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 2014



명절 가족관람시간이 돌아왔다.
한국판 리쎌웨폰 같은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2편이었는데
나날이 늘어가는 가족관람객들을 생각하면
이 명절가족영화 시장메뉴로서의 전망은 매우 밝아보인다.
1편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이번엔 인물들의 개성도 강해진 것 같고
고증이고 뭐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뭐든 가져다 보여주겠다는 발랄함이 돋보였다.
이렇게 넉넉하게 천장을 넓혀놓고 가는데 알아듣기에 걸리적거릴 게 없다~

김명민과 오달수는 관계변화도 재미있는데
초지일관 일방적인 부림의 진한 애정을 보이는 김민에 비해
서필은 혼자서 슬슬 계단을 올라
나중에는 거의 홈즈와 왓슨의 관계가 되는 것 같다. 
 
포스터에서는 약하지만
이연희의 대단한 미모-이쁜 걸 처음 안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발군이다.
이게 미모의 성장이었는지 연기력의 성장이었는지는
담에 기회있으면 또 보기로 해요~

물 위에 떠오는, 아무 잘못없이 죽게 되어 버린 아이들을 보며
세월호를 생각 안할 수가 없었다. 

'2만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이라는 기타노 다케시의 말을  보여주려는 듯
더해를 알아보고
다해를 찾아헤매는 손길을 따라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생각하며 같이 마음 아파할 수 있었다.

꽃이 아니라도 사람은 그 자체로 귀한 것이라...
살아있는 다해에게는 해줄 수 있었던 그 얘기를
죽은 다해에게는 어찌 하시렵니까, 나으리....

PS. 헐, 조관우...설마했는데..너무 잘해서 믿기지가 않네...

펀치|2015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개연성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뭘 하든 이유가 필요하다.
그들이 겪는 갈등이 클수록 결단의 이유도 커져야 한다,
그래야 생판 남인 시청자 관객 독자가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세상은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꼭 그렇듯 욱하는 마음에 저지르기도 하고, 그냥 저질렀다가
뒤늦게 이유를 깨닫기도 하고
끝내 이유를 모른채 죽을 때까지 궁금해하기도 하며
저지른 나보다 남이 먼저 알아봐주거나 분석해내기도 한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알게 된 것,
문재인과 안철수가 정치판에 끌려나오던 과정에서 본 것,
그 뒤로 간간히 그들을 따르겠다고 숨지 않고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펀치는 허구 속의 촘촘한 계략과 말판들을 위한 작전을 이끌고 따르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의외로 현실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진창의 속살은 정말 저럴 지언정
진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 속에는
저 틈에 끼지 않은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음을 떠오르게 한다.

끊이지 않는 반전,
인간됨에 대한 확신에 찬 설정 등 박경수 작가의 개성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게 가장 놀라운 점은
인물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추격자의 형사동료가 그랬고
기사의 아내가 그랬다.
이들은 모두 정을 아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들을 믿기를 포기하지 않아서
믿음을 지켜갔다.

이번에 새로웠던 힘은
애증과 신뢰, 음모가 계속 뒤집히면서 이어지는 관계였다.
애정하면서 배신하고
믿음에 기대 음모를 꾸미고
의심하기에 손을 내민다.
이태준과 박정환,
윤지숙과 이호성의 입체적인 대립각 사이
하나 살려준 신하경의 희망은 고마웠다.
신하경과 박정환의 관계가
식구니까 괜찮아를 넘어서
사랑하기에 더 치열하게 따질 수 있었던 관계여서 좋았다.

그중에서 진짜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인간은 단연 이태준.
쓰레기라고 일갈하기에 그는 정말 입체적이었고
처음에는 박정환의 유능함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애정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그의 감정선.
그래서 '나쁜'과 '인간'을 같이 느낄 수 있던 놀라운 인물.

윤지숙은 복잡하다.
이 공주마마의 정의감이 어디서 잉태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되고 그 피를 뱀파이어처럼 호성에게 물려주고 만
한때 정의의 사도.
그런 정의는 필요없다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법을 접하고 죄를 물어온 사람들의 입에서
이건 덮을 수 있다,
어디까지 깎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내가 모르는 동네에 도청기를 대고 듣는 것 같아 근심스러웠다.

나락에 떨어질수록
포기할수록
가까워지는 인간들을 보면서
바닥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품격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박경수라는 작가는 괴물이다-로 마무리.
매번 이런 전력질주를 하면서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 년에 한 번은 계속 보고 싶다, 이 징글징글 라이브.

"정환아, 나 억울하다."
"나보다?"
명대사 많고 많지만 폭소를 동반한 기막힌 대사다.
박정환 앞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 조강재나
'니가 그러는 건 이상하지도 않다'는 듯 일갈하는 정환.
실제라면 십장생 연타를 쳐도 모자랄 종자 조강재인데
여기서는 정말 든든하게 웃음의 한축을 담당하셨다.

