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Argon|2017



자신을 버려 '기자'를 구하겠다는 김백진의 낭만.
많은 보도의 끝에서 들었던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입니다'라는 말을 지키기 위한 사투.
멋있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일깨우는 선배에게도 애정은 느껴지지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기자의 힘으로 최대한 돕겠다고 말할 수 있는 선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철이 연구원에게 다짐했던 것 처럼.

여전히 인터넷 기사들 속에는
시각도, 종합도, 분석도 없는 배설같은 기사들이 넘쳐나며
소양을 의심케 만드는 내용도 올라오고
어떤 직종 하나에 균일한 품격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어딘가에서 김백진들이 버텨주고 이연화들이 자라는데 자극이 되는 이야기로 남기를 기대한다.

끝까지 몰아가는 이야기의 힘.
대기업 불량분유 사건에서는 제보자의 자살도 큰데
거기에 조작했다는 문자, 뒤이어 음성파일에, 제보자의 과거까지
그 오해를 살만한 층층을 돌파하며
호도란 얼마나 쉽고
증명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줬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팀플레이도 보기 좋았다.
막상 자기 일이 되니 힘들었다는 김백진의 당연한 고뇌도 놓치지 않았고
사과하는 신철도 그 자기 일 앞에 힘든 양심을 보여주었다.
국어교사의 전화는 너무나 당연한 지적인데 거기다 맥락을 들이미는 신철은
말을 다루는 전문가로서는 별로 훈련되지 않은 기자들의 현주소.
그래도 열심히 받아적었다니 나중에 참고는 하겠지.

김백진과 신철도 있지만
믿음직한 새가슴 엄민호,
팔랑팔랑 동지애로 진실을 덮자던 후배기자들,
확인도 없이 신철을 묻고 살아보겠다는기자집단의 움직임,
10년 경력에 150만원 월급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육혜리,
이해는 된다 해도 끝까지 잘도 지내는 게 좀 아닌 것 같은 막내작가,
사나이를 부르짖는 21세기 청학동 청년 같은 또 다른 막내작가.

하루종일 치열함에 부딪힐 일도 많을 것 같은데

결국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가 보도정신에 몰입할 수 있는 동안
누군가는 밥줄에 한숨을 지어야 하는 상황도 모순적인 단면.

아르곤에서 해결해주지 못한 슬픔.
덜 가졌기 때문에 미안하게도 감사해야 할 일이 많아 지는 것.
작가들의 보도해주세요-나
욕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줘버리는 육작가의 선택을 보면
더 가져서 더 기회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평범함을 보잘 것 없게 평가하며 부당한 선택 앞에 괴로워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상황들이 정말 못마땅하다.
그런 걸 '방법'이라고 '유능함'이라고 평가하는 최수민의 세상이 김백진과 못 만나서 다행이고.
그런면에서 마지막에
이연화가 정직원이 되기보다는
아르곤의 경력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노종면이 아니었다면 최승호도 사장응모를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노종면이 사장 응모를 하려고 그 긴 시간을 견뎠던 건 아니겠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 뒤로
얼마나 많은 '우리도 언론인'이라 소신을 지킨 계약직, 비정규직이 기억 저편에서 고독한 정의를 실천했을까.
마침 엊그제 그것이 알고 싶다와 뉴스타파 전 작가의 고발 기사를 하나 읽었고
내용이 충격을 주기 충분했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고치겠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수법의 답변으로 끝났다.
욕하면서 배우니?
힘 없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또 이렇게 언론사들의 짬짜미 속에 사라지려나. 
정의에서 조차 기울어진 운동장.

