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2004

 

실화였다고 해서 더 미루었던 영화였는데
영화는
마치 문학처럼
보도된 잔혹한 실화 속의 아이들의 버여지지 않았을 부분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사랑하지 않은 것 같지는 않은데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친구같은 엄마.
그런 엄마였지만
그조차도 사라진 뒤에
의젓하기만 하던 아이들은
점점 그늘 속에서 쇠퇴한다.

아키라의 집에서 게임하는 아이들로
아키라의 집은 가정이 아니라 영업장이 되어버렸다.
오해로 시작해 음식을 얻기도 하다 도둑질을 하게 된 아키라.
사람은 변하고 아이들은 더 빨리 변한다
아무리 의젓한 아이라도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생활비를 주는 것으로는 그냥 자라지 않는다는 것
제대로 자랄 수 없었던 건 생활비의 부족만은 아니었다.
평범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어른은
낳고 돈 벌어다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 뿐 아니라
'존재함'으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것인지.
이 아이들이 남겨진 환경과
그 속의 비극이 물리적으로는 그려지지 않았던
부모와 어른의 자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PS. 누구나 아이였고 누구나 노인이 되는데
설명이 어려워 짜증이 나는 건 그렇다치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편의점 주인의 사과
-무례해선 안된다.

테이킹 라이브즈|Taking Lives|2004


제목만 들었을 땐 공포영화인 줄 알고 안봤었는데 

잔혹한 범죄가 등장하지만 공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살인으로 인생세탁을 이어가는 범인과 

정의의 편(?)인 가족의 결정적 제보.

지금보면 약간 예측 가능한 결말이긴 하지만

2004년도를 생각하면, 그리고 몇 년 전 화차를 생각하면

흡입력 있는 이야기.

졸리의 액션 재능이 큰 싹을 틔운 영화가 아니었을까.

여기서는 라라 크로포드 스타일의 무적 액션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자유 같은 표정과 느낌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졸리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의미한 노출전략이나 

이상하게 편집된 포스터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졸리의 시절도 보게 된다.

그래서 인지 

전체적으로 세븐 같은 묘한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는 좀 독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감독을 응원하게 되지는 않는다. 

 

옛날 영화를 보는 뜻밖의 재미는 

우주대스타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전쟁과 평화에서 피에르 역을 맡았던 폴 다노의 강렬한 도입부,

너무 평범하게 욕먹을 만한 형사로 소비된 슬픈 올리비에 마르티네즈,

생각보다 너무 짧은 출연의 키퍼 서덜랜드.

볼만한 영화치고는 참 안유명했구나...

솔트|Salt|2010

 

 

졸리에 의한 졸리를 위한 졸리의 영화.

원래 탐 크루즈를 주인공으로 썼다가 탐 크루즈의 다른 첩보영화들과 너무 비슷해서 바꿨다는데 

이야기는 여전히 어디서 나온 듯 하지만

졸리의 등장으로 완전 새로운 느낌. 

마지막 악당의 길고도 긴 고백은 좀 식상했지만 

아무튼 2편이 안나온 게 신기한 액션물.

졸리의 액션에는 뭔가 듬직함이 있다^^ 


PS.  사랑을 위해 살다 가신 한 분에 애도를...

스파이 게임|Spy Game|2001

 


재미있게 봤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쫀쫀한 이야기들의 시절에 만들어진 스파이 영화.

소련 이후 다양해진 적국들에서 살아남는 비밀요원들.

여기에 로맨스도 있었는지는 까먹고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브래드 피트는 초반부터 

출연작들이며 인물까지 잘 고르고 잘 쌓고 있었다. 


미남의 대명사였지만 달달한 로맨스 영화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나마 The way we were가 있지만, 그것도 해피엔딩 같은 건 아니어서-

그래서(?) 더 멋있는 로버트 레드포드와의 마치 부자지간을 보는 것 같은 만남도 좋고.

 

인사이드 잡|Inside Job|2010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위기나 경제개혁법안 좌초의 원흉으로 

모피아 집단이 지목되기 시작했었는데

미국 월가출신의 사유재산 절대지지자들이자

공직마저도 이익집단의 조력을 위해 맡는 

이 사람들-규모자체가 다르다. 

