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Mother|2018


일본원작의 기운이 워낙 강렬해서 또 보는 게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다시 만나는 마더는
원작을 볼때는 몰랐던 원작의 아쉬움을 채워주며
놀라움을 주고 있다.

시작은 차영신.
원작에서는 생물학적 엄마가 걸렸던 불치병이 키워준 엄마인 것으로 설정이 바뀌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결국은 피가 물보다 진한가 싶던 원작의 아쉬움이 오히려 채워진 느낌이다.
특히 초반에
마치 맹수처럼(^^) 딸의 궁지의 절실함까지 틈을 놓치지 않으며
이기적인 엄마의 애정을 한껏 들이대던 영신을 보는 게 정말 재밌었다.

또, 원작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던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황폐한 혜나의 엄마 자영을 통해 일깨워줬고.
새끼손가락이 없는 이발소의 친모는 일부러 친절한 금자씨를 생각나게 한 것 같기도 하고^^
금자가 철 없이 엄마가 되서 상처 받고 살았다면
자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해맑기만 하던 원작의 혜나가 워낙 사랑스러워서 끌렸다면
지금의 윤복이는 오히려 아이답지 않게 상처까지 얼굴에 드러내는 기염을 토한다.

원작의 수진이 새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줬다면
여기서는 혜나가 직접 윤복이란 이름을 고른 것도 맘에 든다.

반대로 원작에서는 그냥 둘의 연애 같았던 혜나와 수진의 만남이
여기서는 좀 시작고리가 약한 느낌이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필요할 때마다 사용가능'한 의사의 등장도 좀 생뚱맞고.
(줄거리와는 상관없지만
초반에 화장한 이보영을 빤히 보며
선생님은 왜 화장 안해요-라고 굳이 묻는 장면에서 보다 말았던 기억도 있다ㅋㅋ)
어제 9회를 보던 중
아이의 입으로 과거의 자신은 죽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상처로 자란 아이라 하더라도
8살 짜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던 얘기.
그렇지만 수진을 위해 떠나던 윤복이는
원작에서 마냥 응원하고만 싶었던 그 둘의 미래가
결국은 상처투성이의 전진이었음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자영의 '오빠' 사이코패스 손석구의 연기도 정말 흥미진진하다.
이런 역할은 연기하는 것 만으로도 내상이 생길 것 같은데
건강하게 잘 연기하시길.

쎈 이야기라 두루두루 즐겨보기는 힘들 드라마지만
원작을 재미있게 봤던 나로서는
비교하며 더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다, 아직까지는.

팬텀 싱어2 콘서트 > 팬텀 싱어 2 > 팬텀 싱어: 완벽한 역주행

어쩌다 보게 된 팬텀 싱어2 콘서트에서
In Un'altra vita에 반해
팬텀 싱어 2 방송을 보기 시작,
결국 팬텀 싱어 1까지 다 보느라
연휴를 아낌 없이 다 쏟다^^

팬텀 싱어2 콘서트: 고양

방송을 전혀 보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즉 팬심이란 게 1도 없는 상태인데다
하필 공연장은 길바닥 만도 못한 킨텍스라서
비싼 공짜 티켓임에도 별로 흥분되지 않았다.

예상을 뛰어 넘는 정말 거지 같은 음질 때문에
시작할 땐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고-심지어 노래를 귀막고 들음 ㅠㅠ
마이크 사고까지...
멀쩡한 공연장이 있는데-날짜가 안맞았을 수도 있지만
킨텍스의 꽉 찬 엄청난 객석수를 본 순간
이건 돈 좀 벌려는 심산이라고 확신했고
1년 가까이 엄청난 경선을 거쳤다는 자격 있는 가수들을 창고무대에 세우고
주차장 음향에 편의점 의자를 차려 놓고 11만원을 받아먹는 JTBC는 정말 양심불량이랄 수 밖에.
창고를 빌렸으면 음향 단장이라도 잘 하던가
아니면 음향담당자들이라도 좀 제정신이든가...
게다가 퀸의 노래까지 스페인어(?)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처음 보는 분위기도 낯설었다.
그런 와중에도......

조민규
힘있는 미성으로 시작해서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양탄자나 커텐이 촤-ㄱ 펼쳐지듯이 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사람목소리를 볼륨키로 조정하는 느낌이랄까.
소리의 힘과 상관없이 계속 안정감 있는 소리여서 너무 신기했다. 

정필립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깨끗하고 겸손(^^)하게 올라가는 고음이 멋있었다.
 
고우림
저 얼굴에 저 목소리? 의 반전 매력으로 시작했지만 목소리 만으로도 정말 매력적.

안세권
어딘가 카랑하면서 힘도 넘쳤다.

PS. 다른 가수들도 굉장히 노래를 잘했지만
가수는 무조건 목소리 중심의 팬심인데다
내가 노래 좀 들어본 성악가는 파바로티나 도밍고 카레라스, 보첼리- 뭐 이 정도(^^)이다 보니
성악가들은 다 그 정도 잘하는 평범함^^

팬텀 싱어 2 
다시 듣고 싶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우승팀을 모르는 상태에서 들었는데도
포레스텔라의 노래가 제일 잘 조화롭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노래.

일단계: 팬텀싱어2로 노래검색을 시작
이단계: 방송클립을 주워보기 시작-이 때만 해도 맘에 드는노래가 많지는 않았다..
삼단계: 큰(!) 맘먹고 JTBC회원가입을 하고 조회수 높은 노래부터 시작-아직 포레스텔라 말고 다른 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단계: 무료클립 감질맛 나서 결국 월회원 100원을 결재, 처음부터 보기 시작-노래와 가수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들려온다
오단계: 전 방송을 며칠에 걸쳐 계속 보기 시작 ㅋㅋㅋㅋ

방송을 보면 볼수록,
내가 본 공연의 동영상을 볼 때 마다
역시 공연의 흥은 팬심충만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아쉬움에 몸부림^

강형호의 팬텀-크리스틴 노래를 몰라본 것도
김주택과 조민규의 역사적(!)인 만남에 감격하지 못한 것도
한태인의 첼로 같은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던 것도
아침 테너 정필립이 밤중(Notte)까지 진출한 것에 열광하지 못한 것도
특히 배두훈의 그 멋진 목소리를 못 알아챈 것도
다 킨텍스 공연장 때문이었다ㅠㅠ
그런데 포레스텔라는 고양에서만 평일에 공연을 한다.
JTBC 고양에서만 왜 이럼...?

이제서야 올려준 JTBC...벌 받고 있는 것 같다ㅋㅋ
처음부터 아름답게 들리던 노래였고 강형호의 고음화음이 가장 잘 어우러진 느낌. 
끝부분 무반주 합창 부분은 너무나도 감동이어서 당분간 무한반복의 곡에 등극. 
배두훈만 보자면 Defying Gravity와 Radioactive의 목소리가 더 좋고, 
조민규와 강형호의 카리스마, 고우림의 매력은 각각 다른 곡에서 더 반짝이기도 하지만
이 곡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다. 헤드폰으로 들을때마다 찡-해지고.

윤상의 인상적인 평에 100%공감하게 되는 격정의 선곡. 
정필립의 깔끔한 고음과 김주택의 소리통, 그에 뒤지지 않는 에너지의 박강현 멋있다. 
풍부한 전력을 자랑하는 발전소 같던 김주택.

또 다시 정필립. 
고음 부분 이렇게 부르는 정필립은 너무 멋있고 
게다가 방송에서 쌓인 사연으로 세 사람의 노래가 더 찡하다.

이런 노래 얼마만인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성대 벌어지는 건 눈치챌 수도, 그것에 방해받을 수도 없었기에 
강형호-손정수 듀엣 너무 좋았다.

원곡보다 훨씬 감미로운 합창곡이라니...
시작할 때 배두훈과 꽃이 피고 지듯이와 Notte에 이은 박강현의 목소리 너무 매력적이다. 
-말할 때 보면 옛날 월드컵 때 거침없던 김남일이 떠오르는 캐릭터^^

김동현의 언어적인 감각에 감탄하게 되는 '원한 품은 고양이 영혼'의 조민규는 
평소 잘 울고 애교넘치는 모습과는 완전 다르게 무대에서는 극을 한 편 연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무섭게' 보이려는 의지가 불타는 시선 처리와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한시도 긴장을 풀지 않는 집중력이 돋보인다-그래서 이 노래는 항상 보면서 듣고 싶어.

