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1995-2004-2013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은
나를 닮은, 때로는 내가 알던 사람을 닮은 사람들이  
언제든 내가 문을 열기만 하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주는  
바래지 않는 추억상자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려 20년에 걸쳐 나타나 준 제시와 셀린느.
최근작인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벼르다 드디어 세 편을 연달아 봤다.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IMG:http://www.theguardian.com/film/movie/58808/before-sunrise

마침 대판 싸우고 있는 중년 독일부부의 고성을 피하다가 만나게 된 제시와 셀린느.
제시는 스페인으로 1년 동안 고대하던 여자친구방문여행을 갔다가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서 기차에 몸을 맡긴 상태였고, 셀린느는 할머니를 만나고 파리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자기들 얘기, 세상 얘기, 사람얘기를 웃기도 발끈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나누는데,
입시지옥의 탈출구인 '대학생'에 담긴 선망의 20대와
돌아보면 꼭 같진 않아도 비슷하게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은 추억의 20대를 합쳐놓는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치기어리게 운명에 모든 것을 걸고 아쉬움과 그리움을 만끽하는 마지막 까지 
풋풋하고 예쁜 그림이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고음을 못알아 듣고, 여자는 저음을 못알아듣게 되는 것이
셀른느의 말처럼 불통의 씨앗이 될 지, 제시의 말처럼 안잡아먹고 살게 해주는 힘이 될지를
그들이 20년 후 보여주게 되리란 걸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테지만^^
레코드가게의 좁은 청음실에서 수줍게 서로를 바라보던 모습과 
레스토랑에서 친구와의 통화를 가장해 고백하던 장면들이 풋풋한 연애감성을 불러일으킨다.

Kath Bloom 'Come Here'
아마도 분위기 있는 멜로디를 떠올리며 집어들어들었을텐데 
담백한 목소리에 의외로 대담한 가사가
수줍게 시선을 피하는 두 사람의 풋풋함과 정말 잘 어울렸다. 

여기만 봐서는 정말 연애고수 같은 셀린느^^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IMG:http://e-filmblog.blogspot.kr/2012_08_01_archive.html

성공한 작가가 되어 파리로 책소개 여행 초대를 받은 제시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셀린느의 재회.
잘 알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두고 소원한 부부관계에 외로움을 느끼는 제시와 
종군사진기자와 만나면서도 비엔나 재회 실패 이후로 
헤어진 남자친구들이 모두 다른 여자와 결혼한 것에 상심한 셀린느가 
울컥 마음을 열다가 다시 시작할 듯한 전조를 보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아쉬움속에서 마침 제시가 고른 셀린느의 자작곡-왈츠는 이 영화속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장면.
하지만, 중요한 건 9년이 세월을 너머,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와의 대화를 원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셀린느의 공간속으로 들어간 제시는 
여행에서 생활로, 
좀 더 넓어질 두 사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


IMG:http://www.flixist.com/sundance-review-before-midnight-214447.phtml

파리에서의 재회로 쌍둥이의 부모가 된 제시와 셀린느의 여름휴가. 
그리스로 작가초청여행을 온 제시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공항에서 배웅하며 아쉬워한다. 
이혼 후의 문제들-전 배우자와의 관계,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 집안일, 거주지, 주도권싸움 등등 
이제 10주년을 바라보는 부부의 문제는 이 낭만 연애커플도 피해가지 못했다.
그들의 대화는 이제 자기 자신의 생각보다는 서로가 잘 아는 사람들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털어놓고 나누는 것만으로 끝날 수 없는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이 대부분의 대화를 잠식한다. 
앞의 두 편의 기억이 아련한 상태로 처음 비포미드나잇을 봤을 땐, 
쉴세 없이 잡다하게 이어지는 대화가 좀 피곤도 했지만, 
연작으로 다시보니 그 대화들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이 둘은 다른 무엇보다도 대화로 이어진 연인이 아니었던가. 
애틋함과 설렘, 아쉬움과 그리움이 사라진 자리엔 
무게도 부피도 있는 실체적인 일상의 감정들이 역사처럼 쌓여 
더 이상 그들은 낭만의 세계를 유유히 헤어쳐나가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쉽게 관계를 끊어버릴 법한 격한 감정의 발산조차도 
감정의 역사의 한 장으로 쌓아올리는 단단한 성숙을 이뤄낸다. 
다시 시작하는 그들의 마지막.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내가 셀린느라도, 
다시 돌아간 오스트리아 기차에서 제시를 따라 내리기를 망설이지 않을 것 같다. 
어찌보면 더 깊은 낭만을 보여주려는 일상으로의 침투였는지도^^ 

해뜨기 전, 해지기 전, 한밤이 되기 전...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취한 것으로 나이를 세며 
마치 그 순간이 결승지점인 것 처럼 표현하는데 익숙한데 반해, 
모두 before로 시작하는 연작의 제목은 
삶을, '무엇'을 이루었는지 보다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정작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한 밤이 왔을 때의 그들의 삶은
영화 밖에 있지만,  
삶은 그렇게 계속 되고, 그러니 
남아있을, 오지 않은 것들을 계속 기대하라는 희망적인 부추김 같기도 하다.
  
PS. Before Sunrise가 만들어진 95년은 경제한파가 몰아치기 직전이었고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작된 지도 몇년 지나 우리나라에도 배낭여행이 번져가던 때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들 '만나면 뭘하냐, 말이 안통하는데'라고 한숨들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이 '현실적'이라는 절대신에 복종하고 있는 것 같은 지금 
다시 본 낭만의 소소한 스케치가 보고 난 뒤 조금 울적하게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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