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이|2021
옷소매 붉은 끝동|The Red Sleeve|2022
세자 시절 진짜 있었음직도 한 장면 아닐까
더 브레이브|True Grit|2010
-많이 본 동화와 다르지 않은데
옛날 옛적 서부에서
주정뱅이 보안관과 어른 찜쪄먹는 협상의 기술을 가진 너무나도 당찬 14살이
배경과 주인공이 되면서
너무 나도 신선한 이야기가 되었다,
동화의 느낌도 사라지지 않은.
그리고 내겐 처음으로 진짜 재미있게 본 코헨 형제 영화^^
여전히 묘한 표정 부자의 쌈지에서 갖은 표정을 꺼내 보여주는 제프 브리지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웃음의 99%까지 담당하는데
아, 진짜 여전히 섹시하세요!
안타깝게도 스틸에서는 다 멋진 표정 뿐이라 그나마 비슷한 설정으로 주움
곤충 극장 :카렐 차페크 희곡선집|카렐 차페크 지음|김선형 옮김|열린책들
곤충극장
기술자 2 셋, 넷! 속보로!
목소리 다들 비켜!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해!
여행자 적어도 빨리 죽긴 했군.
기술자 1 일해! 일! 일하는 자가 더 많이 가질 것이다
기술자 2 더 많이 가지는 자는 더 많이 일해야 한다
기술자 1 더 많이 필요하니까!
기술자 2 보호해야 할 것이 더 많으니까!
기술자 1 정복해야 할 것이 더 많으니까!
기술자 2 평화를 위해 정복하라!
기술자 1 평화는 곧 노동이다!
기술자 2 노동은 곧 권력이다!
기술자 1 권력은 곧 전쟁이다!
기술자 2 옳소! 옳소!
목소리 다들 비켜!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 해!
마크로풀로스의 비밀
등장인물
에밀리아 마르티
야로슬로프 프루스, 야네크, 프루스의 아들
알베르트 그레고르(베르티)
막스 하우크-센도르프
콜레나티 박사, 변호사, 비테크, 콜레나티의 비서
크리스티나 비테크(크리스티), 비데크의 딸
하녀, 의사, 무대 담당, 청소부, 여성
그렇게 모든 걸 다 익히고 나면 나머지 1백 년은 지혜로-지배하고 가르치고 선례를 남기는 겁니다. 인간의 삶이 3백년 동안 지속되면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귀해질 지 생각을 해보란 말입니다. 전쟁도 없을 겁니다. 급할 일도 없고, 두려울 일도 없고, 이기적일 이유도 없겠죠. 만인이 지식과 품위를 갖게 될 겁니다.
(두 손을 꼭 맞잡고)자연의 돌연변이가 아닌 만물의 영장, 완벽하고 전지한 하느님의 아들, 민중에게 생명을 줍시다! 충만하고 인간적인 삶을!
클러나티 그건 다 좋네만, 비테크 -
그레고르 송장을 서류철에 정리하느라 3백년. 양말을 꿰매느라 3백 년. 거참 고맙겠수다!
비테크 그렇지만 -
그레고르 만물의 영장, 전능 좋아하고 앉아 있네! 대부분의 인간사는 오로지 무지 덕분에 견딜 수 있다는 걸 당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
...치졸함은 쉬지 않고 스스로 재생산을 해내거든. 파리나 쥐 떼들처럼 말이오. 오직 위대함만 죽는 법는 법이오. 힘과 재능만이 죽는 법이라고.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어쩌면 그런 걸 보존하고, 영원한 귀족 계급을 옹립할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갖게 된 건지도 모르지.
비테크 귀족 계급? 저 말 들었습니까, 신사 여러분? 수명의 특권이라니!
프루스 내 말이 바로 그거요. 오로지 최고의 부류만 살아서 번식할 자격이 있단 말이지. 유능한 인간들, 지도자들, 여기서 여자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소, 그렇지만 대체 불가능한 남자들은 1만 명, 2만 명 정도는 있단 말이오. 우리는 그들을 보존하고, 초인간적인 힘을 부여해 주고, 그들의 두뇌를 초인간적인 수준으로 발달시킬 수 있소. 1만 명,아니 2만 명의 초인간적 지도자들과 창조자들이 생겨나는 거지.
비테크 한 무리의 우두머리들 말인가요?
프루스 바로 그거요. 무한한 수명을 누릴 정당한 권리를 지닌 이들을 선발하는 거지.
콜레나티 실례지만 그런 개인들을 누가 선발한다는 말씀이죠? 정부? 국민 투표? 스웨덴 한림원?
