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Pan's Labyrinth, El Laberinto del Fauno|2006

 영화의 한 장면 요약 같은 포스터
 상상속 유일한 희망임에도 아이의 공포가 투사된 기괴한 신비의 존재 판
얼굴의 완성은 손바닥 ㅋㅋㅋ 
나중에 오필리아가 도망치고 나서야 산처럼 쌓인 신발이 무서운 전리품이란 걸 알고 오싹
근데 그렇게 많이 실패한 거면 이냥반도 그닥 변변한 괴물은 아닌 듯^^

스페인 내전 말만 들었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데
전쟁이 끝나갈 무렵이 가장 치열하고 많은 피를 흘리는 시기이니
그 교전의 현장으로 유일한 가족이지만 홀몸이 아닌 엄마를 따라
잘 모르는 힘센 새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아이의 주저함이
벌레를 만나고 요정을 만나며 상상의 문을 열어버리는 건 너무나도 설득력 있는 시작이었다.
두렵고도 낯선 환경은 새로운 자신인 공주와 새로운 왕국의 봉인된 기억을 기꺼이 믿게 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제일 예쁜 옷을 입던 날 싫어하는 모든 것들이 모여있던 첫번째 모험을 감행하는데
모험의 성공은 현실에선 오히려 장해물이 된다.
가장 간단할 것 같았던 두번째 모험에는
너무나도 이기기 힘든 '유혹'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혹된 사람은 냉철하지 못하니 아이는 더더욱 포도알을 외면할 수 없었겠지.
자신의 편까지 잃어야만 했던 유혹과의 승부.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마법같이 극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이제 어른들의 세계는
숨어있던 진실이 드러나는 절정.
숨겨진 관계와 가장하고 있던 본성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그 사이 오필리어를 찾아온 판도 어딘가 친절한 말투가 어색하던(^^) 본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찾아오는 비극.
이제 막다른 골목에서 미로의 주인 판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거기서 오필리어는
유혹앞에 약하던 모습과 달리 선함으로 용감한 아이가 된다.
그러면서 마치 그들이 그렇다는 듯
순결한 피가 된다. 
그래도 동화처럼 끝나는 것 같더니
그런 짓은 용납하지 않는 정직한 마무리^^
아마도 전쟁의 마무리 역시 그랬겠지.
  
영화홈에 가보니 이렇게 친절한 안내가 있었다.

첫번째 열쇠 : 가장 두려운 존재를 상대할 용기가 있는가?
두번째 열쇠 : 가장 탐스러운 음식을 참아낼 인내가 있는가?
세번째 열쇠 :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할 희생이 있는가?

마지막은 아껴서라기보다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 없었던 것 같지만
아무튼 아이의 상상을
어른의 언어로 열심히 설명해주는느낌.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애기들관람불가일 것 같고
해리포터의 신남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좀 욕먹었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 달려가는 길에 급하다고 막 배신시키고
막 걸리적거리는 캐릭터로 때우고 가지 않는 성실함과 새로움이 매력적이었다.
무려 셰이프오브워터의 감독이었구나.

보이후드|Boyhood|2014






재밌었다, 이 연대기.
이런 영화도 가능하구나.
신기하게도 메이슨은 자랄수록 에단 호크를 닮아가네^^

서사란 토지가 다인줄 알았다가
백년동안의 고독을 보고 그 너무나도 다른 방식에 놀랐었는데
이 새로운 미국식 서사에 다시 깜짝 놀란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진짜로 보여주면서 전하는 이야기라니.

비포시리즈도 재미있었는데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거침없는 실험-혁명적이다.

정직한 제목 그대로 메이슨의 12년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양육의 대상이 아닌, 자라는 아이의 변화를 보여준다.
성년의 첫 해에서 보이후드가 끝나는 건 당연한 마무리인데
이제 4년 뒤면 메이슨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었던 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년 쯤 뒤면 얼마나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지.
격변(^^)의 12년은 메이슨을 특별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줬지만
젊음이 묻어나던 아버지가 꼰대가 되어갔듯이
그의 변화도 알 수 없기는 하다.

재미1: 10대 아들딸 공용, 아버지 버전의 간단명료한 성교육 ㅋㅋㅋ
재미2: 국가에 대한 맹세에 이어지는 해당 주에 대한 맹세-아직도 할까?
재미3: 탈출하던 집에서 의남매들 챙기던 사만다
재미4: 강제삭발 후 강제출석한 학교에서 소녀의 쪽지 한 장에 바로 행복해지던 초딩 메이슨
재미5: 오순도순 모이던 이상적 확장가족-생각해보면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친밀감으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들개|Tinker Ticker|2013




어쩌면 풋풋함이 다 일수도 있었지만
왠지 맘에 드는 에너지.
꼭 둘이 멋있어서만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천생연분을 지지하는 나로서는 좀 아쉬운 결말이고
가는데까지 가보기를 기대해서 섭섭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다.
다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소식없는 감독-궁금하네.

