일 뿐이죠.


도민 각각의 공장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로봇들을
각자 만들 거란 뜻이에요.
그 로봇들은 모두가 달라...마치 지문처럼 서로가 다 다르지. 
그러니 더 이상 함께 모여 작당을 일으키진 못할 거요.
그리고, 우린...우리 인간들은 로봇들의 편견을 더욱 조장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거지, 알겠어요?
그래서 어떤 로봇도, 죽는 날 까지,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다른 공장의 마크가 찍힌 로봇이라면 영원히 증오하게 될 거란 뜻이요.
할레마이어    이런 제기랄! 그럼 우린 흑인 로봇, 스웨덴 로봇, 이탈리아 로봇, 
                중국로봇들을 만들겠구만.  
                로봇들 머릿속에 '인류애'라는 개념을 집어 넣으려고 애쓰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게 내버려 두자구. (딸꾹질을 한다.)
                실례합니다. 헬레나 여사, 한 잔 더 마실게요. 

도민 (읽는다)"만국의 로봇들이여! 우리, 최초의 로숨 유니버설 로봇 노동조합은, 
                인간이 우리의 적이며 우주의 떠돌이임을선언하노라"

갈박사 살아있는 노동기계를 군인으로 만든 건 죄악이었다구!
알퀴스트 죄로 치자면 로봇을 생산한 게 먼저네.

도민 ......알퀴스트, 인류를 예속하던 노동을 없애려고 한 우리 꿈에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사람들이 참아야 했던 고통스럽고 끔찍한 노동, 더럽고 진절머리 나는 고역들, 
그걸 없애려 했던 우리 꿈에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오, 알퀴스트, 일하는 건 너무나 힘들었어요. 
사는 건 너무 힘들었다구요. 그러니, 그걸 극복하는 건...
알퀴스트 두 로숨의 꿈은 아니었지.
늙은 로숨은 신을 부정하는 자신의 도깨비 장난에만 몰두했고
젋은 로숨은 돈밖에 관심이 없었어.
게다가 그건 당신들, 로숨 유니버설 로봇의 주주들이 가진 꿈도 아니었지. 
그들은 이익배당금을 꿈꾸었을 뿐이야. 
바로 그 배당금 때문에 인류는 멸망하게 될 거요.
도민 (격노하여)그까짓 배당금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구요!
당신은 내가 단 한 시간이라도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했을 거라고 보나요?
(탁자를 쾅 내리친다) 난 내 자신을 위해서 이 일을  했어요, 아시겠어요?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난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래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지 않아도 되길 바랬어요.
난 그 누구도, 뭔지도 모르는 기계 앞에서 바보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구요!
그 빌어먹을 사회의 쓰레기가 한 줌도, 단 한 줌도....
단 한 줌도 남지 않길 바랬던 겁니다!
난 비하와 고통을 혐오했어요!
빈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구요!
나는 새로운 세대의 인류를 원했어요!
내가 바랐던 건...내가 생각했던 건...
알퀴스트 그래서?
도민 (좀 차분해져서)난 모든 인류를 귀족계급으로 개조하고 싶었어요.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최상의 사람, 
아니 사람보다도 더 위대한 그 무엇으로 말이죠.
알퀴스트 그건 말하자면 초인이군 그래.
도민 그래요. 아, 100년 만 더 주어진다면!
미래의 인류를 위해 딱 100년만 더 주어진다면.
알퀴스트 오직 인간만이 생명을 번식시킬 수 있네.
내 시간을 빼앗지 말게.


*호문쿨루스(Homunculus): 16세기 독일의 연금술사 파라켈루스가 만들었다는 전설 속의 작은 인조인간
*골렘: 히브리어로 태아상태나 완성되지 못한 형상. 유대교의 신비의식인 카발라에 따라 종이에 주문을 써서 입에 넣거나 이마에 붙여서 생기를 불어넣은 진흙 인형  

로봇은 노동이라는 체코어 robota에서 온 말로 카렐 차페크의 형인 요제프 차페크가 제안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 로봇들은 인간의 노동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들로 몇 단계 진화를 거쳤다. 
로봇의 창세기에는 로숨 부자가 등장하는데 '공포스러운 유물론자'인 아버지, '늙은 로숨'은 
생명체를 만들어내려 실험을 거듭하다 드디어 물질적으로는 인간에 유사할 정도로 정교한
인조인간을 조립해낸다. 
아들인 '젊은 로숨'은 3일 밖에 살지 못한 아버지의 인조인간을 용도에 맞게 개조하기로 결심,
행복이나 음악 등 '삶의 윤기'이지만 그의 눈에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을 빼서 로봇을 순수한 노동기계로 개조해 대량 생산에 성공한다. 

그 뒤를 이어 로봇을 제조하는 회사 로슘을 이끄는 사람들은 영국인 기술자 파브리, 프랑스인 연구부장 갈 박사, 비즈니스맨을 줄인 말일 거라는 유태인 경리부장 부스만, 라틴어 Dominus 신을 의미한다는 경영자 도민과 라틴어로 그 어떤 자-신이 아니지만 신의 뜻을 미리 알리고 고난을 감수하는 선지자 aliquis를 의미한다는 건설노동자 알퀴스트이다. 

다들 이름으로 부여된 역할에 충실한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로봇들에게 노동권을 일깨우고 노동조합을 설립해 로봇해방을 이루려는 
인권운동가 헬레나가 등장한다.
모든 주요 인사들의 사랑을 갑자기^^받게 된 헬레나가 
10년 뒤 도민의 아내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로봇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가 처음 선보인 시절엔 
로봇이라는 존재의 등장이 충분히 압도적이었을텐데
지금 이 로봇들은 인간이면서 로봇처럼 되어 버린 
노동의 분화-이주 노동자, 저임금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대륙 간의 노동 불평등까지
현대의 노동환경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차마 인간에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로봇을 만들었던 
19세기 차페크의 우아한 사상에 절대 미치지 못하는 
이 현실적인 인권 수준이 충격적일 정도.

게다가 도민이 설파하는, 
꽤 인간 이기주의적인 철학은 
최소한 인간입장에서는 인본주의적으로 들린다.  
계급으로 인한 차이가 생기는 시점을 레저-여가로 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바로 도민이 
모든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공평하게 그 여가를 선물하겠다는 꿈을 가진 인물이라니
자본주의의 꼭대기 계급자인 사업가와 자애로운 신의 철학의 
이상적인 통합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로봇을 제외시켰던 그의 불완전한 이상은 미완으로 끝난다. 
누구의 세상이라고 정해버릴 수 없지만
아무튼 미래는 
인간과 로봇의 융합인 것 같은,
손으로 일을 하던 유일한 인간이자, 
그래서 로봇들이 희망으로 여겼던 마지막 인간 알퀴스트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문을 연다. 

다 읽고 나면 궁금해지는 것.
로봇들이 노동을 전담하던 10년 간 
평등하게 레저를 즐기던 인간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로봇들에게 속수무책 멸종 당해버릴 만큼 물리적으로는 연약한 인간들이었지만
그들 각자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은 이상적이었다. 
지구의 승리자는 로봇이 되었지만
정복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의 마지막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작은 균열의 시작이었을 로봇 프리무스와 헬레나.
갈박사가 몰래 바꾼 약간의 신체변경이란 
아마도 생식기능이었겠구나를 상상할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 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상이 다른 이상과, 긍정적인 가치가 역시나 긍정적인 다른 가치와 대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본다.

이런 인간에 대한 이상향을 가진 차페크라서 
로봇의 대량 생산을 책임지던 도민마저도 이상향을 꿈꾸던 인물로 그려낼 수 있었나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덧붙여 알찬 해설, 
당대 차페크의 반론까지 
두루두루 속이 꽉 찬 한 권.

지젤|유니버설발레단 정기공연


경사진 무대 위에 엄청 많은 윌리들이 하나 씩 등장하는 장면을 
유니버설 발레단 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베일이 쏙 사라지는 건 국립 발레단인 줄 알았는데 유니버설이었고.
기억나는 게 이렇게 없으니 공연을 본다는 것은
그저 공연을 본다는 의미 뿐인가 ㅎㅎㅎ

오늘 지젤은 나부끼던 심청이의 홍향기가 맞나 싶게 
어딘가 건강한(?) 느낌이었는데 밝은 기운도 있어서 좋았고
엄마 역의 무용수 키가 꽤 커서 진짜 귀여운 딸 같은 느낌이 들었다. 
1막의 군무 추던 시골 처자들 유난히 발랄해 보이게 멋진 춤이었고
뒤에 앉아있던 무용수들이 무대배경과 잘 어울려서 
그림 속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좀 재미있었던 거- 
매드씬 전에 
기절한 걸로 되어 있는 지젤과 지젤 엄마의 손이
열심히 머리핀을 빼는 게 3층에서도 다 보임^^
그리고는 비교적 매우 곱게 미친 지젤.
하지만 난 발레에서는 춤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짧게 살살 넘어가는 매드씬에 불만 제로다-오늘 지젤은 그냥 심장병으로 사망한 걸로.

