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청소|김완|김영사

 

전혀 모르는 사람의 죽음의 현장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상상해보는 일.

조용히 애도하는 일.

그리고 그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는 일.

얘기만 들어도 힘들어 보이는 일.

 

변기를 뚫거나, 

집을 점령한 쓰레기를 치우거나, 

이상한 습관으로 쌓아둔 오줌병을 치우는 것 같은 

다른 기이한 청소 얘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는 기분이었고, 

저자의 감성을 따라갈 수 없는 부분에서는 

코드가 맞지 않는 시를 읽는 것 같은 피로감도 있었고,

아무래도 대부분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남긴 그림자 같은 자리에서

흔적 만으로 누군가를 상상하는 건

맞지 않을 수가 많고, 또 불완전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게 상상해보고 정리해주는 손길이 

망자에게도 더 따뜻한 일이 아닐까.

얼마전 기사에서 새로운 직업에 유품정리가 새로운 직종이 되었다고 읽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

그러나 그는 원했던 것처럼 반응을 보일 수 없었는데 그때 오로지 마음만이 할 수 있는 빌어먹을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항상 적이라고 생각해 온 그 남자가 같은 운명의 의생자이자 순간적인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 즉 같은 멍에에 묶인 두 마리의 동물임을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보낸 끝없는 27년이란 세월 동안 처음으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을 느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베날 우르비노의 구혼은 결코 사랑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제안했다고 하기엔 이상한 세속적인 재물로 채워져 있었다. 사회적 경제적 안정과 질서, 행복 눈 앞에 숫자 등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었고, 이런 의문은 그녀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녀 역시 사랑이 실제로 삶을 살아 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가지는  독이 들어있다며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정신 병에 걸린  시누이들과 그런 여자들 을 낳은 어머니가  두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비누칠을 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할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럽에서 남겨온 사랑의  부스러기를 가지고 비누칠을 해주기 시작했다.


마흔 살에  접어 들었을 때, 그는 몸의 여러 곳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느껴 의사를 찾아가야만 했다. 여러 검사를  한 끝에 의사는 “ 나이 때문입니다”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날 오후 그는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더듬으면서 과거를 되돌아 보았고, 우연한 여자들과 나누었던 사랑과 명령을 내리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가 피해야 했던 숱한 함정들, 모든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고  페르미나 다사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은 그녀의 것이라는 잔인한 결심을 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창자까지 떨리는  오한이 느껴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서 그는 정원 도구들을 손에서 놓고  노년이 가하는 첫 발톱에  할퀴어 쓰러지지 않도록 묘지의 벽에  기대야만 했다. 그는 떨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기랄! 이 모든 게 30년 전의 일이라니!”


그러나  우르비노 박사와 점심을 먹고 돌아온 그날 오후,  식전에 포트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식사  중에 적포도주 한 잔을 마시면서 승리의 대화를  나눈 다음, 그는 젊었을 때처럼 흥겨운 발동작으로 세 번째 계단을 오르려고 하다가 그만 왼쪽 발목을 접질려서 뒤로 벌렁 나자빠졌지만 기적적으로 목숨만은 건졌다. 넘어지는 순간에  그는 그런 사고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머릿속이  맑았다. 왜냐하면 한 여자를 그토록 오랫동안 너무나 사랑하는 두 남자가 1년의 간격을 두고 동일한 방식으로  죽는다는 것은 인생을 논리 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 콜레라 버전의 '지붕위의 기병' 을 상상했는데,

반 백 년에 걸친 지고지순한 로맨스는 아니었다^^

1권에서는 마르케스의 화려한 입담이 대체 뭔 얘기를 하려는 건지 호기심을 끌다가,

마지막에  남편의 장례식 날 옛사랑의 고백을 다시 받는 페르디나 다사에 이르러 흥미진진하게 끝난다. 

본격적인 2권은 그들 시점의 현재. 콜레라 시대의 사랑’들’이라 불러야만 할 것 같은,

사랑이 너무 절실하다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애인들 얘기가 대부분이라 뭔가 싶었지만,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이 걸린, 꽤 긴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의 끝이 궁금하기는 해서

어쨌든 끝은 봤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보며 ‘질투는 나의 힘’의 출판사 사장이 생각났다.

