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yal ancore|20210220


현악기와 함께 경연 버전으로 돌아온 Inun'altra vita
-첫만남에서도 그지 같은 음향을 뚫고 귀에 꽂히던 아름다운 노래였는데
그 부드러운 힘은 여전하다. 
무반주 구간 배두훈의 치라샤모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감동의 음향으로 시작부터 울컥.

1부를 들으며 든 생각.
마지막 공연이라 정말 다 갈아 넣어서 인지
체육관이라는 게 무색하게 좋은 음향 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이 1부를 병 속에 넣어서 파세요...
특히 달하높이곰도다샤와 달의 아들.
이제 라이브 앨범 나올 때가 되었다. 
포레스텔라가 안내면 누가 내리.

그동안 강형호의 소프라노가 홀리 버전이었다면 
이번엔 칼칼한 새로운 소프라노가 등장했고 
락-테너-소프라노 처럼 소리가 다양해진 것 뿐 아니라 
그 소리를 이제 본격적으로 연주하는 것처럼 
다른 소리들이 들려서 
약간 킬미힐미 목소리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조민규는 목소리가 어딘가 더 예뻐지면서 세졌고(이게 동시에 가능?)
고우림은 부드러워져서 
이번 L'immensita는 원숙기에 접어든 성악가들이 데뷔곡을 다시 들려주는 것 같은 기분.
근데 풋풋함이 좀 그립기도^^

2부가 되어서야 컨디션 최상의 날이 아니란 걸 알게 됐는데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날 최상처럼 부르려면 
정말 내장까지 절규를 한다는 게 빈 말이 아니겠구나 싶다. 

the Greatest show, Lazenca Save Us, Phoenix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세 곡.
특히 Lazenca Save Us는 Champions 처음 들었을 때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어느덧 하모나이즈의 새 멤버가 된 것 같은 강대리 춤은 보너스^^

Warriors 배경 멋있었고,
들을 때마다 반하는 Champions 지만 특별한 뭔가가 더해진 것 같은 느낌. 
Shape of You 중간 반주가 약간 옛날 나이트클럽 라이브 같은 느낌이 나서 좀 웃었는데
흥 많은 퍼커션 연주자가 뒷부분 아프리카 클럽 분위기로 살려주신 듯-따로 박수 드려요~

이제 포레스텔라에게 남은 건
커버곡을 넘는 포레의 곡을 부르는 것.
지금까지는 2집이 제일 좋았고 
새 노래도 나쁘지 않지만 워낙 기세등등한 커버곡들 사이에 끼다 보니 
신선함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새 노래를 연습할 때
넷 중 한 명이 혼자 맘대로 불러보고 그걸 포레스텔라가 다시 재해석 해보면? ㅋㅋ 

세상에 내가 모르는 좋은 노래들을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찾아 멋지게 들려주어 좋은데 
세상에 없는 노래를 만들어 내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겠지.
언젠가의 그 명곡이 기다려진다. 


산나물처녀|Ladies of the Forest|2016

 

어머니합창단원복 같은 드레스를 입고 지구에 내려온 한국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외계인
그리고 시작되는 나물꾼들의 이야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시사회 영상에서 
김영 역할이었던 배우가 사슴으로 출연했다길래 호기심이 생겨 본 단편영화
부제를 붙여보자면 '선남과 나물꾼'이랄까.

편견없는 달래와 콩깍지의 보호 하에서는
자신의 자연스러움대로 살 수 있었는데 
마법이 풀리자 바로 날아드는 사랑의 배신^^
하지만 굴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희망찬 선택을 하는 순심이를 응원할 밖에.
화이팅.

코믹 소품 같은 단편이고
배우들 면면에 비해 B급스러운 설정이나 소품들이 웃겼지만,
무심한 듯 기억나는 대사.