노래도 신나고 다들 노래 잘했지만 이것도 역시 정필립 부분이 하이라이트^^
이충주와 조형균은 실수 같은 걸 전혀 할 것 같지 않은 약간은 비인간(^^)적인 든든한 가수들. 
정필립 말할 때 보면 순박하면서도 누구도 해치지 않는(^^) 유기농 유머감각이 살아 있어서 재밌다. 

이정수의 유머감각 못지 않은 매력-독특한 목소리에 정필립 그리고 강형호. 너무 잘 어울려서 멋있었다.

독특하고 멋있었고 세 사람과 잘 어울렸던 선곡.

한태인 목소리에서 첼로 소리가 난다...

제일 좋았던 대결은
단발4인조 합창단들이 등장했던 10회와 결승 1차전.
이상하게도 생방송 결승은
음향 때문인지,다들 긴장해서인지
좀 이상한 노래? 음악?이 좀 많았던 것.
그 와중에 다들 에너지 넘치게 노래들을 하니
듣기만 하는데도 체력이 소모된다^^

PS. 나중에 친해진 다음도 아니고, 진짜 비밀심사도 아니고 어차피 다 방송될 걸 알면서
1차 프로듀서 오디션부터 출연자들을 얘, 쟤-라고 부르던 심사위원 꼴불견.


팬텀 싱어1
팬텀 싱어2를 검색하면 1편과 비교하는 글들이 꽤 되고 대부분은 이번 2편이 1편 보다 못하다는 내용이라
2편을 먼저 보고 들은 입장에서 슬슬 궁금해졌다.
결승전 문자투표수를 보니 팬텀 싱어2는 30만표 정도였는데
팬텀 싱어는 무려 50만표에 육박.
도대체 얼마나 잘했길래?
궁금증을 못이겨 정주행 시작(한가함으로 폭발하는 호기심^^)

2편과 비교했을때 더 재미있던 부분은 프로듀서들의 배틀이었다.
프로듀서들도 처음이다 보니 기준점이 없는 상태에서 취향을 드러내는 대립각이 꽤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I dreamed a dream은 너무나 극적이지 않게 좋은 노래로 들어서 좋았기에 김문정,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곽동현에 있어서는 손혜수,
바다-윤상-윤종신 배틀에서는 나도 그냥 좋았어서 바다편.

직원이 무례한 손님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걸 본 손님들이
평소보다 많은 팁을 남긴다는 심리학 관련 조사결과를 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좋아하는 곡이 혹평을 받았을 때 프로듀서들의 점수배틀은 2편까지도 이어진 듯.

그리고 좋았던 건 다양한 선곡과 창법이다.
퍼붓지 않아도 매력있는 노래들을 잘 소개받은 기분.
(그러나 한 번만 보고 제목을 기억하기에는 무리^^)
제일 보기 좋았던 건
결선 직전까지도 경쟁자보다는 동료 같던 전체 출연자들이었다.
아무래도 1기 니까 더 끈끈하기도 했겠지만
다른 팀의 경연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2편보다는 더 푹 빠진 것 처럼 보였다.
게다가 목소리는 다른데 못하는 게 없을 것 같은 곽동현과 고훈정,
음색이 내 취향인 힘 있는 예민 같은 목소리의 정휘와 손태진, 박상돈,
진짜 의외의 유지광과 보고나면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준환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벼리 목소리도 정말 좋았는데
심혈을 기울인 것 같던 김경호의 아버지가
반주는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같더니 노래는 시네마파라디소 같아서
표절-생각에 잘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고훈정 팀을 만나고서 제 목소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

2편을 먼저보고 1편을 보니 출연자들 끼리 비슷한 점을 보게 됐는데
이준환의 카운터테너 발성, 곽동현의 노래와 절실함, 1차 탈락 한 과장님(^^)의 여운은
강형호(그래서 아마도 가장 극적인 출연자가 됐는지도)
고훈정은 조민규의 리더쉽과 이충주의 노련함이,
이벼리는 정필립과 성격, 실력이 다 겹쳐보이고 
유지광은 개성있는 목소리와 성격 면에서 이정수랑 겹쳐보이는 부분이 있고,
자신감의 아이콘 유슬기는 김주택 같았고,
유슬기-백인태는 김동현-안세권이 생각나고
김현수의 팬텀싱어 운명은 정필립과도 좀 비슷해보이는 등등...

그런데 경악할만한 공통점이 또 있었으니!
바로 그지 같은 결승전 실황 음향.
2편 볼 때만 해도 사람이 잠깐 그럴수도 있지 했는데
야, 진짜 경연팀이 2년에 걸쳐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똑같은 실수를 했다고 상상을 해봤나?
다른 방송사들이 당연히 문제없이 하는 실황중계라는 게 별 거구나 임을 깨닫게 해 준 JTBC의 수준. 
팬텀싱어는 축복이지만 JTBC를 만난 건 진짜 재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결선 뮤직비디오라도 만들어서 상납 좀 해야 되는 거 아냐, 양심적으루다가...!

Il libro dell'amore 링크

반쪼가리 자작|이탈로 칼비노|이현경|민음사

시종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정도로 물정 모르던 메다르도 자작이
투르크와의 전쟁(안나카레니나 3부와 이렇게 이어진다^^)에서 반쪼가리가 된다.
사악함의 화신이 되어
살아있는 모든 것을 반토막 내고 기계까지 발명해가며 최대한의 사람들을 다채롭게 처형하고 죽일 때만 해도
전쟁이 말 그대로 사람을 반토막 내고
사라진 반쪽의 결손으로 그 악을 널리널리 퍼트린다는 반전우화라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왜 사라진 반쪽의 결손만 남을까, 돌아온 반쪽에는 남은 것이 없을까 궁금했는데
죽은 줄 알았던 반대쪽 반쪽이 선행을 이어가며 살아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커진다.
사악함으로 남은 반쪽과 성자 반쪽 모두가 극단으로 다른 삶을 이어가면서도
예전 온전하던 시절의 '반쪽'짜리 삶을 깨닫는 것,
악이든 선행이든 '비인간적'이어서는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반토막 난 자작으로 보여주는 환상동화.
전쟁얘기에 나오는
무기를 녹여 농사짓는데 쓰는 평화시대의 꿈이
자작의 동네에서는 이루어지지만
그 평화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다른 꿈의 시대를 바라게 된다.
덜 비참한 꿈을 꾼다는 것이 반쪽의 행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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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약속했던 돈보다 훨씬 적은데요, 나리."
그때 바람에 망토 자락이 펄럭였고 메다르도가 말했다.
"반값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죄도 많이 저질렀어. 거짓 증언을 했지. 완두콩에다 물 주는 것을 잊어버렸고 어머니,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어. 게다가 저녁엔 늦게 집에 돌아간다고. 지금 나는 세상 죄를 모두 저질러 보고 싶어. 제대로 이해하기에 내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얘기하는 것까지 말이야."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바위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운 외삼촌이 꿈틀거리는 반쪽짜리 낙지들을 쓰다듬으며 문득 말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 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피에르토키오도는 사형대를 만들지 않고 물방아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트렐로니도 홍역과 단독(丹毒) 때문에 도깨비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완전한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읽기 메모: 아탈리아 민담, 조셉콘래드,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루니타(미국과 소련여행기)

안나 카레니나|레프 톨스토이|연진희|민음사

오랜동안 톨스토이는 내게 거대한 이름만의 대문호였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장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 단편들만 주워 읽으며 
여전히 그 큰 이름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잘 모르겠던.
오히려 그의 산문집에서 만난 청년같은 톨스토이 만이 선명함으로 매력적이었는데
안나 카레니나에 이르러서야-이르렀다기 보다는 이제 시작인 것 같지만^^-
그 상찬의 물결에 동감하게 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과목의 꽉 찬 교과서 같은 느낌이다. 
한 때 비유라는 것이 본질을 어떻게든 왜곡시키는 것 같아 그저 재미삼아 빌려오는 상업적인 포장같다고 생각했는데
톨스토이의 비유들은 인물들의 상황을 익숙한 모두의 경험으로 순식간에 바꿔주는 마법과 재미가 동시에 있었다. 
게다가 인물 하나 하나가 그 순간에 빠져드는 생각은 생생하게 중계되고
그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 통찰력은 담백하면서 날카롭다.  
워낙 두꺼운 책이고 번역이 여럿이라 검색해보고 골랐는데 담백한 번역이 맘에 든다.
엄청난 역자주는 낯선 단어들과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큰 도움이 됐고
책속에 등장하는 당시 러시아의 소개로 러시아의 역사도 흥미로와 보였다.  
이 책을 원서로 읽었다니 갑자기 부럽네......
하나 궁금했던 건
러시아어에도 존댓말이 있는 건가? 
옛날 미국영화 자막이나 더빙에서도 여자는 존댓말하고 남자는 반말하던 게 생각났다.

