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도스또예프스끼


-말하기를,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 인간, 다시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상을 할 때는 흔히 인류에 대한 지극한 봉사정신에 빠져들기도 하고, 만일 갑자기 그럴 필요가 생긴다면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십자가를 걸머지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단 이틀도 같은 방에서 어떤 사람하고든 지낼 수 없으며, 이것은 내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바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가까이 있게 되면, 그의 개성은 바로 나의 자존심을 짓누르고 나의 자유를 구속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하루만 지나면 나는 그를 증오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식사 시간에 너무 오래 먹는다는 이유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은 감기에 걸려 계속 코를 풀어 댄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단 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건드리게 되면 나는 사람들의 적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개별적 인간을 증오하면 할수록 인류에 대한 나의 보편적 사랑은 한층 더 타오르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땐 절망에 빠져야 합니까?-아닙니다. 당신이 그 문제로 상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추악하게 느끼는 것은 그것을 자신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화되는 것이니까요...
사랑을 성취하는데 자신의 소심함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실행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당신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없어서 유감스럽지만, 실천적인 사랑은 공상적인 것에 비해 가혹하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잘난 척 하는 놈의 본질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수용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식이야.    


자, 내 가족들을 소개해 드리지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모두 내 새끼들이지요.
그러니 내가 죽어버리면 대체 누가 저 애들에게 사랑을 베풀겠습니까?
반대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저 애들 말고 누가 나처럼 추악한 인간에게 사랑을 베풀겠습니까? 이것은 나 같은 부류의 모든 인간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위대한 사업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 같은 인간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 방법이 어리석으면 어리석을수록 문제에는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 법이니까. 어리석을수록 선명해진다는 말이지. 어리석음은 간결하면서도 결코 교활할 수 없는 법이지만, 지성은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꼬리를 잘 감추지. 지성은 비열하지만, 어리석음은  솔직하고 정직하잖니.


사람들의 자유를 지배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그들의 양심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뿐이오.
당신은 인간을 너무나 존중했기에 인간을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았소. 그건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오. 그건 자신보다 인간을 더 사랑했던 당신의 행위였소! 인간을 덜 존중하고 그에게 더 적은 것을 요구하면 그의 부담이 줄어들 테니, 더욱 사랑으로 다가가는 길이 될 거요.


옛날 옛적에 몹시 심술 고약한 할멈이 살다가 죽었어요. 그런데 그 할멈은 평생 선행이라곤 눈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악마들은 그녀를 붙잡아다가 지옥 불에 빠뜨리고 말았지요.
할멈의 수호천사는 하느님께 말씀드릴 만한 할멈의 선행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지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천사는 <저 할멈이 밭에서 파 한 뿌리를 뽑아서 거지에게 준 일이 있습니다.>라고 하느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너는 바로 그 파 한 뿌리를 가져가 지옥 불 속에 내밀어서 할멈이 그걸 붙잡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라. 만일 할멈이 그걸 붙잡고 빠져나오면 천국으로 가도록 하고, 파가 끊어지면 지금 있는 곳에 계속 머물게 해라.>
그래서 천사는 할멈에게 달려가 파 한 뿌리를 내밀며 <자, 할멈, 어서 붙잡고 나와요>하고 말했지요. 천사는 파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기기 시작해서 거의 다 끌어올렸는데 지옥 불속에 있던 다른 죄인들이 할멈이 올라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함께 그곳을 벗어나려고 너도나도 할멈한테 매달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몹시 심술 고약한 할멈은 <나를 끌어 올리는 것이지, 너희들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야. 이건 내 파지 너희들의 파가 아니야.> 하고 악을 쓰면서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어요. 그녀가 이렇게 말한 순간 파는 뚝 끊어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할멈은 지옥 불에 떨어져 지금까지 고초를 겪고 있지요. 천사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곳을 떠나고 말았어요.


정말로 자넨 나한테 화를 내고 있지. 우레와 섬광을 동반한 채 붉은 광채 속에서 화염에 휩싸인 날개를 달지도 않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말이야. 첫째로 자네의 미적 감각이 상처 입었을 것이고, 둘째, 자존심이 상했을 테지. 어떻게 자네처럼 위대한 인물에게 이처럼 평범한 악마가 찾아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겠지? 


우리들은 자식들에게 불가능한 자제심을 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문을 품은 자식이 들을 수 있는 판에 박은 대답은 <아버지가 널 낳았다. 너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 그러니 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은 <아버지는 나를 낳을 때 나를 사랑했을까?>하고 더욱더 충격을 받으면서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나를 낳은 것은 나를 위해서일까? 아버지는 분명히 그 욕정의 순간에, 어쩌면 술에 잔뜩 취한 그 순간에 내가 누구인지 알기는커녕,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만 나에게 음주벽만을 물려주었으며, 그것이 아버지가 나에게 준 은혜의 전부인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낳고도 한평생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왜 아버지를 사랑해야 한단 말인가?>...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만일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질문에 훌륭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비적인 편견에만 의지하지 않는, 이성적인 자의식에 입각한 엄밀한 의미의 박애의 기초위에 세워진 진정한 가족인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단숨에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읽고 나서의 가장 큰 보람은 1300여 페이지를 다 읽어냈다는 것보다, 이 책에 대한 극찬이 더이상 궁금증이 아니라 공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소설이라고도 했는데, 나 역시 읽은 책 들 중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설가-참 흔해진 이름이지만 도스또예프스끼 같은 작가가 있는 이상 같은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그 이름을 챙피하게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서약이라도 좀 해야하지 않을까.
톨스토이의 단편에서 느꼈던 부담스러운 종교색들이 이 책에서는 인간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이따금 내게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이 소설이라면 읽는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북마크들이 엄청날 것 같다.
어두운 이야기들과 불행한 가족사를 얘기하고 있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아마도 스스로를 포함한 인간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한 최악의 처벌이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양심을 편치 않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정말 그런 것을 모든 인간이 빠짐없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살면서 누군가에게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고?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대중소설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 파격적인 소재도 그렇지만 후반부의 법정공방은 법정드라마 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특히 2권은 궁금해서 책 덮기가 싫을때도 많았다. 고전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데, 고전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중.
 
ps.기억하고 있던 제목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는데 주인공이 막내아들이라서 개정판의 제목을 바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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