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제프 브리지스|Jeff Bridges



어떤 남자는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쓰러지겠고
어떤 남자는 파워로 압도하고
어떤 남자는 섹시한 근육의 결로 현혹하고
어떤 남자는 이쁜 말만 골라해서 가슴을 설레게 하고
또 어떤 남자는 지치지 않는 "짱가정신"으로 감동을 준다.
그런데 사실 여자를 가장 강력하게 장악하는 남자는
이유를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게 만들면서 생각나게 하는 남자다.

이 남자.
우선 목소리 특이하다.
서유석의 목소리에서 바람을 조금 뺀 것 같은 목소리.
말투는 좀 느리고 발음도 그리 정확하게 하는 편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갈 때 치고 들어오는 타이밍이 달라서 사람을 좀 집중시키는 재주가 있다.

얼굴.
젊은 시절의 그는 모르겠다.
내가 처음 그를 봤을 때 그는 이미 얼굴 가득 넉넉한 주름의 소유자였고,
몸짱과는 거리가 먼, 표준 아저씨 규격 몸매의 소유자로서
대박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에서 종종 나타났었다.
가만히 있을 때의 그의 얼굴은 좀 난감한 표정으로도 보인다.
왜냐하면 너무나 진지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얘기 또한 아주 집중해서 들어주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를 처음 본 영화는 그의 35번째 영화였던 사랑의 행로(Fabulous Baker Boys)였는데,
사랑에 아주 서투르고 겁쟁이면서 쎈척하는 연애마초로 나타났다.
그에게 흔들린 여인은 미쉘파이퍼.
무심한 피아니스트 제프브리지스가 결국 서툰 기술로 마음을 들키던 그 로맨스가 좋았다.

이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40번째 영화 피셔킹인데,
이 영화에서는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인간의 탈을 쓰고 서서히 관계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찔러도 피한방울 안날 것 같던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이 그로 인해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를 본 때 즈음부터 그의 다른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결과, 그가 쉬는 시간이면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하고(음반발매도 하나 했다하는데 평은 팬들사이에서도 엇갈리고 있었다), 시도 쓰고, 사진도 찍고(사진집도 낸 적 있다), 그림도 그리고, 또 그림과 사진을 팔아서 미국 내 결식아동을 돕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배우들이 연기만 잘하면 됐지 사생활에서야 뭘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배우이니만큼 민간인들보다는 더 많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는 생각한다.
거기에는 뭐 이목구비를 여기저기 손 보는 것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이 남자처럼 멋지게 살아서 독특한 분위기를 갖는 것 또한 대단한 노력으로, 
이 남자가 어디서 나오든 매우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역시 
그의 삶이 배우인 그에게 가져다 준 좋은 자산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머리에 기름을 쫙 발라 넘긴 느끼한 헤어스타일의 그를 보고 첫 눈에 반했고,
불친절한 그의 연인으로서의 자세에 흔들렸으며,
100킬로는 너끈히 넘을 것 같은 육중한 몸에 생뚱맞은 반바지를 입고 볼링을 칠 때도
한심하게 보질 못했고,
백수건달이 되어 여자한테 기생해서 먹고 사는 디제이로 나왔을 때도
그 눈빛에서 애잔함을 느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라고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남자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제프브리지스의 영화 보기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으로
지금 60편째를 기록하고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부끄럽게도 내가 본 영화는 
4분의 일도 안된다.
날이 갈수록 조연출연작이 많아져서 안타까움이 더하는데,
지금찍고 있는 모굴(Mogules)이라는 영화는 본인이 감독을 좋아라 하고
이상하지만 새로운 영화라며 만족스러워 하고 있으니 차기작이나 열심히 기다려 볼란다.
추신 얼마 전 케이블에서 배우다큐의 끝자락을 조금 봤다. 
과소평가된 배우 1위로 선정된 적이 있다는데 
세계적으로가 아니라 미국내에서도 역시 그렇단 말인가~! 
그러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제프 브리지스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족과 가정을 꼽고 
남들은 외도-그닥 성공적이지도 않았던-라고만 생각했던 음악작업 자체에도 애정을 보임으로써 
내가 바라는 인생관의 샘플이 되어주었다. 
성공적인 커리어든 모험이든 인생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그래서 그 요소 중 어떤 것도 즐거운 인생이라는 더 큰 목표를 흩뜨려서는 안된다는.

공식홈페이지
나중에 홈페이지를 만든다면 성심성의껏 베껴보고 싶은 멋진 디자인의 제프브리지스닷컴.
기술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운영을 직접 하는 것이 분명하다.
메뉴를 찾아보는 것은 좀 불편하지만 직접 쓴 글씨들이 반갑게 느껴진다.
직접 전해주는 최근 뉴스같은 것도 맘에 들고.
   