2막에서도 지젤은 어려운 안무를 소화해야 하는데 
초반을 지나면서 굉장히 안정감 있어 보여서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1막에서는 살짝 불안정하게 착지했던 알브레히트도 
2막에서 처음 도약이 굉장히 높아서 나도 모르게 날숨이 후후.
숲에서 알브레히트 말고 다른 사람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 
오늘은 알브레히트 한 명.    
나타나기만 하면 시선을 사로잡는 우리 귀신들.
오늘은 주인공들이 춤을 추고 있어도 
윌리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시선이 갔다.
윌리들이 다리를 90도 넘게 살짝 올라가는 군무에서 
그 치맛자락이 날개 같아 보여서 귀여웠다.  
근데 오늘 윌리들 너무 수가 적어 보여서 아쉽다. 
그렇지만 이번도 즐거운 지젤 관람.

다음 예매 때 꼭 기억할 것-오른쪽 블럭에서는 지젤의 무덤이 안 보인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코로나 기간 강제 휴업을 끝내고 무대를 올리면서 
인종 다양성과 성 인지 감수성을 고려해 여러 작품을 수정했다던데, 
발레에는 언제 그런 바람이 불어 오려나.
아무리 봐주려 해도 알브레히트는 진짜 너무 대놓고 막장인데 
지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기 실수로 그냥 춤추다 죽어버리는 건 어떨까 ㅋㅋ

더 포레스텔라 2021 앙코르


20210905

하늘 아래 같은 공연 없다지만 
그래도 비슷하긴 하니까 굳이 또 보러 가는 편은 아닌데,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본, 앙코르 콘서트로는 두 번째.

Inner Universe
이렇게나 선명한 네 개의 다른 목소리.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들리던 것 같던 자연 그대로(??)의 음향이어서 너무 좋았다. 
지난 공연의 음향에 대한 불만 말끔히 해소. 
하지만 아직도 
노래로도 충분한 다채로움을
춤으로 분산 시킨 것에는 반대인 1인. 
 
당신이 듣던
오늘 공연에서 목소리 예뻤던 3집 수록곡.

Revival + Lay me down
흥이 한 껏 오른 고우림과 
가진 소리의 매력을 뽐내는 배두훈
-오늘 따라 정말 더 잘 부른 듯.
   
Shape of you
지난 번에 너무 훅-지나가 버려서 오늘은 무대에 집중하자(내 무대는 아니지만^^) 했는데
고우림과 강형호의 웨이브 발견!
겉은 수줍지만 속은 열정적인 고우림 버전과,
처음이 아닌데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강형호 버전의
동영상 기다립니다...

Champions
오늘 같은 음향으로 들을 수 있다니.
처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In un'altra vita
목소리를 연주하는 것 같던 소프라노를 들려준 강형호, 
늘 잘하지만 오늘 더 짱짱했던 조민규의 소리로
오늘의 베스트.

오늘 음향 대만족.
소리 하나하나 살아나는 느낌이어서 앞으로도 음향이 계속 이러면 좋겠고 
앙코르 공연이라서 지난 번 Universe처럼 기대를 했었는데 
Dandelion은 다음 기회로...

그리고 오늘 공연의 대스타가 된 일명 세신춤. 
...아, 배두훈 ㅋㅋㅋㅋ
처음부터 너무 열연으로 시작한 이것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하나의 완벽한 세신극.
근데 왜 이렇게 혼신을 힘을 다하시는 거예요 ㅋㅋㅋㅋ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 禁樂]

 

20210828 2:00

조선 왕이나 세자들은 본명이 참 이쁘다.

요절한 영특한 왕세자들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번엔 효명세자 이영이다. 

안 봐서 몰랐는데 꽤 유명했던 드라마와 원작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모든 소리를 듣고 낼 줄 아는 성율, 

음악에 진심인 왕세자 이영,

비밀의 금지된 음악 '금악'으로 욕망을 이루려는 악당, 김조순.

그리고 금악에 갇힌 욕망의 화신 갈.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였고

국악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구조물이 최소화되어 조명으로도 풍부한 장면을 만든 무대도 인상적이었던 

신선한 공연이었다. 

자유를 위해 어두운 욕망을 이긴 율의 승리는 

욕망의 고삐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영이 그 목마름을 잠재우기 위해 선택한 희생으로 

역시 공짜는 없다--는 슬픈 결말. 

율이 갈을 처음 만났을 때, 

갈을 만나 금악에 사로잡혔을 때,

나중에 다시 율로 돌아올 때   

목소리가 달라지는 걸 보면서 배우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예 다른 목소리로 더 강하게 대조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했는데

남자배우가 갈인 버전이 있는 걸 나중에 알았다-아쉬움.

처음 등장부터 존재감이 엄청났던 갈. 

특히 연회날 춤꾼들 사이를 오갈 때 

처음 만나는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 같은 모습 특히 귀여웠다. 

이영은 꽤 온순하고 부드러운 왕으로 그려졌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보니 그것 역시 배우의 의도.

이대로의 공연도 좋았지만 

너무 고음으로만 폭발시키기 보다 

노래 안의 드라마가 살도록 다듬어지고 

그래서 한 번 듣고도 흥얼거릴 수 있는 부분이 생기면 좋겠다는 약간의 아쉬움-

이 덜어질, 

갈이 처음으로 교감하게 된 인간을 만난 후의 변화나

임새의 갈등이나 

이영과 김조순의 갈등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질지도 모를^^ 

다음 금악을 응원한다.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들. 

소리꾼 임새와 춤꾼 겨울의 캐릭터가 짧지만 강렬하게 남은, 모든 게 네가 처음이라

좋은 왕은 이런 거지 싶던, 비가 되어.

초반에 소리로 알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다는 걸 보여준 설정도 재미있다. 


다른 가수 때문에 본 몇 개 안되는 팬텀싱어3 무대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황건하의 뮤지컬 첫 작품이고

국악과 함께 하는 공연의 신선함에 끌려서 조기 예매하고 기다리는 사이 

델타변이도 그렇고 너무 멀기도 해서 좀 망설였는데  

공연은 대만족 + 친절한 직원 분들 덕에 경기아트센터도 만족. 


극의 중심은 성율과 갈이었어도 

이영의 존재감은 확실했는데 

대사 연기는 가끔 궁예 생각이 날 때도 있었지만^^

노래 연기는 정말 압도적.

내 생각에 언젠가 슈스가 될^^것이 확실한 황건하의 첫 무대 본 거 

나중에 자랑할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ㅋㅋㅋ


...요즘 예전에 못 봐서 안타까운 뮤지컬 불의 검을 유튜브에서 발견했다. 

노래들도 다 좋고 최민철-임태경 두 버전 다르지만 멋진데

듣다가 갑자기 마치 둘의 느낌이 다 살아있는 것 같은 황건하가 떠올랐다. 

불의 검 재공연도 있으면 좋겠고 황건하가 가라한이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더 포레스텔라 2021 - 고양

 


20210822

Inner Universe
나 이거 들으며 왔지.
방송에서도 살짝 느꼈었지만 
좌고저음 우강고음-정신을 쏙 빼놓는다. 


Scarborough Fair
전혀 열광하던 곡이 아니었는데  
오늘 휘몰아치고 갔다. 

We are the champions
전혀 열광하던 곡이 아니었는데 
휘몰아치고 두드리고 돌리고 던지고 후려치고 갔다.
왜. 무슨 일이죠? 


Dandelion
그 부분에서 그 소리가 나서 좋은 이 섬세한 노래를
라이브로 어디까지 들려줄 수 있을까...생각했었는데 
코믹을 곁들인 마무리에 쓰러지기 전까지 
그 맛보기에 이미 진지하게 반함.
정확하게 불러줄 거 같은데, 언제요....
진짜 짧은 맛보기였는데 제일 듣고 싶다고.
이미 포레 팬이라서 공연을 가는데 
강형호는 공연 때마다 맨날 재입덕하는 기분.
Paranoid Android 같은 곡은 사실 취향도 아닌데
라이브로는 의외로 푹 빠져서 들음.


Revival
Change on the rise가 너무 강렬했어서 오히려 기대가 줄어든 솔로곡이었는데
들썩들썩 신난다. 
고우림은 어디서 이런 노래 잘도 찾네.


Thriller + Smooth Criminal
사실 요 두 곡은 유튜브로 이미 많이 봐버렸는데 
처음의 놀란 마음은 이제 조민규 챌린지에 정착 ㅋㅋㅋ 아주 잘 크고 있다. 


Bohemian Rhapsody
곡 소개를 할 때 속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많이 들었으니까 다른 노래로 바꿔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1초 스쳤었는데
...노래 끝나기도 전에 눈물 남. 


Shape of you
라이브로 보는 건 처음인데 
1부에서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서 무려 이 노래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게다가 마마시타 망원경으로 본다고 오바 떨다가 마마시타 놓침.
완전 망함 ㅋㅋㅋㅋ

Champions
언제 들어도 또 듣고 싶은.


In un'altra vita
공연 앵콜은 영원히 In un'altra vita였으면.
나는 내 입덕곡이라 좋은데 포레는 팀결성 첫 곡이라 소중하다고 한다.  
토요일 거 보니 강형호가 울컥 해서 기쁨을 주는^^ 사이
마치 경연 때처럼 조민규와 배두훈이 소리 더 내줘서 옛날 버전 생각났다. 
좋은 부분 많지만 경연 때 배두훈의 치라샤모는 완전 소중.


