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Default|2018


IMF의 기억은 선명한데 따져보면 아는 게 없다.
오히려 어느 영화스텝이 영화지와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 '우리는 20년째 IMF라서..'가 더 기억에 남는다.
원인을 찾을 때마다 거슬러올라가게 되기에 앞으로도 낯설어질 것 같지 않은 IMF위기.
다른 방법은 없었던 건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지만
뭔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던 차관과 한시현의 대결이
말미에서 선악구도처럼 되어버리는 바람에
정말 그랬던 건지는 믿고 싶지 않아진다.

설마 저래서는 아닐 거라고
그냥 무지했던 거라고 믿고 싶어지니까.....난 오늘도 속고 있는 사람 ㅠㅠ

이런 소재에 베팅한 감각의 승리,
빅쇼트와 1987의 만남 같은 잘 빌려온 뼈대 위의 이야기들.
어쩔 수 없이 튀는 부분도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아 진짜, 보는 사람 누구나 뒤통수 한대 때려주고 싶어지는 차관 조우진.
이 배우가 할 수 없는 단 한가지가 연기를 못하는거 아닐까.

김혜수 연기 눈에 쏙 들어왓다.
특히 영어 연기-그럴싸하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 내용에 감정을 실어서 분노가 전해졌다. 

윤정학의 유아인-약간 김희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사업설명회 설명은 쏙쏙 귀에 들어왔다.
어음은 회사가 발행하는 수표같은 건 줄 알았는데-어음이 얼마나 이상한 거였는지 완전히 잘 가르쳐준다^^

그리고 뱅상 카셀.
프랑스의 류승범 같은 느낌이었는데 IMF총재가 이렇게나 잘 어울리다니.
의외의 디테일들도 매력적.

까먹을 뻔 했다-그 이름도 참 오랜만인 오렌지^^
오렌지족들은 자가생산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부모님 통장을 들고 나왔을텐데
이런 말도안되는 캐릭터에게까지 자리를 찾아주는 볼때마다 든든한 류덕환.

돈키호테|Don Quixote|마린스키발레단|2018






처음 봤을때도 내내 활기찬 분위기가 그대로 기억에 남았었는데 
김기민이 날고 테레시카나가 떠오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군무가 이어져 활기가 더했다.
처음보는 테레시카나-탄력과 연기가 키트리의 생기를 몸으로 재현했다. 
충격은 처음이었던 지젤이 더 컸지만
자기도 날고 남도 날리며
말 그대로 종횡무진 누비는 활기찬 배역의 매력은 더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먼훗날에도 김기민의 공연을 직접 봤다고 자랑하고 싶어질 것 같다. 
발레는 볼수록 인체의 신비가 새삼스러워진다. 
멋있어!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2018



볼때마다 이국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확히는 몰랐는데
아프리카에서 자란 인도인 이민자라니
프레디 머큐리는 문화의 충돌을 흡수할 능력을 가진 탁월한 생명체였나보다.

슬쩍 지나가고 말았지만
그때라고 없었을리 없는 그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 또는 굴레속에서
그처럼 자신감 넘치는 음악인이자 스타로 떠올라 내다니
그 음악의 에너지가 장하다.
그때라면 손만 잡아도 에이즈가 옮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일텐데
그의 마지막은 괜찮았을지......

뒷얘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영화의 흥행은 놀랍기만 한데
만듦새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내가 가볼 수 없었던 그 공연의 현장을
재연으로나마 비슷하게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대 위 시설물 위에 앉아서 흥을 즐기는 스탭들 모습은 진짜 공연장 같은 느낌이었고
듣는 사이에도 관객들을 너무 부려먹네(^^) 싶었지만
순간에 동참하는 관객들에서 현장의 기운이 느껴졌다.
유튜브 혼자 볼때와는 전혀 다른.
노래하지 않는 프레디 머큐리는 잘 몰라서 그런지
프레디 머큐리 연기는 좀 과하게 보이기도 했고
좀 더 왜소한 느낌이기도 했지만
특유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라미 말렉은 굉장하다.
근데, 노래는 대체 누가 불렀을까...?

라 바야데르 La Bayadere|유니버설발레단|2018



명성이 자자한 발레무용수들이 초빙됐다는 귓동냥에 팔랑팔랑 예매했기에 엄청난 기대를 품고 갔다. 
2층 중간쯤 자리였는데 지난 번 장만한 망원경의 힘을 빌면 무용수들의 표정, 손끝까지 구경할 수 있었지만
전체를 보기에는 좀 방해가 되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봤다. 

자하로바의 니키아는 일단 구조적으로도 두드러지는 체격이어서 인체의 스펙타클이라고 해야 하나..대단했다. 
동작 하나 하나 굉장히 여유있게 소화했기 때문에 
유연성과 나이는 아무 상관 없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발레리나에 한 눈에 반하기로는 신데렐라 때 박슬기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역시 초면인 로드킨의 솔로르는 묵직하고 안정감 있는 전사여서 
스토리를 따라가 보면 알만한 사람이 왜 저랬을까 싶기도 했다^^

또 눈에 띈 배역은 황금신상인데 알고보니 강민우-춘향의 변학도 였다. 
그때도 멋있다 싶었는데 이번에도 안정감과 힘이 있는 도약과 연기.

셋 다 흔들림 없는 연기였다는 점에서 완전 만족.

의외는 감자티.
춘향의 강미선이었다는 게 완전 반전이었는데
역할 상의 특징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본인의 놀라운 유연성을 쓰지 않을 뿐인 연기였다고나 할까.
이 날은 컨디션이 엄청 안 좋았던 걸로.

신기한 건 처음과 이번 라바야데르에 대한 기억이 완전 다르다. 
그땐 엄청 큰 코끼리(이번엔 망원경으로 뒷발 깔짝깔짝 움직이는 것도 봤다^^),
니키야와 감자티의 육탄전,
브라민의 고백 장면 자막이 '널 사랑해'에서 '널 죽이겠다'로 바로 이어졌던 건 생각나는데 
3막의 기억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1-2막은 오히려 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3막에서 엄청 에너지가 솟아서
이렇게 느낌이 다른 게 의아한 정도.
오랜만의 오케스트라 연주와 널찍한 공연장에 선 유비씨발레,
보길 잘했다.

PS. 무용이니까 보러가지만 진짜 발레 줄거리들은 완전 슈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