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Chekhoy's Short Stories|김순진 옮김|일송북

굽은 거울
모든 것을 굽어보이게 만드는 멀쩡하지 않은 거울의 멀쩡한 활약기.
거울을 통해서만 미인이 되는 아내와 아내가 찾아낸 아름다움을 기꺼이 즐기는 남편.
단 자신의 얼굴은 거울로 보지 않는 한에서.
행복은 진실이 아니라 믿음에 있다는 실용적인 교훈.

어느 관리의 죽음
기침 한 번에 대한 사과에 목숨을 바친 하위관리.
하위관리의 진정어린 사과와 고위관리의 현실적인 짜증이 어울려
웃기는 상황 속의 슬픔(--;;)을 연출한다.
소심에 대한 도발적인 접근-내가 생각하는 '체홉스러움'.
 
꿈에 그리던 굴을 먹게 되지만
정작 먹을 줄 몰라 껍질채 먹고는 괴로워하는 가난한 아이와
적선을 구할 좋은 기회를 놓친 아버지.
오래 바랬어도, 오래 꿈꿨어도
다가온 행운을 찬찬히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체홉은 참 못됐다^^
 
실패
계획된 결혼을 성사시키려다가 맹세의 그림을 잘못가져가는 바람에 잡았던 바람둥이 사윗감을 놓치는
어느 부부의 결정적 실수.
뭐 불행한 결말 같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

농담
죽어도 다시 타기싫을 만큼 무서운 썰매타기에서 사랑의 고백을 듣는 여자.
하지만 썰매타기가 끝나면 시치미를 떼는 남자때문에 그녀는 결국 거듭거듭 썰매를 타고
나중에는 혼자서까지 썰매를 탄다.
결국 바람소리에 고백을 실어 마무리해주는 남자의 친절로
그녀는 혼자만의 행복을 간직한다는 겨울용 그녀만의 환상동화.
읽고나면 잔인한 제목.  
 
남들을 동원하는데에는 망설임없이, 그러나 정작 자신의 작업은 핑계가 많은 어느 삼류작가의 작업일지.
남의 일 같지 않아. 반성할 만한 사람들 많을 거야....
 
슬픔
충격적인 슬픔을 겪은 마무.
한번쯤 그 슬픔을 입밖에 내어보고 싶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의 말 밖에는.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났다.

아뉴타
불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고분고분한 여인 아뉴타.
일단 여섯번째 남자에게서 버림받는 것은 조금 미뤄졌지만
그녀의 불안한 일상과 남들의 평범한 일상이 대비된다.
하지만 마지막 등장인물의 차마시기 대화는 대체 뭔 소린지요...

함정
한번 만나면 벗어나지 못하는 기괴하고 신비한 매력의 여인...

티푸스
병마에 시달리며 사선을 넘나들다 돌아온 현실. 다시 태어난 듯한 개운한도 잠시, 그를 기다리는 슬픔은..? 이것도 슬픈.

자고 싶다
너무나 자세히 묘사된 열 세살 유모의 고단한 하루.
찰나로 이루어진 시간의 띠 속에 순간순간은 언제나 일탈로 갈 법한 균열이 있다.
 
내기
깨달음을 얻은 인간의 선언마저 치졸하게 구기고 마는 탐욕의 품위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다.

그대들의 책은 내게 지혜를 가져다 주었다.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사고능력으로 몇 세기에 걸쳐 이룩해 낸 모든 것들이 내 두개골 속에서 작은 언덕으로 쌓였다.내가 그대들 누구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또한 나는 그대들의 모든 책을 경멸한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그 모두가 싯하고, 무상하며, 신기루처럼 공허하고 기만적인 것들이다. 그대들이 아무리 오만하고 현명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죽음은 그대들을 마루 밑의 쥐새끼들처럼 지상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자손과 역사, 천재들의 불멸의 업적들은 얼어붙어 버리거나 아니면 지구와 함께 불타 없어질 것이다.
그대들은 분별을 잃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그대들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추악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잘못받아들이고 있다. 만약에 사과나무나 오렌지나무에 무슨 일이 생겨서 열매 대신에 개구리나 도마뱀이 열리게 된다면, 혹은 장미꽃이 말의 땀냄새를 풍기게 된다면, 그대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하늘을 땅으로 바꾸어버린 그대들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진심으로 그대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내 두개골에도 저런 언덕이 쌓였으면 좋겠다. 뭐라도 좀 쌓여보란 말이다--;;
지식인의 깨달음보다도 은행가의 치졸한 뒷처리가 백미^^

사모님
부패의 척도는 싸모님들의 적극적인 경계선 넘기라고나 할까...
너무나도 재미없는 소설을 들고 와  굳이 읽어주는 여자를 죽이고 절규하던
다른 소설의 주인공이 생각나는 결말.

상자 속의 사나이
보이는 틀이 아니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결국 권태의 원인은 틀의 견고함은 아니다.
그들은 또 변함없이 다른 두드러진 틀을 재물삼아 불평하며 별 다른 재미 없이 살아갈 것이다.
오히려 상자속의 그는 진심의 삶을 이기적으로 잘 산건지도.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듣다 보면 결국엔 그런 거짓말을 참아 내는 사람이 바보 멍청이라고 놀림을 당하게 되죠. 모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신은 성실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그저 참고 미소지으며 스스로를 기만하는 그런 행동은 결국 한 조각의 빵과 따뜻한 잠자리, 아무 가치도 없는 지위 때문이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어요."