동네 공연도 못 가는구나 절망에 빠져 있다가 구한 표라 
4층도 감사한 마음으로 갔는데 
1부 음향이 고르지 않아서 마이크 소리가 엄청 째지게 났다. 
뒷부분에서 수습이 됐고 
몇 곡은 그 악조건을 뚫고 나와서 다행이긴 했는데 
그래도 아쉽. 
3층에서 본 동행은 괜찮았다니 4층이 좀 이상했나 본데
나도 원해서 고른 건 아닌 처지에
또 4층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나의 관객 미래가 좀 씁쓸하다. 
 

오월의 청춘|2021



5월 같은 명희


광주와 5월. 
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결말에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가 
의외의 발랄한 동영상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 가려나?

일단 보기 시작하고는 수련이와 명희의 광주사투리에 빠져 
단숨에 8편을 다 보고 마지막 4회는 실시간으로 보기에 이르렀다. 
광주는 언제나 다큐멘터리와 묵직한 극 속에서 
분노와 먹먹함을 불러일으켰는데
사랑이야기 속의 연인들을 따라가는 광주의  이야기는
훨씬 더 감정적으로 다가 앉게 해주었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가
시대의 중압감을 열연으로 승화시켜 준 것 같고. 
이제 광주의 진실은 더 밝혀져야 하고 갈 길이 멀지만 
먼 미래에 
역사와 과제로 만이 아니라 
디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더 가깝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의 제일 큰 공신은 광주 말씨. 
철학 단계를 지나 밥 먹자는 놈은 뭔가 아주 잘못된 거고, 
식당 단계에서 암시랑토 없이 밥을 먹는 놈은 털털한 여자를 좋아하는 강적이며 
그  앞에서 국밥 처먹는 꼴을 보인 건 끝장이라는 야무진 조언을 날리는 수련의 사투리가 
초반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이어지는 명희의 아버지 김원해와 어머니 황영희는 
외지인의 귀에는 진짜 원어민 같은 느낌.
게다가 김원해는 얼굴 하나 눈빛 하나가 다 '김현철'씨 같아서 
이상하게 얼굴을 그냥 보는 것 만으로 눈물이 난 적이 여러 번 이었다. 
명희 사투리도 좋았지만 
그보다 내새끼 모드로 늦둥이 동생 명수의 달리기를 응원할 때 같은
명감탱이 모드가 더 좋았다. 

내가 처음 본 클립이 명희와 희태의 맞선 장면이었는데
그 때 이미 즐거운 두 사람의 모습이 보고 싶어 다시 본다는 댓글이 줄줄.
결국 나도 후반부를 보고 나서 그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밖에. 

하필 눈물 흘리는 수련에게 반했던 인정의 경찰관
-지금 같으면 징계감이었긴 하겠지만^^-도 생각나고 
이야기기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신기하게도 웃음을 담당해주던 희태의 묘한 분위기도 범상치 않았고
나만 모르고 있던 것 같은 이상이의 디테일
-택시에서 희태 시점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대사를 말하고 있던 수찬 같은-
도 극을 채워준다.  
이렇게 젊은 배우들이 
스타성을 훨씬 뛰어넘는 연기력으로 꽉 채우는 건 처음 본 것 같다. 
마지막회 특별 출연자들까지 여운을 더하던. 
마음 아픈 사랑이야기였지만 결국 떠오르는 한 사람. 
29만원짜리 화수분은 꼭 비극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PITTA (강형호) - dandelion

 


강형호의 보칼리제.


아직도 월요병이 오페라보다 잘 어울릴 것 같은 얼굴로 

듣는 사람들의 턱을 도미노로 떨어뜨리던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모습이 생생한데 

그 강형호가 PITTA라는,

솔로 강형호에게는 이 이상 없을 것 같은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들려주는 두 번째 음악이 

오늘 나왔다. 


올스타전 때 이너 유니버스는 

뱃사람들이 들었던 죽을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는 세이렌이 이건가 싶을 정도인 

그 묘한 분위기가 무한 반복을 불렀다. 

온갖 고음을 생목으로도 찢고 크리스틴으로 찢으며 돌아다니던 강형호가 

소년 합창단 목소리까지 들려줬기 때문에 

이제 자기 소리의 샘플채집은 거의 다 끝나지 않았을까, 

이제 그걸 조합해서 어떻게 들려줄까-

만 생각했었는데.

그랬는데.   


Dandelion의 강형호는 다시 새 목소리들을 들고 나타났다. 

들었던 소리들 속에서 성숙한, 하지만 다른. 

이런 소리들을 내는 사람은 음역이고 스타일이고 다 필요 없다. 

그냥 자기 소리만 잘 내면 된다. 

과연 무대에서 이 소리들의 이 질감을 얼마나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가

남은 궁금증이자 기대. 


유니버스에서 애타게 자신의 우주를 부르고 

이너 유니버스에서 우주의 목소리에 각성해 본연의 나를 찾아 가겠다더니 

이제 민들레가 되어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세상에서 나로 돌아오는,

구성으로는 참 모범적인 전개인데 

목소리가 차지한 표현의 세계는 

모범적인 행보란 걸 잊을 만큼 충격적이란 게 

정말 대반전.

근데 이게 또 시작이란 건 더 반전.

모범적인 이야기들의 전개에서 

이제 그 민들레의 미래는 또 성장일테고

강형호는 모범생이니까 

...그래서 다음엔 또 뭐겠냐고요...이제 상상을 포기하고

두근두근만 남겨놓기로.

정원가의 열 두 달|카렐 차페크|펜연필독약

 

스노우드롭
풍년화
헬레보어
라일락
개나리

정원가를 들썩이게 만드는 3월의 꽃들

정원가의 열 두 달.
제목에 충실하게 1월 흙을 준비하는 분주한 마음부터 12월까지
마음 만은 한 시도 한가할 틈이 없는 정원가의 우당탕한 분주함이 그려진다. 
정말 그려진다는 표현이상으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카렐 차페크는 온갖 퇴비종류를 소개할 때나 
겨울에 이미 봄을 당겨오는 이른 꽃들에 대해 쓸 때도 
마치 음악을 타듯 
흥분한 정원가의 마음이 얼마나 들떠있는 지가 충분히 상상 되도록 쓰고 있다.

1월
하지만 이토록 까탈스러운 날씨를 단번에 뒤바꿀 수 있는 비법이 존재한다. 예컨대 '내일은 옷장에서 가장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어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날이 밝기가 무섭게 기온이 오른다. 친구들과 스키장에 갈 계획을 세워보라.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씨앗
모든 식물은 씨앗 아래 부분에서 움튼 다음, 씨앗을 모자처럼 머리에 쓴 채 고개를 밀어 올린다. 머리에 엄마를 이고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라. 자연의 신비다. 

2월
낮에는 꽃망울을 덤불 밖으로 살살 꼬여내어선 밤이 되면 얼려 죽이고, 당신을 한껏 유혹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얼간이 취급을 하는 게 바로 2월이다. 

가드닝 기술
늦은 오후 정원에 물 세례식을 거행할 때다. 이때 만큼은 위풍당당하리만치 몸을 반듯하게 펴고 서서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진두지휘한다. 

3월
날씨로 인한 지난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매년 또 다시 봄을 맞이하고 꽃을 피워 내고야 마는 정원가들. 그 존재야말로 인간 고유의 낙관주의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리라.

새싹
우선은 작은 구역을 선택해서 살펴보는 게 좋다. 

4월
5월에는 꽃이 피지만 4월에는 싹이 튼다. 

노동절
당신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노동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고귀하며 심신에 이롭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캄파눌라 꽃을 피우기 위해, 범의귀를 무성하게 키워내기 위해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우리가 노동했다는 사실 만을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으로 일구어낸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5월
씨를 뿌리는 경우 모두 쭉정이거나 아니면 모두 닥치는 대로 싹이 트거나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멋진 모종 화분이 160재나 생겼다. 역시 씨를 뿌리는 게 최고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160포기나 되는 엉겅퀴들을 어떻게 감당하지? 빈자리마다 꾸역꾸역 채워 심었지만 그래도 130포기가 남았다. 뭐라고요? 이렇게 애지중지 길렀는데 어떻게 내버리란 말씀입니까? "이보게, 시르시움 좀 얻어가지 않겠나? 정원에 심으면 아주 멋져!" "아, 좋지." 고맙게도 이웃이 30포기를 가져갔다. 이제 그 이웃이 골머리를 싸맬 차례다. 그는 정원을 돌아보면 고민에 빠진다. 아, 건넛집이랑 아랫집에 좀 떠넘기면 되겠다. 

단비
우아하고 사뿐하게 내려 단 한 방울도 헛되이 흘러넘치지 않는다. 

6월
정원가들은 광인처럼 머리를 흩날리며 정원으로 뛰쳐나간다. 물론 이는 낭만적인 시인처럼 자연에 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분노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채소밭 정원가들
물론 농부의 삶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매일 혼자서 무 120개씩을 먹어 치워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족 누구도 먹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월
다시 말하지만, 비가 와야 된다. 

식물학챕터
가령 철도 관련 지역에서는 식물이 매우 번창하는 반면, 우체국이나 전신국은 식물의 불모지다. 또 관공서보단 개인 사무실이 식물학적으로 훨씬 비옥한 편이며. 관공서 중에서도 특히 세무서는 완벽한 사막이다. 

8월
한 해는 언제나 봄이고, 인생은 언제나 청춘이며, 꽃은 언제고 핀다……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 자들이나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 법이다. 일 년 열두 달 심지어 11월에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존재들은 가을을 모른다. 찬란한 여름만이 계속될 뿐이다……일 년이란 무척 긴 시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법이라네.