프루스 멍청한 투표 따위는 집어치워요! 최강자들이 직접 손에서 손으로 생명을 전수할 겁니다. 물질의 주인들이 영혼의 주인들에게. 발명가들에게서 군인들에게로. 사업가들이 독재자들에게......
.......
비테크 왜요?
에밀리아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1백 년, 130년까지는 괜찮을지 몰라. 그러면 … 그러면 깨닫게 되지. 그리고 영혼이 속에서 죽어 버려.
비테크 뭘 깨닫죠?
에밀리아 맙소사, 표현할 말들이 없다니까. 자기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 아무것도. 그냥 이 공허함뿐. 기억하니, 베르티? 내가 노래할 때 얼음처럼 차갑다고 했지.
봐라, 삶이 의미를 잃은 지 오래인데도 예술적 기술은 그 의미를 보존하고 있어. 그저 일단 터득하고 나면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지. 크리스티, 코를 고는 것만큼 이나 아무 쓸모가 없단다. 아무런 차이가 없어.
비테크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당신이 노래하면…… 그건 사람들을 변화시켜요. 더 위대해지고, 더 나은 사람들이 된단 말입니다.
에밀리아 사람들은 절대 나아지지 않아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아. 총격, 지진, 세상의 종말—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네들은 여기 있지. 그런데 나는 어딘가 멀리, 저 멀리, 3백 년은 떨어진 아득한 데 있어. 당신네들의 삶이 얼마나 수월한지 스스로 깨닫는다면 좋을 텐데!
콜레나티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까?
에밀리아 당신네들은 만물에 가까워요. 모든 게 뭔가 의미를 갖고 있죠. 얼마 안되는 짧은 당신네 인생에서는 만물이 값어치가 있으니, 당연히 한껏 누리며 사는 거예요. 아, 맙소사, 정말이지……
(두 손을 맞잡고 비틀어 댄다) 바보들. 당신네들은 너무나 행복하단 말이야! 그렇게 행복한 당신네 들을 보고 있으면 역겨워. 하지만 바보 같은 생각들 때문에 다들 죽게 될 거야! 당신네들은 원숭이처럼 만사가 흥미롭잖아. 모든 걸 믿잖아. 사랑, 자기 자신, 명예, 진보,인간성, 모든 걸! 맥시, 당신은 쾌락을 믿잖아. 크리스티나 너는 사랑과 신의를 믿지. 프루스, 당신은 권력을 믿어, 비테크는 자기가 하는 온갖 헛소리를 믿고. 모두 다, 모두가 뭔가를 믿고 있어. 얼마나 멋진 삶이야, 이 바보들아! 얼마나 근사한 삶이냐고!
비테크 (심란해하며) 감히 말씀드리지만 마담,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가치, 이상 꿈….
에밀리아 그것 봐요. 하지만 그건 오로지 당신을 위한 거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쩌면 사랑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당신 마음속에만 있는 거야. 움켜쥐면 사라져 버리지. 당신네들은 우주 어디에도, 어디에도 없어. 아무도 3백 년 동안 사랑할 수는 없어. 아니, 희망할 수도, 글을 쓸 수도, 노래할 수도 없어. 3백 년 동안 눈을 똑바로 뜨고 살 수는 없는 거야. 견딜 수가 없으니까. 모든 게 차갑고 무감각해져. 선에도 무감하고, 악에도 무감하고, 천국에도, 이승에도 무감해져.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지 아무것도, 죄도, 고통도……오로지 의미를 가진 것들만 존재하는 법이야. 그런데 당신네들한테는 만사에, 만물에 의미가 있잖아. 아, 하느님, 한때는 나도 당신들 같았는데! 소녀였고, 여자였고, 행복했는데, 나도. 나도 인간이었는데! 맙소사, 하느님!
하우크-센도르프 그랬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요?
에밀리아 봄비타가 해준 얘기를 당신네들은 모를 거야, 그는 우리- 우리 늙은이들이 너무 많이 안다고 했지. 그렇지만 당신네들은 훨씬 더 많이 알아, 이 바보들아. 훨씬, 휠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사랑도, 위대함도, 목표 의식도 알잖아. 모든 걸 갖고 있잖아. 이 이상 바랄 나위가 없잖아. 여전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잖아!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무감각하고, 얼어붙은 채로 계속,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해. 세상에, 더는 못 하겠어. 맙소사, 이 고독이라니!