이연화 기자
이미 기자로 뛰고 있었으면서
존경하는 사수를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작이 매끄럽지 않은 건 사실.
애초에 이렇게 취재할 수 있는 기자를 제대로 뽑지도 못한 선발과정도 좀 불공평한 거지만, 아무튼.
천우희가 아니었다면 이연화가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었을까?
일상 같은 장면에서 온몸근육을 완급조절하며 자연스럽게 강약을 줄 줄 아는 젊은 배우.
에너지가 살아넘친다.
그런데 인터뷰에서는 이쁘게 나와서 좋았다니...이런 연기를 하고도 미모에 만족하다니 눈이 너무 낮은 거 아냐 ㅋㅋㅋ

김백진의 매력포인트는
'쓰레기'라고 쉽게 일갈하면서
그 '쓰레기'의 대표인 유국장의 날 서린 공격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반성의 자세다.
중2병 딸의 팩폭에 언제나 간단히 무릎꿇는
이렇게 얇은 심장이라는 것이 희망적이다.
자기 아픔이 멎지 않는 동안은
남의 아픔도 모르기 어려울테니까.
김주혁은 앵커를 진짜 해도 될 것 같은 자연스러움과
잊을만 하면 한 번 씩 반짝하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어딘가 정이 가는 김백진을 만들었다.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김주혁.
아르곤팀과의 작별장면이 새삼 밟혔다.  

낙산 허종태 선생
노숙자 체험기사는 타방송사의 비슷한 보도로 물먹고
야심찬 화물의 여행 기사는 국회의장 아버지 덕에 시작했다가 그 아버지 직책 덕에 물먹고
끼어보려던 점집 가는 정치인들 기사는 점집에 놀아나서 끝.
끊임없이 기획을 해대는 탐사보도팀 같은 아르곤에는 정말 맞지 않는 낙하산 기자로
낙하산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면서 용병에게는 정의감에 비례하는 100% 분노를 보이는 기자들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독특한 리듬을 가진 조현철이라는 놀라운 배우 덕에 엄청 웃었다.
차이나타운의 홍주였다니...변신이 기대되는 배우 추가.
허종태 노숙자 기사 때 편집실 긴 머리 직원-짧지만 인상적인 순간.

신철 기자-육혜리 작가
주인공들을 연애시키지 않으려다 멜로를 몰고가게 된 두 주인공^^
너무 잘 어울리는데 잘들 해보세요~
박원상은 벌써 두번째 팔팔한 처자들의 찜에 청초(^^)하게 대처하는
양심적인 중년 로맨스를 시전하고 있다.
어쩐지 좋은 이미지^^
박희본은 어디서나 그 몫을 충분히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 느낌.
언제 어디선가 폭발하는 모습을 아마도 보게 되겠지.

최근화 앵커
-지금 막내가 엉망이에요.
-막내는 항상 엉망이야.
인상깊은 너무 애정 어린 대화여서 기억난다,
별로 살갑지 않을 성격의 두 사람-최근화, 김백진의 대화라서.
  
이런 언론인들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호사라고 느껴지는 요즘.
예상보다 꼼꼼한 전개에 감탄하며 봤다.
김주혁이 있다면 시즌2도 가능했을까....

진실이 부패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보호막이라는 뜻에서 붙인 제목-아르곤.
의미는 좋지만 좀 뜬금없다는 생각을 든다.
직관적인 제목이 아니다보니 만드는 사람들 끼리끼리 의미부여하며 좋아할 것 같은 편견이 생기기도^^

----보면서 거슬렸던 한 장면.
김백진이 조폭 아내를 찾아가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검사의 잘못이라며 검사가 성적인 요구를 했냐고 묻던 것.

그 비슷한 장면이 어제 손석희의 뉴스룸에서 등장했다.
김백진의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적인 선택이 그랬듯
드라마에서라도 좀 바람직한 장면을 연출해줬으면 어땠을까.
뉴스룸의 인터뷰는 드라마와 달리 피해자가 큰 용기를 낸 경우지만
그런 질문은 여성 앵커가 맡아줬더라면 좀 낫지 않았을까.
손석희는 아마도 책임감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리고 손석희라서 더 파급력이 있겠지만
감수성의 부족은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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