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불멸의 화가 반고흐


그림에 아무 관심이 없더라도 모르기 힘들고 또 좋아하지 않기도 힘든,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로 먼저 생각되는,
그림의 문외한으로서도 제일 좋아하는 화가라고 말하기가 전혀 망설여지지 않던 고흐.
드디어 그의 그림을 코앞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여전히 놀란 채로
좀 쌀쌀하던 금요일 오전 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나의 동행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란 말로 꼬드긴,
이제 막 시작한 수묵화에 재미와 재능을 꽃 피우고 계신 칠순노모^^
전날 밤 인터넷에서 읽은 얘기를 주섬주섬 건네며 들어서는데.
아, 우리나라 참 많이 좋아졌다-65세 이상은 무료랜다.
예매한 표를 환불하고
늙어도 너무 좋겠다는 내게 만이천원어치 이상으로 당당해하시는 칠순노모와 함께
오디오가이드를 빌려서 전시장에 들어섰다.
원래는 11시 도슨트안내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늦어서...
나중에 도슨트 그룹을 보니 수 십 명이 몰려다니느라 그림을 가까이서 보기도 힘들고
말소리도 잘 안들리는 것 같던데,
도슨트 안내가 50분 정도라고 하고, 우리가 전시보는데 걸린 시간이 3시간이었으니까
원하는 속도에 맞춰 보기에는 오디 오가이드도 괜찮은 대안이다.
도슨트안내 후에 한번 더 보거나, 오디오가이드로 돌고 도슨트 만나면 가서 들어보거나
뭐 여러가지 절충안 가능할 듯.

마지막 전시관에 붙어있던 글귀-내 그림이 물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될 것이다 라는 말이
아프면서도 한편 귀엽게 느껴졌던 건 `물감조각`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은 그의 그림들 때문이었다.
내게는 움직이는 듯, 튀어나올 듯, 입체감과 운동감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힘찬 그의 그림이지만
지금 고흐그림의 위상으로는 농담이래도 안 웃기게 고작 물감의 가치와 비교하다니,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그가 받았을 상처가 어림 짐작된다.
상처속에서도 너무나 소박하게 분노를 기록한 그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음악의 라이브가 최고이듯 그림도 전시가 그랬다.
좀 더 자세히, 가까이 보는 게 당연히 더 좋은 거지만 고흐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이프러스나무가 그려진 밤그림이 나의 주목적이었지만
실물을 보면서 내가 반한 그림은 이전에는 몰랐던, 사진으로는 강렬하지 않았던 그림들이었다.

그림출처:www.vangoghgallery.com 다운로드코너에 배경화면용 고흐그림들이 몇개 있음
The Garden of Saint-Paul Hospital(1889)
Vincent's House in Arles (The Yellow House,1888)
The Sower(Arles,1888)
 
이 그림들의 공통점은 꽃정물화들만큼이나 유난히 두툼한 물감으로 만들어진 입체감과 색감이다.
생폴병원의 정원의 나무들은 원시림처럼 강렬하고,
아를르의 노란집은 햇빛을 가득 빨아들여 살아있는 집 같고,
씨뿌리는 사람의 금빛 태양이 이글거리는 거친 밭 한가운데 선 저 농부의 일은 정말 고단해보인다.
아무리 좋은 상태로 인쇄를 했던들 가서 보지 않고서는 몰랐을 이런 느낌이 놀라웠다.

전시회를 보기 전엔, 그래도 고흐인데 오리지널 기념품들을 좀 보고 살 생각도 있었지만
실물을 보고 나니 모작이나 프린트는 정말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반고흐박물관에서 가져온 이 사진들은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꼭 사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이러니.
결국은 한번 따라해보겠다며 투지를 불태우시는 칠순노모와 함께
그래도 프린트 중에서는 원작과 느낌이 비슷한 사이프러스나무 그림엽서를 샀다.
언제쯤 한번 베껴 그려주실지.

3층 전시관 밖에 의자들이 있으니까 오래 볼 사람은 간식 챙겨가면
맛이 어떻든 화가 날 가격의 미술관카페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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