제목만 아는 게 너무 당연한 소설이었고 발레를 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이제 다 읽고 보니 발레 속 레빈은 어땠는지 
그 대단한 묘사의 무도회도 다시 보면 다를 것 같다. 
그리고 궁금해진 다른 책, 푸슈킨 <벨킨 이야기>, 헨리 조지<당혹한 철학자>, 알렉산드르 푸슈킨 <아나크레온으로부터>, <회상>
아달베르트 샤밋소(
Adalbert Chamisso)의 <피터슐레밀의 기이한 모험>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코스챠) 
레빈은 안나의 오빠의 친구이자 안나의 올케와는 가족관계가 되는데
3권 뒷부분이 되어서야 안나-브론스키와 만나게 되는, 안나와는 별로 가깝지 않은 인물이지만,
19세기 러시아의 귀족이자 지주로서 그것도 노동과 존재의 가치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는 탐구자로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권에서 이미 레빈에 빠져 버렸기 때문에 어디서나 시작되어 멈추려들지 않는 그의 사유를 읽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레빈은 계속 유럽과 러시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시대변화에 이견을 제시하며 
노동력으로서의 농부가 아니라 러시아 농부의 특성을 고려한 경제구조 개편을 강변한다. 
안나가 사라진 4부는 편집자의 반대로 톨스토이가 자비로 출판했다고 하는데
존재에 대한 깨달음에 매진하는 레빈의 삶은 계속된다-편이다.
벼락같은 종교적 깨달음으로 별안간 마무리 되지만 
사유방식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레빈식의 이해에 공감한다. 
농사일 하는 레빈이 제일 멋있긴 했지만^^

농부들에 대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아침 먹기 전부터 저녁을 미루면서까지 풀을 베던 농부들의 허기질 것 같은 점심은
우리나라 새참문화와 너무 다르더라는......
그 빈 속에 보드카 한 병을 따내겠다고 과로를 자청하는데서는 정말 
러시아 음주문화 무한존경^^

레빈이 톨스토이와 너무 비슷한 점이 많아서 초반 톨스토이까지도 좋아졌지만, 
이후 톨스토이는 레빈을 넘어서 사유재산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지만,
레빈이 보여주었던 이 많은 통찰을 거쳐 공적으로는 훌륭한 대문호로 남았음에도 
톨스토이는 가족들과 화해하지 못했다. 
저작권까지 포기하려 했던 톨스토이의 고매한 철학과 아내 소피야의 욕심이 충돌해서라는 이야기도 있고
꽤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고(작가연보에 '난잡'이라고 나올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 일까...나?), 
알려진 바와 달리 이중적인 톨스토이를 견디지 못한 소피야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열여덟 어린 신부시절부터 톨스토이의 작품생활 내내 큰 지지가 되었던 소피야였다면
그런 부부의 자식들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지 않은데 
이어지는 가출과 객사라니 톨스토이의 마지막은 정말 미스테리다.

안나 카레니나-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자신있고 지적이며 사교적이고 아름다운 귀족부인과 야심있고 열정넘치며 정의롭기도 한 귀족장교의 불륜.
노력하는 지주의 톨스토이가 레빈이었다면
아마도 놀던 시절의 톨스토이가 브론스키일듯.
당시 러시아 사교계에서는 이런 불륜 커플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던 모양인데 
정작 한창 불륜시절엔 당당하게 사교계를 드나들었지만
불륜이 결혼으로 이어지기 전 안나는 사교계의 수모를 겪게 된다. 
그 동안도 브론스키는 스스로 포기한 것이 있긴 했지만 사교계의 불이익은 없었다. 
이런 차이도 그들의 불꽃연애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는데
갈등은 물론이고 그 연애의 시작과 끝까지 두 사람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놀라웠다.
여자와 남자의 심리 속까지 파보기 같은 느낌.
번역가는 안나의 죽음에 다른 의미도 주고 있었지만
사실 마지막 안나의 독백 그대로의 심정, 
마지막 독설을 이루고 남겨진 연인의 슬픔의 양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잔인한 연인의 마음으로만 본대도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이었다. 

톨스토이는 지역 신문의 기사에서 이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872년 1월 <툴라신문>
1월 4일 저녁 7시, 훌륭한 옷차림을 한 신원 불명의 여인이 모스크바-쿠르스크 선의 야센키 역에 도착하여 선로에 뛰어들었다. 화물차 7호가 지나갈 때, 그녀는 성호를 긋고 기차 아래로 몸을 던졌고, 그녀의 몸은 두 동강이 났다.

안나 피고로바라는 이 여인은 톨스토이의 이웃 영주 비비코프의 내연녀로서, 톨스토이도 그녀를 알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역의 바라크에서 실시된 검시를 참관하기도 했다.  


------고 역자 후기에 실려있었다. 

스테판 아르카지치(스티바 또는 오블론스키)
이름이 제일 많은 등장인물로 안나의 오빠이고 바람둥이지만 직장생활하듯 가정사를 다루는 사교술이 빼어나다.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정석을 보여준달까. 
너무나도 달라보이는 모든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관계를 맺어주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라면 못 될 게 없었을 것 같은 인맥왕. 
어떻게 그런 성공적인 관계가 가능한 지를 알려주는 초반 인물 소개가 정말 재미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
안나의 남편. 성공한 정치가로서의 독선과 고집, 결벽주의(?)까지 엿보이는 인물이었지만, 뒤늦게 애정을 깨달았던지 19세기 귀족 뿐 아니라, 현대의 배우자로서도 파격적인 관대함이 반전이었다. 그의 후회를 따라가보면 이 사람도 안나가 생각한 것 만큼 둔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바로 그 때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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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달리 해답이 없었다. 지극히 복잡하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문제에 대해 삶이 부여하는그런 일방적인 대답만 있을 뿐이었다. 그 대답이란, 그날그날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는 것, 즉 잊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잠으로 잊을 수는 없다. 적어도 밤이 올 때까지는, 유리 술병 여인들이 부르는 노래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삶의 꿈으로 잊는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소년을 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언제나 둘을 똑같이 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소년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차가운 미소에 미소로 답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그를 떠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를 남편으로 여기고 사랑하던 습관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모스크바의 한 관청에서 3년째 책임자의 자리를 맡는 동안,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동료, 부하 직원, 상관, 업무상 그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은 물론 존경까지 받았다. 직무상의 이런 일반적인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스테판 아르키지치의 주된 특징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관용으로, 이는 대체로 그가 자신의 결점을 스스로 잘 알았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두 번째는 철저한 자유주의로, 이는 그가 신문에서 읽고 익힌 것이 아니라 그의 피에 흐르는 것이었다.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철저한 자유주의로 인해, 그는 모든 사람을 재산과 신분에 관계없이 똑같이 공평하게 대했다. 세 번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그 결과 그는 결코 일에 몰두하거나 실수를 범하는 일이 없었다.

"대단히 정력적인 분인가 봅니다." 레빈이 나가자, 그리네비치가 말했다.
"맞아." 스테판 아르키지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정말 행복한 녀석이지! 카림진 현에 3000제샤치나의 땅이 있겠다, 앞날이 창창하겠다, 게다가 얼마나 생기가 넘치나! 우리와는 다른 부류지."
"스테판 아르키지치, 당신 같은 분이 어째서 불평을 하십니까?"
"추악하고 비루해."스테판 아르키지치가 무거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레빈은 형이 영지에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그에게 화두를 양보하려고 물어본 것임을 알고 있었다....형이 선심쓰듯 무심한 말투로 영지에 대해 묻는 말을 듣자, 어쩐지 형에게 자신의 결혼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형은 이 문제를 그가 바라보는 대로 볼 것 같지 않았다.

....레빈은 그녀의 얼굴에서 사고의 노력을 나타내는 낯익은 흔들림을 발견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에겐 여전히 야만스러워 보여. 지금 이 모습도 야만스럽게 보이기는 마찬가지야. 우리 시골 사람들은 일을 하기 위해 빨리 배를 채우려고 하는데, 여기 있는 자네와 나는 최대한 더디게 배를 채우려고 애쓰잖아. 그래서 굴을 먹는 거고..."(......) "하지만 이런 것에 교양의 목적이 있는 거야. 모든 것에서 쾌락을 만들어 내는 것 말이야."

