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2000




요 애기의 첫마디는 'ball'이었다고...



한 남자가 침대에 널부러져 자고 있다.
하품하며 운전하던 여자가 전화를 걸어 남자를 깨우면서 자기도 깨워달라고 한다.
남자는 반항 한 번 안 하고 졸린 목소리로 그날의 빅뉴스였던 그집 막둥이가 처음으로 말을 하던 순간을 얘기해준다.
말을 하던 막내의 자세, 입모양,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가족들의 반응과 자신의 놀라움까지
아주 자세한 중계다.
차안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얘기를 듣는 여자는 이따금 응수하며 울고 있다.
여전히 운전을 하는 채로.

이 한장면에
여자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
남자 역시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는 것,
여자는 쉴 틈이 없다는 것,
남자는 지쳐있다는 것,
이 둘의 유대가 좀 특별하다는 것,
이런 일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어쨌든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는-이 많은 얘기들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다시 본 에린브로코비치에서 내게 베스트였던 장면이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은 모양이다.
데뷔작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입에서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람들을 인터뷰 하더니
오죽하면 블럭버스터 마저도 트래픽, 오션스11, 오션스12 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주인공들이 활보하는 영화들을 찍었고,
그의 명성은 그 많은 배우들을 전부 별다섯개급 스타들로 채우는 진기록도 만들었다.

젊은 시절의 그가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특이한 모습들을 들춰냈다면 이후의 그는 특이한 사람들이 갖는 보편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특이한 사람들도 그러니, 사람들이 갖고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심성이란 그렇게 지켜질수도 있다는 인간에 대한 낙관을 하는 것 처럼.
줄리아 로버츠 감상하기도 만만찮은 재미였지만 두번째인데도 딴 짓 안하고 끝까지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늘 재탕이라 심드렁했는데 이 정도 재탕시간표는 참아주마, 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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