"이 씀바귀는 이별의 맛이에요. 꼭 기억해두세요"
"너무 기대된다"

"이 산나물을 먹으면 연애세포가 절-대 죽지 않거든요"
"어휴, 나물은 알면 알수록 어려운 거구나"

이게 대체 뭔소리야 싶게
저런 말을 정성껏 전해주는 달래와 
그 말을 또 열심히 들은 순심이의 반응이 귀여운 듯 웃겼다^^

웨일 라이더|Whale Rider|2002

주인공들 증명사진^^

뉴질랜드 명문부족가의 손녀 파이키아는 
생일날이 엄마와 쌍둥이 오빠의 기일이 되어 버린 슬픈 사연이 있다. 
아빠는 이후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파이키아는 
전통을 이을 손자만을 기다리다가 떠난 아들과 잃은 손자 대신 손녀 사랑에 빠진 할아버지와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할머니와 산다. 

파이키아라는 이름은 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 속에서 
고래를 타고 나타날 것이라는 영웅의 이름인데
원래는 쌍둥이 오빠의 것이었지만
아빠의 고집으로 파이키아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안된다는 전통의 타부를 깨고 운명을 깨닫는 결말.

아무 반전도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뉴질랜드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함께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은 드물기 때문에
잠시 다른 문명속의 사람들을 만나는 신선함. 
예전에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웨이브 무료영화에서 발견했다. 

전통에서 배제되는 여자들의 얘기는 별로 특이할 것 없는데 
새삼 궁금해졌다. 
다양한 경쟁자들 속에서 더 우수한 인재가 발굴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 문화들이 여기저기서 상식처럼 뿌리내렸을까.
파이키아는 소녀의 타부는 깼지만
핏줄은 타고 났었기에 
역시 그냥 운명의 아이.

고래가 떠내려오자 다들 나와서 바다로 돌려보내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뭔가 자연과 공생하는 느낌

도롱뇽과의 전쟁|카렐 차페크|김선형 옮김|열린책들

실제로 도롱뇽들에게 허락된 공민 시설과 혜택을 적어도 몇 가지는 열거할 수 있다. 모든 도롱뇽은 고용지에서 도롱뇽 대장에 등록되었다. 도롱뇽 들은 공식적인 영주권을 소지해야 했다. 도롱뇽 두세(頭說)도 납부했는데, 이는 사실상 고용주가 지불하고 식량에서 공제했다(도롱뇽들은 급여를 현금으로 받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롱뇽들은 거주하는 해안에 대한 임대료, 공공요금, 나무 울타리 건설 공사비, 공납금, 기타 공공 관세를 납부하게 되었다. 그러니 모든 면에서 도롱뇽들은 다른 시민들과 똑같이 취급되었다고, 아주 솔직히 터 놓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일종의 평등한 권리라 할 수 있다.

도롱뇽 동지들이여!
자본주의 체제는 마지막 희생자를 찾아냈다. 계급 의식으로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약진으로 마침내 그 폭압이 무너지기 시작할 무렵, 케케묵은 자본주의는 그대들, 심해의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문명으로 옭아매어 영적인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계급 법제에 복속시키고, 그대들의 제반 자유를 박탈하여 야만적으로 뻔뻔스럽게 그대들을 착취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후 14행 검열로 삭제)
노동하는 도롱뇽들이여! 그대들이 묶여 살아가는 노예제의 짐을 마침내 깨달을 시간이 도래했다!
    (이후 7행 검열로 삭제)
그리고 계급으로서 국가로서 그대들의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게 될 때가 왔다!
    (이후 11행 검열로 삭제)
그대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 노동 위원회를 설립하고, 대표자를 선출하고, 파업 자금을 마련하라! 정치적으로 각성한 노동 계급은 그대들의 정당한 투쟁을 홀로 버려두지 않고 그대들과 손을 맞잡고 최후의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이후 9행 검열로 삭제)
만국의 억압 치하의 혁명 도롱뇽들이여, 단결하라! 최후의 전투가 임박했다!!
(서명) 몰로코프