지금 레빈은 스테판 아르카지치와 이런 대화를 시작한 것을 마음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그의 특별한 감정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어느 장교와의 경쟁을 운운한 대화와 스테판 아르키지치의 추측과 충고로 인해 더럽혀졌다.

그러다 갑자기 그 두 사람은 깨달았다. 자기들은 친구 사이인 데다 함께 식사를 하고 술까지 마시고 있지만-이런 것은 그들을 더 가깝게 해 주는 일이 되었어야 할 텐데-저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상대방의 일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오블론스키는 식사 후에 서로 가까워지는 대신 이런 극단적인 분이가 일어나는 경우를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계산서!"

부모가 자식의 운명을 결정하는 프랑스의 관습은 배척과 비난을 받았다. 여성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 영국의 관습도 배척받긴 마찬가지였고, 더욱이 러시아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안나에게서 자기도 너무나 잘 아는, 성공에서 오는 흥분의 기미를 보았다. 그녀는 안나가 스스로 불러일으킨 환희에 도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 느낌을 잘 알았고 그 징후도 잘 알았다. 그녀는 안나의 눈동자에서 전율하며 타오르는 빛, 무심결에 입술을 곡선으로 만드는 행복과 흥분의 미소, 우아하고 정확하고 경쾌한 동작을 보았다.(......)
'아냐, 그녀가 도취한 건 군중이 자기에게 감탄해서가 아니라 한 남자가 자기를 황홀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야(......)

레빈은 기억했다. 니콜라이 형이 수도사처럼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재계와 교회 예배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정열적인 기질에 대한 굴레와 구원을 종교에서 찾을 때, 아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를 비웃었던 것을. (......) 그런데 막상 그가 타락하자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고, 모두들 두려움과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며 등을 돌렸다.

그는 그녀의 영혼이 갈망하던 그 말을, 그녀의 이성이 두려워하던 그 말을 입밖에 꺼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격렬한 싸움을 보았다.

특히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그를 만난 순간 스스로에게 느낀 불만이었다. 그러한 감정은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느껴 온 감정으로 위선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 감정을 남편과의 관계에서 종종 경험하곤 했다. 그녀는 예전엔 이러한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으나, 지금은 분명하고 고통스럽게 의식하고 있었다.

페테스부르크 사람다운 생기 있는 얼굴, 엄격하고 자신만만한 모습, 둥근 모자와 약간 굽은 등, 이런 모습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본 후, 브론스키는 그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했고 불쾌한 감정마저 느꼈다. 그것은 갈증으로 괴로와하다가 가까스로 샘에 이른 사람이 샘 속에서 개나 양, 혹은 돼지를 발견했을 때, 또한 이 가축이 샘물을 마시고 물을 더럽힌 것을 알게 됐을 때 느꼈음 직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은 자기와 관계없는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그녀의 흥미를 끈 것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사실 우스워. 그녀의 목적은 선행이고 그녀는 그리스도교 신자잖아. 그런데 늘 화만 내. 게다가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적이야.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 정신과 선행을 위협하는 적이지.

이 수위는 아침마다 그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유리문 안에서 신문을 읽곤 했다.

"아무도 자기 재산에는 만족하지 않지만, 누구나 자신의 지혜에는 만족하네." 외교관이 프랑스 시를 읊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금지시켰다는 이 한마디 말로 자신에게 그에 대한 모종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도록 부추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감정에 대한 문제, 그녀의 영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 소관이 아니다. 그건 그녀의 양심의 문제이고, 종교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다.' 그는 이번에 발생한 상황이 속한 적법한 조항을 발견했다는 자각으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를 잘 아는 그에게는, 그가 5분만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그녀가 이것을 알아채고 왜냐고 묻는다는 것을 잘 아는 그에게는, 그녀가 자신이 느낀 기쁨과 즐거움과 슬픔을 그에게 곧바로 털어놓는다는 것을 잘 아는 그에게는, 지금처럼 그의 상태를 헤아리려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이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는 그녀의 영혼의 깊은 곳, 예전에는 늘 그에게 열려 있었던 그 심연이 그의 앞에서 굳게 닫힌 것을 보았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말투에서 그녀가 이것을 전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요, 닫혔어요. 그래야 마땅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는 사랑이 있다는 말을 남에게 듣지 않았다면, 결코 그 말을 쓰지도 못했을 사람이야. 그는 사랑이 뭔지도 몰라.

그녀는 침대에 들어가, 매 순간 그가 다시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그가 말을 걸어올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그렇게 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꼼짝도 않고 그의 말을 기다리다 어느새 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녀는 다른 남자를 생각했다. 그를 생각하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흥분과 죄악의 기쁨으로 가득찼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귀에 규칙적이고 평온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도 자신의 숨소리에 놀란 듯 코 골기를 멈추었다. 그러나 두어 번 숨을 쉬더니, 또다시 평온하고 고르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늦었어, 늦었어, 이미 늦어 버렸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녀는 눈을 뜬 채 오랫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눈동자가 뿜는 광채를 본 것 같았다.
(......)
 그날 밤 이후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그의 아내에게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살인자가 자신이 생명을 빼앗은 육체를 바라보며 느꼈을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그가 생명을 빼앗은 이 육체는 바로 그들의 사랑, 그들의 사랑의 첫 단계였다. 수치심이라는 이런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을 돌이켜보니, 무언가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것이 있었다.  (......) 하지만 살인자는 시체 앞에서 느끼는 무시무시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난도질하여 숨겨야 하고 살인으로 획득한 것을 이용해야만 한다.
(......) 그녀는 이 순간 새로운 삶으로 가는 이 입구 앞에서 자신이 느낀 수치와 기쁨과 공포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 저작의 골자는 농업에서 노동자의 자질은 기후와 토양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따라서 농업에 관한 학문의 모든 명제는 토양과 기후라는 요소에서가 아니라, 토양과 기후와 노동자의 어떤 불변 자질이라는 요소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레빈은 귀리를 그냥 밑으로 쏟으라고 지시하고 그곳의 일꾼 두 명을 토끼풀 파종하는 곳에 보냈다. 그제야 레빈은 집사에 대한 노여움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화를 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집사는 레빈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보아하니 그는 주인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려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레빈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언제나 그를 화나게 만드는 그런 무기력하고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느님이 허락하셔야 말이죠.'
이런 말투만큼 레빈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집을 거쳐 간 집사들의 말투는 모두 그랬다. 다들 그의 제안에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이제는 레빈도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서글펐다. 그리고 이런 어떤 불가항력과의 투쟁에 더욱더 자극받는 자신을 느꼈다. 그가 '하느님이 허락하셔야'라는 이름 외에 달리 적당한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 그 힘은 끊임없이 그에게 대항해왔다.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당신네들은 모든 걸 더 작게, 더 나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요. 하지만 올해는 당신네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할 겁니다. 내가 직접 모든 걸 할 생각이거든요."
"그럼, 주인님은 거의 잠을 못 주무시겠군요. 우리는 더 좋죠. 주인님의 눈앞에서 일하는 편이......."
"그럼 자작나무 골짜기 너머에서 토끼풀을 파종하고 있겠군요? 내가 가서 보지요." 그는 마부가 끌고 온 자그마한 암갈색말 콜피크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개울을 건널 수 없을 겁니다,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마부가 소리쳤다.
"그럼 숲으로 가겠네!"

"그런데 자네들은 어째서 흙을 체로 치지 않았나?" 레빈이 말했다.
"저희는 손으로 문질러 부수는데요."바실리는 종자를 집어 들고 양손바닥으로 흙을 부수며 이렇게 대답했다.
체로 치지 않은 흙을 받은 것이 바실리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레빈으로서는 어쨌든 짜증나는 일이었다.
레빈에게는 자신의 화를 가라앉히고 나아가 나쁘게 보이는 것을 다시 좋은 것으로 돌리는 나름의 방법이 있었고, 이미 그 효과를 여러 번 체험한 바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그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미슈카가 양쪽 발에 달라붙는 커다란 흙덩이를 질질 끌며 걸음을 떼는 걸 보고는, 말에서 내려 바실리에게서 파종용 바구니를 빼앗아 씨를 뿌리러 갔다.

처음에 그는 형의 존재가 그의 행복한 봄 기분을 깨뜨릴까 두렵고 불쾌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감정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내 그는 마치 다정하게 두 팔을 활짝 벌릴 듯한 부드러운 기쁨에 젖어, 이제는 집으로 오는 사람이 형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바랐다.

난 과학적 영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그것도 자연과학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해. 그래서 주어진 현상과 노동자를 경제학적, 민족학적 등등의 관점에서 관찰해야만 하지......