선물|The Present|2019

이 분이 선물^^:알수록 귀여운 봉구씨

타임슬랩은 이제 흔한 소재지만 나름의 디테일 귀여웠고
소박하게 현실적으로 성실한 젊은이들 보기 좋고
기술노동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40분 짜리라서 뭔가 했는데 굴지의 대기업과 대형 기획사 이름이 크레딧에 나온다.
어쩌려고 만들었는지 몰라도 암튼 잠깐 보기 귀엽고
제일 대박은 지구를 지켜라 이후 처음 만나는 병구와 순이 커플.
서로 너무 식겁해서 웃겼고 둘이 같이 있는 거 보는 것만도 즐거웠다.

그곳에서만 빛난다|The Light Shines Only There|2013


좋아하는 두 사람, 그것도 치즈루의 오랜만의 주연작이었는데......
치즈루의 묘한 표정 정말 좋아하는데 한 군데 디테일에서 실망했다-
연인에게 수치스러운 장면을 들키고 나와 입을 가리며 우는데
그게 오른손-방금 뭘하다 나왔는지 있으셨나요....

신체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가는 어머니의 가부장
여자들은 받아들임으로서 가족 안에서 입지를 다지고
남자들은 제 몸 하나 못가누면서도 칼을 휘두르고 다니거나 성욕을 발산한다.
생각해보면 이 가족은 각자 다 가부정적이다.
아픈 아버지는 아버지라서,
지친 엄마는 지쳐서,
딸은 착해서,
아들은 정이 많아서.
내가 알아서 해줄게-의 연속.
그렇게 모여 사는 것에 애정을 느낀다는 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고
이런 가족에게서 그의 죄책감은 어떻게 도움을 받은 것인지.
겉으론 제 모양을 갖춘 것 같지만
뭘로 어떻게 접착되어 있을 지 따라갈 수 없었던.


심장이 뛴다|Heartbeat|2010


이야기는 극적으로 전개되며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은데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냥 오랜만에 박해일 보는 즐거움 뿐.
다들 연기 잘하는데 왜 양쪽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느낌일까.
섞이지 않던 두 사람. 
암튼 요즘 박해일 보기 어렵네......
 

신데렐라|Cinderella|2015


낭만적인 로맨스 대표동화로서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던 바로 그 원작을
오답노트를 꾹꾹 잘 받아적어 고쳐놓은 실사판.
새 가족의 패악질에도 나름 이유를 좀 붙여줬고
신데렐라의 행복해질 자격도 충분히 보여줬지만
왜 신데렐라가 왕자를 좋아하게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왕자인 걸 알고나서라면 소탈함과 솔직함이 매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르고 봤을 땐 진짜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신데렐라이긴 해도 왕자에는 너무 무심한.
카리스마 넘치는 계모와 요정 멋있었다.

퍼펙트 게임|2011



 양동근과 조승우: 그럴싸하다

꼭 옛날 얘기라서가 아니라 진짜 올드한 스타일이어서
당연히 20세기 영화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민폐기자 등장에 완전확신했었는데.
경기의 감동은 오히려 밋밋했고
지금 보기에는 혹사에 익숙했던 운동선수들만이 할 수 있는 초인적인 승부같았지만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최동원을 응원하고 있다.
야구하던 모습보다는 나중에 알게 된 유튜브영상들의 기억이 더 큰 선수라서
영화를 본 뒤 다시 유튜브를 뒤적뒤적.

아직 롯데나 부산갈매기가 나같은 야알못의 귀에도 어마어마한 팬덤으로 들려오는 걸 보면
저런 팀을 아직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롯데팬들 불쌍하다.
롯데는 최동원에게 한 짓만으로 망했어야 했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다.
어제까지 스토브리그에서 날리던 오정세는 야구해설로,
이태원클라스에서 날고 있는 박서준은 사우나 남으로 잠시 등장 ㅋㅋ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2018

영화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rgpv-JgH9M&t=651s

그 아침, 뉴스를 기억하고 있어서
이렇게 다시 보는 건 더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 날은 알 수 없었던 그 시간 그 바다에.
뭔가 할 수 있던 사람들은 거기 없었고
그곳으로 마음이 가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시간이 지났고 뭔가 해결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그 진실은 당분간 기밀로 남는다지.
이런 것도 견디며 살고 있다 생각했던 그 때 이미 그 바다에서
촛불은 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동안 안봐서 좋았던 이름과 목소리와 얼굴 혐짤로 등장 주의.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2011






