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의 문학이야기 그리고 라디오책다방

듣기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신형철의 마지막 방송 공지를 듣게 되었다.
아, 섭섭하다...
신형철의 전문 분야는 물론 문학이지만,
책을 거의 안 읽은 지 어언 수년차에 접어들고서는
신형철이 소개하는 책이 읽은 책일 수가 없어서
가끔 씨네21에서 영화평만 읽고 있었는데
차분히 읽어주는 낭독도 좋았고
이러저러 책을 얘깃거리 삼아 들려주는 그의 사색이 반가왔다.
일상적인 수다에서는 잘 하게 되지 않지만
여행길에서 마주친 짧은 길벗에게 우연히 깊은 대화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제 신형철의 새로운 문학이야기는 없을테니
골라 듣느라 빼놓았던 나머지 방송들이나 가끔 꺼내 들어야겠지.
문학방송이었지만
목소리 때문인지 프로그램의 분위기 탓인지 오래 전 전영혁의 방송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때처럼 오프닝과 클로징의 시그널 음악
에피톤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
푸디토리움의 If I could meet you again 에 빠졌다. 
푸디토리움의 음악은 판매중인 음원 버전과 달라서
유튜브 확장 버전을 따로 검색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 자신이 쓴 글을 보게 되면 부끄러워지는 게
그만큼 성장한 거라는 신형철의 얘기를 들으며
나의 미성숙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졌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같은 고민들.
사람의 성장이란 나선형이어서
같은 원을 그리며 조금씩 넓어지느라
단계를 훌쩍 넘어버리진 못한다며
대신에 같은 것 같아도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는 말로 한때는 위로를 받았었지만
정말 그런 걸까 하는 의심이 이제사 든다.
소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자기들끼리 호호깔깔 홍수인 팟캐스트동네에서
심지굳은 친구 하나가 떠나간 기분.

이제 책다방만 남았네...
나날이 환상의 짝궁이 되어가는 김두식과 황정은.
김두식이 망했다거나 마지막에 잊지말아주세요-하고 인사할때면 마구마구 귀엽다.
목소리로 밥먹고 살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목소리의 황정은이
활달하게 웃으며 농담하는 것도 반갑고
가끔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성을 특유의 무게감있는 목소리로 전할때면
아연해지기도 하지만
김두식과 황정은은 알아서 균형을 잡는 장한 궁합을 보여주고 있다.
책이야기라기 보다는 매번 교양강좌를 듣는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도 좋고
즐기는 코너는 아니지만 
이제니의 피로와 파도와를 소개해준 '밖으로 간 시'는
그렇게라도 일주일에 시 한편으로 귓구멍에 바람쐬주는 기분이랄까.
오래오래 지금처럼요~를 부탁하고 싶다...

 
 

네트워크|Network|1976

헐...이래서 네트워크 네트워크 했던 거구나...
EBS 세계의 명화

뉴스룸이 시작했을때
왜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얘기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는 
뉴스룸의 뒷방이야기지만
75년도의 예지력으로 보자면 어마어마하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인 
하워드 빌은 영화속에서도 네트워크에서도
네트워크를 위한 소도구로 철저히 소모되었다.
그리고 계속 이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다이애나의 기획안대로 만들어진 어이없는 방송을 보면서
지난 해 예능과의 접목이라며 화제를 모았던
엠빙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우리나라 신문방송들의 오염은 딱히 '달러' 때문만도 아니다.
어디서 나오는 지 알 수 없는 힘을 믿고
청와대를 손가락 하나 까딱여 움직이려는 야심 때문일 때도 있고,
평생망신도 불사하며 자리 하나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클럽에 휘둘려서일때도 있다.
이익추구를 위해 살인도 간단하게 결정하는 달러그룹 이나
권력을 조종하려는 그룹의 사악함은 거대하고 멀게 느껴지는데
불나방 그룹은 좀 더 복잡하다.
생활밀착형 치졸함에 민간인들도 자신의 삶을 재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성공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으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어디까지 봐줄 수 있나-같은 질문을 하며.
설마 더는 없겠지 할 때쯤
새로운 대한민국 신기록 보유자들이 등장하는 것도 진귀한 광경이다.

좀 정신줄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지만
건질 얘기도 있었던 하워드 빌의 'bull shit'과
압도적이었던 젠슨의 '기업우주론'-
힘이 있었다.
워낙 명대사의 향연이다 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페이 더너웨이.
열변으로 보스들을 하나 둘 정복한
열정과 신념에 찬 일중독자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맘껏 해를 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기억속엔 돈주앙 드마르코 속
말론 브란도와의 커플 연기 뿐이었는데
그때도 멋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에너지를 가진 배우였는지는 몰랐었다.
멋지다.
 
자연스러움과 소탈함이 각광받는 시대에
품위의 가치를 생각나게 하던 영화.
마침 뉴스룸 시즌3이 11월에 시작한다는 뉴스와도 잘 어울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