"아마도 그건 내가 자신에게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에 한탄하지 않기 때문일 거야." 레빈은 키티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냐, 어느 수학자는 쾌락이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진리의 탐구에 있다고 말했어." 레빈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잡담도 아주 때맞춰 하는군.' 라스카는 생각했다. '새가 날아오는데......저기 정말로 오잖아. 멍청하게 놓치기나 하고......'하지만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은 불현듯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총을 덥석 잡았고, 두 개의 섬광이 번쩍이며 두 발의 총성이 동시에 울렸다.

레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에게 거부당한 치욕이 갓 생긴 상처처럼 그의 심장을 쓰라리게 했다. 그는 집안에 있고, 집에서는 벽들도 주인을 돕기 마련이다.

물론 자네는 임대료와 내가 모르는 여러 수입을 받고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해. 그래서 난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과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귀족은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권력층에게 동냥질해서 살거나 20코페이카로 매수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아들의 불륜을 알고 처음에는 흡족해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빛나는 청년에게 최후의 완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사교계의 불륜만한 것이 없었고, 자기가 그토록 좋아한 카레니나도, 어린 아들에 대해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하던 그 카레니나도, 브론스카야 백작부인이 보기에 결국 아름답고 고상한 다른 모든 여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녀는 아들이 출세하는데 중요한 지위를 제안받고도 고작 카레니나를 계속 만나기 위해 연대에 남고자 이를 거절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고위층 인사들이 이 일로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순진한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이 아이는 그 두 사람이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바로 그것으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나침판이었다.

"언제나 똑같은 생각이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언제 어누 때든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그녀는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자신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라고......

'그래, 저 여자나 다른 여자들이나 매우 흥분해 있어.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녀 쪽으로 이끌렸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 너무나도 분명히 적힌 것을 읽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그녀의 얼굴에서 그가 읽고 싶지 않았던 것을 읽어 내고는 두려움에 빠졌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그 반대였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생활과 대조하여 시골을 사랑하고 찬미한 것과 똑같이, 민중에 대해서도 그가 좋아하지 않는계급의 사람들과 대조하여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은 사람 일반과 대조되는 무엇으로서 파악했다.

민중을 둘러싸고 형제 사이에 의견이 분분할 경우, 논쟁에서 이기는 쪽은 언제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였다. 그것은 바로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는 민중에 대한 뚜렷한 견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콘스탄친 레빈은 어떤 일정하고 고정된 견해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기에 이런 논쟁을 할 때면 늘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눈에 그의 막내 동생은 심장이 반듯하게 놓인(그는 이 말을 프랑스어로 표현했다) 매우 훌륭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면에서 볼 때 그는 꽤 기민하긴 하지만 순간적인 인상에 쉽게 좌우되고 그로 인해 많은 모순을 지닌 청년이었다.

"우리의 제도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삼위일체 축일에 꽂는 자작나무 가지 같아. 그 가지는 유럽에서 성장한 숲을 모방하기 위한 거야. 하지만 난 이 자작나무 가지에 진심을 다해 물을 주면서 그것을 숲이라고 믿을 수는 없어."

이제 그의 일에서 그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안겨 주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창 일을 하는 동안, 그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까맣게 잊게 되고 갑자기 일이 쉬워지는 순간이 찾아들곤 했다. 바로 그 순간에는 그가 벤 줄이 치트가 처럼 벤 줄처럼 고르고 훌륭해졌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억해내고 더 잘해 내려고 애쓰는 순간, 그는 노동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꼈고 줄도 삐뚤삐뚤해지고 말았다.

노인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비틀린 다리를 일정한 보폭으로 성큼성큼 움직이면서, 손을 휘저으며 걷는 것보다 더 힘이 들것 같지 않은 정확하고 규칙적인 동작으로 마치 손장난이라도 하듯 길고 고른 풀들을 베어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아니라 한 자루의 예리한 낫이 혼자서 저절로 싱싱한 풀을 베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뒤에 있던 레빈과 젊은 사내에게 이처럼 동작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 두 사람은 긴장된 동작 하나만을 되풀이하며 몰입해 있었으므로, 동작을 바꾸는 동시에 눈앞에 있는 것을 관찰하기란 그들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테판 아르가지치는 사려 깊은 아버지와 남편이 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독신자의 성향이 있었고, 그는 그저 그러한 성향에 맞춰 살아갈 뿐이었다.

건초 때문에 그와 가장 심하게 싸운 농부들 가운데 몇 사람, 그에게 모욕적인 처사를 받기도 하고 그를 속이려 들기도 한 사람들, 바로 그 농부들이 그에게 유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그에게 어떤 악의도 품지 않은 것 같았고, 품을 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뉘우침은 커녕, 그를 속이려 한 일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유쾌한 공동노동의 바다 속에 잠겼다.

그가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은 세 갈래 생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신의 예전 생활과 자신의 무익한 지식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자신의 교양에 대한 거부였다. 이런 거부가 그에게 큰 만족을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런 거부가 쉽고도 단순한 일이었다. 또 하나의 생각과 견해는 그가 현재 살고 싶어 하는 삶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삶이 지닌 소박함과 순결함과 적법성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고, 그 삶 속에서 만족과 평온과 품위(그는 자기에게 이것들이 결핍되어 있다는 점을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었다)를 찾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세 번째 갈래의 생각은 이처럼 옛 생활에서 새로운 생활로 이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이 지점에 이르자, 그에게는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온갖 복잡한 상황을 지극히 사소한 점까지 상세하게 아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복잡한 상황과 그것을 이해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그 자신에게만 우연히 일어난 특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그에 못지않은 나름의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한다. 브론스키도 그런 것 같았다. 그는 어느 정도의 내적인 오만과 근거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갈피를 잃고 비열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명확히 규정하는 그 나름의 법전이 있었기에, 브론스키의 삶은 특별히 행복했다. (......) 사기도박꾼에게는 돈을 갚아야 하지만 재단사에게는 갚지 않아도 된다. 남자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만 여자는 해도 된다. 그 누구도 속여서는 안 되지만 남편은 속여도 된다. 모욕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남을 모욕하는 건 상관없다 등등.

사교계에 대한 관계도 명확했다.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의심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일을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의 있지도 않은 명예를 존중하도록 강요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명예심은 그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지배한 오랜 꿈이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에게조차 고백하지 않은 꿈이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인간의 독립적인 지위, 그는 이미 이 지위가 퇴색하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정직하고 선량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청년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그처럼 물의를 일으키고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았던 그와 카레니나의 관계는 그에게 새로운 광채를 부여해 주었고 그를 갉아먹던 명예심이라는 벌레를 잠시나마 달래주었다. 하지만 일주일 전 그 벌레가 새로운 힘을 지닌 채 눈을 떴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세르푸호프스키가 얼마 전 두 계급 승진을 하고 그런 젊은 장교에게 좀처럼 수여하지 않는 훈장을 받아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왔던 것이다.

스비야슈스키는 레빈이 언제나 놀랍게 여기는 부류의 인간, 즉 사상과 삶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사상은 결코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매우 일관된 형태를 띤다. 그러나 그처럼 뚜렷하고 확고한 목표를 갖추고도, 그들의 삶은 이 사상과 전혀 무관하게, 거의 늘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스비야슈스키는 대단히 자유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귀족 계급을 경멸했다. 그리고 그는 대부분의 귀족이 소심함 때문에 겉으로 표현하지만 않을 뿐 농노제를 찬성하는 은밀한 옹호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러시아를 투르크처럼 몰락한 나라로 여겼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 진지한 비판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러시아 정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관리이자 모범적인 귀족회장이었고, 여행을 할 때에는 언제나 휘장과 붉은 테가 달린 군모를 썼다. 그는 인간다운 삶은 외국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기회가 생길 때마다 외국에 나가서 살았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에 매우 복잡하고 개량화된 농업 방식을 도입하였고 굉장한 호기심으로 모든 것을 주시했으며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는 러시아 농부들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이행하는 단계의 존재로 치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젬스트보 선거에서 누구보다도 기꺼이 농부들과 악수를 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악마도 죽음도 믿지 않았지만 수도사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교구를 축소하는 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그의 마을에서 교회를 존속시키고자 바쁘게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는 여성 문제에서 여성의 완전한 자유, 특히 노동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열렬히 지지하였으나, 자기 아내와는 모든 사람들이 아이가 없는 이 부부의 다정한 생활을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으며, 자기 아내가 남편을 보살피는 일과 어떻게 하면 더 멋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 하는 걱정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도록, 아니 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레빈에게 사람의 가장 좋은 면을 보려는 특성이 없었다면, 스비야슈스키의 성격은 레빈에게 어떠한 어려움도 의문도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비야슈스키는 스스로에 대해 바보나 쓰레기라고 말했을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바보라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스비야슈스키는 의심할 나위 없이 총명한 사람인 데다 상당한 교양을 갖춘 사람이었고 자신의 교양을 대단히 소탈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농업에 대한 당신과 우리의 공통된 불만은 당신이나 우리, 혹은 노동자들에게 잘못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력의 특성에 대해서는 자문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즉 유럽식으로 밀어붙여 왔습니다. 노동력을 관념적인 노동력이 아닌 본능을 가진 러시아 농부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농업을 정비해 보십시오.