프루스 그렇다면 어째서 묘약을 가지러 돌아온 거죠? 어째서 또다시 그 삶을 반복하려는 겁니까?
에밀리아 죽음이 무서우니까.
프루스 세상에, 그렇다면 심지어 불멸의 존재들도 그건 피할 수 없단 말인가?
에밀리아 그래요.
침묵.
유한해서 의미를 갖게 된다는 몇백년 인간 에밀리아의 웅변이 솔깃하지만
유한한 인간은 삼백년을 수백년을 산 에밀리아는 유한을 예찬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갖지 못한 것에 꿈을 두는 걸 절대 포기 못하는 알쏭달쏭한 존재란 게 확실해진다.
오히려 그 무한의 존재가 가진 것 중 미련을 떨치지 못한 것이 또 그 목숨이라니.
긴 웅변이 설득력 보다는 수수께끼에 가까와 질 뿐.
하얀 역병
등장인물
법정 고문 시겔리우스 교수, 갈렌 박사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제1조수, 제2조수, 군 총사령관
크루그 남작, 크루그 남작의 아들
교수 네 명, 당 인민 위원, 장군
총사령관의 딸(아네트), 총사령관의 수행원들
보건부 장관, 정보부 장관, 부관, 간호사
기자 1, 기자 2
의사들, 간호사들, 나환자 세 명, 군중들
돌아가신 우리 장인이 베이징의 병원에서 본 몇 가지 사례들로 논문을 쓰셨거든요. 무척 흥미로운 글이지요. 최근에 제가 리뷰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 질병이 이런 가공할 만한 유행병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꿈도 못 -
기자 가공할 만한 뭐라고요?
시겔리우스 유행병 말입니다. 통제 불가로 확산되어 결국 세계 인구 전체를 감염시키고야 마는 질병이지요. 대단히 흥미로운 신종 질병이 거의 매해 중국에서 새로 등장하고 있단 말입니다. 다 가난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태껏 쳉 바이러스만큼 흥미로운 병은 없었어요. 이건 진정한 이 시대의 질병입니다! 등록된 건만 2천만이에요! 적어도 그 세 배쯤 되는사람들이 자기 몸 어딘가에 흰 콩알 크기도 못 되는 작은 얼룩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돌아다니고 있을 거고요. 그리고 유럽 최초의 사례는 바로 여기, 우리 병원에서 진단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친구. 바이러스가 보여 주는 특히 눈에 띄는 증세 하나에는 〈시겔리우스 증세군>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기자 (글을 쓰며) 법정 고문 - 교수 — 의사 — 시젤겔리우스 증세군 -
시겔리우스 제 견해는, 그리고 우리 학파의 견해는 아,우리 학파는 자랑스럽게도 위대한 릴리엔탈, 그러니까 돌아가신 우리 장인-받아 쓰셔도 됩니다-의 이름을 따서......
...제2조수가 황급히 달려 나간다.
기자 세계의 통치자들이 어떻게 나올는지.
갈렌 그래요, 어떻게 나올까요? 그게 가장 힘든 부분이겠죠. 저들이 말상대도 안 해 줄 거라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싸우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않는 국가는 백신을 얻을 수 없다고 여러분이 기사를 써준다면 -
기자 2 이상주의에요! 그렇게 백신을 살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겁니다!
갈렌 없다고요? 별것도 아닌 이유로 수백만 명이 끔찍한 죽음을 맞도록 내버려 둔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통치자들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도 겁에 질릴 거란 말입니다!
기자 그 말도 일리는 있군요. 그렇지만 어떤 정부도 동의하지 않으면 어쩌죠?
갈렌 지독하게 슬픈 일이 되겠지요. 저로서는 도저히 백신을 풀 수가 없습니다.
기자 그걸로 뭘 하려고요?
갈렌 다시 빈민가로 가지고 갈 겁니다. 거기라면 환자들이 모자랄 일이 없으니까요! 하얀 역병이 치유 가능하다는 사실을 수백 번도 더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상식적인 갈렌의 협상은 결국 성공을 앞두고 좌절된다.
1937년 체코 작가가 상상한 중국발 전염병이라니.
때가 때이니 만큼 코로나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이 하얀 역병.
소설 속 전염병은
무한 앞에 겸손하지 못한 야망의 인간이 재앙을 자초하는 걸 보여주기 위한 소재였지만
어딘가는 넘쳐 나는 백신이
많은 지역에서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그 소외된 지역들에서 계속 변종들이 생겨 놀라운 속도로 만들어진 백신들의 위세를 꺾으며
결국 모두에게 공평한 불행-그 심각성은 공평하지 않겠지만 누구도 예외 없이 그 영향력 아래 있으므로-을 드리운다는 점에서 여전히 많이 닮아있다.
