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사계절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거야."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삐삐 롱스타킹'에 푹 빠졌을 때는 삐삐가 '말랼광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은이에게는 삐삐가 '미치광이'같은 느낌이었을까.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슬프고 두려운 일이지만, 가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그러면서 칠판에 "서로 몸이 달라도 _______ 자" 라고 썼다. 내심 '존중하자'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예지의 답을 기다렸는데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예지야, 그럴 때 '무시'의 반대말을 떠올려보면 좋아." "아! 알았다!" 유일한 답이라는 듯 예지는 이렇게 썼다. "서로 몸이 달라도 같이 놀자." 그 순간 나는 예지에게 백오십 번째로 반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존중'이라는 단어를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기회를 줬다. 예지는 이번에는 이렇게 썼다. "서로 몸이 달라도 반겨주자"

 몬테소리는 '재미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해 손수건 사용법 등을 가르쳤는데, 어린이들은 전혀 웃지 않고 귀 기울여 수업을 들었을 뿐 아니라 수업이 끝나고는 깜짝 놀랄 만큼 열광적인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몬테소리는 어쩌면 자신이 "어린이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린이들은 더러운 코 때문에 끊임없이 야단맞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제대로 코푸는 법을 몰라 애를 먹어온 것이다......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길어야 3, 4년 전의 일을 두고 힘주어 "예엣날"이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정말 까마득한 옛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마흔 살의 3년 전과 열 살의 3년 전은 똑같은 기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명의 노동자이기도 한 '교사'에게 '스승'의 모습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특수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그 길에 들어선 것 차제를 '헌신에 대한 약속'으로 여기고, 그 분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 밖에도 악기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저마다 해 준 조언은 이랬다. "남들 하는 거 멋있어 보여서 하는 거면, 큰 기대는 안하시는 게 좋아요." "분명히 지루해 질테니까 마음 굳게 먹으셔야 돼요." "피아노 연주를 자주 들으세요. 다른 사람들이 연주한 거요." "열심히 하세요. 안됐는데 갑자기 될 때가 있어요." "연습은 날마다 해야 돼요. 날마다 하는 게 중요해요."

내용이나 어조를 떠나 대부분의 양육서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라'인데, 어째서 부모의 개성은 존중하지 않는 걸까? ..... 그런 상태에서 '이럴 땐 이렇게'식으로만 접근하면 결과적으로 아이들도 비슷해지는 것 아닐까?

그리고 반말-존댓말 관계에는 반말을 하는 쪽이 '존댓말을 듣는다'라는 이유로 더 권위를 얻는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사람보다 그 말을 듣는 쪽이 더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존댓말을 하는 사람의 의견은 자주 무시된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도 많은 어린이로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행지 관광 안내소 직원에게 엄마 아빠가 지도며 상품할인 쿠폰 등을 받고, 이런 저런 안내를 받는 동안 데스크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어서 기를 쓰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다......여행 와서 들뜨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은 나나 어린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대화에 참여하기는 커녕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어린이는 몸집이 커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안 해 봤을까? 어른이 되고서 "크니까 좋구나. 속이 다 후련하다!"했을 법도 한데, 일단은 내가 천천히 자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중에 커서 아기 낳으면요, 아 맞다, 지금 컸지"

...어른들은 이날 하루 마주치는 어린이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좋겠다......어린이날, 가정 바깥에서도 축하를 해주자. 

나는 교육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점을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 나는 조그마한 좋은 것이라도 꼼꼼하게 챙겨서 어린이에게 주고 싶다, 거기까지가 내 일이다. 그러면 어린이가 자라면서 모양이 잘못 잡힌 부분을 고칠 것이다......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한다.

제목이 이렇게나 매력적이면 실망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 놓고 읽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제목처럼 어린이라는 세계를 지금 만나는 어린이들, 자신의 어린이 시절을 통해 아우르며, 나로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안내를 해주기도 하고, 공감하기 쉬운 글로 쉽게 이해시켜준다.

