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14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미생'
-좀 슬픈 역설이다.

상사라는 곳이 회사 안에서 자기사업을 하는 구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난 그래서 오히려
쫓겨난 박대리가 '뭐 대단한 일들 한다고'-혼잣말을 하던 게
맥락과는 달리 말 그대로 더 와닿았다.
직장생활의 신화-상사맨이라는 자부심
모르겠다, 정말.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지.
그냥 다들
드라마속 주인공들과 더불어
'우리'를 느끼면서 한 잔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제대로 연애족은 없었지만
각 부서의 팀원들의 상사에게 적응하기는
성별만 바꾸면 개성있는 알콩달콩이 될 법했다.
-난 강대리-장백기 커플 응원^^

하지만 이 모든 성취와 감동은 장그래와 오부장이라서 가능하다.
장그래처럼 함께, 오래 일하는 게 목표인 사람만,
아니면 오과장 처럼 제 적성을 잘 찾아서 밥먹고 사는 사람만.
각자 일하는 이유가 다를 땐
이런 과정이란 오히려 노동자를 도구처럼 만들어버리는 일방적인 교화이다.

일에서의 보람은 주관적이고 일시적인 것에서도 왔었다.

예상 못한 인사라든가
어느날 부터 느껴지는 신뢰의 눈빛
갑자기 화사해진 답미소
어느날 부터 개운해진 농담.
그런 거 없어서 죽지는 않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작고 일시적인 것들이 사라지지 않아준 덕에 
밥벌이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적응이란 거-익숙해지기는 쉽다.
어딘가 불편할 때 남의 이유를 내 것인양 쭉 들이마시면 된다.
문제는 그렇게 맘 먹을만한 동기인데
아직도 찾지 못해서
그냥 불편함에 적응하기를 선택한다.

참고 무시하는 것과 달리 견디는 것에는
학습이 들어있다.
불편함의 이유를 깨닫고 적응을 결정하고 다음 단계로 반복.
김대리의 문 열기는 그래서 적절한 비유였던 것 같다.    
그걸 가장 잘하는 장그래가 결국 떠났던 건 역설이지만.

오랜만에 미생을 다시 보면서
참 대단한 기술력의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직장을 옮기는 것 뿐인데
그걸 인생의 낙오를 결정짓거나 생사를 좌우할 것 같은 무게로
보는 사람을 시종일관 몰입하게 만드는 기술.
그 많은 인물들이
목적지-가 있다면-에 다다르건 말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도
그 '결과'라는 것을 끊임 없이 궁금해하고 희망하게 만드는 기술.
몇 번이나 가슴 두근거리게까지 하며.
장그래이 절실한 눈빛이
우리, 같이, 계속을 말할때
뭘 그렇게까지-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만큼.

찾자면 손쉬울 수도 있는 '까르르'거리들이 아닌 '열심'의 정의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결국의 사깃군이었던 당시의 사업가가 수장이던 건물이지만
최신 유행이 아니어도 예를 갖춘 옷을 입고
가방의 덩치가 드러나는 그 모습 그대로 열심히 출근하던 장그래는
신성하건 말건 노동의 힘을 보여주었고 
혼자라는 알을 깨고 나온 환골탈태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배워야 할 것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배워나감으로써 
장그래 답게 '혼자'스러움의 긍정을 끌어내는
성취를 이루었다.

괴리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신발을 끌며 무겁게 떠나고
가슴에서 올라오는 물음표들을 하나 둘 죽이고서야 살아남은 사람들이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물음표들의 싹을 자르려 담합하기 쉬운 곳에서
인생에 예의 바른 사람들을 만나
답을 찾는데서만큼은 기죽지 않아도 됐던 건
장그래의 유일한 행운.

보다가 새삼.
대학교육의 가격대비 품질의 가치논쟁은 둘째치고라도
출석도 안했을 사람들의 졸업장을 인정해주는 것,
독학으로 이룬 성취를 더 선망할 것 같은데 오히려
사법고시를 통과하건 대통령이 되건
그 졸업장이 없음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
무엇에 대한 어떤 명예를 기리는 지 알 수 없는
명예박사 같은 학위의 효용성 같은 것.
왜  그런건 지 알 수 없어졌다.
장그래는 현재를 보면서도 과거를 왜 궁금해하냐고 물었지만
증명하고 있는 존재에게 과거의 빈 칸을 따지는 것도 비슷한 질문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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