읽을수록 인생이 궁금해지는 카렐 차페크.
---엉망인 책갈피인데 이미 시간이 지나버려 정리가 안됐다...독후감을 미루면 이런 일이 생긴다.
운영전|구인환 엮음|신원문화사
운영전은 운영이라는 안평대군의 궁녀가 아름다움 청년과 죽어서도 연을 이어가는 사랑이야기이고
영영전은 어느 대감집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영영이라는 처자의 사랑이야기,
백학선전은 중국을 배경으로 어릴 적 인연을 이어가려는 한 낭자의 모험가득한 배필 구하기로
세 개의 연애소설이 묶여있다.
그 시절의 연애소설 맛보기랄까.
그 중 인상 깊었던 영영전의 한 대목.
이렇게나 혼신의 힘을 다해 썰을 풀며 유혹하는 김생의 열정^^
...마음으로 하고자 한 바를 다 해 보았으나 오직 운우의 즐거움만은 이룰 수가 없었다. 김생은 영영의 정욕을 고무시키며 정성을 다하여 백단으로 유혹하며 말하였다.
“새도 급히 날고 토끼도 빨리 뛰나니, 세월은 꿈 흐름과 같아서 붉은 꽃이 떨어지고 푸른 잎이 시들어지면 나비도 생각을 멀리 할 것이니, 이것과 무엇이 다르리까? 얼굴에 붉음이 시들어가고 머리에 흰 머리가 나부끼면 그만이오. 아침에는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양대의 신녀도 본래에는 정해진 사람이 없었으며 푸른 바다 넓은 하늘 달 속의 항아도 후회하고 선약을 도적하였다오. 새들은 미물이면서도 나래를 나란히 하고 초목은 우둔하면서도 마주 보고 서는데, 하물며 욕정이 모이는 데 있어서 어찌 인간만이 그 이치가 다르겠소? 봄 바람에 호접의 꿈은 특히 공방을 괴롭게 하고 달밤에 두견새의 울음은 유달리 외로운 배게를 놀라게 하는데, 어찌 당나라 시인 두목지 만이 봄을 찾아 만년을 꽃답게 보냈겠소? 위나라 우언에 항아를 바라보다가 청춘의 해를 헛되이 보내고서 공연히 황천의 한만을 끼쳤으니, 저 서릉의 푸른 나무는 천 년을 지나는 동안 황막한 언덕이 되어 고요하고, 장신궁은 밤새 내리는 가을비에 쓸쓸하도다 하였으니 슬프도다. 내 마음에 섭섭히 여기는 바는 낭랑의 무정함이니 이 몸이 살아서 무엇하리요? 죽어서 없어질 뿐이오."
그러나 끝내 영영은 순종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하였다.
"도령님께서 뜻을 저에게 두시었다면 다른 날 서로 찾는 것이 좋을까 하나이다.”
김생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말하였다.
"음용을 한번 이별하면 궁문이 깊이 싸여서 편지를 붙이고자 한들 전달할 길이 없을 것이니, 어찌 다른 날 낭랑의 두 푸른 눈동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겠소?"
"그것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마는 이달 보름 밤에 진사와 유왕자제군이 완월회를 하자고 약속하였삽기로 그날에는 반드시 밤에 잠깐 들어왔다가 나갈 것이옵니다. 또한 궁의 담이 마침 풍우로 인하여 무너졌으나, 진사께서 천천히 고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고치지 아니하고 있나이다.
도령님께서 그날 어두워진 다음에 오셔서 무너진 담으로 깊이 들어오시면 가운데 짧은 담문이 있으므로 꼭 열어 놓고 기다리겠사오니, 그 문으로 담을 따라 내려오면 동쪽 섬돌 십보 가량 되는 곳에 별침 두어 간이 있사옵니다. 도령님께서 거기에 몸을 숨기고 계시면서, 제가 나와 맞이하도록 기다리면 우리들의 가기 에 무슨 어려움이 있사오리까?"
이에 김생은 자못 그렇게 여기고서 굳게 약속을 정하였다. 손을 나누어 작별하고 같이 길을 떠났다. 점점 남북으로 멀어지니, 김생은 말을 세우고 머리를 돌려 바라보며 말없이 넋을 잃을 따름이었다. 김생은 일로부터 깊은 생각이 더욱 심해졌다. 곧 시 한 수를 지어 스스로를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