빅쇼트가 주식 시장을 다루면서 월가 안에서 재앙의 시작을 다뤘다면

인사이드 잡은 이미 오래 전 레이건 정부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해 

드디어 폭발해버린 금융인들-이라 쓰지만 욕망의 전차들이라고 불리울만한-의 

미국정복기를 다루고 있다. 

어마어마한 취재력과 빛나는 통찰력 멋있었지만

역시 그 짬짜미의 거대한 규모와 사고의 피해를 생각해 볼 때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보니

마지막 한 마디로 희망이 대체되지는 않았다.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너무 길어져

습관성 무기력증에 빠지기 전

어떤 변화라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면 좋을텐데

10년이 지나 세계 재앙 속에서 되돌아보는 2010년은 

쉽게 달라지기 힘든 미래를 준비한 계획이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시켜주고 말 뿐. 

모두가 작정한 것은 아닌데 

왜 항상 욕망의 전차들 앞에 다 무력해지는 것일까.

선의로 보이던 정책입안자들은 과연 다들 모르고 속은 것일까?

부패는 항상 분노의 크기가 유능함처럼 여겨지는 반면

선의의 부족한 효과는 무능처럼 보이게 마련.

바뀔 날이 언제나 올런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SAMJIN COMPANY ENGLISH CLASS|2020

 

 
뭉쳐서 산 건 좋지만 회사를 구한 답례로 대리승진은 너무 약소한 듯

 

이렇게나 각각 달라보이는 세 사람의 잘 맞는 합과 

이젠 옛날 같은 90년대 풍경을 살짝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어딘가 노오력의 케미가 에워싼 듯한 순탄한 전개도.

보는 동안 시간 잘가고 

열심의 키워드가 여기저기 번쩍하는 것 같아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여자애'라서 더 만만하게 부려먹던 것도 분명 있던

저 이상한 직장의 세계.

이젠 다 없어진 거 맞겠지?

그런데도 씩씩하게 일하는 세 사람, 

그런데도 심지어 애착까지 가지고 있던 이자영-어쩐지 그 남다른 성공을 겪고

지금은 좀 이상한 성공인이 되어있을 것 같다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뒷부분 외적 무찌르기는 좀 간질간질 했지만 

두산의 낙동강 페놀 사건-이런 걸 생각나게 해줘서 고마웠다. 

 

승리호|SPACE SWEEPERS|2020

 

 
포스터 내취향

 

어딘가 정겨운 느낌의 꼬질꼬질한 SF랄까-로보트 태권브이같은 느낌.

그런데, 보면서 여러가지 궁금하다.

-처음에 어떻게 다른 청소선들 걸 빼돌린다는 건지(진짜 대충 봤네1-다시 보고 이해됨)

왜 내려갔다 올라가는 태호가 미친 건지,

사장은 그렇게 사람을 막죽여도 되는지,

우주에 돈이 흩날리던데 빚은 뭘로 갚았는지...(진짜 대충 봤네2-구호자금) 등등등.

 아니 저기서! 싶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를 비롯하여(특히 박씨)

사이 사이 얘기 조각이 잘린 느낌도 여러 번 들었다.

승리호가 꽤 스펙이 괜찮은 우주선인 건 알겠지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건지, 

승리호의 넷은 어떻게 만난 건지.

어차피 인간미로 갈 거면서 굳이 뻔할 것 같은 천공의 섬 같은 인공도시 얘기를 하느니

사람들 얘기나 더 해주지. 

나노봇도 그렇다-좀 더 정보를 원해요...

내내 엄청난 외국인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라기보다는 서프라이즈 같은 느낌ㅋㅋㅋ

제일 인상 깊은 배역은

거대기업의 비밀이 보도되는 순간 손까지 부들부들 떠시던 분.

-나라면 잠시라도, 저게 뭔소리래? 싶었을 것 같은데 

모든 사람들이 뉴스보도와 동시에 분노와 경악 모드에 돌입.