선인장 키우는 사람들
종파주의의 핵심은 그것이 열정이 아닌 열정적인 믿음에 의해 유지된다는 데 있다……선인장쟁이들에겐 진정한 선인장 흙을 만드는 놀라운 비법이 존재하는데, 차바퀴로 깔아 뭉개며 위협해도 절대 그 비법을 누설하지 않는다. 

9월
무엇보다 9월은 ‘땅이 새로이 열리는 달’, 즉 식물을 또 한 번 심을 수 있는 달이다……자기 농원의 토질이 좋다고 말하는 주인은 한 명도 없다. 늘 거름을 제대로 못 주었다느니 물이 부족하다느니 냉해를 입었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농원의 꽃이 잘 자란 건 순전히 자신의 노력과 애정 덕분임을 그런 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이 뻣뻣하고 생명 없는 물질이 지닌 적대감과 냉담함이란 게, 생명의 흙이 되길 거부하는 자기 방어의 몸짓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내켜하지 않는 존재를 한 뼘 한 뼘 하고 들어가 그 안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생명(식물이든 인간이든)이 얼마나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고 나면 흙에서 무언가를 앗아가기 보다는 더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10월
땅을 살살 파보면 엄지손가락 만큼 두툼한 싹눈과 가녀린 새싹, 알알이 여물어가는 구근을 발견하게 된다. ‘봄이 여기 숨어 있네’라는 생각을 안 하고는 못 배긴다.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가을의 아름다움
자연이 선사하는 작물들은 대체로 한 장소에 모이기보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의 좁은 길들을 따라 사방팔방 흩어진다. 하지만 사탕무는 하나의 줄기를 이루며 가까운 기차역이나 설탕공장을 향해 흘러간다. 
기하학, 그건 집단의 아름다움이다. 농부들이 쌓아 올린 사탕무 더미는 기념탑처럼 반듯하고 각진 모습이 마치 하나의 건축 작품 같다.    

11월
11월은 흙을 위한 달, 흙을 갈아엎고 일구는 달.
<뿌리 뽑기의 어려움>

겨울잠에 든다는 표현도 사실 틀린 말이다. 그저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들어설 뿐, 생명이란 영원한 것. 섣불리 끝을 가늠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보라.

마음에 드는 구근을 산 다음 이웃 정원가에게서 질 좋은 퇴비 한 자루를 얻어 온다. 다락과 옥상을 뒤져 화분이란 화분은 다 꺼낸다. 화분 하나에 구근 하나씩을 심는다. 어쩌지, 아직 구근이 남아있는데 화분이 모자란다. 화분을 더 사왔더니 이제는 구근이 모자란다. 멈추자니 화분과 흙이 너무 많이 남았다. 구근을 조금 더 사왔더니 흙이 살짝 모자란 듯 하다. 한 포대 더 사오지 뭐. 슬슬 예상했겠지만, 이번에는 흙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 화분과 구근을 더 사와야겠다. 
—-이 무한 반복은 항상 '모자라지 않게' ‘너무 많이’ 남도록 준비한다는 게 포인트^^

준비
너무 바쁜 나머지 위를 향해 자라는 걸 잠시 보류한 상태라고 보는 게 훨씬 정확하다. 다들 소매를 걷어붙인 채 있는 힘껏 발 밑을 파내려가며 아래를 향해 자라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 해내지 못한 일들은 4월에도 일어날 수 없다. 미래란 우리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싹눈 속에 자라고 있다. 

12월
이제 정원이 눈밭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정원가는 까맣게 잊고 있던 일 하나를 기억해낸다. 바로 정원을 바라보는 일이다. 

정원가로 살아간다는 것
레바논 삼나무는 높이 100미터에 10-20미터 굵기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한다…하지만 이제 겨우 그 나무는 25센티미터 자랐을 뿐이다. 그렇다,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더한다. 



정원의 열두 달이 아니라 정원가의 열두 달 이어서 였는지, 
정원 안 식물들의 경이로움 보다는 난리법석인 정원가의 속마음이 더 흥미롭다. 
긍정에너지의 기원을 
법석이는 열 두달을 매년 반복하는 정원가의 숙명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카렐 차페크의 암석정원 예찬은 틈만 나면 등장해서 
게으른 영세 채소화분가인 나조차 
나중에 한 번?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을 쌓아 만든다는 암석정원은 이름만큼 거창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상상 만으로도 작은 산의 미니어처가 그려지고 
아주 작은 땅에도 가능할 것 같다.

변함없이 무식하고 무심하게 
가끔 들여다나 보는 채소화분가에게도
아낌 없이 새싹의 귀여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땅과 씨앗의 신비는 
인심이 넉넉하다.

엄청난 기대를 품고 심은 씨가 그냥 거름으로 끝나서 상추 살 때마다 생각났던 기억도 있고
그 작은 한 톨이 쑥쑥 자라 루꼴라 꽃나무가 된 것도 봤고
마구마구 싹이 터서 쑥대밭 같은 상추를 뜯어먹어도 봤고
바질이 넘쳐 나서 파스타를 만들다 못해 쌈장 찍어서 먹어치운 적도 있다보니
나랑은 비교도 안되게 바쁜 열두 달을 보내는 정원가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물 줬더니 바로 비가 내리는 오늘 같은 날
정원가라면 무슨 충고를 해줄까 싶어 6월을 다시 보니...
자연의 분노에 대비하라-언제 어디나 들어맞는 정원가의 지혜였구나^^

해적|Le Corsaire|국립발레단




얼마만의 박슬기 인지. 
이재우가 부상(?)이어서 콘라드는 허서명.
지난 번 재미있게 봤던 공연이어서 박슬기 버전으로 다시 보고 싶어 갔는데
박슬기는 여전하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지난 번 공연이 뭔가 기대를 불러일으키던 
내가 처음 만난 국립발레단 같았다면 
이번은 다시 최근의 새로움이 없다고 느껴지던 국립발레단 같은 느낌. 
내가 발레를 보면서 공부를 했더라면 
이런 느낌적인 느낌을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었을까.
거기다 공연 초반 어마어마한 일명 관크가 있어서 
1막은 거의 날리다시피해서 더 그럴지도. 
그쪽도 일부러 그런 것 같진 않았지만 
공연 중이라 내색도 못하고 방해가 된 건 사실인데 
그 상황을 봤었는지 어셔가 쉬는 시간에 사과하러 왔었던 게
이후 감상에는 도움이 되긴 했다.
먼 길 간 보람이 좀 없었던.

포레스텔라 콘서트: 시간여행 - 고양

 

팬텀싱어 올스타전에 빠져있던 중의 공연이라서 

이미 봤던 넬라판타지아의 앵콜 콘서트라는 걸 깜빡하고 예매했지만

올스타전 곡을 하나쯤은 꼭 해줄거라는 기대를 안고 갔는데

꿈꾸던 Shape of you는 아니었지만 Time in a bottle을 득템.

강형호가 고우림 목소리의 가성비를 부러워하던데 

언제나 아니 이렇게까지-싶게 전부를 갈아넣는 것 같은 무대에 길들여진 팬들을 가진 

네 사람 모두 그런 생각 들만도 하다 싶다 ㅋㅋㅋ

언제들어도 계속 듣고 싶은 챔피언스

드디어 라이브로 들은 강형호의 유니버스-좋았다. 

이게 벌써 3월이었는데 

그 사이 3집도 나왔으니 이제 Shape of you 보러가면 되겠다---자리 있으면 ㅠㅠ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Night of the Undead|2019

 

이건 병맛이라기 보다는 

그냥 정말 취향이 독특한 감독의 세계.

예전 장진의 영화들 같은 느낌이 좀 들기도 한다. 

배우들의 열연은 빛나지만 

클리셰를 피하려다 클리셰로 결말이 난 것 같은. 

그래도 시간은 잘 갔다.

문신을 한 신부님|Corpus Christi|2019

 

격식을 깬 신부가 가져다 주는 신선함은 이해가 가지만

과거의 자신과는 만나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종교인이 되겠다는 건

신부복이 멋있어서 신부가 되고싶다는 어린이의 장래희망 같은 것.

하지만 그런 생각은 들었다. 

세상에는 정말 무서운 죄를 지었지만 어떤 깨달음으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 사람들이 있기도 할텐데 

그들의 두번째 인생을 잘 알아볼 수 있어서 응원해주면 좋겠다는.

그런데.

그 방법이야말로 신 밖에 알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처음보는 걸지 모를 폴란드 영화.


협상|The Negotiation|2018

 

폭탄테러범의 심정으로 

차를 몰고 돌진 하는 것 같던 민태구.

일단 폭탄이 터지기는 했지만 

그 파편들이 제대로 타겟을 명중시켜 끝장을 봤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 때의 개망신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대대손손 부귀영화에는 그다지 큰 부담을 주지 못하는 걸 

지금도 보고 살고 있으니까. 

시작할 때 하채윤의 등장은 개연성없이 멋부린 설정 같았지만 

그래도 시간 잘가던 오락영화.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Lorena, Light-footed Woman, Lorena, La de Pies Ligeros|2019

 

달리기 잘하기로 유명한 멕시코 고원지대 사람들. 