다른 사람들처럼 에바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가정을 꾸렸다.
케벤을 낳은 것도 마냥 행복하게 혹은 공포에 사로잡혀서는 아니었다.
사랑해서 결혼했듯이 아마 아이가 생겼으니 낳았을 것이다.
이 평범한 시작은 또 산후우울증처럼 평범하게 전개된다.
에바는 치료가 시급할 정도로 심한 우울감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자신없이, 적당히 어려워하고, 평범하게 불행과 행복을 가끔씩 느끼며
양육을 이어갔다, 자유로운 인생과 가정을 포기도 헌신하지도 못한 채.
케빈을 낳은 것은 어쨌든 선택이었지만
엄마는 그 선택을 따라 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케빈이 에바만의 유일한 가족이자 아들로 남고 나서
에바는 케빈의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이제 에바에게 남은 건 케빈의 엄마로 계속 살아가는 것.

영화는 에바의 속마음을 보여주듯

맞딱뜨린 삶을 살아가는 와중 불현듯 떠오르는 비극의 장면과
아마도 에바가 그렇게 믿고 있는 그 비극의 뿌리인 것 같은
케빈이 없던 에바의 인생에서부터 케빈의 탄생, 케빈과의 관계와 그 변화를 천천히 복기한다.
그리고 절대 잊혀지지 않겠다는듯 
어디서나 비극의 피해자들과 그들의 불행이 에바를 찾아온다. 
에바는 숨어도 보고 닦기도 하면서 하면서 그냥 살아간다.
케빈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했을 그 질문의 답은 결국 듣지 못한 채.

무슨 답이더라도 상황을 납득할 수는 없을 것이고
답은 케빈을 얼마나 더 미워하게 될 지의 수위를 정할 뿐일 거라
그 답이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질문은 어쩌면 에바를 케빈과 묶어놓는 작은 끈같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의 경우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어릴 적 명상을 권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에 자책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건 그냥 에바에게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호의.

충격이다, 벌써 10년 전 영화라니.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부모들
노력을 하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
부모들의 미안해 하는 마음으로 더 외로워지기도 하는 아이들
사이코패스처럼 설명불가능한 상황이어도 자책하는 부모들
...극적으로 증폭되지 않은 케빈과 에바는 널려있다.

하지만 내게 더 컸던 공포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생명인 건 알겠지만
사랑할 수 없는 아이와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한다면-하는 것.
모든 부모의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 건 인류멸망을 막기 위한 본능적 주입인 게 확실하다.

틸다 스윈튼-영화를 제대로 짊어지고 가는 뚝심 멋있었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에즈라 밀러도 인상 깊다-무서웠다고....^^
기생충에서도 여기서도
활과 화살의 등장은 참 이질적이면서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묘함이 있다.

MBC스페셜|너를 만났다

갑자기 뜬 검색어-증강현실로 만나는 그리운 얼굴이라니.
VR의 미래가 이렇게 되겠구나 싶어 보기도 전에 감동은 이미 준비됐었다.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해주는 것 만큼 따듯한 과학이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울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보는 한편 드는 생각-역시나 MBC의 다큐멘터리는 사춘기 감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과학이 그리움을 어떻게 덜어줄지보다는
투자금을 회수하듯 너무나 절실하게 아이를 그리는 가족의 일상에서 거의 모든 장면을 뽑아내려 애쓰고
울먹이는 엄마를 정면에서 클로즈업하고
글썽이는 아이에게 눈물을 꼭 뽑겠다는 듯 같은 질문을 또 하고.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먼저 떠난 동생을 그리워할 줄 알던 의젓한 아이는
고인 눈물을 떨구기 전 활짝 웃어줬다-정말 멋지게 자라고 있는 듯.

아직 부족한 기술도 역시 실망스럽다.
내 눈에도 달라보이는 아이.
증강현실 속 아이는 인공지능이 아니라서
목메인 엄마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준비한 말을 계속 한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VR의 한계-만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아이를 다시 한 번 안아보고 싶었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구름속에서도 아이의 모습을 찾아내는 엄마라서
그래도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지만.

흥미로운 제작과정이 조금 나오긴 했지만
시선을 끄는 기획이었음에도 만남 보다는 잃어버린 아이와 그 가족을 더 들여다보게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남는 건 손에 잡을 수 없는 증강현실의 한계.
결국 그 온기와 감촉은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나누며 살아야겠지.
나중에는 그것도 가능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