또 다른 난관은 지주의 목적에는 자기들을 최대한 쥐어짜려는 욕심 이외의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농부들의 완강한 불신이었다.

레빈은 지나치게 겸손하고 굴종적인 사람은 상대를 거북하게 만들고, 지나치게 까다롭고 트집 잡기 좋아하는 사람은 곧 상대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는 이런 모습이 형에게도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콘스탄친은 자신이 평생 노력했지만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 자기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훌륭히 해내고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을 해 보려고 노력했다. 즉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노력이 결국 위선이 되고 만다는 것, 형이 그것을 알아채고 화를 낸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꼈다.

 "바로 그거야. 넌 남의 생각을 가져와 그 생각에서 그 힘을 이루는 것은 모두 잘라 버리고는 그것이 무언가 새로운 것이라고 믿고 싶어해." 니콜라이는 성난 어조로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나 브론스키가 이 왕자를 유난히 불쾌하게 느낀 주된 이유는 왕자에게서 무심결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이 거울에서 본 것은 그의 자존심을 치켜세워 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어리석고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너무나 건강하고 너무나 깔끔한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신사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브론스키도 그 점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는 최고상류층에게 아첨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를, 그와 신분이 대등한 사람에게는 자유롭고 소탈한 태도를, 그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모욕적일 만큼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브론스키 자신도 그런 사람이었고 그러한 모습을 훌륭한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왕자와의 관계에서 그는 신분이 낮은 쪽이었다. 그런 상황에 놓이자, 모욕적일 만큼 친절한 왕자의 태도가 그의 마음에 몹시 거슬렸다.
'쇠고기 같이 멍청한 놈! 나도 정말 저런 모습일까?'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보지 못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를 만날 때면 늘 그러듯이, 그녀는 자기가 상상한 그의 모습(비길 데 없이 월등하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을 하나로 융합했다.

그는 자신이 꺾어 시들어 버린 꽃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자신으로 하여금 그 쫓을 꺾어 망치게 만들도록 유혹한 그 아름다움을 애써 찾아보려는 남자처럼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사랑이 지금보다 더 뜨거웠을 때 그렇게 하려는 마음만 강했다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 사랑을 뽑아낼 수도 있었을 거라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 같은 이런 때에는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남들이 일부러 자기의 아픈 곳을 골라 때린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지금 스테판 아르가지치도 오늘은 불행하게도 이야기의 화제들이 계속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아픈 곳만 건드린다고 느꼈다.

...뭣 때문에 논쟁을 하고 싶어하죠? 어차피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할 텐데요."
"네, 맞습니다." 레빈이 말했다. "단지 상대방이 무엇을 입증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격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레빈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들의 논쟁에서 종종 이런 모습을 보았다. 어마어마한 노력과 어마어마한 양의 정교한 논리와 말을 쏟아 부은 후, 결국 논쟁하던 사람들은 설 오랫동안 기를 쓰고 논쟁한 것이 아주 오래전 논쟁을 시작할 때부터 자기들이 이미 알던 것이며 다만 각자 선호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성향을 논박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성향을 지칭하기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따금 논쟁을 하다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게 되면 갑자기 그 자신도 그 성향을 좋아하게 되어 금방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그때 본 것을 그 후로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특히 학교 가는 아이들, 지붕에서 보도로 내려앉는 회청색 비둘기들, 보이지 않는 손이 진열해 둔 가루 묻힌 빵, 이런 것들이 그를 감동시켰다.

Quos vult perdere dementat: 신은 그가 파멸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먼저 이성을 빼앗는다.

그는 들었다. 아니 기이하고 광기 어린 속삭임으로 반복되는 그 말이 들렸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향유하지도 못했어.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향유하지도 못했어."

그는 문득 자신의 고통의 근원이었던 것이 정신적 기쁨의 근원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비난하고 질책하고 증오할 때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것들이 자신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순간 단순하고 분명한 것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신앙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신앙을 존중하는 레빈으로서는 교회의 의식에 참석하거나 참여하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모든 사물에 공명하는 부드러운 정신 상태에 빠진 지금, 레빈에게는 이처럼 거짓 행세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 괴롭고도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로 느껴졌다. 자신이 영광과 개화를 누리고 있는 지금, 그는 거짓말을 해야 하거나 신성모독을 범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하지만 난 그 불행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아. 나 역시 괴로워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는 아무리 진심으로 괴로워하려 해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수치심도 전혀 없었다. (......)건강의 회복과 더불어 삶의 욕구가 너무나 강렬해지고 생활 조건들이 너무나 새롭고 즐거웠기에, 안나는 용서 받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브론스키를 알면 알수록 더욱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자신과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 그를 완전히 소유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끊임없는 기쁨을 주었다. 그가 가까이 있다는 점은 그녀를 언제나 기쁘게 했다. 점차 알게 된 그의 성격들이 그녀에게는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젊은 여인처럼 평복 때문에 달라진 그의 외모에 매혹을 느꼈다. 그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 속에서, 그녀는 매우 고귀하고 고상한 무언가를 보았다. 그녀가 그에게 느끼는 황홀함은 종종 그녀 자신을 놀라게 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아름답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에 대한 자각을 감히 드러낼 수 없었다. 만일 그가 그것을 알게 되면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이 금방 식을 것 같았다. 그녀로서는 그의 사랑을 잃을 어떤 이유도 없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에 대한 그의 태도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에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그가 그녀를 위해 야심을 버렸고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비치지 않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전보다 더 그녀에게 열성적이고 정중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부자연스럽게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그에게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그토록 남성적인 사람이면서도 단 한 번도 그녀의 의견에 반대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자신의 의지를 갖지도 않았다. 그는 그녀의 욕구를 미리 알아차리는 것에만 온통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따금 자신을 향해 팽팽히 긴장된 그의 관심과 그가 자기 주위에 드리운 배려의 분위기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한편 브론스키는 그가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완전히  이루어졌는데도 충분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곧 자기 욕망의 실현이 자신이 기대하던 행복이라는 산에서 겨우 모래알 하나만을 주었다고 느꼈다. 이 실현은 그에게 행복을 욕망의 실현으로 상상하던 사람들이 저지르는 그런 영원불변의 과오를 보여주었다. 그녀와 결합하고 평복을 입게 된 후 처음 얼마 동안, 그는 이전에 몰랐던 자유의 매력을 대부분 맛보았고 사랑의 자유가 가진 매력도 느꼈다. 그는 만족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곧 자신의 마음속에서 욕망을 향한 욕망, 고뇌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간적인 변덕을 욕망과 목적으로 여기며 그것을 붙잡기 시작했다. 하우의 열여섯 시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들의 시간을 차지하던 사회생활의 틀을 벗어나 외국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외국 여행에서 브론스키의 마음을 빼앗던 독신 생활의 쾌락에 대해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옛날에 교육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가령 프랑스인들은 말이죠, 고전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신학, 비극, 역사, 철학 등 자신의 앞에 놓인 모든 정신적 산물을 연구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니힐리즘 문학으로 직접 접근하고 니힐리즘 학문의 온갖 요약본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 습득하고 나면 준비 끝입니다. ㅣ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20년 전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문학에서 권위와 투쟁하고 구태의연한 견해와 투쟁하는 징후를 찾아냈을지 몰라. 그리고 그 투쟁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 모르지,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낡은 견해와 논쟁하력도 않는 그런 학문에 곧장 빠져들고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지. 아무 것도 없다, evolution, 선택, 생존경쟁, 그것이 전부야. (이태리에서 반갑게 만난 브론스키와 친하지 않던 동창 골레니셰프)

커다란 밀랍인형을 만들고 그것에 키스하는 남자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그 인형을 가지고 와서 사랑에 빠진 남자 앞에 앉아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애무하듯 자기 인형을 애무하기 시작하면, 사랑에 빠진 남자는 불쾌할 것이다. 미하일로프는 브론스키의 그림을 보고 그와 똑같은 불쾌감을 느꼈다.