집에도 잘하고 애인에게도 잘하면, 

애인만 없지, 집에도 못하는 사람보다 가정적인 거라고 했던가...암튼 그런 인물이었는데,  

정신적으로는 한 사람에게 거의 노예처럼 묶여 있으면서도 

몸은 한 없이 자유로운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뭐라고 얘기하려나 했더니,

그냥 거짓말을 한다 ㅋㅋㅋ


아내가 남편을 필요로 할 때 충실하다면 출판사 사장의 변은 기능적인 면에서는 일리가 있긴 하다.

문제는 자기만의 시간을 선을 넘어 쓴다는 것인데,

그의 항변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아내도 그의 머릿속 전제를 알고 있고 동의해야 당당할 수 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페르미나 다사에 자신을 속박한 건 스스로 정한 것이어서

동정을 지키건 말 건도 자기 맘이고,

그의 연인들도 그와 같은 몸의 자유인들이었으며,

불공정의 희생자인 일부 살아 있는 남편들은 그 아내들의 구역이니 그렇다 쳐도,

평생의 사랑의 독특한 취향에 기댄 거짓말로,

다른 집 같았으면 백 번도 헤어질 법한 이 남자의 사랑 방식

-그는 두 여자의 죽음에 직간접 책임을 느낄 법한 일을 했고,

그 평생 사랑이 이루어져 가는 동안에도 연습 삼아 또 만나오던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어떤 것도 그의 평생 사랑을 이루겠다는 의지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둘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건 일단 천생연분으로 나이 먹어갔기 때문이다.

남자는 50년을 넘게 기다린 연인에게 자신이 동정을 지켰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부정을 고백한 남편이 자신의 자존심까지 상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여자는

그런 거짓말이 남자다운 것이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이 긴 사랑의 성공을 바라보는 건 

맘에 들지 않은 두 주인공의 절절한 연애를 보는 것 같은 무감동.


오히려 인상적인 건 노년기를 살아가는 그의 방식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처음 부터 남편이 죽은 뒤 첫사랑과 다시 만날 계획이었고

-아마도 그래서 그렇게 많은 남편과 헤어진 여자들을 그렇게나 많이 만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이 들어감을 낯설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이유로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온 것에 힘을 얻으면서 

살아있는 동안 더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 평생 사랑의 가장 큰 성취라는 게 더 공감할 만 하다. 

아무튼 제목 같은 낭만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꽤 유명한 책일텐데 비문과 오타라니 민음사 약간 실망. 

 

인상 깊은 인물들의 한 마디

 

“사람의 마음속에는 창녀들이 오글거리는 싸구려 호텔보다 더 많은 방이 있어” <플로렌티노 아리사>

 

“공적인 생활의 과제는 두려움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부부생활의 과제는 지겨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페르미나 다사>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좌절감은 내가 그토록 많은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내 장례식에서는 부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레온12세>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정략 결혼을 해서  얻은 작품이자  은총이지요. 그건 창녀가 되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방법이에요.” <사라 노리에가>

우리집|The House of Us|2019

 

우리집 더하기 우리집은 또 우리집의 이쁜 그림

하나도 유미도 어린아이라기보다는 작은 인간이다.

문제가 있으면 뭐든 해서 해결해보려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힘들어 보이면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인간 세상에서 살기에 충분한 성숙함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부족한 건 스스로의 결정을 실행할 법적 자격이랄까.


하나가 너무나 특별한 아이라서 공감하기도 좀 어려웠는데

그런 하나에게 감독은 너무 가혹한 갈등까지 던진다. 

유미에게 이사만큼 무거운 하나의 가족여행이 부딪히는 순간이라니.

하나가 드디어 자기 힘으로 해결 불가능한 임무를 처음으로 포기하며 

유미의 부모님을 찾겠다는 대담한 결심을 실행하는 사이

하나와 유미는 마치 하나의 부모처럼 갈등한다. 

그 충돌속에서 마치 하나처럼 불평없이 따르던 유진이까지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사실 이 갈등은 

하나와 유미가 비밀을 털어놓던 순간 시작됐다.

비밀을 나누는 사이에서 

비밀의 무게가 달라지는 순간

더 무거운 비밀을 털어놓은 쪽은 더 슬퍼지기 마련.

하나의 부모도 아마 그렇게 싸움을 시작하게 됐을 지 모르겠다.

