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2016



힌 때,
의학드라마들이 의사들이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비난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벗어나겠다고 몸부림 치며 병원의 정치, 환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를 잠시.
다시 의사들의 연애장인 것이 새롭기도 할 무렵인데
드디어 닥터스 탄생.
이것은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연인들의 직업이 의사인
본격 연애드라마^^

작가의 전작인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사랑과 전쟁을 오랫동안 썼다더니
이 작가는 그 '막장'에서 '막'을 빼고 장을 담근 것 같은 이야기를 썼었다.
오랫동안 묵힌 감정으로
균열을 급하게 봉합하지 않고
같이 한 역사만큼 기다려주며
충분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깨달아가던 결말.
억지로 봉합하지 않고 감당할만큼의 매듭을 묶는 닥터스의 결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나의 애정은 3회를 끝으로 사라져버린 상추와
입만 열면 명언이 쏟아지던 강말순 씨.
그런 할머니를 잃은 혜정의 슬픔이라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상추에 반한 다른 네티즌의 편집 동영상은
앞으로도 몇 번 더 보게 될 듯^^
그리고 그리고 매력적인 진서우.

젊은 여배우들의 대거 등장 때문인지
화장품, 장신구, 구두 피피엘 너무 지겨웠다.
진짜...병원에서 힐 신고 돌아다니는 의사라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2015


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정겨움의 이면에 있는 폐쇄성은
최근 몇 년간의 믿어지지 않는 범죄소식들로 이미 널리 알려져 버렸다.
그런 '마을'에 찾고 싶은 사람을 찾아드는 이방인들과
마을 사람들의 '암묵'의 대결-모처럼 새로운 이야기였다.

문근영의 선택이 반짝거리는데도
드라마 속 소윤은 이상하다.
낯선 곳을 선뜻 찾아올 만큼 정깊은 어린 동생인데
그리움도 공포도 없는 로보캅 같은 인물이다.
아무 느낌 없이 오히려 정의감과 분노로 열심히 사건을 해결해가다
정확히 수사가 끝나고 나서야 연민을 보이다니.
그렇게 그리워한 언니인데
그만큼의 공감도 갖지 못하고
그걸 살인자의 입으로 듣고서야 깨닫는 기계적인 정서.
보는 사람이 소윤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면
훨씬 풍성한 드라마가 되었을 텐데....

가장 마음이 쿵하던 장면-증거는 우리 가영이....ㅠㅠ
오 나의 귀신님에서도 이미 놀랐었지만 신은경의 윤지숙이야말로 진짜 주인공
-아무 것도 잊지 않은 사람이니까 정신차리고 나면 마음의 예를 갖출 것도 같다.
슬프고 아름다왔던 장희진의 김혜진

미생|2014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미생'
-좀 슬픈 역설이다.

상사라는 곳이 회사 안에서 자기사업을 하는 구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난 그래서 오히려
쫓겨난 박대리가 '뭐 대단한 일들 한다고'-혼잣말을 하던 게
맥락과는 달리 말 그대로 더 와닿았다.
직장생활의 신화-상사맨이라는 자부심
모르겠다, 정말.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지.
그냥 다들
드라마속 주인공들과 더불어
'우리'를 느끼면서 한 잔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제대로 연애족은 없었지만
각 부서의 팀원들의 상사에게 적응하기는
성별만 바꾸면 개성있는 알콩달콩이 될 법했다.
-난 강대리-장백기 커플 응원^^

하지만 이 모든 성취와 감동은 장그래와 오부장이라서 가능하다.
장그래처럼 함께, 오래 일하는 게 목표인 사람만,
아니면 오과장 처럼 제 적성을 잘 찾아서 밥먹고 사는 사람만.
각자 일하는 이유가 다를 땐
이런 과정이란 오히려 노동자를 도구처럼 만들어버리는 일방적인 교화이다.

일에서의 보람은 주관적이고 일시적인 것에서도 왔었다.

예상 못한 인사라든가
어느날 부터 느껴지는 신뢰의 눈빛
갑자기 화사해진 답미소
어느날 부터 개운해진 농담.
그런 거 없어서 죽지는 않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작고 일시적인 것들이 사라지지 않아준 덕에 
밥벌이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적응이란 거-익숙해지기는 쉽다.
어딘가 불편할 때 남의 이유를 내 것인양 쭉 들이마시면 된다.
문제는 그렇게 맘 먹을만한 동기인데
아직도 찾지 못해서
그냥 불편함에 적응하기를 선택한다.

참고 무시하는 것과 달리 견디는 것에는
학습이 들어있다.
불편함의 이유를 깨닫고 적응을 결정하고 다음 단계로 반복.
김대리의 문 열기는 그래서 적절한 비유였던 것 같다.    
그걸 가장 잘하는 장그래가 결국 떠났던 건 역설이지만.

