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지구를 지켜라|2003

재기의 반전이 먹먹함을 남기는 묘한 감정의 극한

그저 먹먹하다, 다시 본 지구를 지켜라는.
개봉했을때도 평소 이런 영화들이 아니면 갈 일 없는 을지로의 극장까지 찾아가
극장을 거의 내방처럼 독점하고 봤지만
때수건으로 피나게 밀고 물파스 바르는 장면의 강렬함으로만 남았었는데.
어딘가 컨스피러시의 반전과 닮기도 했고, 미저리 같은 감금고문들이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었는데,
몰아치는 몽타쥬들과 매 장면들을 꼼꼼히 볼수록 슬퍼질 수 밖에 없는 영화다.
무찌르기 위해 잡아온 적 강사장의 입을 통해 자신의 과거가 들춰지면서 오히려 상처를 더치면서
유일한 그의 편이자 무한한 조력자 순이까지 떠나 보내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범이자 환각제 복용자인 왕따찌질이 병구.
다 알면서 어디 있었어, 내가 미쳐가는 동안. 니들이 더 나빠-라고 절규하며
분노하는 순간에 힘없는 자신을 인정해버리는 딱한 병구.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병구를 더 좌절시켰던 그들의 손에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 현실적이라면
가장 강한 적이었던, 
병구의 상처에 절규하던 강사장의 마지막 결심은 이상적인 결말일지도 모른다.
병구는 살기 위해, 불행하지 않기 위해 지구를 구하려 했던 것인데
지구에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으며
가장 치열하게 싸운 병구마저 떠난 마당에
영화 속 지구는 사실 의미가 없으니까.
사라져가는 지구의 마지막 기억이
그런 병구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위로가 되어줄까.

commentary
DVD의 내용은 영화만큼이나 실하다.
그냥 가지가지 자료를 쎄려 넣어주기만 해도 좋아하는 영화의 DVD라면 사랑스럽기 마련인데
지구를 지켜라의 DVD는 그 차원을 넘어 손에 꼽을 만큼 만족스럽다.
과묵한 장준환과 신하균의 코멘터리는 
지들만 재미있고 듣는 사람 짜증나는 쓰잘떼기 없는 잡담 하나 없는 
순도 100%의 건더기 있는 만담을 제공한다. 
두 사람의 얘기는 영화 밖으로 벗어나는 적이 없어서 
따라가다 보면 프레임 밖의 영화얘기까지 흥미를 느끼게 된다. 
조금 아쉽다면 코멘터리를 할 땐 영화볼륨이 작아져 있기 때문에 
영화 속 재미있는 `소리`들을 그때그때 확인 할 수 없다는 정도?
반짝반짝 신하균의 연기를 구석구석 찾아볼 수 있다.
멋지게 웃음의 포인트가 나와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던.
실하다는 느낌이 든 건 특별영상들인데 
양도 양이지만 영화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구성이다.
제작과정도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시사회에서 차승재가 '굳이 지구를 지키려고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라고 인사할 땐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차승재-굉장히 정직한 사람인가보다.
팬들도 그렇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포스터를 많이 지적하던데 
사실 난 이 포스터 좋아한다.
줄거리만 따라가다 보면 보기 드문 병구의 발랄함이 특히 맘에 든다.
더미를 쓴 줄 알았던 추형사의 추락장면이 스턴트였던 것도 그렇고
그냥 카메라 트릭일 줄 알았던 강사장의 후려치기 앞에도 
스턴트맨이 직접 맞고 있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정말 대단한 스턴트...
배우가 직접 하지 못하는 사정이야 이해는 가지만
스턴트맨의 분량도 하나의 인물로 연결한다는 차원에서
최소한 자기 역할을 맡아준 스턴트맨과는 상의도 좀 하고 
최소한 그들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액션장면에선 인물과 상관없이, 
때로는 안 어울리게 본능적으로 각이 나와서
고생의 결과물을 좀 아쉽게 만드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긴 다른 영화 같으면 언급도 없이 지나갔을 부분인데
고생한 스텝들 하나하나의 작업 일지까지 담은 보람 없게 
내가 좀 부정적으로 본 것 같긴 하지만.
유일하게 황정민은 줄타기를 직접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플란더스의 개에서 배두나처럼 나는 서커스 단원을 캐스팅한 줄 알았었다...
시사회에서 충격 받은 감독들의 감탄은 짧지만 강력하고,
영화를 찍는 동안 스텝들의 외계인화에 성공한 장준환의 파워는
OST Special Thanks to에 안드로메다인들을 적었다는 음악감독을 확인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음악감독과 얘기하는 동안 음악이 쓰인 영화장면들을 다시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꼭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정리해 주는 느낌.
비밀번호 힌트가 전혀 도움이 안 되서 못 열뻔 했던 X-file은
열어봤자 결국 TV로는 글씨를 잘 읽을 수 없어서 패스해야 하는 게 좀 아쉬웠다.
두고두고 즐길만한 실한 DVD 목록에 지구를 지켜라 추가!
Special Features
1. Making of save the green planet
2. Interview with the aliens
-cast interview
-crew interview
3. Art of the green planet
4. Music from the green planet
5. Preview :
-시사회
-Trailer
6. Deleted scene
7. Behind story
8. X-file
9. Real circus
10. Ending credit
밑에 마네킹공장은 필요 없지만 이런 곳에 이렇게 있는 집 맘에 들었다.

서플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영화의 비하인드 중 하나.
눈빛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고릴라 역은 신하균이 직접 했다고 한다.
코멘터리 하는 중에도 눈빛이 살아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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