자기에게는 아무 것도 말할 게 없다고 느끼면서도 생각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은 지금 생각을 성숙시키고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기만하는 골레니셰프처럼 그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골레니셰프는 그 일로 격분하고 고통스러워했지만, 브론스키는 자신을 속일 수도, 괴롭힐 수도, 특히 격분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 특유의 단호한 성격으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자신을 정당화시키지도 않은 채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후의 생활에서 그들 두 사람은 그 병적인 시간, 그들의 기분이 정상적일 때가 드물고 좀처럼 그 자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던 그 시절의 기형적이고 수치스러운 상황들을 기억에서 지우려고 애썼다.

그래서 동물의 한 기관의 편향적이고 지나치게 빠른 발달이 전체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부의 전반적인 발전에 있어서 신용 대출, 교통망, 공업 활동의 강화-유럽에서는 시기적절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지만-는 '농업의 정비'라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를 제쳐 둔 채 그저 러시아에 해악만 끼칠 것 같았다.

하지만 불만에 찬 사람이 자신의 불만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특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탓하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레빈의 머리에도 어렴풋하게나마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그 무엇도 그녀의 탓일 수는 없다.) 그녀가 받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경박한('그 멍청한 차르스키, 그녀가 그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나도 알아') 교육 탓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 집에 대한 관심(그녀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을 제외하면, 자신의 몸치장을 제외하면, broderie anglaise를 제외하면, 그녀에게는 진지한 관심이 없어. 나의 일에 대해서도, 농사에 대해서도, 농부들에 대해서도, 그녀가 상당한 재능을 보인 음악에 대해서도, 독서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단 말이야.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만족하고 있어.' 레빈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닥친 활동 시기, 즉 남편의 아내인 동시에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 아이들을 낳아 젖을 먹이고 키울 시기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 무시무시한 노동에 대비하여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사랑의 행복과 평안의 순간들 속에서 자책 없이 즐겁게 미래의 보금자리를 엮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 깊이 그녀와 자기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채 길을 떠났다. 그가 그녀에게 불만을 느낀 까닭은, 그녀가 필요한 경우에 스스로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녀의 사랑을 받는 행복을 감히 믿지 못하던 그가 이제는 그녀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레빈은 자기의 예상, 즉 자신의 마음은 형에 대한 생각으로 온통 흥분에 사로잡혀 있는데 도착하자마자 형에게 곧장 달려가는 대신 아내를 보살펴야할 거라는 생각이 적중한 것으로 인해 아내에게 짜증을 내며 그들에게 지정된 방으로 아내를 데려갔다.

만약 지금 그에게 형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이 이 순간에 소유한 인식,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그 인식에 대한 질투일 것이다.

니콜라이가 동생을 불러낸 그날 밤 그가 삶과 작별을 고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죽음에 대한 감정은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다들 그가 반드시 곧 죽을 거라는 것, 그가 이미 반쯤 죽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오직 한 가지, 그가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이 사실을 감춘 채 그에게 병에 든 약을 주기도 하고 약과 의사를 찾기도 하면서, 그와 자신과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든 분명 그가 죽음을 욕망의 충족으로, 행복으로 여길 수밖에 없도록 하는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전에는 굶주림, 피로, 갈증처럼 고통이나 결핍이 일으키는 개별적 욕망이 쾌락을 부여하는 육체의 작용을 통해 충족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결핍과 고통을 충족시킬 수 없었고, 충족을 얻으려는 시도는 새로운 고통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따라서 모든 욕망은 오직 하나의 욕망, 즉 모든 고통과 그것의 기원인 육체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으로 녹아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해방에 대한 욕망을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습관에 따라 더 이상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의 충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날 옆으로 눕혀 주시오."라고 말하자마자 원래대로 눕혀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그 새로운 열광적 정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정치적 의미에서 종교에 관심을 갖는 신자였다. 그리고 어떤 새로운 해석을 허용하는 새로운 교의는 그것이 논쟁과 분석에 문을 열어 놓고 있다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원칙적으로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용서가 지고한 힘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본능적인 감정에 몸을 내맡겼을 때가, 지금처럼 매순간 그의 영혼 속에 그리스도가 거하고 있고 서류에 서명을 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보다 훨씬 행복했다는 것을.......

그가 경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정을 털어놓는 그녀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였던가에 대한 기억(특히 그가 그녀에게 표면적인 예의만을 요구하고 결투를 신청하지 않은 기억)은 자책처럼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가 그녀에게 쓴 편지에 대한 기억도 그를 괴롭혔다. 특히 그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았던 그의 용서와 다른 남자의 자식을 보살핀 일이 그의 심장을 수치와 자책으로 불태웠다.

하지만 그가 그 일시적이고 하찮은 생활 속에서 몇 가지 하찮은 실수(그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마치 그가 믿는 영원한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하지만 이런 유혹은 오래 가지 않았고, 곧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마음속에는 평온과 숭고함이 다시 부활했다. 그 덕분에 그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와 얘기할 때면 언제나-세료쟈는 그렇게 느꼈다-마치 자신이 상상해 낸, 책에나 나오는, 그러나 세료쟈와 전혀 닮지 않은 어떤 남자아이를 대하듯 했다. 그래서 세료쟈는 아버지와 있을 때면 늘 바로 그런 책 속의 남자아이인 척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은 현에게 감탄하며 그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남편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키티는 그의 이런 거짓말이 형에 대한 사랑에서, 그가 지나칠 정도로 행복한 것에 대한 무안한 감정에서, 특히 한시도 그를 떠난 적이 없는 더 우월해지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이런 점을 사랑했기에 미소를 지은 것이었다.

(레빈) 그런 인간들은 우리 나라의 세금징수인들처럼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돈을 벌어들여. 그들은 이런 경멸을 무시하면서 나중에는 정직하지 못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예전에 받은 경멸을 무마하려 하지.

“자네는 내가 5000루블을 얻고 농부가 50루블을 얻는 것이 부당하다고 했어. 그 말이 옳아. 그건 부당해. 나도 그 점을 느끼고는 있지만......” (......) “나도 행동하고 있어. 다만 나와 농부 사이에 존재하는 처지의 차이를 더 벌리려 애쓰지 않을 거라는 의미에서 소극적이라 할 수 있지.”

(돌리)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이 그에게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죠.”

그녀는 그를 바라보고 그의 표정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안나의 내부에 들어앉혔다. 그녀는 지금 생기에 넘친 그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에 안나가 어떻게 그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난 그녀가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거듭 말했다. 그러자 안나가 정말 행복한지에 대한 의혹이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마음속에 더욱 강하게 일었다.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문득 그녀는 그들 상이에 서로 의견을 일치시킬 수 없고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문제들이 존재할 만큼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진 것을 깨달았다.

병원을 설립하는 일도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그저 돕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은 것을 직접 만들고 고안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된 걱정거리는 여전히 자기 자신, 즉 자신이 브론스키에게 어느 정도 소중한지, 자신이 그가 포기한 것들을 어느 정도 대신할 수 있을지였다. 브론스키는 그녀의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 버린 그 갈망, 즉 그에게 사랑받고자 할 뿐 아니라 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그 갈망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녀가 그를 사랑의 올가미에 얽매인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그는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다기보다 그것이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지 아닌지 더욱더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집 앞에 작은 정원을 만들려면 측량부터 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 100년 묵은 나무가 있다고 합시다...... 비록 그것이 옹이가 잔뜩 박힌 고목이라 해도, 당신은 꽃밭을 만들기 위해 고목을 베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은 그 나무를 남겨 둘 수 있게 꽃밭을 배치하겠죠. 그런 나무는 1년 만에 자라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상인들처럼 하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왜 수피를 얻기 위해 정원의 나무를 베지 않는 거죠?” 레빈은 자신에게 충격을 준 상념으로 되돌아가며 말했다. 
“그건 말입니다, 당신이 말했다시피, 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귀족들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 귀족들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곳 선거장이 아니라 저기 각자의 사는 곳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겐 저마나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계급적 본능이 있습니다. 난 때때로 농부들을 관찰하는데, 그들도 똑같습니다. 건실한 농부들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땅을 빌립니다. 땅이 아무리 척박해도, 그들은 계속 쟁기질을 합니다. 그들도 이득 없이 그렇게 합니다. 손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 말이죠.”

