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아람누리 마티네콘서트 5 - 건반을 타고 흐르는 낭만의 대서사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콘체르토의 아침과 함께 막을 내리다...
내년은 All that String이라고 한다.


-모두 1악장만 연주-
라흐마니노프 2번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지만 또 다른 콘체르토의 세계를 구경했다.

첫번째, 스크리아빈.
박종훈이 아름다운 곡이지만 들을 기회가 별로 없어 아쉽다며 소개한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콘체르토 F # minor OP20은 연주되는 동안 곡번호를 외워둘 만큼 맘에 들었다.  



두번째, 드디어 라흐마니노프.
내가 이 곡을 들을 때 피아니스트에게 반하는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시작할 때-소리가 얼마나 단계적으로 깊어지는 지와 1악장의 클라이막스 직전-얼마나 영롱하게 또로록 구슬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지이다. 피아니스트 이효주에게 깜짝 놀란 건 어마어마한 파워. 즐겨 듣는 리흐테르 스타일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섹시하달까? 그 격정에 끌려 눈물까지 흘렸다. 1악장 뿐인 것이 아쉬웠고, 정말 멋진 연주라서 엄청난 환호와 브라보를 예상했는데 헐..이번 공연 관객들은 너무 얌전^^
독주회를 찾아가고 싶은 피아니스트.

세번째 쇼스타코비치.
트럼펫 에서 트럼펫과 피아노에서 결국 피아노콘체르토가 되었다는 2번. 이상하게도 스크리아빈과 쇼스타코비치에서 유난히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의 소리가 따로 들렸다. 오케스트라도 매끄러웠고, 피아노도 좋았는데...왜 그랬을까.

네번째 차이코프스키.
들을 때마다 망아지 같이 건반을 열심히 달리던 소년 키신의 모습이 생각나서 일단은 웃으면서 듣게 되는 1번  콘체르토. 박종훈은 오케스트라에 잘 맞춰주는 피아니스트인 것 같다. 이 공연에서 가장 오케스트라 호흡이 좋았던. 1악장이긴 해도 워낙 긴데(리흐테르 버전은 무려 22분) 연주 끝나고 숨을 몰아쉬는 박종훈을 보니 그동안 여러 번 얘기하긴 했지만 정말 그동안 큰 일했구나 싶었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짝짝짝~~~

(중간에 짤림...)

다섯번째 프로코피에프.
아마도 이런 극적인 분위기 때문에 발레음악을 많이 작곡한 게 아닐까? 듣는 동안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밝은 성격의 주인공에게 극 초반 갑작스런 시련이 닥친다.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다가온 익살스런 친구의 충고. 충고를 따르는 주인공에게 다시 닥쳐오는 또 다른 시련. 힘겹게 헤쳐가다 포기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펼쳐지는 행복한 평원-뭐 이런 거^^ 어느 대목에서 발레리나가 달려나와도 자연스러울 것 같았던 음악. 김영호 피아니스트는 박종훈이 20년 전 듣고 바로 악보를 사서 연습하게 만든 연주자라고 한다. 연주자도 관객도 기억하는 공연이라니 듣기만 해도 멋지다.

박종훈의 앵콜은 항상 겸손하게 시작해서 즐겁게 끝나는 열린마당이다. 관객들에겐 아쉬움을 달래주는 뒤풀이지만, 연주자들에겐 사귐이 시작되는 인트로 같은 느낌? 오늘은 마지막 러시아민요 앵콜을 두고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가위바위보를 했다(김영호 피아니스트가 젤 귀여웠음^^).
차례로 두손, 네손, 여섯손, 여덟손이 될때까지 반복되던 멜로디.
2월 시작공연만 해도 언제 10월이 올까 했는데 어느새 마지막-아쉽다.

두달만인데도 가을이 깊어져서인지 달라진 아람누리 풍경.
예전을 떠올려보니 어마어마한 변화가 느껴진다. 5년 전 공연장은 피아노콩쿨을 앞 둔 것 같은 꼬맹이들과 보호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새 공연장은 중년들로 가득 차 있다. 혼자 오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지만, 특히 해가 갈수록 연령이 높아지면서 부부가 함께 오는 모습이 늘고 있다.
덩그마니 놓여있는 공연장이 아니라 동네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세월을 쌓아가고 있는 느낌.
가까이 있어 더 즐거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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