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이탈로 칼비노|이현경|민음사

시종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정도로 물정 모르던 메다르도 자작이
투르크와의 전쟁(안나카레니나 3부와 이렇게 이어진다^^)에서 반쪼가리가 된다.
사악함의 화신이 되어
살아있는 모든 것을 반토막 내고 기계까지 발명해가며 최대한의 사람들을 다채롭게 처형하고 죽일 때만 해도
전쟁이 말 그대로 사람을 반토막 내고
사라진 반쪽의 결손으로 그 악을 널리널리 퍼트린다는 반전우화라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왜 사라진 반쪽의 결손만 남을까, 돌아온 반쪽에는 남은 것이 없을까 궁금했는데
죽은 줄 알았던 반대쪽 반쪽이 선행을 이어가며 살아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커진다.
사악함으로 남은 반쪽과 성자 반쪽 모두가 극단으로 다른 삶을 이어가면서도
예전 온전하던 시절의 '반쪽'짜리 삶을 깨닫는 것,
악이든 선행이든 '비인간적'이어서는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반토막 난 자작으로 보여주는 환상동화.
전쟁얘기에 나오는
무기를 녹여 농사짓는데 쓰는 평화시대의 꿈이
자작의 동네에서는 이루어지지만
그 평화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다른 꿈의 시대를 바라게 된다.
덜 비참한 꿈을 꾼다는 것이 반쪽의 행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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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약속했던 돈보다 훨씬 적은데요, 나리."
그때 바람에 망토 자락이 펄럭였고 메다르도가 말했다.
"반값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죄도 많이 저질렀어. 거짓 증언을 했지. 완두콩에다 물 주는 것을 잊어버렸고 어머니,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어. 게다가 저녁엔 늦게 집에 돌아간다고. 지금 나는 세상 죄를 모두 저질러 보고 싶어. 제대로 이해하기에 내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얘기하는 것까지 말이야."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바위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운 외삼촌이 꿈틀거리는 반쪽짜리 낙지들을 쓰다듬으며 문득 말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 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피에르토키오도는 사형대를 만들지 않고 물방아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트렐로니도 홍역과 단독(丹毒) 때문에 도깨비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완전한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읽기 메모: 아탈리아 민담, 조셉콘래드,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루니타(미국과 소련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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