 

닥쳐오는 불행을 자기 손으로 늦춰보려던 아이들의 모험은 

또 하나의 가족여행을 선사했지만

이야기의 흐름속에서 나타나는 마디마디 맺음들이 

하나들의 여행 속 텐트의 등장처럼 불쑥 이쁘게 나타나기만 해서

동화같기만 하다.


우리들에 이은 우리시리즈 2탄 우리집.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 이라지만 아이들은 그냥 작은 사람. 

그래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에는 생각이 이르지만

영화 자체는 인공적인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윤이에 이어 

우리집의 유진이까지

귀신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찾아내주는 감독의 재능은 감탄스럽다. 

유진이 부모도 윤이 부모만큼이나 에너지 딸릴 것 같지만 

보기만 하는 나는 즐겁다고^^ 

벌새|House of Hummingbird|2018

 


은희는 나보다 미래의 아이지만

은희의 일상 속에서 여전한 많은 것들이 보인다. 

하지만 시간 만큼 달라진 것이 있기는 해서

저렇게 자란 은희들이 그 변화를 가져왔겠구나 믿음직해진다. 

수술도 회복도 영지선생님 찾아가기도 혼자 할 줄 아는 독립 은희.

상처를 주고 근심도 주는 평범한 울타리 안에서 

내색않고 잘 자라는 것, 응원해주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은희와 점점 더 많은 영지선생님이 만날 수 있었으면.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나는 왜 한 번 가볼 생각을 안해봤을까.

 

 바쁜 대목철에 온가족이 모여 일한 뒤

소파에서 뻗은 아버지를 두고 남은 가족이 바쁘게 남은 노동을 하던 장면

-그 좋은^^ 돈을 그렇게나 피곤하게 세다니 ㅋㅋ


죽여버리고 싶은 오빠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지만 

미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안 죽겠다는 똑똑한 지숙

-예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오빠가 없어서 너무 좋았긴 했다. 

오빠 있는 애들은 전부 오빠 밥 차려 주러 늘 '집에 가야 돼'를 달고 살았고

밥투정하는 오빠들은 잘 때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굼금해져서 기사와 배우정보를 찾아보는데 

나만 늦게 봤을 뿐 많이 사랑받는 영화였다. 

감독 인터뷰 중에 알리슨 벡델의 이런 평이 있었다-여자 중학생 이야기를 마치 영웅의 대서사시처럼 만든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벌새가 그런 영화였다고.   

그런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저렇게 콕 찝어 표현하는 감상자나 

모두에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The Man Who Invented Christmas|2017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일기가 아닌 이상 

그 조각의 경험과 사실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과정은 당연히 작가의 몫.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이야기가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재밌었다.

적당히 원망하고 적당히 안아주는 적당히 따뜻한 이 가족영화의 평범함은

고민하는 창작자 디킨스의 영감을 따라가는 여행으로 새콤달콤해진다. 

디킨스에 대해 읽다가 기자 출신으로 연재소설과 그림에 주석을 달았다는 경력을 보면서

요즘 웹소설이 결국 연재소설의 인터넷 버전임을 깨달았다. 

진짜 많은 것이 돌고 돌아 오는구나.  


오스카 와일드를 행복한 왕자로,

톨스토이를 바보 이반으로 기억하는 게 

틀리지 않으면서도 틀린 느낌이 들듯 

디킨스를 크리스마스 캐롤로만 기억하는 게 어째 좀 아닐 것 같긴 하지만,

영화를 보면 다시 읽고 싶어진다-크리스마스 캐롤.

그렇게 재미있게 읽지 않았던 걸 기억하면서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2013

 

예상대로 실화

조단 벨포트 같은 사람들이 
기회의 땅, 미국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 없이 혼자 힘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며 엄청난 부를 일구는.
한국에서는 엄청난 교육열로 폭발하는. 
탁석산이 말하는 '나라고 못할 게 뭐 있어'의 힘이 
미국에서는 월가에 몰려있는 모양이다. 

그 중 희망적인 건 
조단 벨포트는 주식중개는 더 이상 할 수 없으며
추징금도 아직 갚는 중이라는 것이다. 
법적인 처벌을 다 받고 풀려난 몸이라도 
이런 사람이 아직 공식 홈페이지까지 가지고 강연을 다닌다는 게 참 신기한데
무려 디카프리오의 홍보영상이 걸려있었다. 

영화속에서도 나오지만 
엄청난 언변의 주인 조단 벨포트.
얼마나 진짜와 똑같은 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의 연설장면은 
부흥회 수준이다. 
다들 돈으로 간증하자-분위기.
 