로레나가 특히 잘 달리게 된 건 타고난 부족의 혈통 덕분도 있지만

마치 70년대 한국에서 그랬든 교육의 혜택이 아들에게 집중되었던 환경탓도 있었다. 

다행이 그녀는 달리기가 생활인 분위기에서 자랐고

재능을 즐기는 행복한 성격이다. 

어지간한건 다 인체공학적 장비빨로 승부가 나는 21세기에

이따금 인간도 환경에 따라 이렇게 계발될 수 있다는 

신체적 능력치의 재발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문명이나 교육이라는 것이 애초에 타고나지 못한 것들을 상쇄하기 위한 

또다른 생존법이었구나를 깨닫게 해준다. 

자기는 그냥 살던데로 달릴 뿐

달리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지점을 이동하는 것 뿐이라 

열광이 좀 이상하기도 하다는 로레나. 

달리기를 위해 처음 가보게 된,

그냥 달리기로만은 갈 수 없었던 세상의 다른 구석은 

로레나에게 어떤 바람을 불러다 줄까. 

바닷가에서 자라 바다수영으로 해협을 건너거나 

강원도에서 자라 스키선수가 되는 것처럼 

승부의 세계속에 자연처럼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사실 보통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굉장한 재능을 타고난 것인데

부러움 보다는 뭔가 희망적인 기분이 드는 건

원래 타고난 재능에는 토 달 것도 없이 경외심을 같는 게 인간이라서 이기도 하지만

다듬어진 재능들이 평가받는데에는 어마어마한 운도 필요한 

이 단순한 듯 복잡해진 세상의 한 복판이라서 일지도.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2004

 

실화였다고 해서 더 미루었던 영화였는데
영화는
마치 문학처럼
보도된 잔혹한 실화 속의 아이들의 버여지지 않았을 부분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사랑하지 않은 것 같지는 않은데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친구같은 엄마.
그런 엄마였지만
그조차도 사라진 뒤에
의젓하기만 하던 아이들은
점점 그늘 속에서 쇠퇴한다.

아키라의 집에서 게임하는 아이들로
아키라의 집은 가정이 아니라 영업장이 되어버렸다.
오해로 시작해 음식을 얻기도 하다 도둑질을 하게 된 아키라.
사람은 변하고 아이들은 더 빨리 변한다
아무리 의젓한 아이라도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생활비를 주는 것으로는 그냥 자라지 않는다는 것
제대로 자랄 수 없었던 건 생활비의 부족만은 아니었다.
평범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어른은
낳고 돈 벌어다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 뿐 아니라
'존재함'으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것인지.
이 아이들이 남겨진 환경과
그 속의 비극이 물리적으로는 그려지지 않았던
부모와 어른의 자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PS. 누구나 아이였고 누구나 노인이 되는데
설명이 어려워 짜증이 나는 건 그렇다치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편의점 주인의 사과
-무례해선 안된다.

테이킹 라이브즈|Taking Lives|2004


제목만 들었을 땐 공포영화인 줄 알고 안봤었는데 

잔혹한 범죄가 등장하지만 공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살인으로 인생세탁을 이어가는 범인과 

정의의 편(?)인 가족의 결정적 제보.

지금보면 약간 예측 가능한 결말이긴 하지만

2004년도를 생각하면, 그리고 몇 년 전 화차를 생각하면

흡입력 있는 이야기.

졸리의 액션 재능이 큰 싹을 틔운 영화가 아니었을까.

여기서는 라라 크로포드 스타일의 무적 액션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자유 같은 표정과 느낌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졸리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의미한 노출전략이나 

이상하게 편집된 포스터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졸리의 시절도 보게 된다.

그래서 인지 

전체적으로 세븐 같은 묘한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는 좀 독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감독을 응원하게 되지는 않는다. 

 

옛날 영화를 보는 뜻밖의 재미는 

우주대스타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전쟁과 평화에서 피에르 역을 맡았던 폴 다노의 강렬한 도입부,

너무 평범하게 욕먹을 만한 형사로 소비된 슬픈 올리비에 마르티네즈,

생각보다 너무 짧은 출연의 키퍼 서덜랜드.

볼만한 영화치고는 참 안유명했구나...

솔트|Salt|2010

 

 

졸리에 의한 졸리를 위한 졸리의 영화.

원래 탐 크루즈를 주인공으로 썼다가 탐 크루즈의 다른 첩보영화들과 너무 비슷해서 바꿨다는데 

이야기는 여전히 어디서 나온 듯 하지만

졸리의 등장으로 완전 새로운 느낌. 

마지막 악당의 길고도 긴 고백은 좀 식상했지만 

아무튼 2편이 안나온 게 신기한 액션물.

졸리의 액션에는 뭔가 듬직함이 있다^^ 


PS.  사랑을 위해 살다 가신 한 분에 애도를...

스파이 게임|Spy Game|2001

 


재미있게 봤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쫀쫀한 이야기들의 시절에 만들어진 스파이 영화.

소련 이후 다양해진 적국들에서 살아남는 비밀요원들.

여기에 로맨스도 있었는지는 까먹고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브래드 피트는 초반부터 

출연작들이며 인물까지 잘 고르고 잘 쌓고 있었다. 


미남의 대명사였지만 달달한 로맨스 영화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나마 The way we were가 있지만, 그것도 해피엔딩 같은 건 아니어서-

그래서(?) 더 멋있는 로버트 레드포드와의 마치 부자지간을 보는 것 같은 만남도 좋고.

 

인사이드 잡|Inside Job|2010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위기나 경제개혁법안 좌초의 원흉으로 

모피아 집단이 지목되기 시작했었는데

미국 월가출신의 사유재산 절대지지자들이자

공직마저도 이익집단의 조력을 위해 맡는 

이 사람들-규모자체가 다르다. 

빅쇼트가 주식 시장을 다루면서 월가 안에서 재앙의 시작을 다뤘다면

인사이드 잡은 이미 오래 전 레이건 정부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해 

드디어 폭발해버린 금융인들-이라 쓰지만 욕망의 전차들이라고 불리울만한-의 

미국정복기를 다루고 있다. 

어마어마한 취재력과 빛나는 통찰력 멋있었지만

역시 그 짬짜미의 거대한 규모와 사고의 피해를 생각해 볼 때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보니

마지막 한 마디로 희망이 대체되지는 않았다.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너무 길어져

습관성 무기력증에 빠지기 전

어떤 변화라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면 좋을텐데

10년이 지나 세계 재앙 속에서 되돌아보는 2010년은 

쉽게 달라지기 힘든 미래를 준비한 계획이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시켜주고 말 뿐. 

모두가 작정한 것은 아닌데 

왜 항상 욕망의 전차들 앞에 다 무력해지는 것일까.

선의로 보이던 정책입안자들은 과연 다들 모르고 속은 것일까?

부패는 항상 분노의 크기가 유능함처럼 여겨지는 반면

선의의 부족한 효과는 무능처럼 보이게 마련.

바뀔 날이 언제나 올런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SAMJIN COMPANY ENGLISH CLASS|2020

 

 
뭉쳐서 산 건 좋지만 회사를 구한 답례로 대리승진은 너무 약소한 듯

 

이렇게나 각각 달라보이는 세 사람의 잘 맞는 합과 

이젠 옛날 같은 90년대 풍경을 살짝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어딘가 노오력의 케미가 에워싼 듯한 순탄한 전개도.

보는 동안 시간 잘가고 

열심의 키워드가 여기저기 번쩍하는 것 같아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여자애'라서 더 만만하게 부려먹던 것도 분명 있던

저 이상한 직장의 세계.

이젠 다 없어진 거 맞겠지?

그런데도 씩씩하게 일하는 세 사람, 

그런데도 심지어 애착까지 가지고 있던 이자영-어쩐지 그 남다른 성공을 겪고

지금은 좀 이상한 성공인이 되어있을 것 같다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뒷부분 외적 무찌르기는 좀 간질간질 했지만 

두산의 낙동강 페놀 사건-이런 걸 생각나게 해줘서 고마웠다. 

 

승리호|SPACE SWEEPERS|2020

 

 
포스터 내취향

 

어딘가 정겨운 느낌의 꼬질꼬질한 SF랄까-로보트 태권브이같은 느낌.

그런데, 보면서 여러가지 궁금하다.

-처음에 어떻게 다른 청소선들 걸 빼돌린다는 건지(진짜 대충 봤네1-다시 보고 이해됨)

왜 내려갔다 올라가는 태호가 미친 건지,

사장은 그렇게 사람을 막죽여도 되는지,

우주에 돈이 흩날리던데 빚은 뭘로 갚았는지...(진짜 대충 봤네2-구호자금) 등등등.

 아니 저기서! 싶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를 비롯하여(특히 박씨)

사이 사이 얘기 조각이 잘린 느낌도 여러 번 들었다.

승리호가 꽤 스펙이 괜찮은 우주선인 건 알겠지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건지, 

승리호의 넷은 어떻게 만난 건지.

어차피 인간미로 갈 거면서 굳이 뻔할 것 같은 천공의 섬 같은 인공도시 얘기를 하느니

사람들 얘기나 더 해주지. 

나노봇도 그렇다-좀 더 정보를 원해요...

내내 엄청난 외국인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라기보다는 서프라이즈 같은 느낌ㅋㅋㅋ

제일 인상 깊은 배역은

거대기업의 비밀이 보도되는 순간 손까지 부들부들 떠시던 분.

