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한국:북한

어제 후반전 밖에 못 봐서 다시 보기를 하는데
헐...전반전 북한 정말 잘한다.
그 와중에 첫골을 넣다니 정설빈 대단하다.
게다가 그 슛이 수개월 간 집중훈련한 결과라는 박문성 얘기를 듣고나니
그 투지에 더 큰 박수를 보내게 된다.
지소연 패스도 좋았고, 후반전 골대 맞은 슛 너무 아깝지만,
북한이 정말 잘한데다 운까지 따라준
어쩔 수 없는 패배.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쓴 허은별도 대단하다.
지소연 울면서 출국했다니 좀 짠하네...
성공했으면 정말 지메시의 진가를 보여주는 슛이었는데.

내년 여자월드컵은 캐나다라니
새벽중계 볼 수 있겠다~
배성재-박문성 중계면 좋겠다!

ps. 여민지가 부진으로 선발되지 못했다니 충격...
ps2. 박은선 보고싶다...
  
한국:북한 경기 다시보기
http://sportstv.afreeca.com/2014asian/highlight.php?board=vod&c_id=2014asian_highlight&b_no=76159&control=view&szFrom=daum

한국:대만 경기 다시보기
http://sportstv.afreeca.com/2014asian/highlight.php?board=vod&c_id=2014asian_highlight&b_no=75769&control=view&szFrom=daum

딱 한 골 들어갔는데 그 슛이 정말 예술~

2014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한국:몰디브

축구는 나에게 영화제 같은 거라서
남자축구는 월드컵만 보고,
여자축구도 국제경기만 보---
--고 싶은데 보기가 쉽지 않다.
별의 별 비인기종목을 다 중계해주는 아시안게임 기간인데도
여자축구는 공중파에서 안해준다.
4강쯤 가면 해주려나...

지난 경기에서
몰디브를 15대 0로 이긴 인도를
우리나라가 10대 0로 이겼을 때
과연 우리나라는 몰디브를 상대로 몇점을 낼지
기대만발이었는데
13대 0이라는 예상보다는 양호한(^^) 골차이로 이겼다.

몰디브는 10년 전에 처음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을 꾸렸다는데
이번 대표팀에도 농구하다가 축구로 바꾼 선수까지 있다는 걸로 봐선
그 10년도 다부진 역사는 아닌 게 분명하다.
하긴, 아시아에서 나름 수준급이라는 우리나라도
여자축구에 대한 지원이 그지같으니
몰디브는 더하겠지.

골이 많이 터졌지만 승부와 상관없이 놓친 골도 많아 좀 아깝기도 했는데
최유리의 발리슛(아님 말구^^)같은 멋진 골도 보고
골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몰디브 선수들은
오랜만에 슛돌이 축구도 보여주고^^

대패를 하면서도 이따금 소녀미소를 짓던 몰디브 선수들.
내 보기엔 풋풋하고 귀엽기도 했고,
전력은 생각도 않고 10대 몇인데 웃음이 나오냐며
경기 끝나기도 전에 고향에서 욕편지를 날리는 사람들이
몰디브엔 없나 생각했다.
아님, 기적의 승리가 있기 전까지 경기를 하던 말던 신경끄고 있나..?오늘 많이들 쓰러졌는데
크게 다친 건 아니길 바래요~

그나저나 지소연과 박은선이 빠지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여민지는 왜 빠진 건지 아무리 검색해도 안나온다.
국가대표 명단도 블로거가 가르쳐 주고.
아시안게임 홈피 참 부실하다.

EIDF 2014| 홈스는 불타고 있다|Return to Homs



 감독 : 탈랄 덜키 | Talal DERKI 시리아, 독일 | 2013 | 90분 | 페스티벌 초이스
시리아 소식  http://syrianvoices.wordpress.com/abd-el-basset-el-sarout/
영화를 보자마자 찾아봤던 바셋의 소식
-4월에 친구의 계정을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광주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다.
공항과 터미널 같은 곳 말고는.
그렇게 15년 전 홈스를 지나간 적이 있다.
배낭족이었던 내게 홈스는
북적거리던 국경도시 알레포와 수도 다마스쿠스 사이
교통의 요지였을 뿐이었고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시리아가 내게 잊을 수 없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시리아 전역에 피바람이 분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그때부터
자꾸만 마음이 갔다.
국민에게 총을 겨누며 해외 보석 쇼핑을 하고
독가스 화학전까지 하는 미치광이라는 것 까진 몰랐지만
시리아의 독재자는 그때도 이상해서
커다란 대통령 사진이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알레포 시내 한복판을 지나는 것을 본 기억도 난다.
대통령 생일 축하 퍼레이드였다고 했다.