‘그에게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 어디든 떠날 권리가 있어. 떠날 뿐 아니라 나를 버리고 갈 권리지. 그는 모든 권리를 갖고 있지만, 나에겐 아무 권리도 없어. 그런데 그가 그걸 안다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해. 하지만 그는 어떻게 했지......? 그는 차갑고 냉혹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어. 물론 그건 막연하고 감지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전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잖아. 그러니 그 시선을 많은 걸 의미해.’ 그녀는 생각했다. ‘그 시선은 마음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줘.’

지금 안나는 그가 그녀를 부담스러워 하리라는 것, 그가 그녀에게 돌아오고자 자신의 자유를 버린 것에 대해 후회하리라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비록 그가 중압감을 느낄지라도, 그는 그녀가 그를 볼 수 있고 그의 모든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이곳에 그녀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레빈은 카타바소프의 선명하고 단순한 세계관이 천성의 빈약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으며, 카타바소프는 레빈의 일관성 없는 사상이 지성의 훈련이 부족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빈은 카타바소프의 선명함을 좋아했고, 카타바소프는 레빈의 훈련되지 않은 사유의 풍부함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만나 논쟁하기를 즐겼다.

그녀가 없는 곳에서 그는 그녀를 까맣게 잊은 채 더욱더 침착해졌지만, 그녀의 고통 자체와 그 앞에서 느끼는 그의 무력감은 더욱도 고통스러운 것이 되어 갔다. 그는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어 하다가 그녀에게로 달려가곤 했다.

그리고 침묵의 한 가운에서, 어머니의 물음에 대한 명백한 응답으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서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다른 모든 목소리들과 전혀 다른......그것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인간의, 아무것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대담하고 뻔뻔스러운 외침이었다.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

그들을 갈라놓은 분노에는 외적인 원인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의논하려 할 때마다 분노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깊어지기만 했다. 그것은 내적인 분노였다. 그녀로서는 그의 사랑이 식은 것에서 비롯된, 그로서는 그녀를 위해 자신을 외로운 처지에 몰아넣은 것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분노였다.

왜, 마음속에 폭풍이 몰아치고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지 모를 인생의 전환기에 자신이 서 있다고 느끼는 이때, 왜 이런 순간에 자신이 남 앞에서, 조만간 모든 것을 알게 될 다른 사람 앞에서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는지, 그녀도 몰랐다.

방에서 나가는 순간, 그는 거울에서 입술을 바르르 떠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그는 멈춰 서서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 내기도 전에 두 다리가 그를 방에서 끌고 나갔다.

잔혹한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들, 그는 그녀의 상상 속에서 그녀에게 그 말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그가 실제로 그 말들을 하기 라도 한 양 그의 말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곧이 믿고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손이 빨간 소녀가 정말 나였을까? 그 시절 그처럼 아름답고 접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것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보잘것없이 되어버렸나!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보이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게다가 그는 자기가 신념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무지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었다.

그때는 진리를 알았는데 지금은 잘못 알고 있다니,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그 문제를 차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때 착각을 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의 정신 상태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데다, 그것을 약점 탓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그 순간을 더럽히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과 고통스러운 갈등을 겪으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정신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물질의 무한성 속에서, 무한한 공간 속에서 거품 같은 유기체가 분리되어 나온다. 그리고 그 거품은, 바로 나.’

“그래서 사람들은 제각각이라고 하나 봅니다. 자기의 필요만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미추하처럼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도 있고, 포카니치처럼 공정한 노인도 있으니까요. 그분은 영혼을 위해 살지요. 그 분은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어떻게 하느님을 기억하나? 영혼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떤 건데?” 레빈은 거의 외치다시피 말했다.
“누구나 알 듯 진리에 따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거지요. 정말 사람들은 제각각이라니까요. 가령 주인님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주인님도 남에게 모욕을 주지 않으시고......”

‘(......)그것이 내게 주어진 것은 내가 그 어디에서도 그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야.
난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억압해서도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 과연 이성 때문인가? 난 어린 시절에 그렇게 들었어. 그리고 난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믿었지.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게 나의 정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주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누가 그것을 발견한 거지? 이성은 아니야. 이성은 생존 경쟁과 나의 욕망의 충족을 방해하는 인간들을 교살하라고 요구하는 법칙을 발견했지. 그것이 이성의 결론이야. 이성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결론에 이를 수 없어. 그것은 비이성적이니까.’

‘모두 당연한 얘기죠.’ 그들은 생각했다. ‘거기에는 흥미로울 것도, 중요할 것도 전혀 없어요. 그런 것은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테니까요. 게다가 그것은 늘 똑같아요.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것은 늘 있으니까요.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는 산딸기를 찻잔에 넣고 촛불로 굽는 것과 우유를 분수처럼 서로의 입에 직접 쏟아 붓는 것을 생각해 낸 거예요. 이건 재미있고 새로울 뿐 아니라, 찻잔으로 마시는 것에 비해 전혀 나쁠 것도 없어요.’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성으로 자연력의 중요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똑같은 짓을 했던 건 아닐까?’ 그는 계속 생각했다.
‘철학의 이론들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사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을 이끈다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던 게 아닐까? (......)’

레빈은 마부의 참견에 화를 내며 말했다. 여느 때와 똑같이 그런 참견은 그의 화를 돋우었다. 그러나 곧 그는 현실과 접촉했을 때 정신 상태가 자신을 즉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착각이었는지 깨닫고서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까의 기분을 되찾은 레빈은 자기 안에서 무언가 새롭고 중요한 것이 일어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느꼈다. 현실은 그가 찾은 정신적 평온을 잠시 가렸을 뿐, rm 정신적 평온은 그의 안에 오롯이 살아있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정부가 시민의 의지를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사회가 자신의 의지를 천명해야 합니다.” 카타바소프가 말했다.

“민중이 모를 리 없습니다. 민중들 안에는 언제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의식이 존재합니다. 현재와 같은 순간에도 그들은 그러한 의식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양봉장의 노인을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공작은 계속해서 말했다. “알퐁스 카(프랑스의 언론인이자 팸플릿 저자로서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전에 반전 팸플릿을 출간했다.)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이런 멋진 글을 썼소. ‘당신들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가? 좋다. 전쟁을 설교하는 자, 그 자를 특수 전초부대로 보내라. 돌격을 하든, 공격을 하든, 그들을 맨 앞으로 내보내라!’”


누가복음 7:4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거니와,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츄라: 부스러뜨린 빵과 양파를 발효음료인 크바스와 소금물에 타서 먹는 스프

52)1850년대에 독일의 경제학자 헤르만 슐체-델리츠는 노동자와 고용자의 이해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독립 은행과 협동조합이라는 제도를 제안했다. 러시아에서는 1865년에 그의 사상에 입각한 회사가 등장하였다. 페르디난드 라살레는 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전독일노동자연맹(독일사회민주당의 뿌리)의 설립자이다. 그는 슐체-델리츠의 혐동조합 대신 국가가 지원하는 제조업 조합을 옹호했다. '뮐하우스 체제'란 알라스 지방의 뮐하우스 시에서 돌푸스라는 공장주가 노동자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설립한 단체를 말한다.  박애의 목적을 가지고 상업 관련 일을 하는 이 단체는 노동자들이 신용 대부로 구입할 수 있는 주택을 건설하였다.

115)샤를로트 코테: 프랑스의 급진적 정치가이자 산악파 자코뱅당 출신인 장 폴 마라를 암살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이 사건으로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했다.

딜레탕트: 학문이나 예술을 도락으로 즐기는 아마추어 애호가들

127)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에 따르면, 한니발의 군대는 2차 포에니 전쟁 중에 나폴리 부근의 카푸아에서 겨울을 보낸 후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유약해져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1870년대의 신문과 잡지는 나폴레옹 3세의 파리에 대해 '카푸아'라는 용어를 자주 인용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여기서 '카푸아'라는 용어를 특별한 의미로 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자신의 무기력한 시기를 '카푸아적'이라고 언급했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공: 스웨덴인과 튜튼 기사단의 침략을 물리치고 국가 영웅으로 숭앙받았다.
블라지미르 대공: 러시아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키예프 공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988년에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다.
사도 안드레이: 예수에게 가장 먼저 부름을 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다.     


165)푸가쵸프: ‘표트르3세’라는 병칭으로 불리던 카자크인으로 농민 반란을 주도했다. 반란에 실패하여 사형당했다.  

난 어떤 이야기든 작자가 누구에게 공감하는지 사람들이 알아챌 수 없을 때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네. 난 이것을 들키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써야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