-나라면 잠시라도, 저게 뭔소리래? 싶었을 것 같은데 

모든 사람들이 뉴스보도와 동시에 분노와 경악 모드에 돌입.

주연배우들은 좋긴 했지만 뭔가 케미가 있는 느낌은 아니어서 그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두 번을 보게 된 건

다 꽃님이 때문이다^^ 

나는 분명 조성희의 영화에 송중기와 김태리가 나와서 봤지만

보고나면 온통 우리 꽃님이 생각 뿐. 

사랑스러운 여아 순이와 

사랑스러운 아이인 꽃님이.

칙칙한 쓰레기공장에서 무지개빛 뽐내던 꽃님이는 희망이 뭔지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아이

토마토장사하던 꽃님이는 너무 즐거워 보였는데

장사 잘 된다!를 외칠 땐 칙칙하게 버림받은 지구는 잊을만큼 환하고

뭔데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할 땐 

저런 꽃님이를 멀리서만 보고 웃어주는 태호삼촌은 극한직업.

요맘때의 아이들은 부모 없이 잘 놀다가도

부모들이 돌아오면 울음을 터뜨려서 봐준 사람 뻘쭘하게 만드는 무서운 기질이 있는데

꽃님이가 아빠 만나서 돈벌고 머리감고 밥먹은 얘기할 때 울컥했다.

갑자기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 뚝 떨어진 거 였는데 

이렇게 적응하는 건 애든 어른이든 아무나 할 수 없다.

이 정도 의리있는 꽃님이라면 목숨도 바칠 만^^

근데, 꽃님아 맛있는 건데 왜 핫소스를 발라먹었니 ㅋㅋㅋ

업동이 명대사: 어---ㄴ니? ㅎ ㅎ ㅎ흐흐

김태호 명대사: 그럼 아빠 한 번 보여줘(시작 즈음 열심히들 산다며 다른 청소부들 비웃을 땐 와, 한석규다 했는데 여기서는 송중기인데 아빠) + 꽃님이 피해서 도망갈 땐 늑대소년 철수

장선장 명대사: 내가 진짜 소름이 끼쳐가지고(최고 빵터짐).

타이거 박은 내내 좋은 목소리와 똑떨어지는 발음을 자랑하는데 

그 많은 중 '다른 엄마들은..'이 왜 기억에 남는 걸까 ㅋㅋ

그리고 김무열-잠깐이지만 진짜 아빠 같았다. 


현실적인 척 하면서 영화속에서도 우울하기만 한 게 장땡이 아니라는 건 이미 베테랑이 보여줬지만

우주의 청소부들이 희생양이 아니라 변함없이 열심히 살고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마지막엔 청소선 다운 뭔가 기발한 공격과 방어를 기대했는데 평범한 전투는 좀 실망.

나노봇의 기적 꽃님이는 인류와 우주의 혼혈로 순혈주의를 쳐부수는 느낌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구에서 뭔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고, 

줄거리와 상관 없이 그냥 맘에 드는 대사들도 좋았다.

-주지도 않을 돈을 왜 세서 보여줘, 이 흡혈귀 같은 새꺄...

도로시 피해 도망갈 땐 철수인 줄^^

 

늑대소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박씨-라는 호칭이나 양말꿰매기 같은 것도 좀 귀여운 복고.

근데 좀 신기한 건, 

별 것 없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몰입감과 긴장감을 만들던 

늑대소년 이전의 조성희 감독의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뜬금없이 사냥꾼의 밤이 생각났다. 

영화 하나에 되게 많은 것이 들어있어서 이게 뭐지 싶은데 재미있었지. 

밍밍한 나름대로 나는 괜찮았지만

이것은 아주 훌륭한 리메이크용 이야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 그리고 승리호는 

영어가 변방에 머무는 최초의 우주영화. 

-----그리고 꽃님이 보고 싶어서 또 봄.


+ 승리호가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

제발 다국어 환경과 편견프리 설정은 그대로였으면 좋겠고

설리반의 철학적 면모가 좀 더 보였으면 좋겠고

청소부들의 반격방식이 좀 새로웠으면 좋겠고

꽃님이 색동옷도 그대로였으면.

그리고 자란 꽃님이도 어떻게든 한 번 나와주면...?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사계절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거야."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삐삐 롱스타킹'에 푹 빠졌을 때는 삐삐가 '말랼광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은이에게는 삐삐가 '미치광이'같은 느낌이었을까.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슬프고 두려운 일이지만, 가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그러면서 칠판에 "서로 몸이 달라도 _______ 자" 라고 썼다. 내심 '존중하자'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예지의 답을 기다렸는데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예지야, 그럴 때 '무시'의 반대말을 떠올려보면 좋아." "아! 알았다!" 유일한 답이라는 듯 예지는 이렇게 썼다. "서로 몸이 달라도 같이 놀자." 그 순간 나는 예지에게 백오십 번째로 반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존중'이라는 단어를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기회를 줬다. 예지는 이번에는 이렇게 썼다. "서로 몸이 달라도 반겨주자"

 몬테소리는 '재미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해 손수건 사용법 등을 가르쳤는데, 어린이들은 전혀 웃지 않고 귀 기울여 수업을 들었을 뿐 아니라 수업이 끝나고는 깜짝 놀랄 만큼 열광적인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몬테소리는 어쩌면 자신이 "어린이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린이들은 더러운 코 때문에 끊임없이 야단맞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제대로 코푸는 법을 몰라 애를 먹어온 것이다......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길어야 3, 4년 전의 일을 두고 힘주어 "예엣날"이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정말 까마득한 옛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마흔 살의 3년 전과 열 살의 3년 전은 똑같은 기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명의 노동자이기도 한 '교사'에게 '스승'의 모습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특수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그 길에 들어선 것 차제를 '헌신에 대한 약속'으로 여기고, 그 분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 밖에도 악기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저마다 해 준 조언은 이랬다. "남들 하는 거 멋있어 보여서 하는 거면, 큰 기대는 안하시는 게 좋아요." "분명히 지루해 질테니까 마음 굳게 먹으셔야 돼요." "피아노 연주를 자주 들으세요. 다른 사람들이 연주한 거요." "열심히 하세요. 안됐는데 갑자기 될 때가 있어요." "연습은 날마다 해야 돼요. 날마다 하는 게 중요해요."

내용이나 어조를 떠나 대부분의 양육서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라'인데, 어째서 부모의 개성은 존중하지 않는 걸까? ..... 그런 상태에서 '이럴 땐 이렇게'식으로만 접근하면 결과적으로 아이들도 비슷해지는 것 아닐까?

그리고 반말-존댓말 관계에는 반말을 하는 쪽이 '존댓말을 듣는다'라는 이유로 더 권위를 얻는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사람보다 그 말을 듣는 쪽이 더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존댓말을 하는 사람의 의견은 자주 무시된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도 많은 어린이로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행지 관광 안내소 직원에게 엄마 아빠가 지도며 상품할인 쿠폰 등을 받고, 이런 저런 안내를 받는 동안 데스크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어서 기를 쓰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다......여행 와서 들뜨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은 나나 어린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대화에 참여하기는 커녕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어린이는 몸집이 커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안 해 봤을까? 어른이 되고서 "크니까 좋구나. 속이 다 후련하다!"했을 법도 한데, 일단은 내가 천천히 자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중에 커서 아기 낳으면요, 아 맞다, 지금 컸지"

...어른들은 이날 하루 마주치는 어린이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좋겠다......어린이날, 가정 바깥에서도 축하를 해주자. 

나는 교육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점을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 나는 조그마한 좋은 것이라도 꼼꼼하게 챙겨서 어린이에게 주고 싶다, 거기까지가 내 일이다. 그러면 어린이가 자라면서 모양이 잘못 잡힌 부분을 고칠 것이다......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한다.

제목이 이렇게나 매력적이면 실망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 놓고 읽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제목처럼 어린이라는 세계를 지금 만나는 어린이들, 자신의 어린이 시절을 통해 아우르며, 나로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안내를 해주기도 하고, 공감하기 쉬운 글로 쉽게 이해시켜준다.

마지막 부분 어린이날의 희망사항에 이르면, 저자가 일년에 한 번이라도 한번쯤은 어린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들을 이렇게나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제일 재미있던 부분은 책읽기 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시작부터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어린이는 태어나기도 하지만, 많은 수가 공들여 바라보는 시간에 비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들

시간이 흐르면|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읽음:그림이 많음

사람백과사전|메리 호프만----읽음:그림이 많음

어린이의 비밀|마리아 몬테소리 

멋진 열두 살|신시아 라일런트

어린이 문화운동사|이주영

연년세세| 황정은 | 창비

한영진은 갓난아기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진 뒤에야 아이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이를 유심히 보고 싶은 마음, 다음 표정과 다음 행동을 신기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마음, 찡그린 얼굴을 가볍고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관대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 인내심...... 모든 게 그 간격 이후에야 왔다. 한영진의 모성은, 그걸 부르는 더 적절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언젠가 한영진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타고난 것이 아니고 그 간격과 관계에서 학습되고 형성되었다. 그건 만들어졌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한영진은 둘째를 낳을 수 있었고, 첫 번째 보다는 여유 있게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지금은 좋아했다. 이순일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한영진은 알고 있었다. 이순일의 노동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말하자면, 잊는 것일까. 

오랜만의 황정은이다. 

