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Rossum's Universal Robot|카렐 차페크

알퀴스트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냥 늘 있는 진보일 뿐이죠.


도민 각각의 공장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로봇들을
각자 만들 거란 뜻이에요.
그 로봇들은 모두가 달라...마치 지문처럼 서로가 다 다르지. 
그러니 더 이상 함께 모여 작당을 일으키진 못할 거요.
그리고, 우린...우리 인간들은 로봇들의 편견을 더욱 조장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거지, 알겠어요?
그래서 어떤 로봇도, 죽는 날 까지,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다른 공장의 마크가 찍힌 로봇이라면 영원히 증오하게 될 거란 뜻이요.
할레마이어    이런 제기랄! 그럼 우린 흑인 로봇, 스웨덴 로봇, 이탈리아 로봇, 
                중국로봇들을 만들겠구만.  
                로봇들 머릿속에 '인류애'라는 개념을 집어 넣으려고 애쓰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게 내버려 두자구. (딸꾹질을 한다.)
                실례합니다. 헬레나 여사, 한 잔 더 마실게요. 

도민 (읽는다)"만국의 로봇들이여! 우리, 최초의 로숨 유니버설 로봇 노동조합은, 
                인간이 우리의 적이며 우주의 떠돌이임을선언하노라"

갈박사 살아있는 노동기계를 군인으로 만든 건 죄악이었다구!
알퀴스트 죄로 치자면 로봇을 생산한 게 먼저네.

도민 ......알퀴스트, 인류를 예속하던 노동을 없애려고 한 우리 꿈에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사람들이 참아야 했던 고통스럽고 끔찍한 노동, 더럽고 진절머리 나는 고역들, 
그걸 없애려 했던 우리 꿈에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오, 알퀴스트, 일하는 건 너무나 힘들었어요. 
사는 건 너무 힘들었다구요. 그러니, 그걸 극복하는 건...
알퀴스트 두 로숨의 꿈은 아니었지.
늙은 로숨은 신을 부정하는 자신의 도깨비 장난에만 몰두했고
젋은 로숨은 돈밖에 관심이 없었어.
게다가 그건 당신들, 로숨 유니버설 로봇의 주주들이 가진 꿈도 아니었지. 
그들은 이익배당금을 꿈꾸었을 뿐이야. 
바로 그 배당금 때문에 인류는 멸망하게 될 거요.
도민 (격노하여)그까짓 배당금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구요!
당신은 내가 단 한 시간이라도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했을 거라고 보나요?
(탁자를 쾅 내리친다) 난 내 자신을 위해서 이 일을  했어요, 아시겠어요?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난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래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지 않아도 되길 바랬어요.
난 그 누구도, 뭔지도 모르는 기계 앞에서 바보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구요!
그 빌어먹을 사회의 쓰레기가 한 줌도, 단 한 줌도....
단 한 줌도 남지 않길 바랬던 겁니다!
난 비하와 고통을 혐오했어요!
빈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구요!
나는 새로운 세대의 인류를 원했어요!
내가 바랐던 건...내가 생각했던 건...
알퀴스트 그래서?
도민 (좀 차분해져서)난 모든 인류를 귀족계급으로 개조하고 싶었어요.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최상의 사람, 
아니 사람보다도 더 위대한 그 무엇으로 말이죠.
알퀴스트 그건 말하자면 초인이군 그래.
도민 그래요. 아, 100년 만 더 주어진다면!
미래의 인류를 위해 딱 100년만 더 주어진다면.
알퀴스트 오직 인간만이 생명을 번식시킬 수 있네.
내 시간을 빼앗지 말게.