마지막 부분 어린이날의 희망사항에 이르면, 저자가 일년에 한 번이라도 한번쯤은 어린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들을 이렇게나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제일 재미있던 부분은 책읽기 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시작부터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어린이는 태어나기도 하지만, 많은 수가 공들여 바라보는 시간에 비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들

시간이 흐르면|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읽음:그림이 많음

사람백과사전|메리 호프만----읽음:그림이 많음

어린이의 비밀|마리아 몬테소리 

멋진 열두 살|신시아 라일런트

어린이 문화운동사|이주영

연년세세| 황정은 | 창비

한영진은 갓난아기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진 뒤에야 아이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이를 유심히 보고 싶은 마음, 다음 표정과 다음 행동을 신기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마음, 찡그린 얼굴을 가볍고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관대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 인내심...... 모든 게 그 간격 이후에야 왔다. 한영진의 모성은, 그걸 부르는 더 적절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언젠가 한영진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타고난 것이 아니고 그 간격과 관계에서 학습되고 형성되었다. 그건 만들어졌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한영진은 둘째를 낳을 수 있었고, 첫 번째 보다는 여유 있게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지금은 좋아했다. 이순일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한영진은 알고 있었다. 이순일의 노동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말하자면, 잊는 것일까. 

오랜만의 황정은이다. 

토지를 보고 나면 경상도 사투리가,

태백산맥을 읽고 나선 전라도 사투리가 그렇듯

읽고 나면 말투를 따라하게 되는 것 같은 작가 황정은

담담하지만 할말은 하는 성격의 소설이랄까. 

이번 황정은은 좀 황정은 같지 않기도 했는데 

이게 황정은 완성과정의 단면인지

아니면 잠깐의 자극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도 매력적.

파묘

이순일의 할아버지 무덤을 파묘하러 가는 이순일과 한세진 그리고 다른 가족 한만수와 한영진의 이야기이다.


하고 싶은 말

일찍 가족의 생계를 지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었다-에 눌린 한영진의 이야기


무명

새벽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의 이순일과 이순자들의 이야기


다가오는 것들

한세진과 하미영의 이야기

나무 위의 남작|이탈로 칼비노 |역자 이현경 |민음사

 형은 아픔과 승리의 기쁨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생전 처음 승리한 사람, 그리고 이제 승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지 아는 사람,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으며 실패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도피처를 자신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 사람의 절망에 사로잡혀 나뭇가지와 단검과 고양이의 시체를 꽉 붙들고 있었다.


“자네 꼴좋군!” 아버지가 호되게 말을 시작했다. “정말 귀족신사라고 할 만해!”(아주 엄하게 야단칠 때처럼, 아버지는 형에게 ‘자네’라는 존칭을 사용해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 존칭의 사용은 거리감과 무관심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버님, 귀족은 땅에 있으나 나무 위에 있으나 귀족입니다.” 코지모 형이 대답하더니 곧 이렇게 덧붙였다. “그가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말입니다.”

“좋은 말이군.” 남작이 심각한 태도로 시인했다. “그런데도 자넨 방금 전에 소작농의 자두를 훔쳤어.”

사실이었다. 형은 당황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형은 미소를 지었는데 거만하거나 냉소적인 미소가 아니라 부끄러워하는 미소였다.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버지도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쓸쓸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얼굴도 빨개졌다. “이제 자넨 행실이 나쁜 아이들과 거지 떼와 한통속이 되었군.” 잠시 후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님. 저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누구나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코지모 형은 단호하게 말했다.

“부탁하네. 땅으로 내려오게.” 남작은 거의 꺼질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자네 신분에 맞는 의무를 다시 수행하게.”

“그 말씀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 형이 대답했다. “저도 괴롭습니다.” 

두 사람 다 거북스럽게 짜증이 났다. 두 사람 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러면 자네 공부는? 기독교인으로 해야할 기도들은?” 아버지가 말했다. “아메리카의 야만인들처럼 자라겠단 말인가?” 형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들이었고 앞으로 도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형이 말했다. “제가 몇 미터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적절한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느 면에서는 형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흔들리고 있다는 표시였다. 

아버지는 이를 눈치채고 더욱 그를 조였다. “반항이란 몇 미터냐 하는 걸로 측정되는게 아니야.” 아버지가 말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얼마 가지 않은 것 같은데 돌아올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이제 형은 뭔가 다른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 당시 우리가 많이 외우고 있던 라틴어 격언이라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은 거기서 그렇게 엄숙한 말을 해야 한다는게 짜증 났다. 그래서 혀를 쏙 내밀고 소리쳤다. “그래도 난 나무 위에서 더 멀리 오줌을 쌀 수도 있어요!” 의미 없는 말이었지만 이것으로 대화는 중단되어 버렸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듯이 포르타 카페리 주위에 있던 불량소년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디 론도 남작의 말이 급히 옆으로 뛰쳐나갔고 남작은 고삐를 잡고 떠날 채비를 하듯 망토를 몸에 둘렀다. 하지만 몸을 돌리더니 망토에서 한 팔을 빼내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버린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조심해라, 아들아. 우리 모두의 머리위에 오줌을 놀 수 있는 분이 계시단다!” 그러더니 말을 달려갔다. 