워낙 명대사가 난립(ㅋㅋ)했던 드라마인지라 후배 명대사가 선배 명대사를 오히려 지워버렸지만 요거.
바지를 입었으면 사람구실을 해야지 각설이 치마도 아니고.
일명 바지사장들에게 남기는 정체성 촉구 선언ㅋㅋ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카렐 차페크|정찬영|모비딕|2014

어떤 죄수든 그 감방에 들어가면 양심의 가책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백이면 백 모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종교를 찾았다. 물론 죄질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달랐다. 단순한 경범죄와 같은 경우는 하룻밤이면 족했다. 하지만 중죄를 저지른 사람은 이삼일 정도 걸렸고, 사형수들은 완전히 바뀌는데 1주는 소요되었다. 하지만 가장 오래 걸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금고털이범이나 횡령꾼 처럼 엄청난 돈을 훔친 사람들이었다. 엄청난 돈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무디고 딱딱하게 만든다. 최소한 양심을 마비시키는 것은 확실하다. <늙은 죄수의 이야기>

금발의 미녀가 귀밑까지 새빨개져서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홀루브 형사님, 저는 이 신사분이 당신의 친구인지 꿈에도 몰랐어요."
"당신이나 조심하는 게 좋을 걸, 여기 이 신사분도 당신하고 똑같은 일에 종사하는 분이지."
...'정말 역겨운 짓이군요." 그가 경멸스럽다는 듯이 침을 뱉었다..."저는 범인으로 압송 중이기 때문에 공짜로 기차를 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국가가 지불하게 되어있으니까요. 저 같은 사람은 씀씀이를 하나하나 살펴야 합니다." 플리츠타는 프라하로 가는 내내 금발 미녀에게 저주를 퍼부어 댔다. <결혼 사기꾼>

나는 기독교는 여름에도 전혀 덥지 않은 북쪽 지방에서 시작된 게 아닐가 하고 추측해왔다.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루 종일 무언가가 계속 벌어진다. 마사, 예배, 저녁기도, 그리고 그림과 조각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신도들은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성당에 들러 땀을 식히고 명상에 잠길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은 특히 바깥이 찜통같이 더울 때 더욱 빛이 난다. 춤고 사람이 살기 힘든 북쪽 지방에서는 개신교가, 더운 남쪽 지방에서는 가톨릭이 득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성한 성당이 제공하는 그늘과 시원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고백>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게 결코 우리가 경험한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우리 경험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이 순간 경험하고 있는 것들은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혹은 편리한 대로 이런저런 경험만을 골라서 그것으로 하나의 플롯을 짠 뒤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부분은 잊어버리고, 이상하고 끔찍한 부분도 무의식적으로 생략해버린다. 맙소사, 우리가 경험한 일들을 모두 알게 된다면!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하나의 인생을 살 능력밖에 없다. 그 이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밖이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더 큰 부분-을 버리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이 우리에겐 없다.   <잠 못 이루는 남자>

우리에게 영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틀림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 정의에 대한 본능적인 희구도 그중 하나다. 나는 남보다 특출날 게 없는 사람이지만, 내 안에 내 것만이 아닌, 내게만 속한 것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건 엄숙하고 강력한 명령에 대한 인식이다. 그때 나는 죄를 저지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신을 거역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을 살해하는 건 신의 뜻에 따라 지어진 성소를 훼손하고 더럽히는 것이다.<평범한 살인>

용케 회개하지 않고 교화의 감방을 나옴으로써 그 방의 신기한 힘을 아예 없애버린 죄수,
평생 결혼사기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온 알뜰한 사기꾼의 말로,
자신이 저지른 역겹고 끔찍한 범죄를 회개하겠다며 고백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고 성직자들을 멘붕에 빠트리는 범죄자,
밤마다 떠오르는 '다른 인생'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잠들지 못하는 남자.
단편에 스치듯 실려가는, 인간에 대한 통찰에 공감이 간다. 
1924년 신문에 연재되었던 단편들을 모든 두 권의 소설은 제목처럼 두고두고 볼만한 이야기 주머니다.

...여행 다니다가 더울 때 비올 때 성당에서 낮잠 좀 자 본 나로서는
성당의 쓰임새에 정말 100% 공감^^

힐러|Healer|2014

힐러의 젤 잘나온 사진은 영신이 방에 붙어있던 거지만~


뉴스룸에 취직한 루팡가의 수퍼맨.
얼굴이 너무 쬐끔밖에 없어서 얼굴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 따윈 생각않는 젊은이들의 직종으로 심부름꾼과 연예기자라...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살 수도 바뀔 수도, 그래서 변신의 폭이 매우 큰 직업이며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능력의 차이도 커진다.