토지를 보고 나면 경상도 사투리가,

태백산맥을 읽고 나선 전라도 사투리가 그렇듯

읽고 나면 말투를 따라하게 되는 것 같은 작가 황정은

담담하지만 할말은 하는 성격의 소설이랄까. 

이번 황정은은 좀 황정은 같지 않기도 했는데 

이게 황정은 완성과정의 단면인지

아니면 잠깐의 자극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도 매력적.

파묘

이순일의 할아버지 무덤을 파묘하러 가는 이순일과 한세진 그리고 다른 가족 한만수와 한영진의 이야기이다.


하고 싶은 말

일찍 가족의 생계를 지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었다-에 눌린 한영진의 이야기


무명

새벽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의 이순일과 이순자들의 이야기


다가오는 것들

한세진과 하미영의 이야기

나무 위의 남작|이탈로 칼비노 |역자 이현경 |민음사

 형은 아픔과 승리의 기쁨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생전 처음 승리한 사람, 그리고 이제 승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지 아는 사람,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으며 실패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도피처를 자신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 사람의 절망에 사로잡혀 나뭇가지와 단검과 고양이의 시체를 꽉 붙들고 있었다.


“자네 꼴좋군!” 아버지가 호되게 말을 시작했다. “정말 귀족신사라고 할 만해!”(아주 엄하게 야단칠 때처럼, 아버지는 형에게 ‘자네’라는 존칭을 사용해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 존칭의 사용은 거리감과 무관심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버님, 귀족은 땅에 있으나 나무 위에 있으나 귀족입니다.” 코지모 형이 대답하더니 곧 이렇게 덧붙였다. “그가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말입니다.”

“좋은 말이군.” 남작이 심각한 태도로 시인했다. “그런데도 자넨 방금 전에 소작농의 자두를 훔쳤어.”

사실이었다. 형은 당황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형은 미소를 지었는데 거만하거나 냉소적인 미소가 아니라 부끄러워하는 미소였다.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버지도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쓸쓸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얼굴도 빨개졌다. “이제 자넨 행실이 나쁜 아이들과 거지 떼와 한통속이 되었군.” 잠시 후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님. 저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누구나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코지모 형은 단호하게 말했다.

“부탁하네. 땅으로 내려오게.” 남작은 거의 꺼질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자네 신분에 맞는 의무를 다시 수행하게.”

“그 말씀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 형이 대답했다. “저도 괴롭습니다.” 

두 사람 다 거북스럽게 짜증이 났다. 두 사람 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러면 자네 공부는? 기독교인으로 해야할 기도들은?” 아버지가 말했다. “아메리카의 야만인들처럼 자라겠단 말인가?” 형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들이었고 앞으로 도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형이 말했다. “제가 몇 미터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적절한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느 면에서는 형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흔들리고 있다는 표시였다. 

아버지는 이를 눈치채고 더욱 그를 조였다. “반항이란 몇 미터냐 하는 걸로 측정되는게 아니야.” 아버지가 말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얼마 가지 않은 것 같은데 돌아올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이제 형은 뭔가 다른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 당시 우리가 많이 외우고 있던 라틴어 격언이라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은 거기서 그렇게 엄숙한 말을 해야 한다는게 짜증 났다. 그래서 혀를 쏙 내밀고 소리쳤다. “그래도 난 나무 위에서 더 멀리 오줌을 쌀 수도 있어요!” 의미 없는 말이었지만 이것으로 대화는 중단되어 버렸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듯이 포르타 카페리 주위에 있던 불량소년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디 론도 남작의 말이 급히 옆으로 뛰쳐나갔고 남작은 고삐를 잡고 떠날 채비를 하듯 망토를 몸에 둘렀다. 하지만 몸을 돌리더니 망토에서 한 팔을 빼내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버린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조심해라, 아들아. 우리 모두의 머리위에 오줌을 놀 수 있는 분이 계시단다!” 그러더니 말을 달려갔다. 


불행히도 이런 나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호두 나무도 마찬가지여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셀  수도 없이 많은 방을 가진 여러 층의 대저택처럼 어마어마하게 크고 오래된 호두나무 쪽으로 형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서 흉내 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위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그 나무를 나무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힘과 확실성이었고 무겁고 단단해지고자 하는 고집스러움, 나뭇잎 하나하나에까지도 나타나 있는 그 고집스러움이었다.


이미 형이 눈에 비친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형의 세상은 구불구불하게 허공에 놓인 다리들 ,나무 마디나 껍질들, 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유충들,  곧 자루를 흔드는 약한 바람에 떨리거나 나무 전체가 바람 앞의 돛처럼 휘어질 때 같이 흔들리는 울창하거나 성근 나뭇잎들, 그리고 그 초록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햇빛으로 이루어졌다. 밑에 있는 우리들의 세상은 평평했으며 우리는 균형이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이 나무 위에서  알게 된 것들과 나무가 몸통 내부에 나이테를 나타내는 원을 만들기 위해 세포 조직을 응축시키는 소리, 곰팡이가 산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함께 실려온 먼지와 섞여 점점 커지는 소리,  둥지 안에서 잠자던 새들이 몸을 떨며  깃털이 제일 부드러운 날갯죽지에 머리를 쑤셔 넣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비 유충이  깨어나는 소리와 때까치 알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보내는 형에 관해 우리는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들판의 침묵 속에서 까악까악 우는 소리, 짐승의 긴 울음소리, 풀잎을 아주 재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물속에 풍덩 떨어지는 소리, 땅과 돌멩이 사이로 비틀비틀 걷는소리,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 보다 훨씬 높은 있는 매미 우는 소리가  무수한  소음으로 들려오는 순간이 있다. 소음은 연이어 들리게 되고 그 소음 중에서 새로운 소리를 언제나 구별할 수 있게 되는데, 그건  마치  양모 타래를 끄르던 손가락이 실타래마다 점점 가늘어져서 제대로 만질 수도 없는 실들이 엉켜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과 같았다. 그러는동안 개구리들은 계속 개골개골 물었다. 계속 깜빡이며 빛나는 별빛이 있어도 달빛이 변하지 않듯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다른 소리의 흐름을 바꿔 놓지 않은 채 배경음으로 남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거나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모든 소리는 변했고 새로워졌다. 귀의 깊숙한 부분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소리는 음울한 포효 혹은 웅얼거림 뿐이었다. 그건 바다 소리였다.


사랑의 미덕중 가장 새로운 것은 아주 단순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형은 그때 자신이 평생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형의 이 모순되는 태도를 유례없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치부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형이 그 시대에 번성했던 모든 유형의 사회집단에 대해 똑같은 적의를 품고 있었기에  그 모두를 피했고, 고집스럽게 새로운 단체를 계속 실험하느라  애썼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형이 보기에 그 많은 단체들 중 정의롭다거나 다른 단체와 완전히 구별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형은 철저한 자연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거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보편적인 사회였다. 화재나 늑대 침입을 막기 위해 방위대를 조직 할 때처럼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든,  완벽한 수레바퀴 제조인 조합이나  계몽된 재혁업자 조합 같은 수공업 조합을 통해서든, 형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애쓸 때마다 항상 사람들은 한밤중에 형이 미리 정해 놓은 숲 속의 어떤 나무 주변에 모였기 때문에 그곳에는 언제나 공모와 비밀결사와 이단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형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혀서 점점 더 깨끗해지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항상 어디를 가든 비누를 가지고 다녔다.

 

호랑가시나무, 느릅나무, 쥐엄나무(아침마다 코지모가 즐겨 앉던 나무, 바티스타가 풀을 바름), 뽕나무, 목련나무(그네를 타던  비올라를 만남), 뽕나무, 플라타너스, 벚나무(과일도둑 아이들을 만남),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올리브나무, 떡갈나무, 감탕나무(집의 정원), 대나무, 인도밤나무, 너도밤나무(고양이와의 결투), 목련나무(비올라와의 이별)......


이렇게나 많은 나무 이름이 등장하는 소설. 궁금해서 처음에 좀 찾아보기도 했다. 비올라의 비난에 절망했다가 사라질 때 감탕나무-올리브나무-너도밤나무 위를 어떻게 움직였을까 상상도 해보면서.

 

칼비노의 3부작 중 두번째라는데, 둘째증후군이 무색하게도 반쪼가리였던 자작보다 더 자유롭고 인간됨의 폭이 넓어진 것 같은 남작은 매력적이다. 반쪼가리 자작이 영혼의 탐색이었다면 나무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매개인듯 살아가는 남작은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신화같은 마지막도 너무 잘 어울린다. 

누나나 아버지가 등장할 때마다 왠지 너무 웃겼고, 그의 기록은 또 살아가는 조르바 대신 기록하는 동생이 담당. 흥미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칼비노 스타일 완전 호감.   

짐승의 끝|End of Animal|2010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

-신을 믿는 쪽이나 안 믿는 쪽이나 할 말 많은 의문점이다. 

어떤 미래는 모르고 어떤 미래는 아는 신은 일단 불완전해 보였지만

증명하지 않아도 결국 믿지 않을 수 없는 신

그 안에서 '잘해보려다가'(이 정도는 신도 인정해 줌) 결국은 거스름을 범하는 인간

그래도 '사랑이 죄'라 인간을 버리지 못하는 신

소박한 바램을 구원의 증표로 받아들이는 인간......