불행히도 이런 나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호두 나무도 마찬가지여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셀  수도 없이 많은 방을 가진 여러 층의 대저택처럼 어마어마하게 크고 오래된 호두나무 쪽으로 형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서 흉내 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위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그 나무를 나무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힘과 확실성이었고 무겁고 단단해지고자 하는 고집스러움, 나뭇잎 하나하나에까지도 나타나 있는 그 고집스러움이었다.


이미 형이 눈에 비친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형의 세상은 구불구불하게 허공에 놓인 다리들 ,나무 마디나 껍질들, 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유충들,  곧 자루를 흔드는 약한 바람에 떨리거나 나무 전체가 바람 앞의 돛처럼 휘어질 때 같이 흔들리는 울창하거나 성근 나뭇잎들, 그리고 그 초록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햇빛으로 이루어졌다. 밑에 있는 우리들의 세상은 평평했으며 우리는 균형이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이 나무 위에서  알게 된 것들과 나무가 몸통 내부에 나이테를 나타내는 원을 만들기 위해 세포 조직을 응축시키는 소리, 곰팡이가 산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함께 실려온 먼지와 섞여 점점 커지는 소리,  둥지 안에서 잠자던 새들이 몸을 떨며  깃털이 제일 부드러운 날갯죽지에 머리를 쑤셔 넣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비 유충이  깨어나는 소리와 때까치 알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보내는 형에 관해 우리는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들판의 침묵 속에서 까악까악 우는 소리, 짐승의 긴 울음소리, 풀잎을 아주 재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물속에 풍덩 떨어지는 소리, 땅과 돌멩이 사이로 비틀비틀 걷는소리,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 보다 훨씬 높은 있는 매미 우는 소리가  무수한  소음으로 들려오는 순간이 있다. 소음은 연이어 들리게 되고 그 소음 중에서 새로운 소리를 언제나 구별할 수 있게 되는데, 그건  마치  양모 타래를 끄르던 손가락이 실타래마다 점점 가늘어져서 제대로 만질 수도 없는 실들이 엉켜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과 같았다. 그러는동안 개구리들은 계속 개골개골 물었다. 계속 깜빡이며 빛나는 별빛이 있어도 달빛이 변하지 않듯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다른 소리의 흐름을 바꿔 놓지 않은 채 배경음으로 남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거나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모든 소리는 변했고 새로워졌다. 귀의 깊숙한 부분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소리는 음울한 포효 혹은 웅얼거림 뿐이었다. 그건 바다 소리였다.


사랑의 미덕중 가장 새로운 것은 아주 단순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형은 그때 자신이 평생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형의 이 모순되는 태도를 유례없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치부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형이 그 시대에 번성했던 모든 유형의 사회집단에 대해 똑같은 적의를 품고 있었기에  그 모두를 피했고, 고집스럽게 새로운 단체를 계속 실험하느라  애썼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형이 보기에 그 많은 단체들 중 정의롭다거나 다른 단체와 완전히 구별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형은 철저한 자연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거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보편적인 사회였다. 화재나 늑대 침입을 막기 위해 방위대를 조직 할 때처럼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든,  완벽한 수레바퀴 제조인 조합이나  계몽된 재혁업자 조합 같은 수공업 조합을 통해서든, 형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애쓸 때마다 항상 사람들은 한밤중에 형이 미리 정해 놓은 숲 속의 어떤 나무 주변에 모였기 때문에 그곳에는 언제나 공모와 비밀결사와 이단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형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혀서 점점 더 깨끗해지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항상 어디를 가든 비누를 가지고 다녔다.

 

호랑가시나무, 느릅나무, 쥐엄나무(아침마다 코지모가 즐겨 앉던 나무, 바티스타가 풀을 바름), 뽕나무, 목련나무(그네를 타던  비올라를 만남), 뽕나무, 플라타너스, 벚나무(과일도둑 아이들을 만남),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올리브나무, 떡갈나무, 감탕나무(집의 정원), 대나무, 인도밤나무, 너도밤나무(고양이와의 결투), 목련나무(비올라와의 이별)......