내가 본 그의 영화

킹콩:King Kong (1976)
여기에도 그가 나왔었단 말인가-하고 나중에 놀랐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봐야지.
곧 DVD로 출시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어게인스트:Against All Odds (Special Edition) (1984) 
영화보다는 필콜린스의 주제가가 더 유명한, 그래서 영화 본 사람은 없는데 영화음악팬들은 다 알고 있는 영화이다. 줄거리는 도망간 여자를 잡으러 간 남자가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절절할 수 있는 러브로망이나 되게 지루했었다.  터커:Tucker - The Man and His Dream (1988) 자동차왕 터커. 그의 전매특허인 여유로운 웃음을 잔뜩 보여준 영화. 옛날 영화이고 오직 제프브리지스 때문에 봤지만 재미있게 본 영화로 기억한다.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 (1989)

친형인 보 브리지스, 미쉘 파이퍼와 함께 출연한 영화. 삼류가수인 미쉘 파이퍼의 사랑을 외면하다가 결국 퐁당하는 피아니스트로 출연했다. 음악때문에도 좀 유명한 영화지만 이성적인 매력이 가장 물씬 풍기는 그의 영화. 
Can't take my eyes of you도 좋았던...
   
피셔킹:The Fisher King (1991)
가장 좋아하는 그의 영화. 테리길리엄이라는 감독을 좋아하게 된 영화이기도 하다. 정상과 바닥을 오가며 방황하다가 결국은 다른 사람의 소중한 걸 되찾아주고 자신도 되찾은 어느 어른의 성장기. 깊은 눈빛이 인상깊었다.
  
산드라블록의 실종:The Vanishing (1993)
산드라블록이 스피드로 유명해진 다음에 산드라블록의 실종으로 비디오가 출시되어서 볼 수 있었다. 키퍼서덜란드까지 나오는 호화 캐스팅으로, 제프브리지스는 키퍼서덜란드의 애인인 산드라블록을 납치해서 죽인 살인범으로 나왔다. 영화가 워낙 엉성했다.

분노의 폭발:Blown Away (1994)
분노의 역류의 아류작같은 영화였다. 토미리존스가 싸이코 폭파범, 제프브리지스가 형사.
그럭저럭 볼만은 했지만 워낙 액션팬이 아니라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다.

위대한 레보스키:The Big Lebowski (1998)
코헨형제 영화의 신기한 점은 보기전에 얘기를 들을 땐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볼 때는 의외로 지루하다는 것이다, 나에겐. 백만장자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한량 레보스키라-흥미진진했었다.
그러나, 코헨형제를 좋아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참 보기 힘든 영화였고, 이해도 잘 안되는 영화였지만, 그의 연기는 아주 맘에 들었다.

Arlington Road (1999)
가까있는 적을 의심도 못해본 채 연인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남자. 오랫만에 연애물이라 극중 애인을 부러워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여배우 조안쿠색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비디오 제목은 까먹었다.

  
뮤즈:The Muse (1999)
아주 잠깐, 뮤즈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로 등장해서 황당한 테니스 시합을 펼치고는 사라졌다.

컨텐더:The Contender (2000)
드디어 대통령이 되다! 주인공은 부통령이지만 파워있고 쿨한 괜찮은 대통령을 연기했다.
영화자체도 괜찮은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K-PAX (2001)
K-PAX라는 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케빈 스페이시의 담당 정신과 의사. 닥터에서의 윌리엄 허트나 돈주앙에서의 말론 브란도를 연상시키는 배역이었는데 컨텐더의 대통령과 자꾸 겹치면서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였는데. 영화를 살리지 못한 연기파 배우들의 잘못인가, 연기파 배우들을 잘 써먹지 못한 연출의 문제인가...

씨비스킷:Seabiscuit (2003)
너무 오랫동안 그를 볼 수가 없었기에 그의 홈페이지에서 최근작 소식을 본 때부터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겨우 삼일만엔가 내리는 바람에 결국 비디오로 봤던 슬픈 영화였다. 원작이 워낙 미국에서 화제작인데다가 감동적인 영화라고 난리들을 쳐서 별로 기대안했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영화였다. 씨비스킷이라는 말의 주인으로, 호기가 좀 있긴 하지만, 기수인 토비맥과이어를 꽉 믿어주는 아주 괜찮은 남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볼 예정인 영화들: White Squall (1996)
 

 

댓글 2개:

  1. 제프브리지스의 빅팬입니다. 어떤 한 배우에게서 남성과 여성이 느끼는 매력이 흡사할 때도 있군요. ^^

    영화/배우에 관한 이야기 늘 재미있게 읽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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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자도 이런 남자를 좋한다는 게 저도 신기.
    친절한 답글에 늘 감사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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