몇 회 지나고 처음보고 몰아보기 시작했는데
중반을 지나면서 막 죽여버리겠다는 듯 덤벼대던
힘은 있을 지 모르나 도대체가 뭔 능력으로 뒷방 높은 자리에 앉으셨는지 알 수 없는
어르신의 볼품없는 신공에 김이 빠졌고,
이렇게 쉽게 끝장을 내버리다니
펀치의 긴장감과 비교해도 푸석푸석한 과정이었다.
세상에, 지 아부지 살인누명 벗기겠다고 목숨걸고 덤벼들었던 주인공이
박봉수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봉수씨 힐러 시킬 자식은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는지...?
어쨌거나 서정후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힐러에 대한 아쉬움은 이렇다.
초중반을 달리던 에너지가 어르신의 등장과 함께 몰락해 버린 느낌.
주연희 에피소드에서 들리던 마음이 담긴 안타까움과 응원,
죽을 건 네가 아니라 그 개쓰레기들이니
차라리 죽을 힘으로 그 쓰레기들을 겨누라는.
진심이 들렸었다.
하지만
수십년간 이 모든 음모의 씨를 뿌리고 거둬오셨다는 농부어르신은
탐나는 밤심부름꾼 앞에서 허망히 지고 말아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이
매력녀 영신이와 어둠속의 까도남 정후의 연애기의 배경이 되어버려서
주인공들의 매력만이 마지막까지 초롱초롱 남았다.
문식과 문호처럼 고민해봐야할 인물들은
뒷칸에 남겨두고.
한때 부당한 수사를 고발할 줄도 알았던 박동철은 왜 이십년이란 생각하기 충분한 시간을 자신을 옷벗게 만든 놈들이 아니라 만만한 피해지 서준석을 원망하며 보냈고,
그 원망은 그렇다치더라도,
나중에 애도는 하더라도,
정후라면 그 자리에서
그 빗나간 원망에 한 소리 할 수 있지 읺았을까. 

제일 재미있었던 건 1회.
조민자와 서정후의 콩당콩당 씬은 언제나 재미있고
채치수와 채영신의 조화도 즐겁다.
매력만점이었던 윤동원,
귀여운 장병세
원조 힐러였던 기영재과 젊은 기영재(오광록을 그렇게 똑같이 따라하다니 대단!).
관록있는 작가들의 이야기 속에는 늘 주인공 만큼 매력있는 다른 인물들이 많아 즐겁다.
민자씨 또래의  여배우가 엄마나 며느리 아닌 다른 역할로 나오는 것도 반갑고.
디시갤 아줌마와 정후커플의 관찰기?!?!
정후와 아줌마

내맘대로 베스트
#채치수와 채영신의 김장: 채영신의 매력이 폭발~
#서정후와 엄마가 찻집에서 만나는 장면: 정후는 이럴 때 표정이 좋음.
#채영신 건을 의뢰하고 의뢰받던 힐러와 조민자의 만담
#채영신의 카메라 테스트: 귀엽기도 하지만 송창식의 노래와 함께라닛!
#첫 사건을 해결하던 힐러: 마지막의 절규는 정말 성격나오더라^^
#다시 만난 기영재에게 맘껏 보채고 성질부리는 정후
#그리고 영안실: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어니가 엄마를 보던 것 같아 짠했음.
#떠날테면 떠나라고 정후에게 말하는 썸데이 사장 김문호

+ 적어서 아쉬웠던 힐러의 액션 장면들!

그리고 오랜만의 유지태.
노선을 빨리 정한 뒤 생존에 방해가 되는 기억은 윤색하거나 지워버리면서
환상에 위로받으며 사는 김문식과 달리
중간계에서 모든 것을 기억한 채 상처와 죄책감을 같이 가지고 살아가는
가장 고통스럽게 살면서 또 가장 강해야했던 인물.

예전에 유지태의 미소가 전국을 녹이던 시절이 생각났다.


PS. 채영신은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채치수는 슬램덩크의 주인공, 다른 이름들도 그렇게 다 따온 걸까??
PS2. 오글오글 중독되어버린 Michael Learns to Rock의 Eterna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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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혹은 그리고 뒷북.
힐러를 보다 갑자기 액션에 꽂혀서 방영중일때는 볼 생각도 안했던 시티헌터를 봤다.
초반에 음악부터 다크나이트랑 비슷하군 하며 설렁설렁보던 중 어머나 깜짝이야...
원작 시티헌터-드라마 시티헌터보다 드라마 시티헌터-힐러가 더 비슷.
이번에도 장르의 특성 상 고유하지 않은 설정들을 그냥 쓴 것 뿐?
소재나 주제보다도 엮는 솜씨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인정.
그 점에서 송지나는 범상치 않은 작가임도 인정.
하지만 드라마를 즐겁게 보고나서도 전적으로 열광할 수 없게 만드는 찝찝함이 있다.
헐리웃 키드의 생애인 건지...
근데 이것도 좀 이상한 건
송지나만 그럴리가 없는데
송지나에게만 유난히 많이 실망한다. 
여명의 눈동자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카렐 차페크|정찬영|모비딕|2014