이렇게나 많은 나무 이름이 등장하는 소설. 궁금해서 처음에 좀 찾아보기도 했다. 비올라의 비난에 절망했다가 사라질 때 감탕나무-올리브나무-너도밤나무 위를 어떻게 움직였을까 상상도 해보면서.

 

칼비노의 3부작 중 두번째라는데, 둘째증후군이 무색하게도 반쪼가리였던 자작보다 더 자유롭고 인간됨의 폭이 넓어진 것 같은 남작은 매력적이다. 반쪼가리 자작이 영혼의 탐색이었다면 나무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매개인듯 살아가는 남작은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신화같은 마지막도 너무 잘 어울린다. 

누나나 아버지가 등장할 때마다 왠지 너무 웃겼고, 그의 기록은 또 살아가는 조르바 대신 기록하는 동생이 담당. 흥미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칼비노 스타일 완전 호감.   

짐승의 끝|End of Animal|2010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

-신을 믿는 쪽이나 안 믿는 쪽이나 할 말 많은 의문점이다. 

어떤 미래는 모르고 어떤 미래는 아는 신은 일단 불완전해 보였지만

증명하지 않아도 결국 믿지 않을 수 없는 신

그 안에서 '잘해보려다가'(이 정도는 신도 인정해 줌) 결국은 거스름을 범하는 인간

그래도 '사랑이 죄'라 인간을 버리지 못하는 신

소박한 바램을 구원의 증표로 받아들이는 인간......

인간을 향한 꼰대형 신의 등장이라니 정말 신선하기도 하고

얼마 전 본 맨프럼어스 만큼이나 독창적이기도 한데

이 자유로운 상상력의 주인도 

상투적인 폭력의 굴레에 대해서 만큼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았다는 게 불쾌함1,

(보는 영화마다 반짝반짝하는 유승목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님^^)

순영에게 찾아왔다가 떠나는 야구모자의 뒷모습이 꼭 화장실 장면 같이 보인 건 불쾌함2. 

성모 마리아의 다 믿는 것 같지도 안 믿는 것 같지도 않은 마지막 소원은 참신. 

국도를 달리는 택시 한 대에서 시작해 다시 텅 빈 국도로 돌아오는 사이

이렇게 뭔가 계속 궁금해지고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엮어낸 뇌구조는 정말 신기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늑대소년은 정말 많이 포장되고 자기를 지운 영화였구나-싶어지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것 같은 조성희 감독이 

불쾌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의 장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은 박해일 반가웠지만 

이것이 무려 10년 전.

온갖 개고생이 묻어나는 열연의 이민지-진짜 순영이 같음.

해치지않아|Secret Zoo|2019

 

돌아오라, 동물옷 장인 ㅋㅋㅋ
 

처음엔 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서히 빠져들었다 ㅋㅋ

이게 진짜 다양성 영화아닐까.

단조로운 악당 좀 아쉬웠고,

3천만원 전재산 직원의 동물원 사랑은 좀 과했고,

갑자기 절친되는 변호사 친구도 좀 뜬금 없었지만,

무뜬금보다 좀 더 조심해줬으면 했던 건

동물원 관람객들의 무매너.

적당히 좀 하게 하지.

쓰다 보니 구멍만 있는 것 같지만

보는 동안 재미있었다.  


동물원 말아먹은 주제라 몸과 마음을 다바쳐 협조하는 전 동물원 사장의 

쭈굴하되 도망가지 않는 멈춤없는 자기반성-너무도 반갑지 아니한가.


이런 동물원이 있다는 것 보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암튼, 좀 더 꼼꼼하게 만들어진 이런 영화 또 보고 싶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법

여름, 아름다운 장소, 젊음.

매혹의 요소를 한 데 모아 놓은 가운데서 사랑이 꽃피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같기도 하다. 

하나의 사랑에 가망이 없어지면 

왜 어떤 사람은 그렇게나 빨리 다른 사랑에 정착하려는 걸까. 

엘리오에게는 최소한 그를 외롭게 만들지는 않을 비범한 부모가 곁에 있고

올리버 보다 조금은 더 긴 인생이 남아있기도 해서인지

마지막 엘리오의 모습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지만

화창한 사랑의 끝이 겨울 밤인 건 쓸쓸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늑한 곳이었어서 다행이다. 