그래서 차를 함께 마시던 사람이 죽었다-는 담담한 나레이션이 철렁했다.
그 많은 주검들 속에 분명 나를 반겨주고 차를 권하던 분들도 있을텐데.
혹시 그때 어린 바셋을 지나쳤을지도......
 
2011년 보다 훨씬 이전에도 홈즈에서는 이런 대학살이 있었다고 한다.
피로 뒤덮일 거라는 어른들의 충고는 겪어본 자의 머뭇거림이었고
순식간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젊은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전장의 한복판에 서게 된 바셋은
수없이 많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지나느라 후회할 겨를도 없었을 것 같다.
바셋이 부르던 노래가사의 코피 아난은 이제 반기문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구의 절반이 죽거나 다치거나 조국을 떠났다는 시리아.
세상엔 신도 없고 정의도 없으며 슬픈 주검만 줄을 서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지만
어떤 절망에서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어주기 때문에 신이 위대한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희망의 빈 자리에 앉혀 둘 이름이 신인 것일까.

무어라 하든
감사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하게 살아내고 있는 시리아의 사람들.
해외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사라진 뒤로
지금은 어떻게든 해결된 게 아닐까 막연한 기대도 있었지만
그동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희망은 충분했지만
적은 상상 이상이었기에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분노를 표현할 충분한 힘이 있지만
아직 승리하지 못했다.
희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독재자의 욕망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독재는 언젠가 반드시 끝나고
그들의 숨통을 고통스럽게 끊으며 순교자들 위한 위령제를 지낼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날을 당신은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당신은 무슨 힘으로 싸울 수가 있나요.

죽는 게 더 쉬울 것 같은 그곳에서
그는 노래도 하고 외치고 좌절도 했지만 싸운다.
잊지 말아달라고 관심을 구걸하는 대신
바셋은 이렇게 노래했다.
-그 외침을 외면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그런데 부끄러울 겨를도 없이
나는 슬프기만 했다.

인류가 거듭거듭 발전하고 있다면
왜 아직도 누군가의 목숨은 도화선이, 방호벽이, 불쏘시개가, 불꽃이 되고 있는 것일까.

----EIDF 대상을 수상하던 감독의 수상소감.
어서 승리해서 우리나라의 전쟁기념관 처럼 지금의 홈즈-시리아의 싸움이 그런 기록으로 남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너무 기뻐하던 그 모습이 그 날을 앞당기는, 그리고 바셋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EIDF 2014| 미아와 알렉산드라|Twin Sisters



감독 : 모나 프리스 베테유센 Mona Friis BERTHEUSSEN노르웨이 | 2013 | 59min | 가족과 교육
좀 달라보이기도 하는데 자기도 구분을 못하겠다니, 쌍둥이에 대한 새로운 정보.

다행이 이 사랑스러운 두 아이는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 마음을 이어갈 능력이 있는 부모를 만나서
앞으로도 계속
가족과 혈육을 다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어른들 짐작보다 생각이 많기도 하고 복잡하다지만
이 두 아이는 어쩌면
만날 수 있는 자매를 그리워하느라
낳아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좀 덜하게
그래서 좀 덜 가슴아파하며 자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헤어져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들은
인간의 유전적 특질 연구의 단골소재라는 건 들었지만
혈육임이 분명한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 현실적인 어려움,
너무나 명백한 가족이지만 함께 살지 못하는 그리움은
이렇게 보여주기 전엔 생각 못했었다.
서양에서 자랐으니 쿨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멍청한 짐작을 했으니까.
좀 더 자라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같이 배워 얘기할 모습을 그려봤다.
이쁘게, 행복하게 잘 자라렴.

...이 두 아이를 떠나보낸 가족에 대해서는
이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것 밖에 알지 못한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부모들, 아니면 한쪽의 부모가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고 자신들의 불행을 가속화시킬 수 없어서
최선이라 믿고 선택했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생이별했다가 뒤늦게 찾아온 자식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나
그래서라면 괜찮다고 위로하는 입양인을 TV에서 보기도 했다.

다른 환경속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는 두 아이의 현재.
혈육을 찾아오든 안 찾아오든 번듯하게 자라난 관대한 입양인들의 모습으로 남아
비슷한 상황의 부모들에게 같은 선택을 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서 불행을 읽어내는 눈에게
이 두 아이는 전형적인 가난하고 불행한 운명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감하기에는 너무 멀고 생소한,
그래서 뭐가 있을지도 모르겠는 미래의 번민을 생각해보면
정말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조건만으로 이 결정을 최선이라고 계속 생각해도 되는 것인지.