오랜만에 미생을 다시 보면서
참 대단한 기술력의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직장을 옮기는 것 뿐인데
그걸 인생의 낙오를 결정짓거나 생사를 좌우할 것 같은 무게로
보는 사람을 시종일관 몰입하게 만드는 기술.
그 많은 인물들이
목적지-가 있다면-에 다다르건 말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도
그 '결과'라는 것을 끊임 없이 궁금해하고 희망하게 만드는 기술.
몇 번이나 가슴 두근거리게까지 하며.
장그래이 절실한 눈빛이
우리, 같이, 계속을 말할때
뭘 그렇게까지-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만큼.

찾자면 손쉬울 수도 있는 '까르르'거리들이 아닌 '열심'의 정의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결국의 사깃군이었던 당시의 사업가가 수장이던 건물이지만
최신 유행이 아니어도 예를 갖춘 옷을 입고
가방의 덩치가 드러나는 그 모습 그대로 열심히 출근하던 장그래는
신성하건 말건 노동의 힘을 보여주었고 
혼자라는 알을 깨고 나온 환골탈태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배워야 할 것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배워나감으로써 
장그래 답게 '혼자'스러움의 긍정을 끌어내는
성취를 이루었다.

괴리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신발을 끌며 무겁게 떠나고
가슴에서 올라오는 물음표들을 하나 둘 죽이고서야 살아남은 사람들이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물음표들의 싹을 자르려 담합하기 쉬운 곳에서
인생에 예의 바른 사람들을 만나
답을 찾는데서만큼은 기죽지 않아도 됐던 건
장그래의 유일한 행운.

보다가 새삼.
대학교육의 가격대비 품질의 가치논쟁은 둘째치고라도
출석도 안했을 사람들의 졸업장을 인정해주는 것,
독학으로 이룬 성취를 더 선망할 것 같은데 오히려
사법고시를 통과하건 대통령이 되건
그 졸업장이 없음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
무엇에 대한 어떤 명예를 기리는 지 알 수 없는
명예박사 같은 학위의 효용성 같은 것.
왜  그런건 지 알 수 없어졌다.
장그래는 현재를 보면서도 과거를 왜 궁금해하냐고 물었지만
증명하고 있는 존재에게 과거의 빈 칸을 따지는 것도 비슷한 질문이겠다고
생각했다. 

접속|the Contact|1997

20년 쯤 지나고 보니 한석규도 풋풋해보이는구나^^

오해로 시작했지만 서로를 보지 않고 이해하게 된 두 남녀가 만나면서 끝나던 이야기.
신선했던 기억이 오랜만에 다시봐도 변함 없다.
여전히 행복한 기분으로 들을 수 있는
Lover's Concerto를 비롯한 OST의 매력도 여전하다.
도회적이고 젊은 감각으로 만든 살짜쿵 연애물의 매력.
당시 하이텔이나 천리안의 삭막한 화면때문에
유니텔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거란 농담도 기억이 난다.
이제는 약간 변방 같은 느낌이 나는 종로의 극장도 새록 떠오르고.
그러고보니 영화속에 셀카가 등장한 게 무려 20년 전 ㅋㅋ

영화에서는 처음 봤던 전도연이 제 자리인듯 꽉 차 보였고
한석규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는 드물게 꽤 현실적인 피로감이 묻어
오히려 마음이 가던 동현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추상미, 
어느새 악역 전담이 된 김태우와
못본지 오래된 강민아도 한 풋풋 하고.

그 시절엔 그런 게 없어서인지 크게 느끼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거의 100% 계약직이 되어버린 직종의 수현이 가진 여유가
그동안 내리막길을 걸어온 한국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4등|the 4th Place|2014

안 그래도 된다는 정답을 알지만
고민하며 틀린 답을 실천하게 되는 질문이겠지...

1등도, 2등도, 3등도, 꼴등도 아닌 4등.
4등의 비애는 메달권 밖이라는 것이었다.
점을 보러 가는 심정이나
4등을 향한 안타까움은 아마 비슷할 것 같다.
너무나 바람직한 영화이다 보니
본 사람들은 다들 재미있다고 입소문 낼 것 같은데
이 영화를 좀 봐줬으면 싶은 극렬 학부모들은
제목부터 재수 없다고 안 볼 것 같다^^
경고문을 부주의한 사람들이 못보고
원래 조심스러운 사람들만 보는 거랑 같지...
현실 적인 차이라면...
저런 용기를 내는 부모들은 꽤 된다.
하지만 저렇게 빨리 효과를 성과로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다.
확신도 없이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없는 부모들은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이 영화의 결말은 판타지인 걸로.

제목이 확 끌렸기도 했지만
예고편에서 끝까지 보기로 한 건
오대환 때문.
마사장은 어디가고 또 늙수구레한 태능인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신다.
화이에서 처음 봤던 박해진도
여기서 제법 천재출신 쌍팔년도 스타일의 코치로 굉장히 잘 어울렸다.
올림픽에서 그나마 챙겨보던 수영 종목.
어린이 수영 구경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