주연배우들은 좋긴 했지만 뭔가 케미가 있는 느낌은 아니어서 그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두 번을 보게 된 건

다 꽃님이 때문이다^^ 

나는 분명 조성희의 영화에 송중기와 김태리가 나와서 봤지만

보고나면 온통 우리 꽃님이 생각 뿐. 

사랑스러운 여아 순이와 

사랑스러운 아이인 꽃님이.

칙칙한 쓰레기공장에서 무지개빛 뽐내던 꽃님이는 희망이 뭔지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아이

토마토장사하던 꽃님이는 너무 즐거워 보였는데

장사 잘 된다!를 외칠 땐 칙칙하게 버림받은 지구는 잊을만큼 환하고

뭔데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할 땐 

저런 꽃님이를 멀리서만 보고 웃어주는 태호삼촌은 극한직업.

요맘때의 아이들은 부모 없이 잘 놀다가도

부모들이 돌아오면 울음을 터뜨려서 봐준 사람 뻘쭘하게 만드는 무서운 기질이 있는데

꽃님이가 아빠 만나서 돈벌고 머리감고 밥먹은 얘기할 때 울컥했다.

갑자기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 뚝 떨어진 거 였는데 

이렇게 적응하는 건 애든 어른이든 아무나 할 수 없다.

이 정도 의리있는 꽃님이라면 목숨도 바칠 만^^

근데, 꽃님아 맛있는 건데 왜 핫소스를 발라먹었니 ㅋㅋㅋ

업동이 명대사: 어---ㄴ니? ㅎ ㅎ ㅎ흐흐

김태호 명대사: 그럼 아빠 한 번 보여줘(시작 즈음 열심히들 산다며 다른 청소부들 비웃을 땐 와, 한석규다 했는데 여기서는 송중기인데 아빠) + 꽃님이 피해서 도망갈 땐 늑대소년 철수

장선장 명대사: 내가 진짜 소름이 끼쳐가지고(최고 빵터짐).

타이거 박은 내내 좋은 목소리와 똑떨어지는 발음을 자랑하는데 

그 많은 중 '다른 엄마들은..'이 왜 기억에 남는 걸까 ㅋㅋ

그리고 김무열-잠깐이지만 진짜 아빠 같았다. 


현실적인 척 하면서 영화속에서도 우울하기만 한 게 장땡이 아니라는 건 이미 베테랑이 보여줬지만

우주의 청소부들이 희생양이 아니라 변함없이 열심히 살고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마지막엔 청소선 다운 뭔가 기발한 공격과 방어를 기대했는데 평범한 전투는 좀 실망.

나노봇의 기적 꽃님이는 인류와 우주의 혼혈로 순혈주의를 쳐부수는 느낌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구에서 뭔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고, 

줄거리와 상관 없이 그냥 맘에 드는 대사들도 좋았다.

-주지도 않을 돈을 왜 세서 보여줘, 이 흡혈귀 같은 새꺄...

도로시 피해 도망갈 땐 철수인 줄^^

 

늑대소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박씨-라는 호칭이나 양말꿰매기 같은 것도 좀 귀여운 복고.

근데 좀 신기한 건, 

별 것 없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몰입감과 긴장감을 만들던 

늑대소년 이전의 조성희 감독의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뜬금없이 사냥꾼의 밤이 생각났다. 

영화 하나에 되게 많은 것이 들어있어서 이게 뭐지 싶은데 재미있었지. 

밍밍한 나름대로 나는 괜찮았지만

이것은 아주 훌륭한 리메이크용 이야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 그리고 승리호는 

영어가 변방에 머무는 최초의 우주영화. 

-----그리고 꽃님이 보고 싶어서 또 봄.


+ 승리호가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

제발 다국어 환경과 편견프리 설정은 그대로였으면 좋겠고

설리반의 철학적 면모가 좀 더 보였으면 좋겠고

청소부들의 반격방식이 좀 새로웠으면 좋겠고

꽃님이 색동옷도 그대로였으면.

그리고 자란 꽃님이도 어떻게든 한 번 나와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