디카프리오의 랭보에 비할만한 

티모시 살라메의 화보작.

소셜포비아| Socialphobia|2014

  

저 뒤의 사람들이 더 무섭다...

 

이유를 찾게 된다는 말.

그 말 자체는 면죄부가 될 수 없지만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주는 고백.

하지만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죽음을 희롱하는 것 정도는 범법이 아니라서

괜찮다는 듯 희희낙락하는 모습.

아직도 너무나 많을 

그게 자신인지도 모를 것 같은 사람들.

 

법은 주권자들의 처벌권을 대리하기에 

엄격히 인과관계를 따져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하지만

결국 가장 큰 죄는 개인의 양심과 죄책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는

눈에 보이는 문명의 발전으로 극복되지 못했다. 

 

나섰다가 돌팔매라도 맞는 사람들보다 

한 걸음 뒤에서 

적당한 패기를 정당화시키며 

다수 중의 하나로 언제든지 다시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군중 속의 개인들이 

더 슬프고 싫다.

 

살인혐의를 벗었다고 해서 강간범이 정의가 될 수 없고

과거를 숨겼다고 해서 살인용의자가 되면 안되고

배신자라서 죽어도 되는 것도 아니라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보기.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야구소녀|Baseball Girl |2019 + 코멘터리

 
 공 던지는 이주영 멋있는데, 그 사진이 없다니..

 

야구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고

얼마 전에 대학 여자야구선수 기사를 읽은 기억이 야구 관련 흥미로운 경험의 전부인데

주수인이 큰 공 하나 던지고 간다. 

확신 없이도 이렇게 달려가는 열망의 힘.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의 꿈이란 건 

그냥 언젠가는-에 그치는 많은 꿈보다 절실한 게 당연하다. 

구석구석 자기 몫만큼 힘들었던 주변의 사람들도

다들 조금씩 마음을 옮겨주었다는 게 

동화같으면서도 또 끄덕여진다.

 

천재야구소녀였으니까 

주수인은 어쩌면 선택의 고민할 필요없는 선택받은 사람인데

자라면 더 잘하게 될 것 보다

중학교가 끝이다, 고등학교가 끝이다라는 시한부 야구인생 선고를 체감하며 자란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공을 던질 자리를 만들며 

스스로 단련하는 줄도 모르고 단련한 수인의 인생스킬은 

누구나에게 정답일 수 없는데도 빛난다. 


트라이아웃에서 수인이 글로브로 공이 떨어질 때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감정구걸 1도 안하면서 마음을 얻는 우리 주수인 선수^^

어떻게 응원을 안할 수가.

극악스러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솔직할 용기가 있었던 엄마,

-한 달만 주시면 6천만원 마련해보시겠다는 데서 울컥했다.

아침 생라면도 오도독 잘 먹고, 어린이의 정체성을 뽐내는 수형이

-그건 나는 모르지. 아침부터 아무도 없었는데: 이런 천진난만한 탈어린이 화법^^

가장 갑작스런 인간반전의 주인공 최코치

-단점은 보완되지 않는다니...슬프다.

공인중개사 시험 장수생에 알 수 없는 불법에도 연루됐지만, 그래도 수인이 편인 아빠, 

-경제력 없다고 시시한 아빠는 아니란 걸 보여준다.

리틀야구단 때부터 아직까지 야구하는 사람은 우리 뿐이야-로 그냥 이해되던 정호의 동지애,

분야가 다른 동료이자 친구인 방울이,

잔잔하게 어울리면서도 개성있는 사람들이어서 좋았다. 

어딘가 공포의 외인구단 시절을 생각나게 만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은 좀 특이했고.

  

이동진의 소감 멋있었다-

온 세상이 한 소녀의 꿈을 응원하는 얘기가 아니라, 

꿋꿋이 길을 가는 한 사람이 주변을 변화시키는 얘기-라는.

그러고 보니 수형이는 여기서도 특별했다. 

보통 가족 영화에서 형제자매는 앙숙이거나 

찌질한 갈등을 유발하는 소모품 같은 건데 

우리 수형이는 언니 시합 전에 치어리더 공연도 펼쳐줬으니까.

 

놀랍게도 이 이야기 같은 진짜 주인공이 있다고 한다. 

