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문학동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언젠가 작은 계산기를 산 일이 있다. 사칙연산이 가능한, 손지갑만한 기계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드라이버로 계산기 뒤판을 열어보고는 기쁨의 전율을 느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책 열 쪽 두께의 우표만한 소형 금속판 하나, 그리고 수학의 변분을 담은 공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정한 책에 내 눈길이 멎어 거기 인쇄된 단어들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대기 속에서 파닥이다 대기 중에 내려앉는 비물질적인 사고들뿐이다. 대기에서 자양분을 얻고 다시 대기로 돌아가는 사고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서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생전에 75킬로그램은 족히 나가던 누이였는데! 실제로 저울에 달아보니 재의 무게가 적어도 50그램은 축이 나 있었다. 그는 장롱 위에 유골함을 올려놓았다. 그러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외삼촌은 무밭에서 김을 매다가 문득 떠올렸다. 누이는, 그러니까 내 엄마는, 무라면 사족을 못 썼다는 것을. 그는 통조림 따개로 유골함을 연 뒤 무밭에 엄마의 재를 뿌렸고, 나중에 우리는 그 무를 맛있게 먹었다. 그 무렵 압축기로 책들을 압축하노라면, 덜컹대는 고철의 소음 속에서 20기압의 힘으로 그것들을 짓이기고 있노라면, 인간의 뼛조각 소리가 들리곤 했다. 마치 고전 작품들의 뼈와 해골을 압축기에 넣고 갈아댄다고나 할까. 탈무드의 구절들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팔 년 새에 9센티미터가 줄었다는 걸 맨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2톤짜리 닫집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 몸이 구부정해진 것이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은 내가 헤겔에게서 배운 것들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소름 끼치는 일은 굳고 경직되어 빈사상태에 놓이는 것인 반면, 개인을 비롯한 인간 사회가 투쟁을 통해 젊어지고 삶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단 한 가지 기뻐할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줄처럼 감겨오는 쉬파리들의 공격을 쉴새없이 받으며 버림받은 자가 되어 무작정 일에 매달렸다. 그러자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을 막 거머쥔 테니스 선수처럼 의기양양한 예수가 보였다. 반면 초라한 외관의 노자는 재고를 넉넉히 두고도 빈손처럼 보이는 장사꾼 같았다. 예수에게서는 상징과 암호로 이루어진 피 흘리는 현실이 읽혔지만, 수의에 싸인 노자는 엉성하게 다듬은 들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만 있었다. 예수는 플레이보이 같았고, 노자는 내분비선이 고장난 총각처럼 보였다. 예수는 오만한 손과 힘찬 몸짓으로 적들에게 저주를 내렸지만, 노자는 체념한 사람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이었다......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미래로의 전진,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근원으로의 후퇴

이윽고 어느 광야 한복판에 엄청난 크기의 네모난 꾸러미가 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변이 적어도 오백미터는 되는 저 정육면체에 프라하 전체가 나와 함께 압축되어 있다. 평생에 걸쳐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텍스트들과 내 모든 사고도 함께......

프로그래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은 같은 말이야. 너의 뇌는 압축기에 짓이겨진 한 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지.
햇살을 받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카렐 광장을 쉴새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무리를 지켜보았다. 젋은 사람들, 젊은이와 학생뿐이다. 그들의 이마에는 모두 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삶이 시작되는 순간 저마다의 내면에 싹트는 천재성의 표징이다. 그들의 시선은 힘을 발한다. 소장이 나를 바보 천치라  부르기 전에는 내게도 샘솟던 힘이다. 

고독은 조용하지 않고
지하는 고독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지 않았다.

책을
선호도나 감동이 아니라 무게로 만나는 주인공이라니
너무나도 직접적인(?) 애정표현이 두드러진다.

폐지를 압축하는 주인공과
기차선로를 바꾸던 주인공의 삼촌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의 지루해보이는 직업을 평생 한 사람들인데
둘 다 은퇴 후에는
폐지압축기계와 기차선로를 집안에 들여 놓고 싶어할만큼
자신의 일과 한 몸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그 강렬한 애정표현에
나는 이미 결말을 짐작해버렸는데
깊은 사랑으로 인한 행복한 선택이길 바랬건만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빠졌다.
이렇게 매혹적인 문장의 향연.
이 얇은 책에서
챕터마다 자신의 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자부심 쩌는(^^) 이 분.
압축폐지더미 속에서 귀한 책을 찾아내어 이웃들에게 눈물 어린 감동의 순간의 선물하기도 하고
압축폐지속에 생명을(--;;) 함께 압축하기도 하며
언젠가는 압축폐지들이 자신이 했든 똑같이 복수를 해올 것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전문가이다.
계산하다가 소매에서 생쥐가 튀어나오는 분이라
위생 문제로 친하게 지내기는 힘들 것 같지만
예수와 노자의 비교는 신선했고
자신의 삶과 세상까지도 압축해버리려고 했던
그 놀라운 야심과 불굴의 의지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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