23 우리는 포본드라 씨의 소장 자료를 살피던 중, 이 경축할 만한 사건에 대한 언론의 다소 피상적인 묘사가 보관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행하게도 절반만 남아 있으며, 후반부는 소실되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은둔 철학자 볼트  마이네르트로 하여금 기념비적인 저서 <Untergang der Menschheit:
인류의 몰락>을 집필하게 한 영감의 원천은......열에 달뜬 기획과 기술적 발전에 눈이 멀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미 죽음의 표식이 선명한 유기체의 뺨에 붙인 해열제 패치에 불과하다. 인류는 오늘날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절정의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내게 행복한 사람을 한사람이라도 데려와 달라. 만족한 계급을 하나라도 보여달라. 아니면 존재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국가를 하나라도 찾아달라! 이 모든 문명의 선물들 속에서, 영적, 물질적 가치가 크로이소스처럼 충성하게 쏟아지는 와중에도, 우리 모두는 점점 더 불가항력적으로 덮쳐오는 불확실성과 불안, 초조에 시달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사람 여러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적의는 전혀 없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살 물과 해안 모래톱이 더 많이 필요할 뿐이니까요….여러분이 우리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지구 전체에 퍼뜨렸습니다. 이제 이렇게 우리가 있습니다. 
……사람 여러분. 이만하면 당신네 허튼 짓은 참을만큼 참았습니다….자, 이제, 다시 한 번 여러분의 녹음곡 중에서 최신 히트곡을 틀어드리겠습니다. <Triton Trott 트리톤 트로트!>

인간이 망쳐 놓은 걸 왜 자연이 나서서 고쳐 놔야 하지? 그것 봐. 자네도 이젠 인간이 자력으로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잖아. 결국 인류의 구원이 누군가 다른 사람, 뭔가 다른 것에 의존해 이루어졌으면 싶겠지!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유럽 대륙의 5분의 1이 침수된 이 상황에서, 아직도 도롱뇽들한테 고성능 폭발물과 어뢰와 드릴을 지급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겠어? 밤낮으로 실험실에 처박혀서, 세상을 날려 버릴 더 효율적인 기계와 물질을 찾아내려고 열띤 작업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누구겠냐고? 도롱뇽들한테 누가 자금을 대출해 주는지, 이 세계의 종말, 새로운 대홍수를 일으킬 돈을 누가 대주는지 알고 있기나 해?
「알아. 세계의 모든 공장. 모든 은행. 모든 국가.」
그래, 바로 그거야. 단순히 도롱뇽 대 인간의 문제라면 아마 뭔가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사람 대 사람 - 이건 도저히 말릴 수가 없다고.

옛날 선장 하면 떠올릴만한 인물로 묘사되는 반 토흐 선장이
타나마사라는 섬에서 교환을 이해하는 도롱뇽들을 발견하고
진주잡이로 쓰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반 토흐는 나름 도롱뇽에 대한 우정과 신뢰를 가진 인간이었지만
거기에 자본을 끌어들인 것도 그 였다.
기능적으로 다른 신체를 가져 서로에게 윈-윈인 것 같던 관계는
본디라는 자본가의 사업이 결합되면서
도롱뇽들 역사의 한 장이 인류의 역사의 한 장을 접는,
기괴해 보였지만 그럴듯한^^이야기로 펼쳐졌다.

카렐 차페크의 시각은 
철학자 볼트  마이네르트의 저서에 적극적으로 등장하는데
도롱뇽들의 힘을 인간과 정 반대라는 종의 전체성에서 찾고 있다. 
이미 인종, 민족, 국가 등으로 분열된 인류는 
무한한 공간 없이는 분열할 수 밖에 없지만
아직 종전체로 하나인 도롱뇽들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습득한 교육을 
일산분란하게 생존을 위해 쓸 수 있기에 
인간보다 월등한 번식력으로 지구 접수가 가능하다 것. 
이야기는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끝나지만 
미래의 도롱뇽들을 인간들처럼 분열시킬 씨앗을 밝혀두며 마무리 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자본과 권력에 대한 경계심을 
물과 육지를 오가는 도롱뇽들을 등장시켜 
빅토르 위고 같은 구라력^^으로 펼쳐 낸 카렐 차페크의 (내가 읽은) 첫 장편.
로봇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 인간 노동의 대체재 도롱뇽은 다시 
지금의 노동상황을 생각하게 한다. 

재미있었음에도 책장을 참 오래 넘겼던 건
편집 때문이었다. 
카렐 차페크도 '자료유실'이라는 발칙한 핑계를 대며 재미있는 대목까지 넣어 둔 마당에 
다양한 형태의 글들을 알록달록 주제에 맞게 편집한 게 
보기에 좋고, 아마 카렐 차페크도 즐거워했을 것 같음에도, 
밤독서에는 참 가독성 떨어져서 힘들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