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

그러나 그는 원했던 것처럼 반응을 보일 수 없었는데 그때 오로지 마음만이 할 수 있는 빌어먹을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항상 적이라고 생각해 온 그 남자가 같은 운명의 의생자이자 순간적인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 즉 같은 멍에에 묶인 두 마리의 동물임을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보낸 끝없는 27년이란 세월 동안 처음으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을 느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베날 우르비노의 구혼은 결코 사랑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제안했다고 하기엔 이상한 세속적인 재물로 채워져 있었다. 사회적 경제적 안정과 질서, 행복 눈 앞에 숫자 등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었고, 이런 의문은 그녀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녀 역시 사랑이 실제로 삶을 살아 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가지는  독이 들어있다며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정신 병에 걸린  시누이들과 그런 여자들 을 낳은 어머니가  두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비누칠을 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할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럽에서 남겨온 사랑의  부스러기를 가지고 비누칠을 해주기 시작했다.


마흔 살에  접어 들었을 때, 그는 몸의 여러 곳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느껴 의사를 찾아가야만 했다. 여러 검사를  한 끝에 의사는 “ 나이 때문입니다”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날 오후 그는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더듬으면서 과거를 되돌아 보았고, 우연한 여자들과 나누었던 사랑과 명령을 내리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가 피해야 했던 숱한 함정들, 모든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고  페르미나 다사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은 그녀의 것이라는 잔인한 결심을 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창자까지 떨리는  오한이 느껴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서 그는 정원 도구들을 손에서 놓고  노년이 가하는 첫 발톱에  할퀴어 쓰러지지 않도록 묘지의 벽에  기대야만 했다. 그는 떨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기랄! 이 모든 게 30년 전의 일이라니!”


그러나  우르비노 박사와 점심을 먹고 돌아온 그날 오후,  식전에 포트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식사  중에 적포도주 한 잔을 마시면서 승리의 대화를  나눈 다음, 그는 젊었을 때처럼 흥겨운 발동작으로 세 번째 계단을 오르려고 하다가 그만 왼쪽 발목을 접질려서 뒤로 벌렁 나자빠졌지만 기적적으로 목숨만은 건졌다. 넘어지는 순간에  그는 그런 사고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머릿속이  맑았다. 왜냐하면 한 여자를 그토록 오랫동안 너무나 사랑하는 두 남자가 1년의 간격을 두고 동일한 방식으로  죽는다는 것은 인생을 논리 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 콜레라 버전의 '지붕위의 기병' 을 상상했는데,

반 백 년에 걸친 지고지순한 로맨스는 아니었다^^

1권에서는 마르케스의 화려한 입담이 대체 뭔 얘기를 하려는 건지 호기심을 끌다가,

마지막에  남편의 장례식 날 옛사랑의 고백을 다시 받는 페르디나 다사에 이르러 흥미진진하게 끝난다. 

본격적인 2권은 그들 시점의 현재. 콜레라 시대의 사랑’들’이라 불러야만 할 것 같은,

사랑이 너무 절실하다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애인들 얘기가 대부분이라 뭔가 싶었지만,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이 걸린, 꽤 긴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의 끝이 궁금하기는 해서

어쨌든 끝은 봤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보며 ‘질투는 나의 힘’의 출판사 사장이 생각났다.

집에도 잘하고 애인에게도 잘하면, 

애인만 없지, 집에도 못하는 사람보다 가정적인 거라고 했던가...암튼 그런 인물이었는데,  

정신적으로는 한 사람에게 거의 노예처럼 묶여 있으면서도 

몸은 한 없이 자유로운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뭐라고 얘기하려나 했더니,

그냥 거짓말을 한다 ㅋㅋㅋ


아내가 남편을 필요로 할 때 충실하다면 출판사 사장의 변은 기능적인 면에서는 일리가 있긴 하다.

문제는 자기만의 시간을 선을 넘어 쓴다는 것인데,

그의 항변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아내도 그의 머릿속 전제를 알고 있고 동의해야 당당할 수 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페르미나 다사에 자신을 속박한 건 스스로 정한 것이어서

동정을 지키건 말 건도 자기 맘이고,

그의 연인들도 그와 같은 몸의 자유인들이었으며,

불공정의 희생자인 일부 살아 있는 남편들은 그 아내들의 구역이니 그렇다 쳐도,

평생의 사랑의 독특한 취향에 기댄 거짓말로,

다른 집 같았으면 백 번도 헤어질 법한 이 남자의 사랑 방식

-그는 두 여자의 죽음에 직간접 책임을 느낄 법한 일을 했고,

그 평생 사랑이 이루어져 가는 동안에도 연습 삼아 또 만나오던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어떤 것도 그의 평생 사랑을 이루겠다는 의지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둘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건 일단 천생연분으로 나이 먹어갔기 때문이다.

남자는 50년을 넘게 기다린 연인에게 자신이 동정을 지켰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부정을 고백한 남편이 자신의 자존심까지 상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여자는

그런 거짓말이 남자다운 것이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이 긴 사랑의 성공을 바라보는 건 

맘에 들지 않은 두 주인공의 절절한 연애를 보는 것 같은 무감동.


오히려 인상적인 건 노년기를 살아가는 그의 방식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처음 부터 남편이 죽은 뒤 첫사랑과 다시 만날 계획이었고

-아마도 그래서 그렇게 많은 남편과 헤어진 여자들을 그렇게나 많이 만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이 들어감을 낯설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이유로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온 것에 힘을 얻으면서 

살아있는 동안 더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 평생 사랑의 가장 큰 성취라는 게 더 공감할 만 하다. 

아무튼 제목 같은 낭만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꽤 유명한 책일텐데 비문과 오타라니 민음사 약간 실망. 

 

인상 깊은 인물들의 한 마디

 

“사람의 마음속에는 창녀들이 오글거리는 싸구려 호텔보다 더 많은 방이 있어” <플로렌티노 아리사>

 

“공적인 생활의 과제는 두려움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부부생활의 과제는 지겨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페르미나 다사>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좌절감은 내가 그토록 많은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내 장례식에서는 부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레온12세>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정략 결혼을 해서  얻은 작품이자  은총이지요. 그건 창녀가 되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방법이에요.” <사라 노리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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