인간을 향한 꼰대형 신의 등장이라니 정말 신선하기도 하고

얼마 전 본 맨프럼어스 만큼이나 독창적이기도 한데

이 자유로운 상상력의 주인도 

상투적인 폭력의 굴레에 대해서 만큼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았다는 게 불쾌함1,

(보는 영화마다 반짝반짝하는 유승목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님^^)

순영에게 찾아왔다가 떠나는 야구모자의 뒷모습이 꼭 화장실 장면 같이 보인 건 불쾌함2. 

성모 마리아의 다 믿는 것 같지도 안 믿는 것 같지도 않은 마지막 소원은 참신. 

국도를 달리는 택시 한 대에서 시작해 다시 텅 빈 국도로 돌아오는 사이

이렇게 뭔가 계속 궁금해지고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엮어낸 뇌구조는 정말 신기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늑대소년은 정말 많이 포장되고 자기를 지운 영화였구나-싶어지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것 같은 조성희 감독이 

불쾌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의 장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은 박해일 반가웠지만 

이것이 무려 10년 전.

온갖 개고생이 묻어나는 열연의 이민지-진짜 순영이 같음.

해치지않아|Secret Zoo|2019

 

돌아오라, 동물옷 장인 ㅋㅋㅋ
 

처음엔 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서히 빠져들었다 ㅋㅋ

이게 진짜 다양성 영화아닐까.

단조로운 악당 좀 아쉬웠고,

3천만원 전재산 직원의 동물원 사랑은 좀 과했고,

갑자기 절친되는 변호사 친구도 좀 뜬금 없었지만,

무뜬금보다 좀 더 조심해줬으면 했던 건

동물원 관람객들의 무매너.

적당히 좀 하게 하지.

쓰다 보니 구멍만 있는 것 같지만

보는 동안 재미있었다.  


동물원 말아먹은 주제라 몸과 마음을 다바쳐 협조하는 전 동물원 사장의 

쭈굴하되 도망가지 않는 멈춤없는 자기반성-너무도 반갑지 아니한가.


이런 동물원이 있다는 것 보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암튼, 좀 더 꼼꼼하게 만들어진 이런 영화 또 보고 싶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법

여름, 아름다운 장소, 젊음.

매혹의 요소를 한 데 모아 놓은 가운데서 사랑이 꽃피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같기도 하다. 

하나의 사랑에 가망이 없어지면 

왜 어떤 사람은 그렇게나 빨리 다른 사랑에 정착하려는 걸까. 

엘리오에게는 최소한 그를 외롭게 만들지는 않을 비범한 부모가 곁에 있고

올리버 보다 조금은 더 긴 인생이 남아있기도 해서인지

마지막 엘리오의 모습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지만

화창한 사랑의 끝이 겨울 밤인 건 쓸쓸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늑한 곳이었어서 다행이다. 

디카프리오의 랭보에 비할만한 

티모시 살라메의 화보작.

소셜포비아| Socialphobia|2014

  

저 뒤의 사람들이 더 무섭다...

 

이유를 찾게 된다는 말.

그 말 자체는 면죄부가 될 수 없지만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주는 고백.

하지만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죽음을 희롱하는 것 정도는 범법이 아니라서

괜찮다는 듯 희희낙락하는 모습.

아직도 너무나 많을 

그게 자신인지도 모를 것 같은 사람들.

 

법은 주권자들의 처벌권을 대리하기에 

엄격히 인과관계를 따져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하지만

결국 가장 큰 죄는 개인의 양심과 죄책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는

눈에 보이는 문명의 발전으로 극복되지 못했다. 

 

나섰다가 돌팔매라도 맞는 사람들보다 

한 걸음 뒤에서 

적당한 패기를 정당화시키며 

다수 중의 하나로 언제든지 다시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군중 속의 개인들이 

더 슬프고 싫다.

 

살인혐의를 벗었다고 해서 강간범이 정의가 될 수 없고

과거를 숨겼다고 해서 살인용의자가 되면 안되고

배신자라서 죽어도 되는 것도 아니라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보기.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야구소녀|Baseball Girl |2019 + 코멘터리

 
 공 던지는 이주영 멋있는데, 그 사진이 없다니..

 

야구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고

얼마 전에 대학 여자야구선수 기사를 읽은 기억이 야구 관련 흥미로운 경험의 전부인데

주수인이 큰 공 하나 던지고 간다. 

확신 없이도 이렇게 달려가는 열망의 힘.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의 꿈이란 건 

그냥 언젠가는-에 그치는 많은 꿈보다 절실한 게 당연하다. 

구석구석 자기 몫만큼 힘들었던 주변의 사람들도

다들 조금씩 마음을 옮겨주었다는 게 

동화같으면서도 또 끄덕여진다.

 

천재야구소녀였으니까 

주수인은 어쩌면 선택의 고민할 필요없는 선택받은 사람인데

자라면 더 잘하게 될 것 보다

중학교가 끝이다, 고등학교가 끝이다라는 시한부 야구인생 선고를 체감하며 자란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공을 던질 자리를 만들며 

스스로 단련하는 줄도 모르고 단련한 수인의 인생스킬은 

누구나에게 정답일 수 없는데도 빛난다. 


트라이아웃에서 수인이 글로브로 공이 떨어질 때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감정구걸 1도 안하면서 마음을 얻는 우리 주수인 선수^^

어떻게 응원을 안할 수가.

극악스러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솔직할 용기가 있었던 엄마,

-한 달만 주시면 6천만원 마련해보시겠다는 데서 울컥했다.

아침 생라면도 오도독 잘 먹고, 어린이의 정체성을 뽐내는 수형이

-그건 나는 모르지. 아침부터 아무도 없었는데: 이런 천진난만한 탈어린이 화법^^

가장 갑작스런 인간반전의 주인공 최코치

-단점은 보완되지 않는다니...슬프다.

공인중개사 시험 장수생에 알 수 없는 불법에도 연루됐지만, 그래도 수인이 편인 아빠, 

-경제력 없다고 시시한 아빠는 아니란 걸 보여준다.

리틀야구단 때부터 아직까지 야구하는 사람은 우리 뿐이야-로 그냥 이해되던 정호의 동지애,

분야가 다른 동료이자 친구인 방울이,

잔잔하게 어울리면서도 개성있는 사람들이어서 좋았다. 

어딘가 공포의 외인구단 시절을 생각나게 만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은 좀 특이했고.

  

이동진의 소감 멋있었다-

온 세상이 한 소녀의 꿈을 응원하는 얘기가 아니라, 

꿋꿋이 길을 가는 한 사람이 주변을 변화시키는 얘기-라는.

그러고 보니 수형이는 여기서도 특별했다. 

보통 가족 영화에서 형제자매는 앙숙이거나 

찌질한 갈등을 유발하는 소모품 같은 건데 

우리 수형이는 언니 시합 전에 치어리더 공연도 펼쳐줬으니까.

 

놀랍게도 이 이야기 같은 진짜 주인공이 있다고 한다. 

안향미 선수-아쉽게도 없는 것 없는 유선생채널에도 동영상이 없는데 

고교선발로 뛰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니 대단한 분이 있었다. 

 

이 남는 여운을 주체 못하고 있는데 

코멘터리가 딱 눈에 들어왔다. 

 

기억나는 이야기 몇 개.

주수인이 너클볼 연습을위해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하던 대사,

'이건 예뻐지는 거 아니고 단단해지는 거야' 맘에 들었는데 

이주영도 그 대사가 좋았다고.

밥 때마다 수인이 가족이 앉는 자리가 달라진 건 불안정한 가족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한 설정

최코치가 헥헥대며 수인이를 못따라가던 날은 설정 상 술마신 다음날이기도 해서였다고.

원래 주수인은 1호인 안향미 선수에 이은 2호를 상징하며 

등번호 2번을 달게 하려고 했었는데

아무도 몰라줄 것 같아 감독 부인의 생일로  바꿨다고^^

감독이 생각했던 영화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학교에 걸려있던 주수인의 입단사진이 정호의 프로입단사진으로 바뀌는 장면과

또 하나 있었는데-기억이 안남--;;

최윤태 감독 말이 너~~~무 느려서 좀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렇게 참한 영화를 만들었나 싶기도 했다^^

들을수록 수인이 같은 이주영,

들을수록 참한 이준혁-영화 속 정호 같은 느낌인데, 서동재가 더 유명해져서 말이야ㅋㅋㅋ

의 애정 넘치는 코멘터리도 영양만점.

엘리자베스타운|Elizabethtown|2005

 이 둘이 이 때 이 영화를 찍었다는 건 

안구정화 분야에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업적이다

 

인물로만 보자면 

인생 최고 좌절기의 드류를 위해

기적같은 타이밍에 맞춤형 오지랍 여신같은 클레어를 창조해서 선물한 

인공미 물씬 나는 이야기지만,

그 둘을 오가는 공기는 

가족과 죽음, 잊고 있던 것들, 소원해진 것들로부터의 기운이 가득하고

전도유망한 청년의 성공과 좌절까지 여러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어서

보기에 즐거웠다. 

마지막은 

마치 연애코치의 조언을 형상화 한 것 같은,

무기력증 드류에게 소소한 목표를 계속 이어가게 하면서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못하는 게 없고 

천리를 내다보는 듯한 클레어의 미션파서블 목록.

그 끝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완전 꿈의 엔딩.



 올란도 볼룸의 리즈 장면도 하나 곁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