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이순신


을미년 7월 초7일-공의 유머감각
(김응서는 경상우병사)


앞 부분에 대한 인상은 '무신'의 일기답다는 것이었다.
아주 간결한 문체, 매일 쓰고는 있지만 누가 왔다갔다-만 달랑 씌어있는 날들이 많아 지루하기도 했다.
간간이 장계를 고쳐 쓴다는 대목들을 보면서 전쟁 중에도 보고서를 열심히 써야 했구나, 역시 장군이라 글발이 좀 밀렸었겠다 등등의 생각도 들었고.

중간 부분은 전쟁 중에 일어나는 의외의 사건들이 조금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스파이 색출, 왜군포로들 얘기 같은 것.
영화 같은 데서는 대인이 대인을 알아본다고 적군이지만 기개 있는 포로를 대접하는 적장의 모습이 종종 나오고, 충무공은 겨레의 영웅이기에, 일기에서는 뭔가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왜군포로 망기시로를 '참으로 독종'이라고만 평가해서 약간 실망.

끝 부분은 중간부터 심해진 원균에 대한 험담이 정말 많다.
원균에 대한 표현 중에 제일 많은 것이 '흉측한'이다. 시작부분에서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어느날인가 원균이 같이 술마시고 '해괴한 소리를 지껄인' 다음부터 원균과 술만 마시고 나면 흉측하다 하고, 언제부터인가는 원균을 직접 만나지 않고, 대신 남들이 한 원균 욕을 다 쓰고 있다. 심지어 전해들은 원균의 추잡한 스토리-하인을 육지로 심부름 보내고 그 아내를 덮치려했다는-까지 자세하게 적어 놓고 흉측해하고 있다.
이 뒷부분을 읽다보니 낡은 나무책상에 각각 다른 분단에 앉아서 열심히 고자질종이를 쓰는 두 어린이의 모습이 상상된다. 가끔 서로를 흘기기도 하면서.

난 존경하는 위인도 가져 본 적이 없고 감명깊게 읽은 위인전도 없어서 사실 이순신이 그렇게 위대한 영웅인지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그 또한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효심이 지극하고, 아들들의 뒤를 보며 마음 아파하고, 아내에게 무심하고, 왕의 잘못된 행동에 속으로 분노하지만, 그런 왕의 칭찬에 감사하고, 또 싫은 사람 욕을 일기에 써놓을만큼 인간적인 사람임을 금방 알게 되었다. 좀 섭한가^^
난중일기를 통해 보는 그는 좀 귀엽다. 표현이 적은 조선남자이기도 하고.
원균도 일기를 썼더라면 좋았을 걸. 난중일기에 이렇게 당할 줄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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