:딴지일보 김용철변호사의 인터뷰에서 공직자들이 주는 봉급만 받고 폼나게 살아버리면 얼마나 무서운(위엄있는) 집단이 되겠냐던 구절이 인상 깊었었다. 초연 이상의 결계는 없다...로다.

사랑에 대하여

"어째서 펠라게야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예쁜 외모에 걸맞는 잘생긴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하필이면 제멋대로 생겨먹은 니카노르(여기서는 모두 그를 '얼굴이 무기'라고 부른다)에게 반했을까요. 두 사람을 보면 사랑에 있어서 개인의 행복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 정확한 답을 랑 수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없는 것 같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나 봅니다.
사랑에 대한 얘기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아요? 그런 수많은 말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단 하나. '사랑은 위대한 신비'라는 거. 이 말 빼고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쓴 것 전부 사랑에 대해 물음표만 더할 뿐, 사랑이 무엇인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있나 봅니다. 어떤 특정한 경우에 어떤 설명이 잘 들어맞는다 하더라도, 그 설명을 다른 많은 경우에 적용시켜보면 금세 어긋나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에는 공통분모가 없다, 하나하나의 사랑이 그 자체로 소중할 뿐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들이 병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듯 말이죠."

'우리의 사랑을 방해했던 모든 것은 실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며, 거짓된 것이다'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흔히들 생각하는 행복과 불행, 선과 악의 잣대로 당신들의 사랑을 판단하지 말라.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고귀한 것으로 당신들 사랑의 높이를 재어 보라. 그렇지 않다면 아예 판단하려 들지 말라'

:어울리지 않는 연인들, 정당한 도덕심으로 오래 감춰둔 사랑이야기로 들려주는 체홉의 사랑에 관한 웅변.

대학생
삶의 보석이란 스스로를 격려할 만한 작은 보람을 직접 찾아내는 순간.
회의적인 미래 뿐이던 한 대학생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감동으로 스스로의 감동을 찾아가는
교훈적(^^) 이야기.

농부들
도시로 상경했다가 다쳐 도시빈민이 되기 전 시골로 피난하지만 목숨을 잃고
남은 가족은 결국 다시 도시빈민으로 향하는 산업화 일지.
가난에 현미경을 들이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들의 고단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무지까지 웅변으로 변명해주는 체홉...

귀여운 여인
왜 이 얘기를 모파상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기억속의 그녀는 정말 제목 그대로 귀여운 여인이었으며
나와는 거리가 멀되 나름 장점이 있는 여인 이었건만
다시 본 그녀에게서는 체홉이 풍겨주는 냉소의 향기가 가득한다.
사실 그렇다. 나도 이런 사람과 친하지 못하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아직은 사랑이 남아있는 동안에, 아니, 실은 그 정도가 아니라
접었던 사랑을 애타게 다시 찾아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순간에
갑자기 시선은 유체이탈하여 그들의 밝을 수 없는 미래를 당연한 듯 툭 던져놓는다.
외도에 대한 끈적임 없으면서도 비관적인 시선과 남자주인공의 캐릭터 좀 특이했던.

골짜기
어느 마을의 어느 가족의 짧은 연대기. 참 알 수 없는 아들네미야...그외에는 자업자득의 인생.
그리고 가여운 아기 한 명의 불행 유전.

"새의 날개는 두 개 뿐이지 네 개가 아니잖소? 그것은 말이지, 두 개만 있어도 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런 식으로 사람도 전부 다 알 수 없는 거요. 절반이나 4분의 1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알면 되는 거요."

:행복한 인생을 위한 필요조건. 하지만 인간은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호기심의 소유자....
 
약혼녀
결혼을 앞에 두고 새 인생을 살게 되는 약혼녀의 이야기. 끈이 있는 동안에는 놓을 수 없지만 준비된 사람은 끈이 날아가버린 뒤에 혼자 설 수 있게 된다.

"인생 전체가 프리즘을 통하는 것처럼 흘러간다는 것, 그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란다."
"바꾸어 말하면 의식 속에서, 인생을 일곱 가지 원색처럼 제일 간단한 요소로 분해한 다음 그 하나하나의 요소를 따로따로 연구해야 하는 거야."

자세한 내용을 적어두면 나중에 느낌을 되새길 때 장애가 될까봐
원래 영화든 책이든 내용 같은 건  잘 적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써놓고서도
무슨 얘기였길래 이렇게 썼지-? 궁금해지는 상황이 발생.
최근에 웃겼던 건
하얀면사포 끝에 '충격적 결말'이라고 써놨든데
그 결말이 기억이 안나는 거돠--;;
(충격이 다 가셨나봐-)
재미있게 읽었더라도 기억에 엄청난 한계가 있는 단편집은 특별히

귀찮더라도 좀 적어가며 보기로 한
다.
매일 2만개씩 죽어도 죽을때까지 80%(인가?)가 유지된다는 뇌세포.
내 껀 쓸만한 놈들만 2만개씩 죽어나가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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