희대의 사기꾼 영화를 오락으로 보는 것은 식상할 만하고
이미 굿펠라스의 마피아들로 나쁜 놈들의 환상 깨기 같은 것도 새롭지 않았지만
역시나 디캐--프리오씨는 범상치 않다. 
스틸에 없는 게 아쉬운 마지막 장면-아무리 봐도 큰 돈 못벌게 생긴 사람들이 가득한 방에서
안광을 빛내며 사람들을 휘어잡는 우주최강의 약장사.
저런 연기하면서 안 미치고 사는 것도 강철멘탈 아닐까.
 
이런 일을 겪고도 상하지 않는 자본주의 우정

인파속에서도 빛나는 야망의 어깨


 

워터 릴리스|Water Lilies|Naissance des pieuvres|2006

마리와 플로리안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앤은 불완전하게 욕망을 이루며 

연애약자에서 다시 첫키스를 꿈꾸는 마리의 친구로 성장한다. 

 

처음 다가서는 마리에게 가혹했던 플로리안이나

플로리안이 만든 쓰레기까지 소중하게 여기며, 내키지 않는 부탁까지 들어주는 마리,

오랜 시간이 늘 부족한 대화의 시간까지

소녀들이 주인공이라는 걸 빼면

이건 연애와 외도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정에도 염정은 녹아있기도 하고.

 

수중발레와 사춘기 소녀들.

뭔가 알 수 없는 다름으로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 

이런 거구나, 관음적이지 않은 시선이란. 


굉장히 일상적인 것 같은 작은 사건들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독특한 감독과의 두번째 만남.

톰보이|Tomboy|2011

 


불완전한 갇힘 속의 로렐-선망하는 마음을 따라가지만

내가 정한 나의 존재의 갈등으로 여아임을 수치로 깨닫는 유년이라니.

슬픈 성장기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억압의 무게는 상상을 재단한다.

로레는 동생 잔느를 돌보기도 하고 잔느를 보호해주기도 하는 과묵한 장녀이고

미카일은 여전히 과묵하나 친구들을 사귐에 움츠러들지 않고 

맘껏 뛰어놀기를 좋아한다.

아직은 로렐과 미카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하는 선택이 유보된 유년.

누구나 여러 가지 모습과 태도를 가지고 살듯

이 둘의 자아도 그렇게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시작하는 리사와 로레의 모습이 산뜻한 결말.

딱히 정체성의 혼란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답지 않음' 혹음 '다움'에 대한 풋풋한 물음표.


로렐-미카엘의 성장과는 별개로

영화속 남자아이들의 성장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똑같은 수준의 발육상태에서도 

성별이 정해지면 웃옷 벗기같은 

별 의미 없는 일상도 어느 한 편의 자유로만 정해진다. 

별 것 아닌 것에서부터 가리고 삼가며 시작되는 문화적 학습.

적과 흑|스탕달|민음사

책을 읽고 나면 왜 제목이 적과 흑인자 확실히 알게 될 줄 알았지만 결국 해설에 기대게 됐다. 스탕달 본인이 설명한 적이 없어 여러가지 추측이 있는데, 흑색은 수도회, 적색은 법관들이라고도 하고, 책 중 베리에르 교회의 어둠속 교회 안에서 성수에 비친 붉은 커튼의 그림자를 보는 것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하고, 적색은 공화주의자, 흑색은 성직자를 상징한다고도 하고, 적색을 군인의 복장과 급진주의, 흑색을 사제의 수단과 수도회의 음모라고도 보는데,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적색은 군인, 흑색은 성직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 

쥘리앵은 타고난 미모와 암기력으로 익힌 라틴어 실력을 발판 삼아 출세욕으로 사제가 되려는 나폴레옹 숭배자이자 목수의 세째 아들.

쥘리앵의 출세공식은 지금하고도 비슷하다-암기력을 요구하는 각종 고시들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조선조의 글공부 선비들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어디나 지성을 검증하는 과정들이 좀 뻔하다 싶다.

스탕달의 연애론에서 맘껏 펼치던 밀당공식은 쥘리앵의 실습으로 등장하는데, 역시 백전백승.