"...당신이 재판을 하셔야하는 게 아닌가요? 왜냐하면...왜냐하면"
"왜냐하면 내가 신이기 때문이라는 건가?" 신이 그의 말을 맺어주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야. 모르겠나?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기때문에 재판을 할 수 없다네. 절대 그렇게는 안되네...."
..."하지만 진짜 왜 당신이...당신이 직접 재판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쿠글러가 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재판관이 모든 것을...그야말로 완변하게 모든 것을  안다면 말일세, 그는 재판을 할 수가 없네. 모든 사정을 이해하면 무척이나 가습이 아프다네. 그러니 어떻게 재판을 할 수 있겠나? 자네를 재판하려면 오직 자네의 범죄에 대해서만 알아야 하네. 하지만 나는 자네의 모든 걸 알고 있지. 말 그대로 모든 걸 말일세, 쿠글러. 그래서 내가 자네를 심판할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저 재판관들도 저와 같은 사람이잖습니까? 왜 그들이 저를 심판하나요?......여기 저승에서조차 말입니다."
"그건 사람들 일은 사람들끼리 해결해야하기 때문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그저 증인에 불과하네. 언제나 판결을 내리는 것은 사람이지. 여기 저승에서도 그러하네. 내 말을 믿게, 쿠글러. 그게 순리야. 인간에게는 인간이 심판을 내려야 하는 법이네(예전 번역: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심판은 사람들의 심판 뿐이라네)." -[최후의 심판] 중-

"젊은 친구들, 내 나이쯤 되면 승리의 월계관이나 환호의 갈채, 혹은 가슴끓는 사랑 가튼, 모든 덧없는 것들은 더 이상 개의치 않게 됩니다. 그것들이 먼 과거의 추억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젊은 때에는 이 모든 걸 맘껏 누려봐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어리석은 겁니다. 물론 젊음의 유일한 문제는 즐길 돈이 없다는 겁니다. 사실, 인생은 거꾸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먼저, 인생의 전반부는 노년기이어야 합니다. 늙은이로 살면서 가치있는 일들을 한껏 하는 겁니다. 늙어서는 일 말고는 할 것이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인생의 후반부인 청년기에 이르면 그동안 열심히 일한 과실을 맘껏 향유하며 즐겁게 사는 겁니다....-[셀빈사건] 중-

꽤 오래 전 '단지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합쳐져 편집출판 되었던 카렐 차페크의 소설이 두 권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엘러리 퀸과 카프카의 만남이라는 어마어마한 찬사도, 카렐 차페크라는 소설가가 그렇게 거장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일본에 아사다 지로가 있다면 체코에는 카렐 차페크가 있구나 감탄했던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원작 모두를 담은 새 책으로 나온 것은 기쁘다.
신기한 건 좀 어색한 것 같은 예전 번역이 더 좋은 느낌인 구절도 있다는 것.
덕분에 잠깐 예전판과 비교하며 다시 봤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3



사람은 누구나 죽고
갑자기 죽기도
일찍 죽기도 한다.
75년 연분홍 연인과 일생을 보낸 삶의 마지막은
그보다는 덜 아쉬워해도 될 것 같지만
정이 넘치는 한 평생의 끝이라해도
쇠약해지는 몸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참 많은 것을 해낸 장한 인생을 사셨겠지만
그 깊은 인연의 통곡을 마지막으로 보면서도
서로의 인생을 다 이루어준 것만 같은 부부는
부러운 인연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맞이하게 될 마지막이 고통스러웠던 것에 대해서는
오늘의 관람 동행들 사이 분분한 말들이 나오고 말았는데
이건희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해도 똑같은 말을 해줬을까 싶은
소위 전문가들의 무책임하면서도 인정머리 없는 무능함에 대한 분노도 있었고
그런 부모 밑에서 인정없게 자라지는 않았을
여섯이나 된다는 자식들에 대한 원망도 있었고,
태백의 진폐증 걸린 광부도 다 고쳤다는 용한 한의원 얘기에,
역시 있을 때 잘하라는 당연한 당부말씀까지 이어졌다.

그런 짝을 잃고
할머니는 어찌 지내실지.

인간극장 짜집기라 별 거 없다는 사전정보와는 별도로
몇 년에 걸쳐 공들여찍었을텐데
참 투박하면서도, 어딘가 상업적인 느낌이 드는 편집이 맘에 걸렸지만
세월을 살아낸 이야기가 주는 느낌은 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