안향미 선수-아쉽게도 없는 것 없는 유선생채널에도 동영상이 없는데 

고교선발로 뛰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니 대단한 분이 있었다. 

 

이 남는 여운을 주체 못하고 있는데 

코멘터리가 딱 눈에 들어왔다. 

 

기억나는 이야기 몇 개.

주수인이 너클볼 연습을위해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하던 대사,

'이건 예뻐지는 거 아니고 단단해지는 거야' 맘에 들었는데 

이주영도 그 대사가 좋았다고.

밥 때마다 수인이 가족이 앉는 자리가 달라진 건 불안정한 가족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한 설정

최코치가 헥헥대며 수인이를 못따라가던 날은 설정 상 술마신 다음날이기도 해서였다고.

원래 주수인은 1호인 안향미 선수에 이은 2호를 상징하며 

등번호 2번을 달게 하려고 했었는데

아무도 몰라줄 것 같아 감독 부인의 생일로  바꿨다고^^

감독이 생각했던 영화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학교에 걸려있던 주수인의 입단사진이 정호의 프로입단사진으로 바뀌는 장면과

또 하나 있었는데-기억이 안남--;;

최윤태 감독 말이 너~~~무 느려서 좀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렇게 참한 영화를 만들었나 싶기도 했다^^

들을수록 수인이 같은 이주영,

들을수록 참한 이준혁-영화 속 정호 같은 느낌인데, 서동재가 더 유명해져서 말이야ㅋㅋㅋ

의 애정 넘치는 코멘터리도 영양만점.

엘리자베스타운|Elizabethtown|2005

 이 둘이 이 때 이 영화를 찍었다는 건 

안구정화 분야에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업적이다

 

인물로만 보자면 

인생 최고 좌절기의 드류를 위해

기적같은 타이밍에 맞춤형 오지랍 여신같은 클레어를 창조해서 선물한 

인공미 물씬 나는 이야기지만,

그 둘을 오가는 공기는 

가족과 죽음, 잊고 있던 것들, 소원해진 것들로부터의 기운이 가득하고

전도유망한 청년의 성공과 좌절까지 여러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어서

보기에 즐거웠다. 

마지막은 

마치 연애코치의 조언을 형상화 한 것 같은,

무기력증 드류에게 소소한 목표를 계속 이어가게 하면서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못하는 게 없고 

천리를 내다보는 듯한 클레어의 미션파서블 목록.

그 끝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완전 꿈의 엔딩.



 올란도 볼룸의 리즈 장면도 하나 곁들임


매기스 플랜|Maggie's Plan|2015

 21세기의 미국인데 

왜 자꾸 한국 같아 보이는 걸까 ㅋㅋㅋ

찌질한 에단 호크 짜증을 유발하면서도 너무 웃겼고

남편 반품이라는 과업을 달성하는 매기도 참 특이한데 

나를 사로잡은 이 분.

말투부터 몸짓까지 등장하는 장면마다 시선을 강탈하던 줄리안 무어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2007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야기의 힘

크레이지 하트의 대사가 생각났다, 워낙의 명곡은 누구라도 망칠 수가 없다-는.

어떤 발연출도 어떤 발연기도 망칠 수가 없을 것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전개.

내가 모르는 세상의 구석에는 별의 별 게 다 있을 것 같다는 

환상지지자의 관점에서 그렇다.

얼마나 많은 상상을 혼자 펼쳐봤을지

만 사천년이라는 긴 시간을 특이하게 다루려고 하지 않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평범한 인생처럼 펼쳐 놓는게 아마도 설득의 비결.

하지만 진지하게 듣던 사람들처럼 분노하지 않았던 걸 보면

나는 좀 대충 믿었던 것 같다. 

흥미진진한 잡학사전 같은 신선함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역시 종교인을 설득하는 것은 세상 불가능ㅋㅋ

 

 

메기|Maggie|2018



 사표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재미있기^^

물고기를 사람 이름처럼 바꿔놓은 재미있는 제목

오해할만한 상황에서 오해하고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사실로 드러나기도 하는 아주 잔잔한 흐름속에서

즐겁게 노니는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주영도 그렇지만

또 오똑 자기자리를 보여주는 구교환의 매력.

게다가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기발하고 신선한 이미지들이 재미를 이어준다. 

그 웃긴 엑스레이 사진은 없네 ㅋㅋㅋ 

 이들은 지금 재개발 반대시위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