승승장구하던 쥘리앵의 비극적인 선택은 의외로 큰 설명없이 쥘리앵의 심리묘사로 추진되며, 그의 마지막은 사회를 바라보는 쥘리앵의 통찰로 마무리되는데 옥중사색이라는 면에서 죄와 벌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소개글로는 좀 더 본격적인 연애론의 실험일 것 같았지만 초반 귀족들의 정치얘기가 길어져 책을 읽는 속도는 너무너무 느려졌고, 그래서 무려 같은 책을 세 번이나 대출했다. 그런 것에 비해 마지막은 또 꽤 속도감 있게 달려간다. 읽는 동안은 딱히 쥘리앵은 대단한 책략가라거나, 야심에 전부를 던지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성공과 연애를 통해 최대한의 것을 이루고 싶어했던, 가능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평범한 청춘 같았다. 그의 비범함으로 여러 번 언급되는 라틴어 능력과 외모가 좀 더 요란한 날개를 달아주긴 했지만.

스탕달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책이 된 건 적과 흑이 당시 소설들과는 다르게 실화에 바탕을 둔 것 이상으로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라는데, 센세이션이란 시간에 마모되는 미덕.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쥘리앵의 사유로 표현되는 사회에 대한 진단이란 지금과 비슷하기도 해서 스탕달이 시간을 관통하는 사회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는 걸 느끼기에 충분하다.

슬픈 태도는 좋지 않아요. 권태로운 모습을 보여야지요. 당신이 슬픈 모습을 짓고 있으면 그건 뭔가 결핍된 것이 있거나 무슨 실패를 했다는 표시지요.

그건 자신의 열등감을 보이는 거예요. 반대로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건 당신보다 열등한 사람이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애썼으나 소용없다는 표시지요. 

탁월한 귀족 신분이나 많은 재산을 타고난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드 뒤부아 부인도 자기 자신에만 정신이 팔려있을 것입니다. 그 부인은 당신을 바라보는 대신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에 당신을 잘 모릅니다. 두세 번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동안 그 여자는 상상의 힘을 발휘하여 당신을 자신이 꿈꾸던 영웅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현실의 당신을 본 것이 아니고요.

 아아! 왜 꼭 이것이어야만 하고 다른 것은 안된단 말인가-보마르세

어떤 영국 여행가가 호랑이와 함께 친하게 살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호랑이를 길러서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항상 테이블 위에 장전한 권총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정치사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 집안 일에 있어서도 후작은 한 사흘 동안은 탁월한 통찰력을 갖고 열중했다. 그러고 나면 그 행동 방침이 이치에 잘 들어맞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치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계획을 뒷받침할 때만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자연법'이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따위 말은 요전번에 나를 몰아세우던 차장 검사에게나 어울리는 낡아빠진 객설이지, 그놈의 조상도 루이 14세의 공탈(公奪) 덕을 보아 부자가 됐을 거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을 형벌로 방지하는 법률이 있을 때야 비로소 '법'이란 것도 있게 마련이겠지. 법률 이전에 사자의 힘, 춥고 배고픈 사람의 욕구, 요컨대 욕구만이 자연스러운 것이다.....천만에, 우러러 보이는 사람들이란 다행이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일 뿐이다. 사회의 이름으로 나를 고발한 자도 결국 치사한 짓으로 부자가 된 놈일 뿐이다....나는 살인죄를 범했으니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나를 처단한 발르노 같은 놈은 사회에 백배나 더 해를 끼치는 놈이다.   

베르테(Berthet) 사건: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사제를 지망하던 앙투완 베르테(Antoine Berthet)가 미슈(Michoud)가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미슈 부인의 호감을 샀다가 남편에게 해고된다. 이후, 코르동(Cordon)가의 가정교사가 되어 코르동가의 딸과의 관계로 다시 쫓겨나는데, 해고 이유가 미슈 부인의 편지라고 오해하여 교회에서 미슈부인을 총으로 쏜 뒤 부인은 회복되었지만, 1828년 2월 단두대로 처형됐다:1827.12.28-31<법정신문: La Gazette des Trubunaux>

라파르그(Lafargue) 사건(1829.3 피레네 지방의 형사사건): 가구 세공인이었던 가난한 청년 라파르그가 변심한 애인 테레즈 카스타데르(Therese Castadere)를 질투심으로 살해하여 목을 자른 사건

궁금한 스탕달의 다른 책: <하이든, 모차르트, 메타스타지오의 생애>, <이탈리아 회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