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열전


딱정벌레
보통은 자는 시간인데 어쩌다 깨서 불을 켜보면 당황해서 어디론가 서둘러 달아나는 벌레들을 보게 된다. 잠결에 엄지손가락반토막 만한 검은 여러 발 짐승을 발견했을 때 어떤 벌레가 제일먼저 연상이 되는가.
그렇다. 나는 본능적으로 발딱 일어나 던져도 될만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놈이 글쎄, 중간에 살짝 들린 장판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책도 필요없다. 그냥 꾸~욱.
너무 커서 버릴 걸 걱정하며 장판을 들춰보니 헉. 이것은 컴배트도 필요없는 딱.정.벌.레.
바보야, 그냥 평소대로 하지, 도망은 왜 가서 헷갈리게 만들어.
미안해도 너무 늦었다.
대신 휴지통에 버리지 않고 마당에 있는 나무 밑에...버렸다.
 
쥐며느리
이건 말로만 듣던 벌레인데 이 반지하방에서 실물은 처음 봤다.
움직임도 둔하고 아직 내게 별 해악을 끼치는 것이 증명되지도 않았으며 방바닥을 기어다닐때 책 같은 걸로 한번 쓱 밀어주면 한동안은 안나타난다.
 
거미
며칠 전자모기향을 안피우고 자도 아침에 별 사고가 없는 것이 얘들의 공이 아닐까 싶은데, 얼마 전에는 아주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자기전에 스탠드를 켜고, 며칠째 옆에 쌓아둔 만화책 중 한권을 드는데, 뭐가 자꾸 걸리적 거리는 것이었다. 손으로 몇번을 쓸어도 이 줄같은 게 없어지질 않았다.
이상해서 옆을 자세히 보니 세상에.
쌓아 놓은 만화책더미와 좀 떨어져 있는 쿠션 사이 허공에 전지현점의 사분의 일정도 되는 쬐끄만 벌레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끼 거미들!
과연 그 거미줄이 에미가 장만해주고 나간 것인지 지들이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디지탈 카메라가 없는 게 정말 한이다. 평생 다시보기 힘든 광경인 것을.  
그래도 어쩌겠나. 최대한 조심스럽게 걷어서 얘들 역시 나무 밑에...버렸다.
 
지렁이
깨끗한 곳에만 산다는 얘길 들었는데, 왜 가끔 화장실바닥으로 기어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뭐 흘린 줄 알고 주울 뻔도 했지만 이제는 가끔 보는 사이가 되고보니 그냥 두면 알아서 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뭐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고.
 
파리
난 파리만큼은 파리 채 없이는 안 잡는다. 무딘 도구로 덤비기에 놈은 너무 잽싸고, 맨손으로 덤비기엔 너무 드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왠만하면 창문으로 유인해서 살려보내는 경우가 많은데-반지하라 불을 끄면 어두우니까 커튼을 걷으면 파리들이 빛으로 인도되고, 이때 방충망을 열면 알아서 날아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외상이 전혀 없는, 잘 마른 파리의 사체가 창틀에 끼어있곤 한다. 물어보니 수명이 다해서 그렇다나. 벌레들의 자연사는 생각 못해봤는데.
 
매미
낮에 듣는 매미소리는 무척 시끄러워도 시원한 감이 있다.
그런데 밤에 우는 매미는?
사람되게 헷갈리게 한다. 우렁찬 매미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자꾸 낮같은 생각이 들어서.
매미가 원래 밤에도 우나? 며칠전 우리 마당에 있던 매미가 미친 매미였나? 
 
긴급추가-돈벌레
좀전에 내 발밑 가까이에서부터 꽤 긴 이 방의 가장자리 직선코스로 여러다리를 펄럭이며 잽싸게 질주하는 돈벌레 한 마리를 보았다!
흥. 아무리 생각해도 양지바른 부잣집에는 돈벌레 안 살 것 같은데, 돈벌고 싶은 사람들이 위안삼아 붙여준 이름이 아닐까 한다. 
 
놀라운 메뚜기
오늘밤에는 이 년 동안 이 집에서는 본 적 없던 메뚜기가 화장실 거울위로 기어갔다.
나의 곤충사랑(!)이 소문난 것인가.
견디기는 하지만 결코 좋아하지는 않는데!
 
뉴페이스-귀뚜라미
귀뚤귀뚤 소리는 안 들려주고 냅다 펄쩍 뛰어 달아난 이 녀석.
딴에는 자유를 주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방문 열리는 그늘에 놀래서 방 구석 가장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렸다. 몇 시간이 지났는데 귀뚤귀뚤 소리는 아직 안 들린다. 뛰는 거 봐서는 체력이 만만치 않던데. 들어온 길 잘 찾아서 재주껏 탈출하길 바란다. 너무 커서 때려잡는 거 생각만 해도 죄책감이 든다. 암튼 가을은 가을인가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