*호문쿨루스(Homunculus): 16세기 독일의 연금술사 파라켈루스가 만들었다는 전설 속의 작은 인조인간
*골렘: 히브리어로 태아상태나 완성되지 못한 형상. 유대교의 신비의식인 카발라에 따라 종이에 주문을 써서 입에 넣거나 이마에 붙여서 생기를 불어넣은 진흙 인형  

로봇은 노동이라는 체코어 robota에서 온 말로 카렐 차페크의 형인 요제프 차페크가 제안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 로봇들은 인간의 노동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들로 몇 단계 진화를 거쳤다. 
로봇의 창세기에는 로숨 부자가 등장하는데 '공포스러운 유물론자'인 아버지, '늙은 로숨'은 
생명체를 만들어내려 실험을 거듭하다 드디어 물질적으로는 인간에 유사할 정도로 정교한
인조인간을 조립해낸다. 
아들인 '젊은 로숨'은 3일 밖에 살지 못한 아버지의 인조인간을 용도에 맞게 개조하기로 결심,
행복이나 음악 등 '삶의 윤기'이지만 그의 눈에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을 빼서 로봇을 순수한 노동기계로 개조해 대량 생산에 성공한다. 

그 뒤를 이어 로봇을 제조하는 회사 로슘을 이끄는 사람들은 영국인 기술자 파브리, 프랑스인 연구부장 갈 박사, 비즈니스맨을 줄인 말일 거라는 유태인 경리부장 부스만, 라틴어 Dominus 신을 의미한다는 경영자 도민과 라틴어로 그 어떤 자-신이 아니지만 신의 뜻을 미리 알리고 고난을 감수하는 선지자 aliquis를 의미한다는 건설노동자 알퀴스트이다. 

다들 이름으로 부여된 역할에 충실한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로봇들에게 노동권을 일깨우고 노동조합을 설립해 로봇해방을 이루려는 
인권운동가 헬레나가 등장한다.
모든 주요 인사들의 사랑을 갑자기^^받게 된 헬레나가 
10년 뒤 도민의 아내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로봇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가 처음 선보인 시절엔 
로봇이라는 존재의 등장이 충분히 압도적이었을텐데
지금 이 로봇들은 인간이면서 로봇처럼 되어 버린 
노동의 분화-이주 노동자, 저임금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대륙 간의 노동 불평등까지
현대의 노동환경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차마 인간에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로봇을 만들었던 
19세기 차페크의 우아한 사상에 절대 미치지 못하는 
이 현실적인 인권 수준이 충격적일 정도.

게다가 도민이 설파하는, 
꽤 인간 이기주의적인 철학은 
최소한 인간입장에서는 인본주의적으로 들린다.  
계급으로 인한 차이가 생기는 시점을 레저-여가로 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바로 도민이 
모든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공평하게 그 여가를 선물하겠다는 꿈을 가진 인물이라니
자본주의의 꼭대기 계급자인 사업가와 자애로운 신의 철학의 
이상적인 통합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로봇을 제외시켰던 그의 불완전한 이상은 미완으로 끝난다. 
누구의 세상이라고 정해버릴 수 없지만
아무튼 미래는 
인간과 로봇의 융합인 것 같은,
손으로 일을 하던 유일한 인간이자, 
그래서 로봇들이 희망으로 여겼던 마지막 인간 알퀴스트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문을 연다. 

다 읽고 나면 궁금해지는 것.
로봇들이 노동을 전담하던 10년 간 
평등하게 레저를 즐기던 인간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로봇들에게 속수무책 멸종 당해버릴 만큼 물리적으로는 연약한 인간들이었지만
그들 각자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은 이상적이었다. 
지구의 승리자는 로봇이 되었지만
정복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의 마지막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작은 균열의 시작이었을 로봇 프리무스와 헬레나.
갈박사가 몰래 바꾼 약간의 신체변경이란 
아마도 생식기능이었겠구나를 상상할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 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상이 다른 이상과, 긍정적인 가치가 역시나 긍정적인 다른 가치와 대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본다.

이런 인간에 대한 이상향을 가진 차페크라서 
로봇의 대량 생산을 책임지던 도민마저도 이상향을 꿈꾸던 인물로 그려낼 수 있었나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덧붙여 알찬 해설, 
당대 차페크의 반론까지 
두루두루 속이 꽉 찬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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