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

그래서 이번에는 바람의 열세 계급 중 0계급에 속한다는 '고요'라는 단어를 읊어보았다. 그것은 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기척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멀리가는 동그라미를 만들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0계급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0계급이 무언가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까꿍!'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꿍!'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웃었다나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 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했던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아름이의 몸을 빠르게 자라고 그래서 일찍 늙게 만든 건 병이었지만,
보통, 어른되기의 과정이 그렇듯
아름이의 내면을 좀 극적이지만 평범하게 자라게 한 건
사람과 사연이었다.

'이웃에게 희망을'에서 볼 법한 불치병에 걸린 아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
하지만 내용은 전혀 신파가 아니다.
경쾌하고 솔직하게 아름이의 속을 파고들어간 작가의 감성과
아름이의 담백한 시선이 즐거움을 준다.
성석제의 극찬에서 눈치챘겠지만
성석제 스타일의 유머도 대거 등장한다.

결국 잉태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완성하고 떠난 아름이에게 명복을.
 

댓글 2개:

  1.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나니 더 읽고 싶어 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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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대 많이 받는 작가라는데 인터뷰도 좋았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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